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91
390화.
“인간아! 클로페 세카 영상 통신구랑 연결이 안 된다! 바쁜가 보다!”
아쉽게도 케일은 곧바로 클로페 세카와 영상통신을 할 수 없었다.
‘위티라에게 연락해 볼까?’
고래족 위티라와 파세톤도 떠올랐지만, 이내 뒤로 미뤄두었다.
“그럼 일단 싱텐 상단주에게로 가자.”
케일은 쥐고 있던 팽이채 대신에 로잘린이 준 지도를 펼쳐 들었다. 모고르 수도의 밤이 눈에 담겼다.
아침이 오기 전에 다녀와야 했다.
***
“제기랄!”
쨍그랑!
유리잔이 벽과 부딪치며 산산조각이 났다.
싱텐 상단의 상단주 플라빈 싱텐은 저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이 마치 자신의 미래 같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저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제 목을 겨눌 것 같았다.
‘이렇게 될 줄이야!’
플라빈 싱텐은 두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상단주님.”
“조용히 하게.”
플라빈 싱텐은 심복의 부름에도 그를 쳐다보기는커녕 머리를 더욱더 부여잡았다.
심복은 냉정하고 늘 이득만을 생각해서 평이 좋았던 상단주가 지금은 한계에 치달은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처지도 상단주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상단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심복은 조용히 손에 들린 와인 잔을 놓았다.
그와 싱텐 상단주는 와인을 곁들여 뒤늦은 저녁 식사 중이었다.
플라빈은 조용한 심복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복잡한 생각 속을 헤맸다.
‘…황실이- 연금술 종탑이 무너지다니!’
싱텐 상단.
10년 만에 모고르 제국 5대 상단으로 떠오른 상단이었다.
싱텐 상단은 황실과 친한 상단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친황실이어서 그들이 갑작스럽게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흑마법! 그것과 연관이 되면 안 됐는데!’
싱텐 상단은 황실과 연금술 종탑에 실험용으로 사람을 팔아넘겼다.
그 사람들은 제국이 아닌 서대륙 타국 곳곳에서 인신매매를 통해 잡아들인 노예였다.
플라빈 싱텐은 이 노예들을 통해서 황실, 연금술 종탑과 연을 쌓음과 동시에 막대한 부를 쌓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증거는 모두 없앴겠지?”
연금술 종탑 전투가 끝난 직후, 플라빈은 심복에게 인신매매와 노예의 증거를 없앨 것을 가장 먼저 명령했다.
“네, 다 없앴습니다.”
수도에 있는 증거야 진즉에 없앴고, 지금 심복의 대답은 꼬리조차 남길 틈 없이 완벽하게 증거를 지웠다는 소리였다.
“누가 지켜보는지 확인은 했고?”
“상단주님, 당연히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습니다.”
“…내가 그걸 말하는 게 아닐 텐데?”
플라빈의 눈동자가 냉정해졌다.
심복은 플라빈 상단주의 말에 즉시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네, 없앴습니다. 모두 실종사로 판명이 날 겁니다.”
그제야 상단주는 미소를 그렸다.
“그렇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사람도 증거야. 아무리 우리 편이라도 없애야지.”
심복은 침을 삼켰다.
비밀이라고 해도 십 년 넘게 상단 안에서 은밀히 행해온 일의 증거를 모두 지우는 것은 심복 한 사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플라빈 상단주는 심복인 그에게 증거 인멸에 참여한 사람들, 즉, 십여 년 넘게 이 은밀한 일에 관여한 모든 이들을 죽이라 명했다.
그리고 그 일은 오늘부로 모두 끝냈다. 그걸 도운 이들은 상단주의 또 다른 심복인 암살자들이었다.
‘…무서운 사람.’
심복은 물질적인 증거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는 증거도 모두 지운 플라빈 상단주가 무서웠다.
이리 무서운 사람이니, 십여 년 넘게 인신매매라는 추악한 짓을 해왔으리라.
‘우습군.’
심복은 실소를 겨우 참았다.
추악한 짓이라고 평한 그 짓을 자신도 해왔으니까.
‘결국 그 일의 결과가 이렇게 숨어 지내는 일이지.’
그는 상단주를 슬쩍 바라봤다. 상단주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여전히 고심에 빠져 있었다.
상단주는 현재 심복인 그와 암살자 심복만이 아는 비밀 저택에서 숨어 지내는 중이었다.
혹시 연금술 종탑과 황실을 무너뜨린 태양신 교단과 렉스 경 세력이 싱텐 상단에게 검 끝을 겨눌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버티면 될 거야.’
심복은 애써 좋은 생각을 했다.
‘그래, 이제 증거도 모두 없어졌으니까. 우리-’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몸을 떨었다.
‘…우리. 우리라고?’
심복은 싱텐 상단주를 꽤 잘 알았다.
그에게 심복인 자신도 ‘우리’에 포함이 될까?
심복의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고뇌에 싸인 것처럼 보이는 상단주에게로 향했다. 상단주가 서서히 머리를 감싼 두 손을 내리며 심복과 시선을 마주했다.
“자네,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나?”
심복은 상단주의 평온한 얼굴이 보였다.
“…상단주님.”
“그래, 왜 그러지? 안색이 안 좋아.”
상단주는 슬프다는 듯이 표정을 그리며 이어 말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안색이 안 좋군.”
그 말에 심복은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커헉!”
그의 몸 안이 뒤틀렸다.
순간 온몸이 뒤집히는 것 같은 격통이 그를 뒤덮었다.
심복은 웃고 있는 상단주의 얼굴이 보였다. 상단주의 눈동자에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무너져 내리는 심복의 모습이 비쳤다.
상단주는 저녁 식사와 와인이 놓인 테이블로 엎어지는 심복을 보며 말했다.
“증거는 모두 없애야지.”
심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십 년 넘게 할 짓 못할 짓 다 하며 바친 충성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제, 크윽, 제기랄, 커헉!”
심복은 비로소 이 저녁 식사 음식 속에, 제 접시 속에 독이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그 깨달음을 밖으로 표출할 수 없었다.
극독에 당한 그의 몸은 삽시간에 죽음으로 향했다.
“자네, 괜찮나?”
더 이상 심복이 상단주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시체가 되었을 때, 상단주는 천장을 보며 말했다.
“치워.”
스으윽.
천장에서 소리 없이 암살자 둘이 내려와 그중 한 명이 심복을 치우기 시작했다.
또르르륵.
상단주는 그 광경을 보며 다른 암살자가 건넨 새로운 잔에 와인을 채웠다. 그리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에서는 아까 전 심복 앞에서 보인 고뇌가 조금도 없었다.
도리어 냉정하고 여유로웠다.
“당분간 최소로 활동해.”
그는 암살자이자 심복인 두 사람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남쪽에 자금 제대로 보내고.”
부하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그곳에 있을 연금술 탑을 떠올렸다.
그곳에 플라빈 싱텐이 미는 황족이 있었다.
그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냉정히 상황을 생각했다.
“…아직은. 아직은 가능성이 있어.”
그의 권력과 부가 유지될 가능성이 아직 있었다.
그가 은신처라고 해도 수도 안에 존재하는 이 저택에 머무는 이유가 있었다.
뒤가 켕긴 다른 상단 놈들이 지방으로 도망가는 동안, 플라빈 싱텐은 계속 수도에 머물렀다.
물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저택에, 마법으로 꽁꽁 싸매어 밖에서는 그저 평범한 이 층 저택으로 보이는 까닭도 있었지만.
‘병력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어.’
수도 병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자금줄을 쥐고 있어야 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그는 남쪽 연금술 탑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도에 머무는 마지막 하나의 이유.
‘난 태양신 교단과도 줄이 닿아 있어!’
플라빈 상단주의 눈빛이 번뜩였다.
카로 왕국 VIP 경매장.
그곳에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에게 ‘불의 결정’을 300억 카운드에 구매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자가 상단주에게 불의 결정을 내밀며 거래를 종용했을 때, 처음에 플라빈은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왜냐면 황실에 연이 닿아 있는 그가 전대 교황에게 몰래 뇌물로 바친 ‘불의 결정’은 결코 들켜서는 안 되는 보물이자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자와 나눴던 대화가 수세에 몰린 플라빈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다.
‘플라빈 싱텐, 제국과 태양신 교단. 어느 곳의 역사가 더 길지?’
그 남자는 말했다.
‘플라빈 싱텐, 정치를 잘한다지? 그러면 잘 알 거야. 제국에 드리운 악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야.’
불의 결정.
그가 황제 몰래 전대 교황에게 바친 뇌물을 다시 돌려주는 대가로, 남자는 300억 카운드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요구했다.
‘내가 누군지, 내가 왜 굳이 너를 찾아왔는지, 내가 말한 돈이 단순히 이 목걸이 따위의 값인지. 잘 생각해 봐.’
그리고 그 말에 싱텐 상단주는 이 300억 카운드의 가치를 알아챘다.
그 돈은 태양신 교단과의 끈을 다시 공고히 할 돈이었다.
“최고의 수였어.”
플라빈은 그때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황실이 무너지기 전 그는 태양신 교단에 다시 끈을 만들어놓았고, 그 덕에 성자 잭과 소드 마스터 하나가 다시 태양신 교단을 일으켜 세우는 이 와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더 큰 권력을 얻을 수도 있지.’
만약 이후 남쪽 연금술 탑의 황족이 황제가 된다면.
태양신 교단에 끈 하나, 더불어 황족의 끈까지 더해진 싱텐 상단의 권력과 부는 제국 상단 중 최고가 될 확률이 높았다.
“위기가 기회지.”
그래서 그는 수도에서 기다렸다.
언젠가 태양신 교단에서 저를 찾아줄 테니까.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
“음!”
놀란 그가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택 안에 경고음이 울렸다.
이는 평범한 이 층 저택으로 위장한 저택의 방어 마법진을 뚫고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뜻이었다.
누굴까?
누가 여기를 침입한 거지?
“상단주님!”
오늘 처음으로 암살자 심복이 입을 열었을 때, 상단주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네.”
그가 있는 2층 테라스.
그곳에 평범한 갈색 머리칼에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왔다.
플라빈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구명줄이 되어줄, 아니, 더 높은 위치로 올려줄 존재가 나타났다.
테라스에 서 있던 하얀 가면의 남자는 손을 뻗어 테라스 창을 열었다.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선 그는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싱텐 상단주.”
심복 암살자들이 플라빈 싱텐 주위를 감싸며 하얀 가면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플라빈은 미소와 함께 반갑게 인사했다.
“기다렸습니다.”
플라빈은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안내할 이 눈앞의 하얀 가면을 기다렸다.
-인간아! 곧 털릴 놈이 기다렸다고 한다! 이상하다! 다 털릴 건데 왜 기다렸나?
하얀 가면의 남자.
케일은 라온의 말을 흘려들으며 플라빈 싱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는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지?”
그 말에 상단주는 케일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으며 답했다.
“그럼요. 아주 잘하지요.”
새로운 줄을 타고 올라가기 위해, 그는 열렬한 충신이라도 된 듯 말했다.
“무엇이 필요하시든 말씀하십시오. 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케일은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
물론 지배하는 아우라를 은은하게 두른 그를 마주한 플라빈에겐 그 미소가 상당히 위엄 있고 강해 보였다.
케일은 충신이라도 된 듯한 플라빈에게 부드러이 말했다.
“그럼 자네의 성의를 한번 알아볼까?”
성의는 얼어 죽을.
저놈에게 남은 것은 끝장나는 일뿐이었다.
그 순간,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 사악한 미소다! 하얀 별도 화들짝 놀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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