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0
369화.
케일도 라온처럼 제 앞에 자리한 여인을 바라봤다.
힐끗. 여인이 살짝 뒤돌아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성룡 때 폴리모프한 모습이지.”
에르하벤처럼 마냥 아름답고 하기에는, 그녀 특유의 분위기가 더 눈길을 끌었다.
로드.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평을 받는 존재. 그렇기에 진중하고 위엄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장난기가 넘쳐 보였다. 악동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왜? 별로 안 세 보여?”
로드 쉐리트는 웃으며 케일 품 안의 라온을 바라보았다. 라온은 흠칫하면서도 그 눈을 빤히 응시했다.
쉐리트는 자신의 약한 아이를 다정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맞아. 난 약해. 약한 용이다.”
약하다는 말에 라온이 흠칫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쉐리트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마법을 쓰지 않고 오로지 속성 싸움으로 다른 용들과 대련을 할 때면 난 늘 졌어.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뭐, 어릴 땐 마법을 써도 대련에서는 비기거나 거의 졌지만.”
라온의 눈동자에 의문이 어렸다.
가장 강한 용이 로드가 된다. 다른 용들이 로드라고 인정할 정도의 힘과 마법 능력을 가지고서.
그런데 약하다고? 대련에서 늘 졌다고?
라온은 의문이 들었지만, 차마 입을 열어 묻지 못하고 입술을 우물쭈물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우우- 우우웅-
대기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살짝 방패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방패 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용병왕 버드 일리스의 탄식이 들려왔다.
뒤이어 묘족들의 목소리가 주위를 채웠다.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러니까! 얼른 와! 여기 재밌는 게 많아!”
우우- 우우웅-
대기의 진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케일은 일그러지는 공기 사이로 환한 빛 무리가 보였다.
타닥. 탁. 타닥.
하얀 알갱이로 가득 찬 땅에 내려서는 이들이 있었다.
마법사 로브를 입은 이를 필두로 하여 암 전투복을 입은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마법사 하나에 묘족들이군.”
에르하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략 삼십여 명에 달하는 묘족들이었다.
“…누나.”
케일은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온의 뒤에서 여전히 오들오들 떨고 있는 홍이 보였다. 귀도, 꼬리도, 모두 한껏 움츠린 채 겁에 질려 있었다.
크르르.
온은 여전히 사나운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족장!”
그 순간, 케일의 시선이 움직였다.
케일과 대치하던 묘족 셋 중 한 명이 새로이 나타난 묘족들 중 한 명을 보고 ‘족장’이라 불렀다.
온처럼 은빛 머리칼을 지닌 이가 보였다. 그를 부르며 다가간 묘족이 말했다.
“족장, 여기에 그 돌연변이들이 있었어! 도망간 쓰레기들 말이야!”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정확히 말하면 그의 발치에서 방패에 몸을 반쯤 가린 채 크르르거리는 온에게로 향했다.
온과 홍은 족장의 혈통을 지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저 족장이 온, 홍과 같은 핏줄인 건가?
케일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가려는 찰나.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 있었나 보군.”
족장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족장 곁에 있던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그 핏줄의 마지막이니, 질기게도 살아남은 것이겠지. 그래도 케일 헤니투스 쪽에 붙었을 줄은 몰랐는걸. 그러니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건가?”
족장은 덤덤하게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더러운 피는 세상에서 사라져야지.”
방패 밖으로 반쯤 내민 온의 시야로, 냉정하게 말하는 남자의 차가운 눈동자가 담겼다.
땅을 딛고 있는 온의 앞발이 살짝 떨렸다.
그렇지만 온은 더 날을 세웠다.
“…누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홍은 강하다. 하지만 어렸다.
그 순간이었다.
“저것들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동시에 온은 저를 잡아 올리는 손길을 느꼈다. 홍도 마찬가지였다.
온은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는 케일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케일의 등 뒤에 앞발을 올린 채 저를 쳐다보는 라온도 보였다.
“온.”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가족은-”
케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이 외쳤다.
“아닌데! 가족 아닌데!”
그 목소리는 다급함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뒤이어 족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저런 불순물이 어찌 우리 안개묘족이라고 할 수 있겠나.”
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
“저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그냥 지껄이면 되는 줄 아나?”
온은 흠칫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분명 방금 말한 이는 케일이었고, 목소리는 서늘하다 못해 아주 차가웠다.
하지만 얼굴은 평소처럼 무덤덤했다.
방금 그런 목소리로 말한 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야.”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케일이 맞았다.
족장은 저를 향한 부름에 묘한 미소를 띠고서 케일을 바라봤다. 거대한 방패에서 반쯤 떨어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케일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동시에 족장은 힐끗힐끗 주위를 살폈다.
그 시선에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
우우우웅- 우우우-
대기가 다시 진동했다.
파앗, 파아앗!
그때마다 두셋의 묘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까지 합쳐 이제 묘족의 수는 오십여 명에 달했다.
족장은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동료 마법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묘족들에게 은밀히 눈짓했다.
-적은 눈앞의 저들이 다인 것 같아. 성벽 주위를 감싸도록 하지.
사아아-
바람 한 줄기 불어왔다.
그 순간 오십여 명의 묘족들이 일시에 흩어졌다.
타다닥. 타다닥.
가볍게 땅을 박차고 이동하는 그들이 모두 성벽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런! 케일, 우리도 나가야 할 것 같구나!”
에르하벤이 그 움직임에 다급히 입을 열었고, 최한은 이미 뛰쳐나갈 준비를 모두 끝내고 있었다. 몰란 부자도 마찬가지였다.
용병왕 버드 일리스가 얼굴을 찡그린 채 외쳤다.
“미쳤어! 마법 폭탄이라니!”
오십여 명의 묘족들, 그들의 손에는 모두 마법 폭탄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자는 묘족과 함께하는 마법사였다.
일행의 얼굴에 심각함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한 번에 서른 명.
그 정도의 숫자를 텔레포트시킨 마법사였다.
“…인간인데.”
에르하벤은 최상급 마법사에 버금가는, 아니, 그 경지를 조금 더 넘어서는 실력의 마법사를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곤란하다.
로잘린 이상, 네크로맨서로 치면 메리 정도의 힘을 지닌 마법사였다. 그런 마법사가 적으로 있다는 건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하얀 별도 아직 오지 않았다.
순간, 마법사와 에르하벤의 눈이 마주쳤다.
마법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왜? 인간 마법사는 용 정도로 마법을 쓰면 안 되는 건가? 참, 용은 오만하다니깐.”
곧 마법사의 웃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마법사의 마나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에 반응하듯 성벽을 둘러싼 묘족들 손의 폭탄들이 진동했다. 그 순간, 족장의 입이 열렸다.
“왜 그렇게 나를 계속 쳐다보는 건가?”
그는 여전히 케일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별다른 표정이 없는 족장은 참으로 무료해 보였다.
그는 케일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불렀으면 말을 하지?”
케일의 입이 열렸다.
“너.”
“그래. 할 말이 뭐지?”
무료한 얼굴로 얼른 말하라는 듯 턱짓하는 족장. 그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러운 주둥이 좀 닫아. 시끄러우니까.”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짝다리를 짚은 채 찡그린 얼굴을 펼 줄 몰랐다.
“쓰레기? 더러운? 내가 아무리 망나니라도 애한테는 그런 소리 안 하는데. 저거는 완전 쓰레기들 아냐? 제정신인가?”
온과 홍이 멍하니 케일을 올려다봤다.
“맞다. 우리 인간 말이 매우 맞다.”
그 둘에게 작게 중얼거리는 라온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로드 쉐리트가 묘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오십 개가량의 마법 폭탄에 대응하려고 움직이는 와중에도, 케일의 표정은 그냥 짜증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하하하하.”
쉐리트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에 케일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이는 자신의 아이가 보였다. 그 모습이 그녀의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때,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겠다.”
음?
케일은 순순하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족장을 희한한 놈 쳐다보듯 바라봤다. 정말로 정신머리 상태가 맛이 간 놈인가?
하지만 케일은 왜 족장이 입을 다무는지 알 수 있었다.
케일과 에르하벤, 그의 일행이 걱정하고 긴장을 절대로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우우웅-
대기가 일렁였다.
전보다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게. 그리고 대기를 가르며 빛 한 점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빛이 점점 더 커져갔다.
케일은 그 빛을 보는 순간 느꼈다.
그놈이 왔다.
“하얀 별이다.”
고룡은 그 말과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로 백금빛 마나가 휘몰아쳤다.
파아앗!
순식간에 환한 빛 사이로 백여 명의 존재들이 보였다.
‘…하얀 별.’
최한은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빛나는 검은 오러가 검에서 조금씩 일렁이며 몸집을 키웠다.
최한의 검은 눈동자에 환한 빛 사이로 걸어 나오는 하얀 별이 보였다.
백여 명의 존재들을 뒤에 거느린 그는 마치 이 자리의 주인공 같았다.
“…제길.”
용병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얀 별 뒤로 암 단원들이 보였다. 거기에 더해 곰족과 사자족도 보였다.
역시 하얀 별은 혼자 오지 않고, 강자들과 함께 왔다.
‘결판을 내려는 건가?’
용병왕은 하얀 별이 오늘 이 자리를 그냥 작은 싸움으로 끝낼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네.”
피로에 찌든 얼굴의 하얀 별이 담담하게 걸어 나와 자리했다.
케일과 햐얀 별, 두 사람의 시선이 닿았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침묵은 끝이 났다.
“던져.”
하얀 별의 짧은 명령이 내려진 순간, 대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동이 하얀 성을 감쌌다.
푸르다.
묘족 측 마법사의 파란 마나가 파도처럼 하얀 성을 향해 밀려왔다.
오십여 명의 묘족이 공중으로 박차고 올랐다.
족장이 외쳤다.
“최대한 성벽 가까이로 이동해!”
동시에 괴성이 모래와 같은 하얀 알갱이로 뒤덮인 땅을 뒤흔들었다.
“크아아아! 부족의 복수를 하라!”
“크아아아아!”
곰족 이십여 명이 광폭화를 했다. 그 뒤로 사자족이 갈기와 같은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땅을 박찼다.
그들은 겁도 없이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로 물러서라!”
에르하벤이 아래쪽 일행을 향해 외쳤다.
“저들은 알고 있는 거다! 이 성벽이 고작 마법 폭탄 한 번으로 부서지지 않는다는 걸!”
그렇기에 적들은 마법 폭탄 뒤의 공격까지 노리고 달려드는 것이리라.
그때, 에르하벤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우르르르- 우르르-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안개로 뒤덮여 달도 태양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곧 벼락이 내리칠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에르하벤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는 짓씹듯이 한 존재의 이름을 내뱉었다.
“…하얀 별!”
제국 수도에 내리쳤던 벼락.
하얀 별이 가진 하늘의 힘 일부였다.
이걸, 에르하벤은 이 힘을 쉬이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 라온, 쉐리트와 함께 이 힘을 어찌어찌 막더라도 그 뒤엔 탈력감에 빠져 이어질 적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할 터.
마법 폭탄.
하얀 별의 벼락.
그 뒤에 이어질 곰족, 묘족, 사자족, 마법사, 암 단원들의 공격.
그리고 아직 하얀 별도 살아 있는 상태.
에르하벤은 생각할수록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얀 별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총공세를 펼치려는 듯한 모습이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 에르하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었다.
케일은 묘족들이 곧 던질 폭탄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얀 별을 바라봤다.
“기다렸던 건가?”
하얀 별은 미소를 그렸다.
“당연하지 않겠어?”
그가 케일을 가리켰다.
“저번에 너와 맞붙었을 때, 하나 눈치챈 게 있었거든.”
모고르 제국. 연금술 종탑 전투 때 하얀 별은 케일과 부딪치며 한 가지를 알아챘다.
“네 품에 있는 왕관. 네가 그걸 들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내가 그것의 주인인데?”
하얀 별은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래서 언젠가 여기에 올 것이라 생각했지. 왕관이 길을 안내해 줄 테니까.”
그의 시선이 라온과 용병왕에게 닿았다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물론 네가 나를 위해 이리 좋은 선물을 둘이나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만.”
마지막으로 그 시선이 거대한 방패를 든 쉐리트에게서 멈췄다.
“그리고 저런 허상, 가짜를 볼 줄도 몰랐고.”
하얀 별이 손을 들었다.
“봐주는 것은 더 이상 없다. 이번이 끝이야.”
딱!
그의 손가락이 부딪쳤다.
그 소리가 시작 신호였다.
“가라!”
마법사가 외치자 마법 폭탄 오십여 개를 든 묘족들이 공중으로 마법 폭탄을 던졌다.
하나같이 최상급 마법 폭탄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그것들이 바다처럼 퍼진 마법사의 푸른 마나에 걸려 천천히 성벽으로 향했다.
케일 일행은 왜 빠르게 마법 폭탄을 던지지 않고 천천히 폭탄을 전달하냐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
하얀 별 수하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폭발하기 전, 백오십여 명의 적들은 빠르게 전투 대형을 만들었다.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드는 묘족들이 보였다.
족장이 낮게 읊조렸다.
“안개를 펼쳐라.”
사아아아-
안개가 주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서서히 흐릿하게 안갯속으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최한은 정면을 응시했다.
폭탄들이 성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는 와중에 짙은 안개가 성벽 밖을 감쌌다.
안개는 묘족을 넘어 사자족, 곰족, 암까지 서서히 감춰주기 시작했다.
곧 저들의 모습은 모두 안갯속으로 사라질 터.
하지만 최한은 저들에게 달려들 수가 없었다.
곧 폭탄이 터지고, 하얀 별의 벼락이 언제 내리칠지 알 수 없으니까.
이 자리에서 모두를 지켜야 하는 최한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최한은 처음으로 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약자를, 약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묘족은 약자부터 죽입니다! 그들의 전투 방식입니다.”
묘족, 어마어마한 은신술을 지닌 존재들.
그들은 케일 일행이 사자족, 곰족, 마법사 등등 하얀 별의 강한 수족들과 싸우는 와중에, 실수를 하거나 가장 약해진 일행을 찾아 목숨을 빼앗으려 할 터.
그건 모두를 지키고 싶은 최한의 마음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얼마나 부담스러운 전투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성안에서만 버틴다?
…그게 언제까지 가능하겠어?
여기를 벗어나?
…그럼 라온의 엄마는?
최한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그 순간.
“너,”
여유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최한은 고개를 돌렸다. 케일을 보고 있는 드래곤 로드가 보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쉐리트였다.
폭탄이 곧 이 성을 덮칠 순간이건만 그녀는 태연하게 물었다.
“너, 방패의 힘을 지녔지?”
케일은 멈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사용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나설 틈은 없었다.
“한번 보거라.”
땅에 박혔던 방패가 로드의 손에 의해 다시 들렸다.
“가장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전투적인 존재가 용이지. 하지만 난 그들과 다른, 일종의 돌연변이다.”
케일과 쉐리트의 시선이 마주했다.
“왜냐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 특성이 보호니까.”
보호.
무언가를 보호하는 속성.
“그건 혼자만 생각하는 자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속성이거든.”
쉐리트의 시선이 케일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아이야.”
라온은 쉐리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라온 미르.”
쉐리트는 그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한번 보렴.”
쉐리트.
그녀는 스스로가 허상의 존재임을 안다.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아이가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고, 동시에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이었다.
오늘 그녀는 자신의 어린아이에게 한 가지를 알려주려고 했다.
“나는 지금 1차 성장만을 한 용의 힘을 지녔고, 하얀 별이라 불리는 저 드래곤 슬레이어 놈보다 절대적으로 약한 전투력을 지녔지만.”
그녀가 드래곤 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내가 어떻게 가장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 보여주마.”
그녀는 대련에서는 늘 졌다.
“나는 혼자 있으면 형편없이 약한 존재지. 용이라고 하기에도 턱없이 약해.”
그러나 그녀는 강해지는 때가 있었다.
보호.
누군가를 지켜야 할 때.
“하지만 보호해야 할 존재가 있으면 나는 강해진다.”
라온의 눈동자에 부드럽게 웃는 쉐리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힘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이 끝나는 그 순간.
마법사가 외쳤다.
“폭발하라!”
동시에 케일은 몸을 비틀거렸다.
우우우우웅-
땅이 진동했다.
공기도 진동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방패다.
하얀 성을 감싸는 거대한 하얀 방패가 보였다.
“…이건!”
그리고 그 방패는 공중에 떠올라 있던 에르하벤마저 감싸 버렸다.
하얀 성 전체를 감싼 거대한 방패.
그 방패 위로 솟구쳐 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로드 쉐리트.
이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성벽 안의 땅과 하늘은 그녀의 영역이었다.
하얀 머리칼이 바람을 따라 펄럭였다.
치솟아 오른 여인의 손에 들린 방패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하얀 별과 그녀의 눈이 마주친 순간.
“음!”
하얀 별의 눈동자가 커졌다.
쉐리트가 던진 방패가 하얀 별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성 밖을 나갈 수 없지만, 그녀가 만든 힘은 성 밖을 벗어날 수 있었다.
거대한 방패가 하얀 별을 목을 노리며 날아갔다.
그 순간, 하얀 별은 방패 너머 쉐리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군을 보호하는 최고의 방법은 적이 될 만한 존재를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
던져진 방패가 하얀 별의 목을 향해 순식간에 도달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하얀 성을 향해 던져진 마법 폭탄들에서 폭발음이.
그리고 하얀 별의 목을 노린 방패에서 폭발음이.
두 개의 폭발이 하얀 땅을 뒤흔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