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7
376화.
바스락.
케일의 발밑에서 나뭇잎이 바스러졌다.
“…진짜로 이런 땅이 존재할 줄이야.”
용병왕 버드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주위를 살펴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라온의 비행 마법으로 천천히 땅에 내려선 이들은 주변을 살펴보며 각기 여러 감정을 표했다.
“지하 도시보다 더 엄청난데!”
“정말 그런데! 우아! 우아!”
온과 홍이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이리저리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다.
“…지하 도시 정도일 줄 알았는데.”
최한이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크엘프들의 지하 도시에도 나무들이 많았다. 인공으로 만든 강도 존재했다.
모두 마법과 정령 덕이었다.
그 지하 도시를 보면서 최한은 ‘잘 만들어진 도시’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크엘프와 사람들이 어우러진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이곳은 달라.’
생명의 도시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이곳은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깎아 지르는 절벽이 하나의 벽이 되어 사방이 가로막힌 곳에 자리한 이 땅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자유로워.”
버드의 감상에 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지하 공간 천장에는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작은 구가 있었다.
그 아래에 나무들이 자유롭게 자라났다.
꽃들이, 모든 식물들이 제 태어난 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아름답기만 하진 않았다.
죽어서 썩어가는 식물들도 보였고, 썩어가는 과일들도 보였다.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이었다.
최한은 천천히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고요하지만 생동감 넘치고 자유로운 공간.
낙원이 어울렸다.
전쟁도, 무엇도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케일 님.”
최한은 빙 둘러보다가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이 저절로 열리며 이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감상이 흘러나왔다.
“여긴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걸 보고도?”
“…네?”
하지만 최한은 굳은 케일의 표정이 보였다.
그는 케일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케일은 일행이 빠져나왔던 절벽 중간의 동굴 근처를 가리켰다.
그 동굴이 있는 절벽.
그곳을 본 순간, 최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절벽 가까이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는 몰랐다.
그냥 험하고 거친 절벽인 줄 알았다.
왜냐면 다른 절벽들은 그냥 절벽이었으니까.
케일과 최한을 따라 절벽을 바라본 버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글자?”
절벽에 거대한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얼마나 깊이 새겼는지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흔적들이었다.
“…이런.”
버드는 뒷걸음질을 쳤다.
조금 더 멀리서.
절벽에서 멀어져야 했다.
그래야 저 깊게 그어진 선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까.
“아.”
마침내 한참 뒤로 물러선 버드의 눈동자에 절벽에 새겨진 글자들이 보였다.
동대륙 공용어로 적힌 문장들.
버드는 가장 위에 적힌 글자들을 읽었다.
“강해져라. 그리고 세계를 구해라.”
검이다.
저 거대한 선들로 글자를 만든 것은 분명 검이 틀림없었다.
저 정도면 최소 소드 마스터의 실력이었다.
아니, 오러를 뿜냐, 못 뿜냐로 판가름 나는 소드 마스터를 떠나 본인의 순수한 검술 실력이 최고여야 하리라.
버드는 술로 입안의 갈증을 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방금 전 읽었던 첫 문장.
그 아래에 새겨진 아직 읽지 않은 글자들.
“…이건 또 다른 사람이 새긴 글자 같군.”
아래에 적힌 문장은 그 위의 문장과 필체부터가 달랐다.
절벽에 검으로 글을 새겼음에도 스스로의 필체를 드러내는 이들.
검을 펜처럼 쓰는 이들이라면 그 실력도 상당할 터.
그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이미 에르하벤의 통역 마법으로 용병 길드 인명부도 읽어 내려간 이들이었다.
그들도 저 다른 이가 새긴 글자를 보았으리라.
그럼에도 버드는 입을 열어 아직 읽지 못한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세계를 지배하리라. 나를 원망 말아라.”
첫 번째로 새겨진 문장.
그 아래에 새겨진 문장.
버드는 첫 번째 문장을 새긴 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새긴 이는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얀 별.”
분명 마지막 드래곤 슬레이어인 하얀 별일 것이다.
그가 로드 쉐리트의 성을 부수러 가기 전, 마을 사람들에게 남긴 흔적이리라.
“여기가… 아름답다고?”
버드는 케일의 읊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도, 곤충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저 식물들과 따스한 햇살 같은 가짜와 숨 막히는 벽들만 보이는데.”
버드는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케일은 무감각한 얼굴로 툭 던지듯 말했다.
“인간 세계에서 손꼽힐 만한 강자들이 여기서 태어나 죽어야 했다면 많이 갑갑했겠어.”
그는 걸음을 내디디며 덧붙였다.
“감옥 같았겠지.”
감옥.
버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 없군.”
“…어? 아니, 난 그냥-!”
버드는 저를 지나쳐 가는 케일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케일은 버드에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무서운 짱돌,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하얀 별의 공격을 막아내고 난 후로, 고대의 힘들은 조용했다.
하지만 케일은 짱돌이 필요했다.
짱돌이 지켜낸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크흠. 케일, 나도 이곳이 감옥 같을 수도 있다는 네 생각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시끄러.”
케일은 버드의 입을 다물게 했다.
버드는 억울한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지만, 케일은 라온에게 눈짓했다.
“중앙으로 가자.”
케일은 울창한 나무숲 위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나무들 사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석조 건물이 보였다.
나무줄기와 덩굴에 휩싸였지만, 건물임은 틀림없었다.
“마을이 그곳에 있으니까.”
휘이이.
케일의 발끝에 바람의 소리가 맴돌았다.
그는 바닥을 박찼다.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
사사사삭-
케일은 나뭇잎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의 손길을 닿지 않은 이곳은 마치 정글과 같았다.
“케일 님.”
최한이 앞을 가리켰다.
나무를 타며 이동하던 온과 홍이 외쳤다.
“앞에 마을인 것 같은데!”
“건물들이 보이는데!”
“인간! 저곳이다!”
라온의 두 앞발이 가리킨 곳으로 케일의 시선도 이미 향해 있었다.
넓은 터가 보였다.
숲 중앙.
돌, 혹은 나무로 지어진 건물들이 보였다.
다 쓰러져 가거나 혹은 식물들로 뒤덮여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건물들.
그 건물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거대한 조각상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검사군요.”
마을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조각상은 한쪽 무릎을 꿇은 검사들이었다.
채앵!
최한이 검을 뽑아 들었다.
파앗!
두 조각상의 눈동자에 빛이 반짝였다.
‘마을 입구에는 내가 만들어둔 가디언들이 있어. 마을을 지켜주는 자들이지.’
로드 쉐리트의 조언 중 하나가 일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쿠우웅-!
쿠웅!
두 조각상, 가디언들은 천여 년간 방치되어 나무줄기로 뒤덮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콰지직!
콰직!
몸을 감싼 나무줄기들이 찢겨져 나갔다.
동시에 두 검사 조각상은 거대한 돌검을 뽑아 들었다.
그 검 끝이 케일 일행을 향했다.
하지만 케일 일행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에 가까워져 갈수록 속도를 높였다.
쿠웅! 쿵!
가디언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둘만의 합격진을 펼쳤다.
최한의 세 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가디언들.
그들이 검을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검들이 땅으로 향하던 순간.
“먼저 간다.”
케일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어 최한의 검이 사선으로 그어졌다.
촤아아악!
케일의 앞을 막는 나뭇가지들이 최한의 오러에 의해 잘려 나갔다.
케일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부우웅!
돌검이 케일을 향해 내리그어졌다.
그리고.
쿠웅!
쿵!
돌검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가디언들의 몸이 움직였다.
쿵! 쿵!
거대한 가디언의 두 무릎이 땅을 움푹 팠다.
검사들은 무릎을 꿇었다.
돌검은 땅에 박혔다.
쏴아아아-
두 가디언의 사이.
바람을 휘두른 케일이 땅에 가뿐히 내려섰다.
로드 쉐리트는 말했다.
‘가디언이 나타나는 순간이 오면.’
땅에 내려선 케일의 머리 위에는 하얀 왕관이 놓여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왕이 되어라.’
가디언 둘은 케일의 앞에 머리를 한껏 조아렸다.
‘그 땅은 드래곤 슬레이어를 위한 땅. 모든 것들이 왕의 귀환을 반길 것이다.’
케일은 무릎 꿇은 거대한 조각상들의 너머를 바라봤다.
멀리서 봤을 땐 나무 사이로 우뚝 솟아 있던 석조 건물이 이제는 정면에 제 모습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 중앙에 석조 건물이 있다.’
케일은 석조 건물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 건물을 감싼 보호막이 있다. 그건 나와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가 함께 만든 것이지.’
나무줄기와 넝쿨로 뒤덮인 석조 건물 주위를 반투명한 막이 감싸고 있었다.
‘식물과 물은 저 건물 안으로 자유로이 다가갈 수 있지만, 인간과 동물은 저 보호막을 넘어갈 수 없어.’
케일은 오로지 직진만 했다.
그의 앞을 막는 것은 없었다.
보호막을 향해 그는 발을 내디뎠다.
우우우웅-
머리 위의 하얀 왕관이 진동했다.
파앗!
동시에 석조 건물을 감싼 보호막이 사라졌다.
그는 살짝 뒤돌아 저를 따라오는 일행을 확인하고는 천 년 동안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았던 석조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 석조 건물이 바로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의 집이자 그를 위한 보호막이었다.’
대대로 오로지 드래곤 슬레이어의 왕관을 지닌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건물이었다.
“…신기하네.”
케일의 중얼거림에 뒤를 따르던 이들이 그의 등을 응시했다.
하지만 케일은 그들을 뒤돌아보지 않고서 낡은 계단을 지나 입구 너머 건물 중앙으로 향했다.
텅 빈 건물 1층 홀 중앙에는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제단으로 걸어가며 케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천 년이나 흘렀건만, 사람 흔적은 그대로네.”
그의 말을 들은 버드의 표정이 굳었다.
동굴에서 내려와 이 땅에 들어선 순간부터 해골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흙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도 있었으나, 옷가지들이, 그릇들이 보였다.
석조 건물 밖 공터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의 흔적도 보였다.
사람은 없지만, 흔적은 그대로였다.
그것도 생동감 넘치는 흔적이.
마치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던 이들이 한순간 세상에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그들의 물건과 흔적들만이 그대로 천 년 동안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버드는 어쩌면 이 가정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케일을 따라 제단으로 향했다.
로드 쉐리트가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가 작성한 기록서가 있다고.
그곳에 모든 내용이 있을 거라고.
‘제단 위에 있는 기록서를 살펴보아라.’
그곳에서 하얀 별의 약점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 기록서는 왕관을 머리에 쓸 수 있는 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다.’
버드는 케일의 머리 위 왕관을 바라보았다.
케일만이 이 자리에서 제단 위의 기록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버드는 제단에 다다르자, 그 위에 놓여 있는 꽤 두꺼운 기록서가 보였다.
두터운 보호막에 감싸인 기록서는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이후 만여 년이 흘렀을 것인데도 상태가 멀쩡했다.
이제 곧 저 기록서가 케일의 손에 들어갈 터.
버드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꽤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케일 님?”
“인간?”
그러나 버드는 일행이 케일을 부르는 목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야, 왜 그래?”
버드는 제단 앞에 선 케일의 표정이 생소했다.
이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케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케일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떨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단 위 기록서가 보였다.
보호막으로 감싸인 채 만 년을 버틴 기록서.
그 기록서의 제목과 표지가 보였다.
영웅의 탄생.
네란 베로우.
김록수가 뭐 이런 있는 척하는 제목과 지은이가 있냐고 피식 웃으며 5권까지 읽었던 그 책의 제목과 지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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