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62
361화.
적막이 도서관 전체를 가득 채웠다.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천 년.
그 긴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의 흐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머릿속은 아득해졌기 때문이다.
버드와 케일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흐.”
버드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술이 필요하네.”
그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음이, 머릿속이 갑갑했다.
예상이다.
하얀 별이 초대 용병왕일지도 모른다는 예상.
이 예상에 대해서 확인 과정을 분명히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 예상이 사실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빌어먹을.”
버드는 두 손으로 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는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와 갑갑함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빌어먹을!”
그런 그를 보면서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였다.
“…하아.”
얕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론이 부축하고 있던 케일의 얼굴을 살폈다.
열에 들뜬 얼굴로 숨을 토해내는 케일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식은땀 범벅이었다.
젖은 붉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은 케일을 보며, 론은 제 아들 비크로스에게 케일의 부축을 넘겼다.
케일은 비크로스의 손길을 따라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등을 책장에 기댔다.
“…인간.”
“안 되는데.”
라온과 홍이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온은 케일의 종아리 근처로 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일은 살짝 눈을 내리깐 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온몸에 힘이 없어 보였다.
“…미치겠네.”
버드는 그 광경에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껏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듣느라고 케일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확인했지만, 지금 듣는 이야기가 먼저였기에 모른 척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에르하벤이 마법으로 수건에 물을 적셔 론에게 내밀었고, 론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케일 이마의 땀을 닦아내었다.
“…하아, 하아.”
케일은 뺨에 닿은 시원한 물수건의 촉감을 느끼며 숨을 쉬었다.
더웠다.
‘빌어먹을.’
1급 능력자 김록수. 그가 가진 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힘인 ‘기록’.
그는 그 힘을 사용할 때마다 머리부터 시작해 온몸이 열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또렷했다.
뇌 과부하를 일으켜 정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다른 능력에 비하면 반동이 양호한 편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기록된 정보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케일 님,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최한이 눈을 감은 케일 곁으로 다가왔다.
“그래, 밖으로 나가서 마저 하도록 하자구나.”
에르하벤도 그런 최한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최한은 눈을 감은 채 별말이 없는 케일을 업으려 했다. 비크로스가 이를 보조하기 위해 케일의 어깨를 붙잡았다.
“…제기랄.”
그 광경을 보던 버드는 얼굴을 연신 찌푸리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보다 더 갑갑할 게 틀림없는 이들이 담담한 얼굴로 다음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결국 버드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케일과 일행에게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냥 들켜도 괜찮으니까, 마법을 써서 빠져나가죠.”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이 보관소를 이용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였다.
“그럼 위대한 내가 텔레포트 마법 한다! 나도 도울 거다!”
라온이 대번에 버드의 말에 동조하며 마법을 펼칠 듯이 두 앞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버드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라온 님, 좌표는 제가 불러 드리겠습니다.”
“그래, 불러라! 술 좋아하는 용병왕아!”
“네, 좌표는-”
그때였다.
“됐어.”
얕은 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
케일이었다. 순간 버드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야, 뭐가 괜찮다고 그러는-”
“더워.”
케일은 버드는 무시한 채 제 할 말만 했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에 버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냐?”
버드가 물었지만, 케일은 아주 철저하게 무시했다. 답하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덜덜 떨리는 케일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었다.
몸의 열을 빨리 빼야 했다.
“더워.”
덥다고 중얼거리는 케일의 손이 느릿느릿하게 단추를 풀어 내려갔다.
삐이이- 삐이이이-
그 순간, 날카로운 신호음이 도서관을 가로질렀다. 버드는 케일을 쳐다보던 시선을 돌렸다.
“인간아!”
어느새 검은 용은 텔레포트 마법을 펼치려 내밀었던 두 앞발에 영상 통신구를 들고 있었다.
붉은색 빛을 토해내는 영상 통신구였다.
“인간! 왕세자다!”
케일의 개인 영상 통신구가 붉게 빛날 때는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의 연락이 왔을 때뿐이었다.
라온은 케일의 상태를 힐끔힐끔 보면서 말했다.
“인간아! 왕세자한테서 연락이 왔다! 나중에 연락하라고 한다?”
버드도 케일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난 연결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마법 쓰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네 상태가, 음.”
아무리 보아도 케일은 지금 영상통신을 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케일은 라온과 그 근처의 온, 홍, 각각의 머리를 한 번씩 손으로 툭툭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연결해.”
안 그래도 케일은 왕세자에게 할 말이 있었다.
“도련님.”
“도와드리겠습니다.”
“됐어. 다 해가.”
케일은 론과 최한에게 대충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빌어먹을.’
더워서 짜증이 절로 났다.
하지만 케일은 단추를 풀면서도 꽤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김록수 때는 덥고 땀이 아무리 나도 부하 직원들 있는 앞에서 조금이라도 단추를 풀거나 소매를 걷는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몸에 있는 흉터들을 보이기 영 그랬으니까.
뭔 자랑거리라고 흉터를 보여주겠는가. 오히려 같은 일을 하는 녀석들한테 겁만 줄 일이었다.
케일은 단추 사이로 비치는 제 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건 좋네.’
흉터 없는 몸.
흉터가 생겨도 심장의 활력이 없애줄 몸.
그건 좋았다.
흉터도 기록이었다.
그것도 좋지 못한 기록.
그런 것은 없어지는 편이 나았다.
보는 이들에게도, 새겨진 이에게도 그저 상처만 될 것이니까.
“인간, 연결했다!”
단추를 풀어나가던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에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그 앞에 영상 통신구와 함께 통신구 위로 떠오른 화면이 보였다.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당연히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이었다.
평소보다 유달리 위엄 넘치는 옷차림을 한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뭐 하냐?
위엄은 지나가던 용한테 내던진 말투였다.
화사하던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술 마셨냐?
이제는 하다 하다 이런 불경한 태도까지 취하냐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는 살면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셔츠를 벗어젖히며 제 영상통신을 받은 놈을 처음 보았으니까.
저건 술이 취해서 아예 예의고 뭐고 간에 다 말아먹어 버려야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냥 술주정뱅이 망나니로 돌아가기로 한 건가? 응? 무슨 술을 얼마나 먹으면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풀어진 상태로 땀-
이어가던 말이 뚝 끊겼다.
이내 그 얼굴이 다른 의미로 일그러졌다.
-…또 뭔 짓을 한 것이지?
알베르는 케일의 일행이 모두 보였다.
그들은 멀쩡했다. 케일만 열에 가득 찬 상황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고대의 힘을 쓴 것인가? 그리고 저 안경 쓴 이는 누구지? 용병왕인가?
버드와 알베르의 시선이 영상 통신구 화면을 통해 부딪쳤다.
버드는 라온이 ‘왕세자다!’를 외친 순간부터, 누군지 대번에 알아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하. 버드 일리스. 용병왕입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의 자세는 꽤 당당했다.
그는 비록 지배하는 영역은 없었지만 그래도 동대륙에서 알아주는, 수위권을 다투는 세력의 대표였다.
용병왕은 동대륙 왕들에게도 쉬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반갑네. 알베르 크로스만일세.
알베르의 소개는 짧았다.
그는 이름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동서대륙 권력자들에게 제 이름이 알려졌을 테니까.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 길드 인명부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인명부? 그걸 왜?
의아해하던 알베르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멀쩡한 에르하벤의 안색을 보며 곧바로 케일이 움직인 이유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얀 별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갔나 보군.
케일은 이래서 알베르가 편했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맞습니다. 인명부 기록들을 살폈죠.”
그 말을 시작으로, 케일은 지금까지 기록 보관소에서 알아낸 정보들을 담담한 목소리로 읊었다.
“…여기까지입니다.”
하얀 별이 초대 용병왕일지 모른다는 예상.
인명부가 실은 고대의 힘 기록서일지도 모른다는 예상.
그 모든 것들을 들은 알베르의 표정은 어느새 무거워져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그의 눈동자는 지친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지?
케일의 입꼬리가 힘없이 올라갔다.
이래서 왕세자와 일할 맛이 났다.
“약 7일간, 9,889권의 인명부.”
케일은 눈을 감았다.
열에 들뜬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지?
“제가 읽은 책입니다.”
-…뭐?
알베르는 그제야 케일이 기대고 있는 책장이, 그리고 그 너머의 수많은 책장들이 보였다.
그의 귓가에 감정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 4만 5,788권 중 9,889권 내용을 습득.”
케일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기록들이 마치 책장처럼 펼쳐져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9,889권의 기록을 바탕으로 찾아낸 고대의 힘 소유자는 31명. 그들 중 사망 소재지가 파악된 자는 29명. 물 속성 4명, 바람 속성 9명, 불 속성 6명, 나무 속성 1명, 그 외 11명.”
용병왕 버드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 공간에서 말을 하는 이는 케일뿐이었다.
“첫 번째 고대의 힘 기록자. 궁사 리세터. 대략 962년 전 동대륙 북부 출신. 901년 전 61세의 나이로 사망. 그가 가진 고대의 힘은 바람 속성.”
덥다.
케일은 더웠다. 그러나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검사 챠아르. 대략 954년 전 남부 바다 섬 출신. 930년 전 24세의 나이로 사망. 그녀가 가진 고대의 힘은 물 속성. 그리고 세 번째…….”
버드는 제 손등을 쓸어내렸다.
“17번째, 창술사 엘스렌. 대략 781년 전 자유 도시 출신. 740년 전 41세로 사망. 그가 가진 고대의 힘은 불 속성. 18번째…….”
소름이 돋았다.
케일의 입에서 그가 읽은 9,889권 인명부 속 고대의 힘 소유자들이 흘러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하게 내뱉는 케일의 목소리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31번째, 무투가 인크터… 사망 연도 불명. 고대의 힘은 물 속성.”
케일은 마지막 31번째 고대의 힘 소유자까지 내뱉은 순간 알베르를 쳐다봤고, 곧바로 막힘없이 열리는 알베르의 입을 볼 수 있었다.
왕세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서대륙 고대의 힘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주마.
케일의 입꼬리가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
왕세자는 기가 찬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버드처럼 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9,889권을 읽고 그 내용을 외워 말한다?
‘미친놈.’
돌아도 제대로 돌아버린 놈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왕세자는 거침없이 말했다.
-뭘 좋다고 웃어?
일하기 편한 것은 왕세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대의 힘 자료를 모아야겠지만, 너희 쪽은 반대여야 할 것 같은데?
그 순간, 버드의 몸이 움찔했다.
케일의 시선이 버드에게로 향했다.
“어휴.”
버드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초대 용병왕이 하얀 별이라면, 그가 이곳을 몰래, 지속적으로 잠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제기랄!”
알베르는 멈칫했다.
갑자기 용병왕이 거친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그 정도는 그럴 수 있다 판단했다. 그가 멈칫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기랄! 맨 정신으로는 말 못 하겠어!”
달칵!
술병이 따졌다. 그리고 용병왕은 술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케일은 알베르의 시선을 받았다.
‘어디서 저런 놈을……?’
딱 그런 눈빛이었다.
“크아!”
그리고 술 한 병을 시원하게 원샷한 버드는 입을 열었다.
“여길, 여길! 그래, 여기를!”
그는 혼자서 외쳤다.
“폭파시키는 거야!”
버드는 케일을 보며 외쳤다.
“하얀 별이 여길 못 오게! 인명부만 옮기고 여길 싹 폭파시키는 거야! 크하하하하! 그러면 나중에 기록을 찾고 싶어도 못 찾을 거 아냐? 크하하하!”
아주 호탕하게 웃어댔다.
“크하하하! 폭파! 다 부순다!”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버드를 외면했다.
그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얀 별이 초대 용병왕이라면 인명부만 따로 빼돌리고 이 공간을 폭파시키는 것이 흔적도 남지 않고 좋은 방향이었다.
“크흐흑, 내가, 용병왕이 초대 용병 길드 건물과 이 기록 보관소를 부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크흐흑, 부숴야지.”
버드는 케일에게 말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부수겠어?”
하얀 별은 케일 일행이 가진 힘을 알았다.
특히 케일의 고대의 힘들, 최한과 에르하벤 등 전쟁에 나섰던 주요 강자들의 힘을 알았다. 그들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대번에 케일이 동대륙에 와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그건 피해야 했다.
버드는 자신의 손으로 용병 길드의 건물 일부를 부숴야 하는 것이 마음에 쓰였지만 별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내가 부수지요.”
케일은 흠칫했다.
제 손에 차가운 물수건을 쥐여주며 저를 쳐다보는 이가 보였다.
케일은 물수건으로 팔의 땀을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론?”
시종 론. 그가 초대 용병 길드 건물과 이 보관소를 부수겠다고 나섰다.
“도련님.”
그는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저는 전면에 나선 적이 없지요. 저를 아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서대륙 전쟁 때는 론과 비크로스가 전면에 나선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제가 시종인 걸 알아챘던 ‘암’ 단원들은 모두 죽지 않았습니까?”
론의 팔을 잃게 만들고 그의 정체를 알았던 ‘암’ 소속 단원들은 고래족과의 합동 전투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케일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는 그저 케일의 시종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도련님.”
론은 그간 동대륙에 머물며 그저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다시 갈고닦았다. 검을 닦는 것뿐만 아니라, 적의 심장에 틀어박힐 얇지만 치명적인 비도처럼 스스로를 갈고 갈았다.
“좋은 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드디어 전면으로 나서 케일을 도울 때가.
그리고.
“몰란 가문의 부활을 알리기에는 말이지요.”
케일이 다시 불을 지펴준, 꺼져가던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가 되었다.
암과 용병 길드의 싸움은 동대륙의 대부분이 아는 일.
그렇다면 그 사이에 변수가 하나 끼어들면 된다.
변수가 많을 필요는 없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아주 작고 날카로운 비수이기만 하면 된다.
“몰란, 암, 용병 길드.”
몰란이 비수가 되어.
“삼파전으로 가지요.”
동대륙 힘의 판도를 뒤흔든다.
론은 여전히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러냐, 아들아?”
무덤덤한 얼굴로 비크로스가 답했다.
“그렇네요, 아버지.”
케일은 인자함은 집어치우고 서늘한 얼굴로 웃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하얗게 센 머리만큼 주름진 얼굴 사이로 자리한 눈동자가 들끓고 있었다.
“그렇다는군요, 도련님.”
하지만 그 목소리는 다정했다.
케일은 진한 미소를 그렸다.
이 살벌하지만 똑똑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그는 론이 나선 이유 중 하나가 케일과 일행을 위해서임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 케일에게는 누구보다도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자가 론이었다.
“론, 네 일은 내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일이 이 일이지요.”
케일은 론의 대답에 결국 환하게 웃었다.
-똑같은 사람들끼리 모였네.
알베르가 투덜거렸다.
“왕세자야, 너 또 그렇게 웃고 있다! 사악하게 웃는다! 하얀 별한테 보여주자!”
라온의 외침에 알베르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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