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88
387화.
“왕세자야, 돌지 마라!”
라온이 케일 앞으로 나타나 반갑게 외쳤다.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차마 얼굴도 찌푸리지 못한 채 자다 일어난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야 했다.
-라온 님, 진짜로 돌지는 않습니다.
알베르는 라온 너머 입꼬리를 씰룩이는 케일 헤니투스가 보였다.
저 불경한 모습에 뭐라 한마디라도 해야 하겠지만, 꼴을 보니 그냥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그 한숨 소리에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세자는 책상 위에 팔을 올려 깍지를 꼈고 그 위에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사건 사고를 일으켰나?
꼭 어린아이 대하듯 부드러운 어조였다.
그 모습에 케일과 알베르의 대화를 지켜보던 용병왕 버드 일리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부드러운 어조인데 왜 짜증이 한가득 느껴지지?’
용병 길드 정보에서 파악했듯이 서대륙 로운 왕국의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자다 일어난 얼굴임에도 후줄근해 보이기는커녕 아주 빛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듣기로는 서대륙에서 펼쳐진 여러 전쟁의 결과로 급성장한 로운 왕국,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알베르 크로스만, 그에 대한 정보들이 용병 길드에 꽤 많이 수집되고 있었다.
‘차기 로운의 국왕이 될 자.’
하지만 각지의 정보 단체와 권력자들은 현재 알베르 크로스만의 행보에 대해서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버드도 마찬가지였다.
‘왜 왕위를 이어받지 않지?’
서대륙 전쟁의 결과로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고 있으며 성장 중인 로운 왕국.
이를 이끈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아직 왕좌를 받지 않았다.
들리는 특급 정보로는 현 왕인 제드 크로스만은 알베르에게 왕위를 넘기고 싶어 하지만, 알베르가 거절 중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명분은 지금 시국이 불안정하다는 것이었지.’
왕세자 알베르는 아직 로운 왕국과 서대륙에서 전쟁의 잔재가 모두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 불안정이 가라앉고 평화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다른 것들을 떠나 오로지 로운만을 생각하고 싶다고 전했다.
‘과연 그것만 있을까?’
버드가 파악한 알베르 크로스만은 그렇게까지 희생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혼인까지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충분히 이용하고 남을 인간으로 보였다.
‘2, 3왕자를 철저히 정치에서 배제시킨 솜씨만 봐도.’
전쟁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알베르는 2, 3왕자를 왕위에서 떨어뜨림은 물론 아예 정계에서 외면받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로운 귀족들에게는 무서운 왕세자가, 백성들에게는 찬란한 별이 되었다.
‘물론 알베르 크로스만은 하얀 별의 존재를 알지.’
왕세자는 서대륙 전쟁의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하얀 별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그를 잡고 평화가 올 때까지는 다른 생각을 잠시 치워두는 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왕좌와 혼인 등의 모든 문제를 미뤄두는 것일 수 있을 터.
‘…내 감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버드의 감은 알베르 크로스만의 행보가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고 있었다.
‘음, 뭐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버드는 알베르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저 왕세자가 결혼을 하든 말든 딱히 동대륙에 있는 그에겐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기실 알베르는 버드의 말대로 단지 서대륙의 안위만을 위해 모든 문제를 미루는 것이 아니었다.
‘골치 아프네.’
알베르는 턱을 괴며 케일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시야에 잡힌 서류를 본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서류를 한쪽으로 치워 버렸다.
몇몇 신하들이 은근슬쩍 왕위를 이어받으시는 게 어떠냐는 의도를 다분히 담아 쓴 글이 적힌 서류였다.
몇몇은 벌써부터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3왕자는 아직 어리지만, 2왕자가 얼마 전 사랑하는 이를 만나 혼인을 한 까닭이었다.
듣기로는 혼인하자는 상대의 고백에 2왕자가 고개를 끄덕였고, 왕족 어느 누구도 견제를 보내지 않아 일사천리로 혼인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왕좌는 이어받아야 한다.’
알베르는 왕좌에 오르고 싶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치 않는 생각이었다.
모고르 제국에게서 자유 도시를 받아낸 순간, 그리고 알베르가 바라는 모든 준비가 끝난 순간.
왕위에 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기가 다가오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 알베르는 각국에 퍼진 자신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라고 명했다.
여러 정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크로스만 왕가에 내려져 오는 금발.
거기에 더해진 벽안.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그답지 않게 고민이 많았다.
‘예전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인데.’
왕위를 노리던 알베르 1왕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왕위에 있는 동안, 로운 왕국을 조금 더 왕국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생 이 가짜 모습으로 살아갈 작정이었다.
혼인도 하지 않을 셈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이에게 가짜 모습만을 보여주긴 싫었으니까.
그렇다면 진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그리되면 혹여나 진짜 모습이 들킬 수 있어 알베르는 사랑도, 혼인도 포기했다.
물론 혼인을 하지 않는 그에게 신하들은 혼인을 종용할 것이고, 더불어 알베르의 왕권은 흔들릴 것이다.
그럼에도 알베르는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과거의 알베르는 강력한 왕권을 형성하여 결혼하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다가, 때가 되면 다른 왕족 아이를 왕세자로 책봉하고 서서히 왕좌에서 물러설 생각이었다.
왜냐면 그는 다크엘프 쿼터였으니까.
‘하지만 과거와 지금은 다르지.’
지금은, 적어도 로운 왕국 내에서는 다크엘프의 이미지가 좋았다.
오히려 좋다를 넘어 환호를 보냈다.
그게 알베르에게 고민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이모인 타샤. 그녀를 비롯하여 알베르를 도와준 수많은 다크엘프들. 그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지하가 아닌 햇볕 아래에서 본모습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알베르는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고민이 되지.’
알베르는 금발 벽안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계속 숨겨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사람은 누구나.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고 싶어 하니까.’
알베르는 다크엘프들만이 진짜 제 모습을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점점 더 알베르의 진짜 모습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주위에 생겼다.
정말, 별생각 없이,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그 시선들이 자꾸 알베르의 머릿속을 채웠다. 동시에 로운 왕국에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존재들을 떠올렸다.
드워프족, 호족, 늑대족, 묘족, 다크엘프.
또 적들도 명확해졌다.
특히 하얀 별.
왕좌를 코앞에 두고 알베르는 생각했다.
나는 어떤 로운을 꿈꾸는가?
단순히 땅이 넓고 강해진 로운?
그걸로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사람은 만족을 모른다더니, 알베르는 왕좌를 앞에 두고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전혀 우습지 않은 문제였다.
“저하?”
아.
알베르는 잠시 빠졌던 딴생각에서 얼른 깨어났다.
케일과 대화 중이었던 것을 잊었다.
“잠 오십니까? 나중에 연락할까요?”
툭툭 내뱉는 케일을 알베르는 참 불경하다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머릿속의 생각이 바로 튀어나왔다.
-…별생각 없는 놈.
“네?”
케일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이 왕세자 저하가 뭐라는 거야?
분명 방금 전 ‘그래, 이번에는 무슨 사건 사고를 일으켰나?’ 하면서 한심하게 묻길래 대답하려고 했더니 얼이 빠져 들을 생각도 않던 게 누구였던가?
알베르는 기가 찬 표정인 케일 어깨 너머 최한과 눈이 마주쳤다.
다크엘프 쿼터 모습으로 케일과 최한을 만난 적이 있었다. 최한이 그때 보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너도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너도 별생각 없는 놈이란 소리다.
최한은 표정은 순했지만,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왕세자를 쳐다봤다.
그 순간, 왕세자는 케일과 눈이 다시 마주쳤다.
“꿈꿨습니까?”
띠겁게 내뱉는 말에 알베르는 선선히 답했다.
-그래. 꿈꾸는 중이지.
다크엘프 쿼터 알베르 크로스만.
‘아마 이 고민은 길어질 것 같군.’
알베르는 긴 고민의 시작을 느꼈지만, 지금은 넘기기로 했다.
하얀 별과 서대륙 안정화, 로운 왕국의 발전만으로도 해야 할 고민이 많았으니까.
곧 그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허!”
케일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알베르를 보며 탄식을 흘렸다. 자다 깨웠다고 일부러 저러는 걸까?
케일은 저 화사한 미소에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동생.
케일은 갑자기 바뀐 알베르의 호칭에 멈칫했다.
또 왜 이래?
-나는 언제나 잘생겼지?
그는 케일의 답을 기다렸다. 분명 케일이라면 이 물음에 대한 속뜻을 알아챘을 테니까.
그리고 케일이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로운은 물론 동서대륙을 밝히실 찬란한 별입니다. 물론 달도, 태양도 되실 겁니다. 가끔씩 너무 눈부셔 이 로운의 미래가 이다지도 밝을 순 없겠다는 생각에 감격이 절로 밀려와-”
-불경한 놈.
알베르의 얼굴이 구겨지고, 케일은 거침없이 아부를 쏟아부었다. 물론 아부를 내뱉는 표정은 아주 시원했다.
“…뭐, 저런 아첨이… 왕세자가… 무슨 저런 질문을…….”
용병왕 버드 일리스가 그 광경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둘이… 서대륙의 영웅… 희망이라던데…….”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작은 중얼거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알베르와 케일에게는 집중했다.
-그래. 무슨 사고를 쳤지?
알베르가 물었고, 케일이 답했다.
“저하, 로운 왕국에 다 있습니다.”
-무엇이 있단 말이지?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하얀 별을 없앨 힘이요.”
왕세자는 케일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당장 귀환해.
케일은 그 명령에 답했다.
“며칠 뒤에 왕궁에서 뵙겠습니다.”
왜 며칠 뒤지?
알베르의 눈빛이 그런 질문을 던지자 케일은 답했다.
“성을 하나 옮겨야 하거든요.”
왕세자는 영상 통신구를 뚝 끊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별별 희한한 건 다 하고 다니네.
영상 통신구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케일은 상쾌한 얼굴로 일행에게 말했다.
“돈 받으러 갈까?”
목표는 정했다.
모고르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싱텐 상단’.
케일은 싱텐 상단주 플라빈 싱텐에게 불의 결정을 팔았다.
그 가격은 300억 카운드.
“흐.”
“인간! 이렇게 웃는다! 이건 턴다는 소리다!”
케일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털어?”
버드가 되물었고, 라온이 신이 나 말했다.
“돈 생긴다는 소리다!”
“…설마… 100억이… 재산이 아니고… 후, 훔-”
버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케일은 그 와중에도 예전에 알베르 왕세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고르 제국에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제국이 영토가 꽤 넓잖아? 몇몇 황족들이 저를 따르는 귀족들과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군. 대략 서너 개의 세력이 생길 듯싶다.’
모고르 제국에 있을 태양신 쌍둥이와 렉스 경, 네크로맨서 메리, 로잘린을 떠올렸다.
케일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버드, 최한, 라온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에르하벤 님.”
“그래.”
“마정석을 구해 올 동안 마법진을 새겨주십시오.”
“알았다.”
“그 일이 다 끝나면.”
케일의 눈동자에 로드 쉐리트와 라온이 담겼다.
“여관에 있는 그 녀석 좀 데려와 주십시오.”
용 혼혈.
케일은 그를 언급했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만났다가 오죠.”
쉐리트의 또 다른 아이, 붉은 알. 라온의 형제일지도 모를 존재.
그 존재에 대한 진실은 용 혼혈을 통해 모두 알 수 있을 터였다.
“움직입시다.”
***
늦은 밤.
모고르 제국 황궁.
폐위된 황태자 아딘이 머물던 황태자궁.
그곳에 몇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슬픕니다.”
검은 로브의 여인이 딱딱하게 말했다.
“꼴이 천 년 동안 빨지 않은 걸레 같습니다. 당장 씻어야 합니다. 슬픕니다.”
케일은 앞에 있는 이들에게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입니다.”
로잘린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공자는 늘 피범벅이군요. 메리 씨의 말이 다 맞네요.”
하하.
케일은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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