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1
400화.
플라빈 싱텐은 자신에게 죽고 싶은 건지 살고 싶은 건지 묻는 가면 쓴 남자를 보며 침을 삼켰다.
‘어쩌다가……!’
그는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협박을 받게 되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아니, 그 정도도 아니었다. 대략 이틀 전이었다.
그는 지금 앞에 마주한 남자의 수하로 보이는 이에게 마정석이 담긴 아공간 주머니를 제공한 후, 그 수하에게서 앞으로 비상 연락망으로 사용할 비밀 장소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그는 곧바로 비상 연락망을 사용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괜히 연금술 탑과 마법 세력의 결탁을 얘기한 건가?’
플라빈이 줄을 댄 남쪽 연금술 탑으로부터, 곧 네 연금술 탑이 힘을 합쳐 수도를 친다는 급보와 함께 미지의 마법 세력이 그들과 함께함을 알려왔다.
덧붙여 남쪽 연금술 탑에서는 플라빈에게 이 전쟁에 쓰일 물자와 마정석을 요구했다.
급보를 받고 고민하던 플라빈은 이 정보를 태양신 교단과 밀접해 보이는 이 남자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오늘 밤. 다시 이자가 플라빈의 비밀 저택을 찾아왔다.
‘…저놈들은 또 누구야?’
이전에 왔던 붉은 머리칼의 검은 가면 남자는 없었다.
대신 복면 차림의 남자 둘이 가면 쓴 남자의 뒤에 시립해 있었다.
“눈알을 뭘 그리 굴려?”
흠칫.
플라빈은 두 남자에게로 향해 있던 시선을 얼른 바닥으로 옮겼다.
케일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시선이 플라빈의 뒤를 향했다. 플라빈 뒤에는 저번처럼 심복인 암살자들이 공손한 자세로 자리해 있었다.
-인간아! 나도 투명화 풀고 싶다! 론 할배랑 맛있는 거 잘 주는 비크로스 옆에 서 있고 싶다! 나도 복면 쓰고 싶다!
케일은 라온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검은 용은 신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최한과 버드는 없었다.
대신 비크로스와 론이 함께했다.
‘최한.’
케일은 제국으로 따라오려던 최한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
‘넌 시렘 건을 빨리 처리하고 와라. 로잘린 씨와 함께 와.’
멈칫하던 최한은 케일의 말에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나도 함께 가야 하나?’
‘아닙니다, 케일 님. 시렘 건 정도는 저 혼자 충분합니다.’
‘기다리고 있지.’
‘네, 케일 님.’
최한은 케일과 달리 로운 왕국 수도로 향했다.
물론 홀로 보내지 않았다. 에르하벤이 최한과 함께 움직였고, 케일은 나머지 일행을 데리고 제국으로 왔다.
“콜록, 콜록!”
케일은 기침 소리에 플라빈 싱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레가 들려서, 콜록, 크흠, 큼.”
고개를 돌린 채 기침을 해대는 플라빈에게 케일은 김록수일 적 길드 수뇌부들을 상대할 때처럼 상냥하게 말했다.
“사레였군. 난 독에 당한 줄 알았어.”
플라빈의 손끝이 떨렸다. 그의 눈동자는 열린 테라스 창밖에서 기이한 형태로 넘실거리는 붉은 안개로 향했다.
“저 독안개가 이 테라스 안으로 들어올 리가 없는데. 그리고 저 독에 당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바로 죽거든. 그래서 웬 기침인가, 순간 걱정을 했어. 플라빈 상단주.”
“하, 하하- 다행히 독은 아닙니다. 하하-”
제기랄!
플라빈은 속 좋게 웃고 있었지만 속은 뒤집히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자그마치 네 연금술 탑의 계획을 태양신 교단에게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거나 대접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묻고 있었다.
‘괜히 알려주었나?’
플라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싱텐 상단에서 물자들을 모으지? 꼭 전쟁 때 병사들에게 쓰일 물자던데?”
플라빈은 순간 심장이 덜커덩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줄을 댄 남쪽 연금술 탑의 요구대로 전쟁 물자를 은밀히 모으고 있었다.
물론 태양신 교단의 저 남자에게 정보를 줄 때는 이런 부분은 빼고 그저 그들의 동향만 알렸다.
그래야 남쪽 연금술 탑, 태양신 교단, 두 개의 끈을 모두 쥘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를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은밀하게 물자를 모았다.
“…그걸 어떻게……?”
그런데 그걸 어찌 알았단 말인가?
플라빈은 저를 향한 다정한 미소와 차가운 눈동자가 보였다.
“이리저리 줄 다 댄다고 머리도 몸도 바쁜 것 같은데. 그런 놈이 제일 먼저 죽어.”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플라빈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상대의 눈빛에 절로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런 플라빈을 더욱더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 측에서 자네 상단이 전쟁 물자를 모으는 정황을 발견했지.”
플라빈의 얼굴 위로 두려움이 드러났다.
그런 그를 이해한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플라빈이 숙인 고개 위로 내렸다.
“이해해. 우리 쪽도 놓기 싫고 연금술 탑 쪽도 놓기 싫겠지. 자네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플라빈은 이어진 말에 고개를 황급히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노예를 구하려고 하지? 죽은 마나가 필요하다고 하던가?”
플라빈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가득 찼던 표정이 오히려 무표정해지고, 반대로 그의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까지 봤단 말인가?’
연금술 탑은 플라빈에게 단순히 물자와 자금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노예.
다시 한번 죽은 마나를 만들어낼 존재들을 급히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는 태양신 교단과 완전히 척을 지는 행위라고 봐야 했다. 아무리 부정부패한 태양신 교단이라고 해도 그 근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태양신 교단이 지금 모고르 안에서 다시 힘을 거머쥔 명분이 흑마법 타파 아니던가.
“이건 죽고 싶어서 날뛰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래. 이건 태양신 교단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서 날뛰는 짓이었다.
들키지 않았다면 모르겠으나, 들켰다면 끝장이었다.
빌어먹을!
플라빈은 어찌 이리 상황이 되었나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전쟁 물자와 비밀스럽게 준비하던 일을 알았단 말인가?
물론 케일은 다 알 방법이 있었다.
모고르 수도 황태자궁에 도달하자마자 그를 반긴 존재들. 팽이채를 쥔 그에게 말을 걸어온 이들.
‘저번에 케일, 네가 간 상단에서 막 사람들을 잡아가더라? 노예로 만들 거래!’
‘맞아! 죽은 마나가 필요하대!’
거의 먼치킨을 넘어 치트키 수준인데.
케일은 바람 정령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바람 정령들이 알아서 정보를 물어다 줬다.
물론 만능은 아니었다.
바람 정령은 텔레포트 마법을 펼칠 줄 모른다.
물론 다른 존재들보다야 이동이 자유롭고 빠르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는 법인지라 로운 왕국에 있는 케일이 모고르 수도 안에 있는 바람 정령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 말은 케일이 모고르 수도에만 온다면, 수도에 있던 친숙한 바람 정령들이 정보를 가져다준다는 말이었다.
“플라빈 싱텐 상단주.”
두려운 척도, 긴장하는 척도 사라진 플라빈의 얼굴 위에는 그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다만 그 눈동자만큼은 혼란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네를 지켜보기로 했어.”
플라빈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시선이 가면 쓴 남자, 케일에게로 향했다.
“우린 지금껏 동서남북 연금술 탑이 어디까지 하는지 그냥 지켜봤지.”
아.
플라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켜봤다. 그것도 그냥 지켜봤단다.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이젠 그 탑을 무너뜨려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이어진 말에 다시 터지려는 탄성마저 집어삼켰다.
“남쪽 연금술 탑에 갈 건가?”
플라빈은 잠시 멈칫했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질문에 순간 뭔가 싶어서였다.
하던 이야기와 다른 주제였지만, 일단 플라빈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원래라면 가야겠지요. 한 번은.”
“나도 간다.”
“네?”
플라빈은 이번엔 진심으로 놀라서 눈앞의 가면 남자를 쳐다봤다.
거기를 간다고?
전쟁을 한다는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혼란스러워하는 플라빈에게 남자는 태연하면서도 여유롭게 말했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꼬리가 화사하면서도 따스했다.
“새로운 빛께서는 자네를 보길 바라시고 있어.”
그 태연한 말에 플라빈은 다시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저번에 말했던 2주. 이제는 12일 정도지. 그때 말이야.”
새로운 빛. 태양신 교황.
그가 보잔다.
원래대로 2주 뒤에.
“그 안에 다 정리하고 편하게 보자고.”
정리.
그 말의 의미를 아는 플라빈은 두근거림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가능합니까?”
수도로 곧 쳐들어올 연금술 탑 세력들을 2주 안으로 모두 정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플라빈이 물었고, 상대는 곧바로 답해주었다.
“플라빈, 우린 적을 알아. 하지만 적은 우리를 잘 알까? 나라는 존재조차도 모르는데?”
플라빈은 순간 커다란 망치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맞다.
저자의 말대로 눈앞의 자는 연금술 탑의 계획도 알고 그 힘도 대강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연금술 탑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가면 쓴 남자의 존재조차 모른다.
적의 계획을 아는 자가 거침없이 가볍게 처리하자고 한다.
그건 오만일까?
‘아냐. 그럴 사람은 아니다.’
제국에서 태양신 교단은 무너졌었다.
그런데도 태양신 교단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쏟기보다 카로 왕국에서 은밀하게 자신에게 접촉해 거래를 하던 자였다.
허투루 행동할 자가 아니다.
“똑똑한 자네라면 알 거야.”
“…모든 것이 끝나면 새로운 빛이 되실 분을 정말로 뵐 수 있습니까?”
플라빈은 가면의 남자가 자신에게 내미는 작은 패가 보였다.
“이건!”
플라빈은 이 패를 알고 있었다.
전대 교황이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라는 ‘일’을 시킬 때 만남을 약속하는 패였다. 이 증표는 오로지 태양신 교단에서만 나올 수 있는, 모조가 불가능한 물건이라 했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패였기에 더 이것이 진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플라빈은 절로 그 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지. 아직은.”
하지만 가면 쓴 남자는 그 패를 다시 제 주머니에 감췄다.
“…모든 것이 끝나면 저것은 제 것입니까?”
“그럼 누구의 것이겠어? 증표를 보였으니 됐지?”
케일은 언제 두려움에 빠졌냐는 듯 욕망에 타오르는 플라빈의 눈동자가 보였다.
제 스스로 불구덩이에 빠지는 줄은 결코 모를 것이다.
이 증표는 성자 잭이 케일의 부탁에 준 것이었다. 물론 성자 잭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케일 공자님, 그런 나쁜 이를 잡는 데 쓰이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증표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플라빈 싱텐은 감옥에 갇힐 것이다.
“플라빈 싱텐, 자네 심복들이 암살자라는 건 저쪽도 알고 있나?”
저쪽은 당연히 남쪽 연금술 탑이었다.
“네, 압니다. 그쪽에 출입하려면 제 인원을 모두 밝혀야 하거든요.”
연금술 탑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보안이 중요했다.
그들은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자들을 철저히 분리했고, 조금 의심이 되는 이들도 철저하게 조사했다.
“오히려 제가 심복들을 숨겨서 이동하면 의심할 겁니다. 뭔가 숨긴 줄 알고요.”
“그러면 내가 자네 심복이 되면 되겠네. 그렇지?”
플라빈은 애써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참, 자네는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 같아.”
플라빈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심복인 척 남쪽 연금술 탑을 가겠다고 한다.
플라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남자와 남쪽 연금술 탑에 가는 순간부터 자신은 빼도 박도 못한 채 이 남자와 함께해야 한다. 왜냐면 무슨 이유든 연금술 탑 쪽이 태양신 교단 사람을 데려온 배신자를 결코 살려둘 리 없으니까.
케일은 복면을 쓴 채로 플라빈 뒤에 서 있는 심복 암살자들을 향해 미소를 그려보았다. 그들은 케일의 시선을 피했고, 케일은 다시 플라빈을 보며 말했다.
“참. 내 뒤의 둘도 함께 갈 거야.”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플라빈과 케일의 대화는 끝이 났다.
***
다음 날, 케일은 눈을 떴다.
텔레포트 마법에 엉켰던 시야가 서서히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파아앗!
환한 빛이 사라지자, 새로이 그의 시야를 뒤덮은 것은 푸른 숲이었다.
“상단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반갑네.”
케일 앞에 선 플라빈 싱텐이 텔레포트 진에서 내려서며, 연금술사 로브를 입은 이의 정중한 인사에 간단히 답했다.
“뒤에 분은?”
“내 심복들일세. 알잖는가?”
검은 복면에 암살자 복장을 한 이들 세 명이 플라빈 뒤에 시립해 있었다.
“네, 압니다. 다만 체격이 조금 변하신 것 같아서.”
비굴한 미소를 짓는 연금술사의 눈동자는 날카로웠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새삼 싱텐 상단주의 심복 체격까지 확인하는 상대의 치밀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싱텐 상단주는 꽤 똑똑하고 연기를 잘했다.
플라빈 싱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밀을 많이 아는 놈들은 한 번씩 갈아줘야지. 안 그런가?”
그 순간, 연금술사는 진짜 미소를 그려보였다.
“역시. 싱텐 상단주님은 이래서 존경스럽습니다.”
“무얼.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연금술사가 한쪽을 가리켰다.
케일은 숲 너머로 솟아오른 건물이 보였다.
저기가 남쪽 연금술 탑이었다.
-인간아! 나도 왔다!
그의 곁에는 라온과 론, 비크로스가 함께였다.
‘버드.’
케일은 이곳으로 오기 전, 다들 바쁜 와중에 연락책을 맡은 버드에게 말했다.
‘이번 전투는 두 가지의 싸움이야.’
‘무슨 두 가지?’
압도적으로 싸우기 위해.
‘돈과 마법.’
그는 버드에게 했던 지시들을 떠올렸다.
‘신호를 보내면 바로 쳐.’
‘우리가 먼저 적을 친다.’
케일은 연금술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라오시죠.”
“그래.”
플라빈이 앞섰고, 케일은 호위하듯 그의 뒤에서 걸음을 옮겼다.
남쪽 연금술 탑.
첫 번째 탈탈 털어낼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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