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4
403화.
세상천지 어디에 이런 선물이 있나?
-케일, 괜찮나?
“…인간?”
에르하벤과 라온이 케일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케일은 그 시선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검은 책을 내려다봤다.
케일은 속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신이라더니, 아주 제멋대로 굴었다. 케일이 제멋대로 구는 것보다 더했다.
‘죄 없는 사람을 왜 끌어들여?’
케일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케일을 에르하벤이 안쓰럽게 바라봤다. 하는 행동이나 생각 때문에 가끔씩 이 녀석이 갓 스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픈 동료를 보고 스스로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하며 답답해하는 모습에, 새삼 케일의 나이가 느껴졌다.
-케일.
고룡은 다독이듯 부드럽게 말했다.
-당황스럽고 걱정되고 화나겠지. 내가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런 상황이 된 것에 스스로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르겠지.
“아뇨. 저한테는 화 안 나는데요? 제 탓도 아니고.”
-응?
케일은 지금 화가 났다.
최한이 최정수의 기억을 보게 되면 당연히 김록수의 삶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최한은 케일과 김록수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도 있었다.
최정수의 기억 속에는 김록수가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이 담겨 있을 테니까.
또 록수 때나 지금이나, 말투며 행동이 비슷하니까.
들킨다.
케일 헤니투스가 사실은 김록수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었다.
‘그게 왜?’
하지만 그건 그렇게 케일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최한이 최정수의 기억을 보면 뭐 어떤가?
물론 최한과 갈등이 생기거나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갈등이든 오해든 풀면 그만이다.
최한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한국에 대해 모른 척한 케일에게 섭섭하고 화날 수도 있다.
그런 섭섭함과 화를 풀어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면 된다.
쉽게 내뱉는 생각이 아니었다.
케일은 그 과정이 쉬울 수도 있고 아주 험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하면 된다.
왜냐고?
최한은 살아 있으니까.
죽은 사람과는 어떠한 오해도, 섭섭함도 풀 기회가 없었다.
대화를 할 기회도, 다시 마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걸 삼십여 년이 넘는 삶 동안 처절하게 깨달은 케일은 일단 기회가 있는 상황에선 최한과의 사이를 위해 다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고민할 일도 아니었다.
일단 최한이 깨어나고 난 후,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다만 케일이 화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왜 사람을 아프게 만들어?”
최한에게 최정수의 기억을 준 상황.
그건 그래,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치자.
하지만 그걸 왜 고통스럽게 주냐 이 말이다.
“이해할 수가 없네.”
케일은 죽음의 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리고 하나 더.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정수는, 정수 그 자식은-’
그의 기억의 끝은 죽음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다치고, 엄청 많이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담담하게 웃으며 죽었다.
그걸 최한도 보고 겪을 거 아닌가?
또 최정수는 이수혁 팀장과 함께 마지막으로 죽었다.
그는 한 명씩, 한 명씩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케일은 손을 들어 눈가를 쓸어내렸다.
그 손이 잘게 떨렸다.
최정수의 기억 속엔 그가 죽어갈 때 자신이, 김록수가 보였던 표정, 눈빛, 모든 것들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김록수는 자신이 그때 어떤 표정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자신의 얼굴은 볼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때의 감정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감정이 담긴 얼굴은 어떠할지, 최정수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굳이 보지 않아도 가늠이 되었다.
죽어가는 최정수를 보는 동료의 절망과 슬픔을, 최한은 모두 보게 될 것이다.
그 괴로운 기억을.
왜 겪게 한단 말인가?
케일은 최한이라는 인간을 꽤 잘 안다.
그랬기에 최한에게 최정수의 끝이 얼마나 크게 다가올지 짐작이 되었다.
케일은 도저히 이 죽음의 신이라는 빌어처먹을 놈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
하지만 통통한 앞발이 제 무릎에 닿는 순간, 케일은 눈가에서 손을 떼었다.
평소처럼 무덤덤한 얼굴이 다시 일행의 눈에 담겼다.
“최한은 곧 괜찮아질 겁니다.”
-…그래.
“그리고 케이지 씨에게 최한의 상태를 살펴달라고 해주세요.”
-케이지? 죽음의 신관?
에르하벤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감돌았다가 사라졌다.
그는 케일의 입에서 갑자기 나온 신관의 이름에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힘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에르하벤은 굳이 더 이상 케일에게 묻지 않았다.
-일단 알겠어. 네 말대로 케이지에게 최한의 상태를 봐달라고 부탁하도록 하지.
최한은 곧 괜찮아질 거라 했으니까.
-그리고 로잘린은 원래 일정대로 갈 거다.
-맞아요. 공자, 전 곧 출발할 거예요.
케일은 희미한 미소를 그리는 로잘린이 보였다.
-에르하벤 님도 최한도 못 가는 상황이니, 저라도 가야죠.
“…부탁합니다, 로잘린 씨.”
-부탁이라니요. 같이하는 일인데.
씩씩하게 웃는 로잘린을 보는 케일의 머릿속은 현실 문제로 복잡해져 갔다.
기존엔 에르하벤, 라온, 로잘린을 중심으로 해서 대량의 마정석을 쏟아부어 마법으로 압도할 생각이었다.
거기다 더해 최한이 시렘의 힘까지 가져 더 강해지면 적들의 공격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했다.
‘에르하벤 님과 최한은 빼야겠군.’
하지만 이 둘을 빼고 다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최한이 언제 깨어날지 모를 상황에, 케이지와 고룡 정도는 최한의 곁에 있어야 안심할 수 있었다.
‘…곤란하네.’
압도적인 마법.
그 계획에 참여할 로잘린과 라온도 대단하지만, 에르하벤의 빈자리는 컸다.
-계획은 괜찮겠나?
그러나 에르하벤의 물음에 케일은 흔쾌히 답했다.
“네, 상관없습니다.”
에르하벤의 얼굴에 미안함이 어렸다.
마법 실행 작전에서 자신이 빠졌으니까.
하지만 케일은 정말로 괜찮았다.
“마정석을 더 사거나 훔치죠.”
-어?
“걱정 마세요. 안 되면 마정석으로 후려치죠, 뭐.”
에르하벤은 뭐라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알겠다며 일이 생기면 또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영상통신을 끝냈다.
“인간아.”
“왜? 돌멩이 얼른 넣어.”
케일은 다시 태연하게 하던 일에 집중했다.
툭툭.
그렇지만 계속 무릎을 두드리는 앞발에 라온을 쳐다봤다.
‘뭐야?’
그리고 라온의 엄한 표정을 보았다.
‘얘 표정이 왜 이래?’
케일이 의아할 찰나, 라온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잔뜩 내리깐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 아까 최한이 아픈 거 보면서 놀라고 걱정되지 않았나?”
“당연히 놀라고 걱정되지.”
“인간이 그렇게 아픈 걸 우린 계속 봤다!”
순간 케일은 진심으로 철렁 놀라고 말았다.
라온이 앞발을 제 허리에 올리고는 무서운 표정을 한껏 지어 보였다.
“인간아! 오늘 일로 배워라! 아프면 안 된다! 나도 슬프고 할배도 슬프고 다 슬프다!”
오동통통한 작은 용이 무섭게 말해봤자 하나도 무섭지 않았지만, 케일은 이번만큼은 라온이 하는 말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서 툭 내뱉었다.
“…내가 멍청한 부분이 있단 말이야.”
역시 머리로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겪으며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싶었다.
“아, 아니다! 인간은 멍청이 아니다! 하얀 별이 멍청이다! 인간은 나보다 쪼오끄음! 덜 위대할 뿐이다!”
“그래, 그래.”
케일은 라온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맨질맨질한 뒤통수 촉감이 꽤 좋았다.
“앞으론 걱정 안 시키도록 노력할게.”
라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인간은 똑똑하다!”
라온은 그 말을 끝으로 날개를 파닥이며, 돌멩이들을 연금술 탑 소유 아공간 주머니로 옮겨 담았다.
둘의 움직임은 아주 손발이 착착 맞았고, 순식간에 끝이 났다.
-…돈 덩어리.
파괴하는 불 짠돌이의 벅찬 음성이 들려왔지만, 케일은 무시했다. 마정석을 쓸 수도 없고, 마법의 힘도 아닌 불 속성 짠돌이가 돈에 반응하는 모양새가 그저 웃겼다.
-아닌데?
어?
케일은 멈칫했다.
달칵. 달칵. 달칵.
그사이 라온은 아공간 주머니들이 담겨 있던 상자를 다시 닫으며 감쪽같이 원래처럼 잠금 마법을 걸어놓았다.
누가 봐도 여기 다른 이가 다녀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돌멩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를 터.
그 광경을 눈에 담고 있던 케일은 짠돌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라고?
마정석을 짠돌이도 쓸 수 있다고?
-강화할 때 돈도 되고 보석도 되는데 마정석이라고 왜 안 돼?
오, 맞는 말이네.
케일은 짠돌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합리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네 몫이 아냐.’
라온과 로잘린을 선두로 할 우리 측 마법 세력의 몫이었다.
‘에이, 내가 쓸 일이 있겠어? 마법에 쓰기만 해도 충분할 텐데.’
케일은 짠돌이의 말을 흘려 넘겼다.
그 순간,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강화해야 하는데.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었다.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고대의 힘은 케일의 몸에 스며들며 문양을 남겼다.
하지만 하늘을 잡아먹는 물과 무서운 짱돌은 문양을 남기지 않았다.
“인간! 안 가나?”
케일은 라온의 말에 일단 고대의 힘 강화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며 팽이채를 손에 쥐었다.
그의 몸이 다시 투명하게 변해갔다.
-인간!
라온이 다시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제 지도랑 좌표 훔치러 가나?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팽이채를 통해 바람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9층에서 막 회의하는 거 봤어!’
‘거기 지도 펼쳐져 있었어!’
‘병력들 어디 숨었는지 확인했음. 동서북 연금술 탑 좌표 문서 확인했음. 파괴, 박살.’
‘너 좀 그만 이상하게 말해!’
‘싫다. 혼돈, 파괴, 박살! 크하하하하하하!’
케일은 닫힌 문을 바라봤다.
지금 저 문 밖에는 8층 복도를 오가는 경비병들이나 기사, 연금술사들이 있을 터.
-인간, 우린 어디로 가나?
라온의 말에 케일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달칵.
잠금이 풀렸다.
끼이익.
그리고 창문이 열렸다.
-오! 맞다! 창문 밖으로 나가서 위로 올라가면 된다!
케일은 제 한 몸 정도 나갈 수 있는 창문 밖을 내다봤다.
10층 높이의 남쪽 연금술 탑.
아름다운 바깥 풍경이 눈에 담겼다.
케일은 창문의 난간을 밟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다.
휘이이이-
작은 바람이 케일 발끝에 맴돌았다.
동시에 마법이 케일을 감쌌다.
-비행 마법이다!
‘떨어지면 파괴! 박살! 그러니 생존해야 함.’
라온과 바람 정령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케일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닫았다.
“부탁해.”
그가 말하자 닫히는 창문 안에서 바람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은 내가 잠글게! 작은 바람이면 잠글 수 있어!’
달칵.
닫힌 창문은 혼자 남아준 바람 정령에 의해 안에서 잠겼다.
‘나는 나중에 문이 열리면 따라갈게!’
한 바람 정령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들었다.
9층, 10층.
아직 케일이 가보지 못한 곳이 보였다.
10층은 남쪽 연금술 탑주가 지내는 곳이라 했다.
케일은 일단 9층 높이로 서서히 올라갔다.
투명화한 그의 눈에 창문 안의 풍경이 보였다. 뭐가 그리 바쁜지 열심히인 연금술사들이 있었다.
‘우측으로 세 번째 창문. 그 창문 방 안에 지도와 좌표가 있어! 그런데 창문이 잠겨 있었어!’
케일은 바람 정령의 말에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창문을 지났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창문이 보였다.
그 유리창 안이 보인 순간.
‘미친!’
-인간아!
케일은 놀라 창문에서 급히 떨어졌다.
달칵.
창문이 열렸다.
케일은 황급히 창문 옆 벽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바람이 좋군.”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창밖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고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 좋은 듯 여유로운 미소를 그렸다.
그놈이다.
하얀 별의 옆에 있던 마법사!
론에 의해 오른 발목에 독 묻은 단도가 박히고 한쪽 손목이 잘린 놈.
그놈의 얼굴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케일은 순간 너무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까 전엔 저 마법사 없었는데!’
바람 정령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케일은 숨죽인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약간 파리한 안색의 마법사가 보였다.
‘아직 다 안 나았구나.’
론의 공격과 독을 제대로 모두 치료하지 못했음이 확실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냐. 그러니 내가 투명화한 것을 못 알아채지.’
이거 상당히 좋은 정보인데?
케일은 지금 꽤 큰 정보를 알아냈음을 깨달았다.
그때, 연금술 로브를 입은 이가 마법사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탑주님, 여기가 산이 많고 정글이 가깝다 보니 바람이 참 맑고 좋습니다.”
탑주?
저 하얀 별 수하 마법사가 탑주라고?
케일은 의아했다.
“탑주라니요.”
마법사는 탑주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걸 안다는 듯 연금술사도 부드러이 이어 말했다.
“동서대륙, 곧 미래에 두 대륙을 이끌 최고의 마탑 주인이 되실 분 아닙니까? 그러니 탑주님이시지요.”
“아직은 아닙니다.”
호오.
케일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아니다! 탑주는 로잘린이다! 이 멍청한 마법사야!
라온이 외쳤지만, 케일은 별다른 말 없이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연금술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케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주군께서는 북부로 가셨습니까?”
주군.
하얀 별.
그놈 이야기다.
마법사는 계속 말했다.
“제가 듣기로 주군께서는 힘을 얻기 위해 고래족 땅과 카로 남부, 로운 서북부를 놓고 고민하셨다고 들었는데.”
뜻하지 않은 큰 정보였다.
로운 왕국. 케일이 또 다른 땅의 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곳.
그런데 로운 서북부라고?
테일러 후작 영지가 있는 곳인데?
하얀 별이 땅의 힘을 찾기 위해 저 셋 중 어디로 갈지를 놓고 고민했다고?
카로 왕국 남부? 메리 동네도 후보에 있다고?
와.
이건 월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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