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95
394화.
케일은 깜깜해진 시야 속에서 순간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김록수!’
최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을 들고서 제 앞을 가로막는 놈이 보였다.
세상이 마치 어둠과 불에 잠식된 듯 거대한 괴물이 땅 위에 나타난 것이 보였다. 그 괴물 곁으로 수하로 보이는 괴물들이 넘쳐 나오고 있었다.
그때, 그것들을 향해 덤벼드는 직장 동료들이 보였다.
같은 팀원으로서, 혹은 선배로서, 아니면 친구로서.
함께했던 이들이 사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김록수! 넌 빨리 정부와 중앙에 연락해! 모든 길드에 비상 연락 돌려!’
팀장 이수혁의 목소리가 케일의 귓가에 아른거렸다.
케일은, 김록수는 그때 말했었다.
‘…힘듭니다. 팀장, 이건 힘듭니다.’
후방 서포트로서 두뇌 파트를 담당했던 김록수는 괴물들이 세상에 나타난 후의 수많은 기록을 토대로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해 냈다.
‘우리가 지금 저 괴물한테 덤벼들면 죽습니다.’
그 물음에 이수혁은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그렇게 되묻는 이수혁 팀장의 얼굴과 검을 고쳐 잡던 최정수의 얼굴을 김록수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수혁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구역을 담당하던 거대 길드가 도망을 쳤다.
때문에 인근 구역에서 갑자기 출몰한 저 괴물을 막을 능력자가 없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괴물의 출몰을 예상한 이가 있었다.
‘김록수, 네 탓 아니다.’
김록수는, 케일은 저에게 장난스럽게 말하던 유일한 동기의 목소리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야, 너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나는 거야.’
그 당시 케일은 수많은 기록과 데이터, 더불어 그의 능력을 바탕으로 지구 역사상 두 번째로 거대한 파괴력을 지녔다고 기록된 그 괴물의 출몰을 한 시간 전에 예상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최소한 출몰 지역 담당 길드에게 연락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김록수는 괴물의 출몰과 출몰 구역은 대강 예상해 냈지만, 그 힘은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팀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그들의 생각을 아득히 넘어서는 존재를 마주해야 했다.
케일의 머릿속에 그날의 대화가, 그 순간이, 흩날리고 불타는 냄새가, 검고 붉기만 하던 세상이 들리고, 맡아지고, 보이고, 느껴졌다.
‘김록수, 코피나 닦아. 과부하에 걸렸으면 쉬기나 할 것이지.’
케일은 이수혁 팀장의 말에 대충 소매로 코피를 닦아냈다. 그러면서도 이수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야, 그래도 너랑 우리 덕에 사람들 거의 다 대피했고. 뭐, 담당 길드는 도망갔지만. 우리는 이제 다른 지원이 올 때까지 저 괴물을 막고 있기만 하면 돼.’
케일은 머릿속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열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케일의 머릿속에서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이어진 이수혁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어려울 것 없어. 아니지.’
저 무서운 괴물을 앞에 둔 이수혁 팀장의 모습은 태연했다.
‘야, 우리 팀이 언제 쉽게 일한 적 있냐? 우린 늘 아등바등 버텨야 했어.’
한 번도.
케일은 회사에 들어간 후, 이수혁 팀장 아래에서 일하면서 한 번도 압도적으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쉽게 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평소랑 똑같은 그런 거야.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안 그래?’
그때 케일은 이수혁 팀장의 말에 웃었다. 왜냐면 그의 말이 맞았으니까.
‘어? 새끼, 웃어?’
이수혁 팀장과 최정수는 헛웃음을 흘리는 김록수를 뒤로하고 다른 동료들처럼 괴물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케일은 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얽혀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이 장면 뒤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분명히,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장면들이 아주 빠르게 케일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럼에도 케일은 그 기록들이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파괴적인 괴물의 위력.
싸우는 동료들.
모두가 위기에 처한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동료들.
여러 장면들이 얽혀들어 갔다.
순식간에 뜨거웠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얼음으로 뒤덮인 깊은 호수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 장면이 보였다.
주저앉은 그의 시야에 거대한 괴물에 의해 모든 것들이 부서지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등 뒤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의미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너, 너-’
그리고.
‘너-’
차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던 김록수의 앞에 검을 땅에 박은 채 무릎 꿇은 최정수가 보였다.
‘뭐, 인마.’
더 토할 피가 없어서 입가에 피만 묻힌 채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최정수가 죽어가고 있었다.
‘부탁한다.’
그리고 뒷일을 부탁하며 눈을 감는 이수혁 팀장이 보였다.
다.
팀원이 모두 다 그렇게 죽었다.
‘김록수 씨! 록수 씨!’
그리고 김록수의 목숨만이 마지막으로 남았을 때, 그는 제 어깨를 잡던 지원군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나는-’
케일은 그때의 김록수가 어떻게 했는지 떠올렸다.
팀원들이 모두 죽어가던 그 현장에서. 눈을 감은 이수혁 팀장의 얼굴을 한 번, 최정수의 고개 숙인 모습을 한 번 보고 나서.
‘상황 보고입니다.’
초유의 괴물에 맞서기 위해 온 정부, 길드, 능력자들 모두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팀장이, 동료들이 부탁하다고 말했으니까.
‘저 등급 외 괴물의 전투 패턴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는 전투에 대해서 먼저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전투력이 없는 자신은 뒤로 빠지고 지원을 온 이들이 괴물과 싸우기 시작했을 때, 옆에 있던 이에게 부탁했다.
‘시신을 챙겨주십시오.’
왜냐면 그 당시 김록수는 움직일 힘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코피를 흘리면서 괴물의 능력에 대해 설명했다. 지원군들은 모두 그 설명에 귀를 기울였지만, 어느 누구 한 명 그에게 코피를 닦으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 순간, 김록수는, 케일은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늦었어.’
지원이 너무 늦어버렸다.
쿵. 쿵.
순간 케일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김록수의 심장을 들끓게 만들었던 죄책감, 분노, 슬픔이 밀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저 밑에 가둬두었던 것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인간아!
“케일 헤니투스.”
툭. 툭.
케일은 제 등 뒤에 닿은 작은 앞발과 제 어깨에 올려진 손이 하나 느껴졌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괜찮나?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와봤다!
“종이 안 봤다. 그냥 네 뒷모습이 이상해 보여서.”
라온, 그리고 알베르 크로스만이었다.
케일은 두 눈을 깜박였다.
어두웠던 시야가 사라지고, 본래의 왕세자 침실 벽면이 보였다.
그는 얼른 죽음의 신이 남긴 언어가 적힌 종이를 반으로 접어 감춘 뒤, 뒤돌았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뭔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서 있는 알베르 크로스만이 보였고, 당연히 투명화한 라온은 보이지 않았다.
케일은 알베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요?”
케일은 자신이 이렇게 물으면 알베르 크로스만이 기가 차다는 듯 ‘허!’ 하고 탄식을 흘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케일은 알베르는 물론이거니와 저쪽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일행의 표정이 그의 예상과 다르게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모두의 표정이 심각했다.
케일은 알베르와 눈이 마주쳤다.
“너, 괜찮냐?”
알베르는 하얗게 질린 케일의 얼굴과 그새 시퍼렇게 변한 입술이 보였다.
거기다가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케일이 피를 토하거나 아파하는 모습은 봤다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꼭 아주 무서운 것을 보고 충격을 먹은 사람 같았다.
알베르의 시선이 케일의 얼굴에서 잠깐 그의 손에 들린 종이로 향했다.
이미 접혀 있는 종이의 안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본 거지?’
의문이 일었지만, 알베르는 케일이 들어 올린 손에 가로막혔다.
-인간, 인간! 괜찮은 거 맞나? 론 할배가 인간 쓰러지려고 하면 기억해 놨다가 말하라고 했다!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제지에 다가오지 못하는 알베르, 투명화한 라온을 향해 말했다.
“일단 괜찮으니, 잠시만 있다가 이야기하죠. 아직 다 못 봤습니다.”
케일은 알베르 어깨 너머 벌떡 일어선 신관 케이지에게도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일단 알겠다. 자리로 가 있지.”
-…나도 일단 알겠다! 자리로 가 있겠다, 이 약한 바보 인간아!
알베르와 라온이 물러서는 것이 느껴지자, 케일은 다시금 종이를 펼쳐 들었다.
5분.
눈앞이 깜깜해졌을 때 이후로 고작 5분이 흘러 있었다. 아니, 줄어들어 있었다.
케일은 김록수의 생일을 떠올렸다.
죽음의 신이 케이지를 통해 전해준 종이. 그 위로 줄어드는 시간.
저 숫자가 모두 0이 되었을 때, 케일에게 선택의 시간이 온다고 했다.
그는 저 시간이 0이 될 날을 떠올렸다.
그날은 최정수, 그리고 김록수의 생일이었다. 또한 최정건과 최한의 생일이기도 할 터.
그날 케일은 선택을 해야 했다.
‘참, 얄궂네.’
딱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읽다 만 부분이 보였다.
맞다.
최정수가 그때 죽으면 안 되었다.
이수혁 팀장도, 다른 팀원들도 그때 죽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나도 죽으면 안 된다.
케일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죽으면 안 되었고.
나도 죽으면 안 되었으며.
지금 여기 있는 내 사람들이 죽어서도 안 된다.
죽음의 신이 남겨둔 나머지 글자들이 보였다.
케일은 종이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케이지, 테일러, 로잘린은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알베르는 조금 떨어진 곳에 팔짱을 끼고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라온은 아마 투명화해서 알베르 근처에 있을 터였다. 알베르 상의 끝단이 살짝 구겨진 걸로 봐서 라온이 저걸 움켜쥐고 있을 터.
케일은 신관 케이지가 조심스레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공자님, 혹시 안 좋은 내용이던가요?”
그녀는 신이 보여준 그림을 옮겼지만, 그것을 읽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그림인지, 글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오로지 케일에게만 전하는 죽음의 신의 뜻이었으니까.
그녀의 물음에 일행은 저마다 긴장, 걱정 등 각기 다른 감정을 품고서 케일을 바라봤다. 그 순간, 케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냥.”
일행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달리 불길이라도 솟구칠 듯한 눈동자가 보였다.
선택?
지금 하얀 별이 저러는 판국에, 뭐 선택?
자신이 빠지면 누가 어떻게 뭘 하지?
피하라고?
도망가라고?
다 같이 도망가는 거면 몰라도 혼자는 죽어도 갈 수 없었다.
케일은 치솟는 성질을 감추지 않고 툭 던지듯 내뱉었다.
“그냥, 무시하죠.”
이제 ‘영웅의 탄생’도 없는 판국에.
케일은 제 마음대로 살 작정이었다.
“…신의 말씀을 무시한다고?”
“네.”
죽음의 신은 케일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제 마음대로 살라고 하던데요?”
그 말을 케일은 자신의 식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할 겁니다.”
“…그게 뭐지?”
알베르가 조심스럽게 묻자 케일은 답했다.
“깽판요.”
“…뭐?”
케일은 자신이 이기적이고 나쁘며,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냥, 압도적으로 다 쳐부수려고요.”
압도적인 싸움이 좋았다.
그래야 우리가 안 다치니까.
“원래 그리해 왔잖아?”
알베르가 툭 던지듯이 되물은 말에 케일은 씨익 웃었다.
“더 그렇게 하려고요.”
“…참 불경하게 웃는군.”
케일은 알베르의 말은 가볍게 못 들은 척했다.
그 순간에도 1초, 2초,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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