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97
396화.
“여기야.”
로운 왕궁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창문 하나 없이 세워진 탑.
과할 정도로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탑을 빙 둘러싼 채, 탑의 유일한 문을 지키고 있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케일에게 그 문을 가리켰다.
“이 탑 아래가 지하 감옥이지.”
“안내 감사합니다.”
담담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는 케일과 알베르를 대놓고 쳐다보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인간아! 다 힐끗거리면서 인간 쳐다본다!
하지만 모든 병사와 기사들,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왕궁 사람들까지도 케일과 알베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앞으로 로운의 실세가 될 것이라 여겨지는 두 사람의 만남이었으니까.
그 순간, 알베르가 별것 아니라는 듯 툭 내뱉었다.
“케일 공자, 다들 자네가 멀쩡히 살아 있는지가 궁금했나 봐? 어지간히도 자네를 힐끗거려.”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탑 문 바로 앞에 시립해 있던 기사의 어깨가 들썩였다.
케일이 정글에서 싸울 때 서대륙에서는 케일 헤니투스가 위급하다는 소문과 죽거나 혼수상태라는 소문이 혼재되어, 로운 내에선 그의 상태에 대한 말이 이래저래 많았다.
그리고 오늘 케일이 알베르와 함께 왕궁, 그것도 지하 감옥 앞에 나타났으니, 여기저기서 그를 주시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상황에서 알베르는 여유롭게 말했다.
“왕궁에서 일한다고 다 내 사람도 아니고, 곧 온갖 귀족가에 자네에 대한 소식이 퍼지겠어?”
그가 웃으며 하는 말에 케일은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주위에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저 편하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알베르가 한 말은 왕실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다른 귀족가에 정보를 갖다 바친다는 소리였으니까.
왕세자는 주위의 기사들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툭 내뱉었다.
“뭐, 다들 알아서 하겠지. 안 그래?”
알베르는 케일을 보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대외용 왕세자 미소를 보며 케일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고약하긴.’
케일은 기사들을 쪼는 알베르의 행동에 고개를 가로저을 뻔한 것을 참았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현재 로운 왕국 최고의 마법병단을 수족으로 삼고 있었다. 거기다가 외척 하나, 뒷배경 하나 없는 1왕자였지만 상급 검사로서 기사들에게 꽤 지지를 받고 있기도 했다.
그런 이가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분명 여기 있는 기사들 중 누군가가 권력 있는 어느 귀족과 끈이 닿아 정보를 전달해 준다는 소리였다.
‘참, 일은 잘해.’
케일 저를 안내하는 와중에도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깐깐한 왕이 되겠는가.
하지만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알베르에게 겸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요. 미래의 태양인 저하가 계신데, 어느 누구든 알아서 잘할 것입니다.”
“역시 자네랑 나는 잘 통해. 하하하하.”
“그렇다니 감사합니다. 하하하!”
케일과 알베르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둘 다 이상하게 웃는다.
물론 케일은 알베르의 장단에 맞춰줬다.
“문 열게.”
“네, 저하!”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알베르가 명하자, 기사 둘은 황급히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탑의 입구를 열었다.
“잘 갔다 오게. 나는 내 할 일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저하.”
케일은 알베르의 인사에 살짝 허리를 숙여 답하고는 지하 감옥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나도 간다!
케일은 당연히 투명화한 라온과 함께였다.
화르르륵.
케일은 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타오르는 횃불들이 보였다.
끼이이익, 쾅!
문이 닫혔다.
케일은 탑 위가 아닌 아래를 바라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아래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 계단에 기사와 병사들이 일정 간격으로 서 있었다.
지하 감옥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케일은 그들의 소리 없는 인사를 받으며 천천히 지하 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알베르의 설명이 떠올랐다.
‘지하 감옥 가장 밑바닥. 그곳에 방이 다섯 개 있고, 그중 세 개의 방에 각각 한 명씩 투옥 중이다.’
지하 감옥 가장 아래에 감금되어 있는 세 명.
그들은 불굴 연합과 로운 왕국 전쟁에서 붙잡혔던 ‘암’의 붉은 별이었다. 동북부 해상에서 붙잡았던 이들.
그 셋 중 하나가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이었다.
타닥. 타닥.
오로지 케일의 발걸음 소리만이 공간을 울렸다.
케일은 그렇게 깊숙한,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로 향했다.
***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
그는 온몸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눈도 가려져 있었고, 입도 자살을 막기 위해 마법이 걸려 있었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것이 귀였다.
‘제기랄! 제기랄!’
시렘은 요즘 들어 내뱉는 것이 욕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올해 초. 헤니투스 영지를 침략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북부 해상에서 로운 왕국을 치려다가 케일 헤니투스에게 잡혔다.
그 뒤로 시렘은 죽을 날만 기다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살 의지를 잃었다.
‘…왜 안 죽이냐고!’
하지만 아직 그는 죽지 않았다.
바깥세상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로운 왕궁 지하 감옥으로 옮겨져 이런 상태가 된 후, 간수가 매일매일 식사 때마다 찾아오는 것으로 보아 이 전쟁에서 최소한 로운이 이겼다는 짐작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시렘은 당연히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왜 아직까지 안 죽인단 말인가?
이 지하 감옥에서는 낮도 밤도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그저 숨만 쉬며 죽을 날만을 기다린다는 게 시렘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물론 꽤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살 수도 있으려나?’ 하는 작은 기대가 생겼다. 하얀 별이 그를 구하러 오지 않더라도 삶에 대한 불확실한 희망은 생겼다.
하지만 그는 곧 그 희망을 놓았다.
언젠가.
이 조용하기 그지없는 지하 감옥에 누군가 홀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을 때.
시렘은 그때 철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저에게로 다가와 안대를 벗기는 이를 볼 수 있었다.
그 인간은 시렘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지?’
그자는 알베르 크로스만. 로운의 미래 왕이 될 자였다.
알베르가 어떠한 표정도 없이, 비웃지도 않으며 그에게 건넸던 말을, 시렘은 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자네가 살 가능성이 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렘은 살 가능성을 버렸다.
그 뒤로 시렘은 홀로 남겨졌다.
‘하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웃긴 일이지.’
어느 왕국이 제 나라를 없애려고 침략하던 이를 살려두겠는가?
그것도 포로로서의 가치도 없는 자를.
오히려 살려두면 왕국민들의 반발이 클 것이다.
‘빨리 쳐 죽이기나 할 것이지!’
그 순간이었다.
타닥, 타닥.
지하 감옥 통로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시렘의 귀를 자극했다.
타닥, 타닥.
시렘의 몸이 긴장에 휩싸였다.
한 명이다.
저번에 왕세자가 왔을 때처럼.
타닥, 타닥.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의 주인은 한 명이었다.
무슨 일일까.
누구일까?
시렘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이 일어났다.
왕세자가 와서 내 끝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시렘은 이내 그 상상이 말도 안 된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뭐라고 왕세자쯤 되는 인간이 자신의 처형일을 알려준단 말인가.
그렇지만 간수는 아니었다.
보통은 최소한 간수 둘에 기사 한 명이 무리를 지어 시렘의 감옥을 찾아왔다.
‘그렇다면 누구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기억 저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한 존재가 떠올랐다.
‘네가 말을 할지 말지, 그걸 결정하는 건 나다.’
하얀 왕관을 꺼내 들던 케일 헤니투스.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시렘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닥, 타닥.
발걸음이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잊자.’
그놈은 잊는 거다.
끼이이익.
시렘은 자신이 있는 감옥의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 타닥.
발걸음이 더욱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탁!
그 발걸음은 시렘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시렘은 갑자기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분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시렘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풀렸다. 시렘은 안대가 풀렸음에도 아무 행동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목소리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자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두운 지하 감옥이라 작은 횃불에 눈이 살짝 부셨지만, 그는 금세 제대로 주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렘은 주위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하얀 가면이다.
하얀 가면이 보였다.
그리고 붉은 머리칼과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주, 주군?”
그는 순간 입 밖으로 하얀 별을 불렀다.
하얀 가면에 붉은 머리칼, 그리고 갈색 눈동자는 하얀 별뿐이었다.
하얀 가면을 쓴 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시렘은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두웠다.
갈색의 눈동자는 하얀 별의 밝은 갈색이 아니라 짙은 갈색이었다.
‘그렇다면!’
시렘의 기억 속에서 이런 붉은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그자는 하얀 가면을 쓰지 않는 자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얀 가면을 쓴 채로 시렘 앞에 선 남자의 입이 열렸다.
“오랜만이야?”
케일 헤니투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렘의 얼굴이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 것처럼 일그러졌다.
시렘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곧 그는 케일 헤니투스의 어깨 너머 저를 노려보는 드래곤의 눈동자가 보였다.
헤니투스 영지에서 싸울 때 시렘을 노려보았던 그 용의 눈동자였다.
쓰윽.
시렘의 고개가 케일의 손에 의해 움직였다.
시렘은 용을 보던 눈동자를 케일에게 맞춰야 했다. 케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네가 필요한 때가 되었어.”
케일은 제 말에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시렘이 보였다.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
어차피 죽을 이였다.
케일이 마음이 약해져 죽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어도, 로운 왕국 귀족회의에서 시렘을 죽이려 할 것이다.
전쟁 때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해 조마조마한 귀족들은 이런 짓이라도 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이려 할 테니까.
아마 시렘은 편하게 죽지도 못할 것이다.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귀족들은 어떻게든 존재감을 보이며 전쟁의 싹을 없앰으로써, 완전한 전쟁의 끝을 자신들의 손으로 확실히 알리고 싶을 테니까.
케일은 말도 할 수 없도록 구속 마법에 걸린 시렘과 시선을 마주했다.
“곧 로운 왕국 귀족회의에서 너를 죽일 날짜를 정할 거다. 아마 곱게 죽지는 못할 거야.”
시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케일은 그런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게, 최소한 편안한 끝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흔들리던 초점이 또렷해지며 케일에게로 향했다. 다시 케일의 입이 열렸다.
“내-”
멈칫한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이어 말했다.
“내 친구가 널 찾아.”
최한이 케일에게 순한 미소를 지으며 부탁했다.
케일, 라온, 최한이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을 벗어나 쉐리트의 성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케일 님,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 그의 고대의 힘을 제가 받겠습니다.’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
그가 가진 고대의 힘은 하얀 별이 만든 반쪽짜리,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이었다.
결코 진짜 드래곤 슬레이어인 하얀 별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최한은 어느 때보다도 올곧은 얼굴로 제 뜻을 말했다.
‘그리고 제가 제 힘으로, 제 손으로 새로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그 존재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었다.
‘인간 중 가장 강한 이가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 할 수 있습니다.’
최한이라면 분명히 해낼 터.
‘케일 님, 하늘을 제가 베어내겠습니다.’
케일은 이번만큼은 최한의 뜻을 온전히 밀어주기로 했다. 최한이 원하고 있었으니까. 제 뜻으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사람을 믿어주어야 했다.
케일은 시렘에게서 물러서며 말했다.
“곧 검이 올 거다.”
최고가 될 검이었다.
그 순간.
타닥, 타닥.
감옥 통로를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걸음 소리가 멈췄을 때,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왔냐?”
“네, 케일 님.”
감옥 밖에서 평소처럼 순한 미소를 짓고 있는 최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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