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6
375화.
하지만 신났던 케일의 표정은 이내 구겨졌다.
“흐, 흐흐흐…….”
저 자식 왜 저래?
케일은 저를 보며 히죽히죽 웃는 용병왕 버드 일리스의 얼굴을 외면했다.
분명 버드는 오늘 술 한 병도 안 마셨건만, 대여섯 병은 처마신 표정이었다.
뽁!
경쾌한 소리에 케일은 다시 버드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뽁 소리의 정체는 술병 뚜껑 따는 소리였다.
“크으! 술맛이 꿀맛을 넘어섰구나!”
버드는 어디서 꺼낸 술병을 통째로 꿀꺽꿀꺽 비우고 있었다. 케일은 당연히 저 술주정뱅이를 무시하며 로드 쉐리트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로드 쉐리트의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상당히 어울려, 어디서 거하게 장난을 칠 기미가 보였다.
“…로드님?”
“크음!”
케일의 부름에 로드는 표정을 바로 하며 곧바로 두 팔을 벌렸다.
우우웅-
하얀 마나가 그녀의 주위에 피어올랐다.
“곧바로 길을 열어주마.”
끼이익.
닫혔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크흠.”
그 순간, 누군가 헛기침을 해댔다.
에르하벤이었다. 그는 두 팔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중얼거렸다.
“…힘든 척을 해볼까…….”
그 말과 함께 백금빛 마나가 그의 주위에 피어올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우웅- 우우웅- 우웅-
어딘가 고장 난 기계처럼 백금빛 마나가 힘없이 에르하벤 주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의 속성을 담은 백금빛 마나는 평소 마치 비단처럼 그의 주위를 감싸던 것과 달리, 다 낡아서 해진 천처럼 시들시들해 보였다.
에르하벤은 제 옆에 선 이에게 물었다.
“론, 어떤가?”
시종 론은 담담한 얼굴로 에르하벤 주변의 마나들을 보며 평을 내렸다.
“한 이십 년은 한 번도 빨지 않고 쓴 걸레 쪼가리 같습니다.”
“훌륭하다는 말이군.”
쾅! 쾅! 쾅!
지금도 거대한 돔을 바깥의 적들이 두들겨 댔다.
쩌적. 쩌저적.
케일이 짱돌의 힘을 더 쓰지 않았기에 군데군데 금도 갔다.
“그럼 이제 내가 실드를 써야겠구나.”
에르하벤은 그 말과 함께 자신 주변의 마나를 돔 밖으로 내보내 돔을 감싸 안았다.
그러곤 케일을 쳐다봤다.
“뭐래?”
케일의 귓가로 바람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묘족이 피식 비웃더니, 실드를 더 공격하고 있어!’
‘앗! 실드가 허술하다고 사자족 한 명이 하얀 별한테 보고하러 간다.’
‘곰족 한 명이 웃어! 크하하하! 용의 힘이 다했나 보군! 이런 걸레짝 같은 실드라니! 라고 해!’
쾅! 쾅! 쾅!
어째 에르하벤의 실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이전에 돔을 두들길 때보다 더 경쾌하고 신난 것 같았다.
‘역시 저 안에 든 것들은 독 안의 쥐야. 힘을 다 쓴 게 분명해! 라고 말한다.’
‘간신히 버틴 줄 알아! 케일 네가 쓰러진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아!’
‘하얀 별이 마법사에게 조금만 더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대.’
‘맞아, 맞아. 그러면서 일단 공격을 하다가 지쳐 물러나는 형태를 취하면서, 케일 네가 먼저 나오길 기다리자고 말하고 있어.’
‘그리고 그때 칠 거라고 하더라! 숨통을 조이자고 해!’
케일은 실소를 흘렸다.
바람 정령들 말을 정리해 보자면 하얀 별은 이 돔을 공격하는 척을 하다가 지쳐서 피하는 형태를 보인 뒤, 케일 일행이 다 끝난 줄 알고 돔 밖으로 나올 때 그들을 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소리였다.
‘그러든가 말든가.’
케일은 매복하고 있을 하얀 별의 뒤를 칠 생각에 신이 나 입을 열었다.
“곰족이 이런 걸레짝 같은 실드라니! 하고 외치면서 웃으며 실드를 두들긴다고 합니다.”
“그래?”
걸레짝 같은 실드라는 평에도 에르하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진실로 기뻐했다.
그 순간 케일은 묘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끼이이-
성안의 문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리고 있었다.
그가 쉐리트를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쉐리트는 헛기침을 하며 쑥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문 여는 소리 크게 냈다가 밖에서 뭔가 알아채면 안 되니까. 이런 건 은밀함이 중요하잖아?”
쉐리트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신났네. 신났어.
케일은 가장 나이 많은 두 용이 신났음을 깨닫고 표정이 뚱해졌다.
“그냥 빨리 열어주십시오.”
“아, 그, 그게 좋겠지?”
로드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더니 이내 빠르게 성안의 문들을 열었다.
모든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끼익. 끼익. 끼익.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린 몇 개의 문들.
그 문들이 하나의 선을 그렸다.
로드는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이 성안에서 한 십 년 정도 지내면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라온이 이 성에서 태어났다면 10살쯤에 살았을 방.
그 방까지 문이 열렸을 때.
딱!
로드의 손가락이 부딪쳤고 문이 하나 더 열렸다.
그 문은 방의 바닥에 있었다.
끼이이익!
방 안의 카펫과 함께 바닥 타일이 치솟아 올랐다.
“저 지하 통로를 통하면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케일 주위에 일행이 모여들었다. 그와 함께 떠날 최한과 평균 9세, 용병왕이었다. 용병왕은 술을 몇 병째 마시는지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마법사가 공격을 시작했어!’
바람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이전과는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마법사의 공격입니다!”
케일이 외쳤고, 에르하벤이 신나서 말했다.
“오! 그러면 힘겹게 버텨내는 척 좀 해야겠는데.”
“에르하벤 님, 실드가 흔들렸다가 다시 힘겹게 이어 붙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네, 론. 적절한 조언이었어.”
허이구.
에르하벤과 론이 대화하는 모습에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걸음이 향한 방향은 당연히 지하 통로 입구였다.
로드 쉐리트가 그 옆에서 함께했다.
그녀는 케일에게 이 통로와 마을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말해주었다. 꽤 유용한 내용이었고, 그 안에서 케일은 그가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지하 통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지하로 향하는 어두운 계단이 보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케일의 말에 로드 쉐리트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라온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라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평균 9세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다녀오렴.”
평균 9세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라온의 웃는 얼굴이 쉐리트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다녀오렴.
쉐리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곤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간, 인간! 빨리 갔다 와야 한다!”
라온이 쉐리트 쪽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케일을 보챘다. 케일은 한숨을 쉬며 지하 통로 안을 가리켰다.
“일단 어두우니까, 빛부터- 했네.”
라온 주위에 이미 라온이 만든 마법 광구가 대여섯 개는 되었다. 저 정도면 지하 통로 안이 대낮처럼 밝을 듯싶었다.
“가속 마법도 준비했다!”
일행 몸에 라온의 가속 마법이 펼쳐졌다.
케일은 어깨를 쫙 펴고 어서 가자는 라온에게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며, 지하 통로 계단으로 향했다.
그는 따라오려는 라온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갔다 온다고 인사드려야지.”
라온은 흠칫했다.
냐아아옹!
“맞는데, 인사해야 하는데! 한스가 그래야 한댔는데!”
온과 홍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라온에게 말하고는 여유롭게 케일의 뒤를 따랐다.
최한은 당연히 케일의 뒤를 따라잡은 것은 물론 케일의 앞에 섰다.
“흐흐흐.”
버드는 술에 진짜 취하기라도 한 듯 휘적휘적 걸으며 그 뒤를 따랐다.
라온은 혼자 남겨졌다.
날개를 파닥이던 검은 용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옆으로 향했다. 로드 쉐리트와 눈이 마주쳤다.
라온의 눈동자가 황급히 다시 앞으로 향했다.
라온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빠르게 지하 통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면서 외쳤다.
“그, 금방 갔다 올 건데!”
평소 쓰지 않는 온과 홍의 말투를 흉내 내며 사리지는 라온을 가만히 쳐다보던 로드 쉐리트는 미소와 함께 지하 통로 문을 천천히 닫았다.
카펫까지 제자리를 찾으며 문이 존재한다는 흔적을 지운 그녀는 천천히 방패를 피워 올렸다.
버텨야 한다.
돌아올 이가 있는 장소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 또한 그녀가 꿈꾸던 일 중 하나였다.
우우우웅-
하얀 방패가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그런 그녀에게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드님.”
론은 무심한 얼굴로 로드의 방패를 가리켰다.
“방패가 너무 새것 같고 좋아 보입니다. 좀 낡게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부서지고 쓰러질 방패면 좋겠습니다만.”
로드는 씨익 웃어 보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그래도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의심해. 적당히 목숨을 건다는 듯한 느낌도 줘야지.”
“아, 그렇군요.”
론이 고개를 끄덕였고, 로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그린 채 적당히 힘을 조절한 방패를 돔 밖으로 보냈다.
그 방패는 에르하벤의 걸레짝 같은 실드를 감쌌다.
“주군, 이것들이 최대한 버틸 생각 같습니다!”
“확실히 성과 로드 환영을 지키려고 다른 이들이 무리한 것 같네요. 로드의 방패가 제일 튼튼한 걸 보면요.”
“케일 헤니투스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방어할 힘이 없는 것 같아.”
적들의 대화는 고스란히 바람 정령들에게 노출되었다.
어느 누가 케일이 정령의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겠는가?
‘다 일러바쳐야지!’
‘우리 목소리 들리는 인간이 있어서 좋아. 다 말해줘야지.’
‘시끄러워. 쟤네 하는 말이나 기억해! 다 일러바쳐야 돼!’
정령들은 열심히 적들의 대화를 들었다.
***
타닥. 타닥. 타닥.
빠르게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가 지하 통로 안을 가득 채웠다.
큰 수레 하나가 수월하게 지나갈 것 같은 꽤 넓은 통로였다.
“…으하하하! 이런 통로가 있었다니!”
용병왕 버드가 두 팔을 벌리며 통로를 열심히 내달렸다. 양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저 미친놈.’
케일은 버드를 어디다가 내버려 두고 가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드는 케일 가까이로 다가왔다.
케일은 그가 다가올수록 술 냄새와 시뻘건 얼굴에 왠지 모르게 짜증이 일어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버드의 입이 열렸다.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이 이 빛의 성 아래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버드는 멀쩡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는 방금 통로로 들어서기 전, 로드가 해줬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로드님의 말씀대로면, 지하에 마을을 만들었단 소리 아냐? 진짜 신기하네. 지하 마을이라, 생각도 못 했어.”
케일은 신기해하는 버드를 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난 네가 신기한데.”
케일은 미친놈처럼 굴다가 다시 멀쩡했다가를 반복하는 버드가 이제는 그냥 신기했다. 저런 놈은 세상에 또 없을 거다.
“뭐? 내가 신기해?”
케일은 되묻는 버드를 무시하며 앞으로 더 박차고 나아갔다.
이미 온과 홍, 라온은 최한과 함께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케일 님,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거리를 가늠하며 달리던 최한이 로드 쉐리트가 말해준 지점에 도달해 가는 것 같자, 케일에게 보고했다.
“멈추지 말고 쭉 달려.”
케일은 그런 최한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저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하얀 별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좋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대한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동시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확해야 했다.
때문에 케일의 암갈색 눈동자가 은밀히, 그리고 천천히 ‘기록’을 펼칠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으로 로드 쉐리트가 해준 말들이 떠올랐다.
‘이 하얀 땅 아래에는 그 면적만큼 거대한 지하 마을이 존재해.’
‘그곳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마을이다.’
그는 지하 마을이라는 단어에, 처음으로 다크엘프들의 지하 도시를 떠올렸다.
‘그곳은 본디 오로지 돌만이 존재하는 죽은 땅이지. 사람이 살 곳은 못 돼.’
로드 쉐리트는 그 지하 마을에 대해 설명했다. 더불어 덧붙인 말이 있었다.
‘거기서 네가 찾아야 할 게 있어.’
케일은 로드 쉐리트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말했던 물건을 떠올렸다.
“…기록서가 있단 말이지?”
로드 쉐리트는 말했었다.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는 고대가 끝난 후, 고대가 끝나야 했던 원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기 시작했어.’
고대에 벌어진, 신이 되려던 자의 잔혹한 행위. 그리고 그에 대항했던 자들 간의 거대한 전투.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케일 님!”
최한의 부름에 케일은 앞을 바라봤다.
통로의 끝.
거대한 바위가 보였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최한에게 지시했다.
“부숴.”
곧 최한이 검을 뽑아 들었다.
서걱.
반짝이는 검은 오러가 세로로 내리그어졌다.
콰아아앙!
통로의 끝을 막던 거대한 바위가 부서지며 먼지바람이 일었다.
케일은 그 먼지 바람 속으로 천천히 속도를 줄여 걸음을 내디뎠다.
설명해 주던 쉐리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통로를 지나면 바로 절벽이 나타날 거다.’
바스락.
부서진 바위 잔해가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케일은 거대한 절벽 중간에 생긴 동굴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 마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절벽이지.’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천 년 동안 시간이 멈춘 그 장소.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땅이 보일 거다.’
허.
버드의 탄성이 들려왔다.
케일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천 년.
“아름답네.”
인간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낙원과 같은 땅이 케일의 눈에 담겼다.
‘하지만 네 눈에 비친 그 땅은 낙원과 같을 거다.’
로드 쉐리트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냐면 내 소중한 친우와 내가 열심히 가꾸고 보호한 마을이니까.’
천 년의 시간 동안 감춰져 있던 낙원과 같은 장소가 케일의 머릿속에 기록되었다.
케일은 목 단추를 하나 풀었다.
사람도 동물도 하나 없는 낙원은 그에겐 그저 죽은 땅으로만 보였다.
“가자.”
케일의 몸이 천천히 절벽 아래의 땅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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