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11
410화.
아군도, 적군도 밤하늘에 떠오른 붉은 두 손이 서로를 맞잡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거대한 붉은 마나의 두 손은 서로 맞닿는 순간, 마치 태양처럼 원을 이루었다.
“끄윽, 크아아아악!”
그 태양 속에 갇힌 자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다들 섣불리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어우, 장난 아닌데?
버드는 영상 통신구 너머 그 광경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는 붉은 마나의 손에 갇힌 채 발버둥치는 베크록이 보였다.
베크록은 마치 불처럼 제 몸을 옭아매고 공격하는 로잘린의 마나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으아아악!”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혼합 마나를 일으킬 때마다 붉은 마나가 부딪쳐 죽은 마나와 일반 마나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일반 마나를 소멸시켜 버렸다.
‘제길! 제길! 빌어먹으을!’
소멸되는 일반 마나는 베크록의 몸 안에는 있던 마나로, 남쪽 탑주의 것이 아니었다.
즉, 그가 마법을 하는 동안 쌓아온 마나였다.
“끄윽, 이건, 이건-!”
베크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마나를 소멸시키는 로잘린의 마나.
이건 로잘린이 마나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베크록보다 훨씬 더 우위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로잘린이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베크록, 네가 법칙을 만들고 마법을 할 동안, 나도 마법을 했어.’
그리고 지금,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익혀온 마나가 베크록의 숨통을 조여왔다.
베크록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고맙다. 네 덕분에 성장했어.’
저 말의 의미도 깨달았다. 로잘린이 지금 저 모습은, 저 성장은 자신과의 싸움 도중에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베크록은 점점 더 숨이 막혀왔다.
도망갈 수도 없었다.
텔레포트 마법을 펼치려고 해도 붉은 마나가 철저하게 그의 마나를 덮치며 부숴 버렸다.
정말 집요하다 싶을 정도였다.
“커헉, 컥! 커헉!”
베크록은 숨을 쉬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아프기 싫었다.
‘이, 이렇게 죽다니! 다 밟고 올라선 내가!’
그의 시야가 점점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검게 물들기 전, 베크록은 무덤덤한 로잘린의 얼굴을 보았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보이지 않는 그저 담담한 표정.
베크록은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완전히 어두운 세상에 잠식되고 말았다.
붉은 두 손이 사라졌다.
베크록의 몸이 추락했다.
휘이이이-
하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붉은 바람이 베크록의 몸을 공중에서 붙잡았다.
로잘린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어 다가오는 이에게 말했다.
“공자.”
“로잘린 씨.”
로잘린은 케일에게 베크록을 가리켰다.
“죽진 않았어요. 마나 구속구를 채워 렉스 경에게 넘겨주면 될 것 같아요.”
그 광경을 영상 통신구 화면 너머로 버드 일리스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로잘린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 있는 베크록을 보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는데?’
얼마 안 가 죽을 꼴이었다.
아마도 렉스 경과 잭, 하나, 레이 스테커, 즉 앞으로 모고르를 이끌 4인방에게 적의 우두머리를 넘겨주기 위해 살려둔 것일 터.
‘로잘린에게 저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냉정하면서도 철저했다.
버드는 그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왜냐면 ‘적’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까. 섣불리 약한 마음으로 아군을 다치게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마탑주는 확정이군.’
버드는 붉은 마나로 감싸인 로잘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전투 형태의 마법사는 처음 보았다.
그만큼 강렬했으며,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앞으로 용병 길드 인명부에 서대륙 사람의 비중을 늘려야겠어.’
버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얽혀들었다.
그때, 케일이 로잘린에게 무심히 말했다.
“고생했어요.”
그리고 포션 병을 하나 꺼내어 내밀었다.
로잘린은 그 포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힘이 없네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급격한 성장, 그리고 벽을 넘어서는 전투가 끝나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로잘린은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쓰러지려는 건 아니지만.’
그냥 조금 피곤함이 밀려왔다. 몸도, 마음도.
힐끗 정신을 잃은 베크록을 쳐다보던 로잘린은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니, 고민이 하나 생겼다.
늘 겪어오는 일이지만, 피곤했다.
그때였다.
툭. 투욱.
로잘린은 제 등에 닿은 작은 앞발을 느꼈다.
“위대했다! 똑똑한 로잘린아!”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순간, 로잘린은 뚱한 얼굴로 케일이 내뱉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뚜껑 따서 줄까요? 아니면, 입에 부어다 줘야 합니까?”
“내가 할 거다, 인간아! 내가 인간보다 더 힘세다!”
“허, 참. 그러든가.”
라온과 케일의 태평한 대화에 로잘린은 결국 소리 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포션 병을 움켜쥐고는, 이를 지켜보는 케일, 제 등 뒤에서 투명화하고 있을 라온에게 말했다.
“포션 뚜껑 따고 마실 힘도 있고.”
또한.
“잔당들을 처리할 힘도 있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로잘린은 포션 뚜껑을 대충 따 마시고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도망간 마법사들도 있었지만, 못 간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이 아직 많았다.
그들이 로잘린을 두려움과 감탄을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 로잘린에게 보내는 눈빛이었다.
“내려갑니다.”
그녀는 지상으로 향했다.
케일도 영상 통신구를 품에 넣고 뒤따랐다.
쿠웅- 쿵!
두 사람이 렉스 경의 바로 뒤에 내려섰다.
주춤, 주춤.
렉스 경의 맞은편에 있던 기사와 적군들은 로브로 얼굴을 가린 로잘린과 복면의 남자를 두려움을 담아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을 데려온 렉스 경도.
병사들의 손에 들린 연금술 폭탄들도.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은 너흴 버리려고 했다.”
렉스 경은 적군이자 동시에 모고르 사람인 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를 지켜줄 존재는 없다.”
그의 시선이 하얀 별의 수하인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에게로 향했다.
“그래도 싸울 텐가?”
케일은 속으로 미소를 그렸다.
렉스 경은 적절한 때 꽤 적합한 말을 할 줄 아는 리더가 되어갔다. 그의 말은 적군들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아군들에게는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돌아왔다.
“항복하면 죽이지는 않겠다.”
마지막 결정타였다.
타앙!
어딘가에서 병사가 검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시작이었다.
탕. 타앙.
병장기들이 떨어졌다.
“…뭣들 하는 거냐! 저 천벌 받을 놈을 죽이라고!”
“검을 놓으면, 반란군 동조로 보고 죽을 것이다!”
곳곳에서 황족과 귀족, 권력자들이 외쳐댔지만, 그럴수록 병장기를 내려놓는 병사들이 많아졌다.
덤벼들면 죽을 사람은 저 뒤에서 지시를 내리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인 것을 깨달았으니까.
‘이제 여기도 정리가 되겠군.’
케일은 남쪽 연금술 탑 전투가 거의 끝났음을 느꼈다.
물론 권력자들과 황족이 아직 전장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힘을 소유한 남쪽 연금술 탑주가 죽고 베크록이 크게 다쳤으니, 제 몸이 가장 중요하고 도망갈 곳도 없는 적의 권력자들은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로잘린이 뒤로 살짝 물러서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속삭였다.
“얼른 정리하고 가봐도 되겠는데요?”
케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맞출 수 있겠군요.”
그의 말에 로잘린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야, 야!
케일은 작은 목소리에 흠칫했다.
그는 로잘린을 바라봤고, 로잘린도 그 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으로 빠져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케일은 원래 계획인 것처럼 여유롭게 뒤로 빠졌다.
아군은 당연히 길을 터줬고, 그는 숲으로 들어섰다.
“왜 그래?”
케일은 품에서 영상 통신구를 꺼냈다. 품속에 있어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던 통신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버드가 다급한 얼굴로 정신없이 케일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동서 연금술 탑 흑마법사와 마법사들이!
그자들이 왜?
베크록의 패배가 전해졌나?
이동해 간 마법사 몇몇이 소식을 전했나?
케일의 미간이 슬슬 찌푸려질 때, 그와 버드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이 모두 북으로 갔어! 갑자기, 일순간에!
동서 연금술 탑 흑마법사와 마법사들이 북쪽으로 갔다?
-북쪽에서 연락이 왔다! 인근 숲에서 세 개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흑마법사와 마법사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고!
“…동서남. 모두 북으로 갔군.”
지금 북에 누가 있지?
케일은 북쪽 연금술 탑으로 간 아군을 떠올렸다.
“아.”
-인간! 순둥한 성자가 거기 있다!
맞다.
성자 잭.
그가 북쪽을 맡았다.
버드가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북쪽 연금술 탑이 그나마 가장 약하다고 판단되고,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지원이 쉬울 것 같아서 성자님을 보냈잖아. 그런데 거기로 지금 다 모여들고 있어!
동서남북. 그중 가장 강한 곳은 남쪽 연금술 탑이었고, 나머지는 비슷했지만 그나마 약한 곳이 북쪽 연금술 탑이었다.
-케일, 너랑 라온 님이 먼저 가서 일단 성자님을 도와야 할 것 같다.
북쪽 연금술 탑으로 향한 아군은 성자 잭과 렉스 밑으로 온 기사들, 그리고 연금술사들이었다.
“…부족하지.”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부족한 전력이었다.
특히 마법으로.
“내가 가야겠네.”
-그래, 일단 네가-
버드의 말이 이어질 수 없었다.
-삐이이이이- 삐이익-
케일은 영상 통신구 화면 너머로, 버드의 책상 위에서 세차게 우는 다른 영상 통신구가 보였다.
영상 통신구가 붉었다.
긴급 연락이었다.
로운 왕국 마법병단 소속이자 로잘린의 밑에 있던 마법사. 모고르의 일을 돕기 위해 로잘린과 함께 온 이가 얼른 그 영상 통신구를 연결했다.
-메시지입니다!
마법사가 외쳤고, 버드는 케일을 힐끗 보고는 그 메시지를 바로 읽어 내렸다.
-북쪽이다.
북쪽. 성자 잭이 보낸 연락.
-사-
버드가 잠시 멈칫했다가 굳은 얼굴로 빠르게 말했다.
-사자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나타났다. 다른 수인족들은 있는지 없는지 아직 파악 불가. 그리고-
그는 케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북쪽 연금술 탑 지하에 골렘이 있는 것 같다. 수량은 파악 불가. 수도로 진군하려고 한다.
버드가 정말로 당황한 얼굴로 케일에게 물었다.
-야, 이걸 어떡하냐?
골렘, 사자족, 그리고 흑마법사와 마법사.
더불어 병사와 기사들도 있었다.
모고르 제국 대 위퍼 왕국.
그 전쟁 때와 비슷했다.
-얘네 아무리 황좌가 갖고 싶어도, 이건 미친 거 아냐?
다만 이번에는 모고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점이 달랐다.
수도로 가는 골렘.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서로 간의 병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고르 일반 백성들까지 다 그 판에 끌어들이자는 소리였다.
-야, 케일. 이건-
“버드.”
케일의 입이 열리자, 버드는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모두에게 연락해. 북으로 오라고.”
케일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간다.”
-인간아! 나랑 같이 간다!
버드는 알았다며 영상 통신구를 끊었다.
그도 지금부터 전령으로서 정신없이 연락을 돌려야 했다.
케일은 버드와의 영상통신 후, 론에게도 연락을 따로 했다. 그걸 끝내고 나자, 다가오는 로잘린이 보였다.
“공자, 이쪽은 곧 정리될 것 같은데요.”
“북쪽으로 먼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케일은 버드와의 대화를 로잘린에게 그대로 전했고, 그녀에게 렉스와 함께 남쪽 탑을 완전히 장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가야 하지 않을까요?”
“렉스 경이 완전히 남쪽을 잡고 북쪽으로 오는 편이 났습니다.”
로잘린은 굳은 케일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하나 잘 풀리는 것 같으면 또 일이 생겨 버렸다.
“으음.”
고민에 잠긴 듯 케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인간아, 괜찮다! 내가 간다!
“공자,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정리하고 갈게요.”
그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로잘린 씨,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뭔가요? 말만 해요.”
로잘린은 오히려 반갑다는 듯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그 말에 흐릿한 미소를 그리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것 좀 몰래 챙겨놔 주세요.”
“…네?”
로잘린은 순간 케일이 가리킨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다이아몬드 지팡이를 들고 금으로 도배된 거대한 동상.
“마법 폭탄 설치할 때도 저쪽에는 영향 안 가게 했거든요. 비싼 건 챙겨야 남는 게 있죠. 제가 훔치고 가려고 했는데, 바쁘니 로잘린 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습-”
“알겠어요.”
로잘린은 그냥 케일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어서 가라는 듯 훠이훠이 손짓했다.
“얼른 가봐요. 돈 되는 건 다 챙겨놓을 테니까.”
“역시 훌륭합니다. 로잘린 씨는요.”
로잘린은 이제야 고민이 해결됐다는 듯 떠나는 케일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느 순간, 그의 몸을 마법이 감쌌다.
라온의 텔레포트 마법이었다.
-인간아! 나 까먹고 있었다! 역시 우리 인간도 똑똑하다! 맞다, 저런 건 챙겨야 한다! 나중에 저걸로 내 동상 만들어 달라! 아니다, 우리 인간 동상 만들자!
케일은 라온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천천히 빛에 휩싸였다.
-성자 잭 근처로 이동한다!
파아아앗!
환한 빛과 함께 케일은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오셨군요!”
성자 잭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못 본 사이에 조금 더 성숙해진 얼굴의 잭은 케일을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쿠우웅!
거대한 발걸음 소리.
“크아아아!”
끔찍한 괴성들.
북쪽 연금술 탑 근처 숲 위로 불쑥 올라와 있는 골렘이 보였다.
쿵. 쿵. 쿵. 골렘들의 발걸음에 숲의 땅이 울렸다.
케일과 성자 잭의 눈이 마주쳤다.
잭이 굳은 얼굴에 애써 미소를 그려 보였다.
“곧 아군들이 순차적으로 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 저기 오는군요!”
성자 잭이 케일 뒤를 가리켰다.
케일은 뒤를 돌아보았다.
파아아앗!
환한 빛과 함께 두 사람이 나타났다.
뭐야?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인간아! 뭔가 이상한 조합이다!
그러게?
케일은 나타난 아군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끼리릭. 끼리릭.
바퀴가 굴러갔다.
휠체어를 탄 백발의 사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드디어 저도 전장에 함께하는군요.”
클로페 세카가 그 고결한 얼굴 가득 기쁨을 드러냈다.
케일은 클로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의 휠체어를 끌어주는 이를 쳐다봤다.
“어쩌다……?”
그 시선을 받은 이는 상당히 짜증 난 얼굴로 퉁명스레 툭 내뱉었다.
“일 처리하고 수도에 갔다가 같이 왔습니다.”
“너 혼자?”
“네, 아버지가 저 혼자 먼저 가라던데요?”
비크로스가 뚱한 얼굴로 클로페 세카의 휠체어에서 손을 떼어 끼고 있던 흰 장갑을 버렸다. 그리고 클로페를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차라리 애들 뒷바라지가 낫지.”
비크로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더욱더 표정이 묘해진 케일은 이내 몸이 흔들렸다.
쿠웅!
땅이 울렸다.
“엇!”
케일이 휘청였고, 그런 그를 투명화한 라온의 오동통한 앞발이 받쳐주었다.
-조심해라, 인간아!
“역시, 휘청일지언정 쓰러지지 않는 정신. 대단하십니다. 전설답습니다.”
라온과 클로페의 목소리가 같이 들려오는 순간.
“저 소리 들을 바에 차라리 칼을 갈지.”
비크로스의 짜증 섞인 한탄이 들린 순간.
‘돌아버리겠네.’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의 마음이 조금 이해된 케일이었다.
그때.
“끄아아아악!”
한 사람의 비명 소리가 숲을 가로질렀다.
케일은 성자를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잭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그가 케일에게 말했다.
“제물입니다.”
뭐?
“적들이 죽은 마나와 사람들을 함께 골렘의 동력원으로 바치는 소리입니다!”
순간, 케일은 극심하게 분노했을 때의 하나가 성자 잭의 지금 얼굴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자 잭은 분노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공자님, 나를 저 소리의 중심지로, 연금술 탑 중심지로 데려다주십시오. 그리고 저 죽은 마나-”
잭은 저 소리가 나는, 북쪽 연금술 탑 중심에 가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까진 속속들이 모여드는 강한 적을 피해 그를 데려다줄 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젠 가능했다.
그리고.
“저 죽은 마나, 소멸 부탁드립니다.”
아딘 황태자의 골렘을 불태우던 정화의 불을 다루는 사람.
잭은 케일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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