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4
423화.
결국 케일은 다시 눈을 감았다.
“왜 또 눈을 감아?”
제길! 빌어처먹을!
케일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눈을 안 뜨겠다는 그 명백한 의도가 담긴 행동에 팀장 이수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말 안 듣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뭐야?”
케일은 읊조리며 눈을 떴다.
“도대체 이게 뭔 꿈이야?”
꿈속이건만.
케일에게도 너무 익숙한 공간이 지금 펼쳐져 있었다.
김록수가 일했던 사무실이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물렀던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고, 케일은 김록수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케일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사무용 의자가 등에 닿았다.
김록수 자리도 팀장 김록수 자리가 아니었다.
신입일 때 김록수가 앉았던 자리로, 팀장 이수혁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리였다.
신입은 무슨 사고를 쳐서 제 목숨을 내걸지 모를 일이니, 팀장이나 고참 옆에 붙여두고 배워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케일의 시선이 팀장 자리로 향했다.
그곳엔 당연하다는 듯 이수혁이 앉아 있었다. 케일의 뺨을 두드려 깨웠던 이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뭡니까?”
검사치고는 상당히 호리호리한 체격의 이수혁은 케일의 마지막 기록 때보다 젊었다.
마치 신입 때 김록수가 마주했던 이수혁 같았다.
“뭐긴, 인마.”
팀장은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마시며 웃음기를 담아 케일을 쳐다봤다.
세상이 뒤집혔을 때, 그래도 커피는 꼭 마셔야 한다며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챙긴 후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습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때의 달달함을 잊을 수가 없다나.
너무나도.
케일의 눈에 비친 이수혁은 기록 속에 없는 모습인데도, 너무나도 이수혁처럼 굴고 있었다.
진짜인가?
의문이 들었던 찰나.
“내가 너 대신 죽었다며?”
빌어먹을.
케일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눈앞의 인간은 팀장 이수혁이 맞다.
“그런 소릴 그냥 하는 거 보면 팀장이 맞네요.”
“이제 알았냐?”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케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툭 내뱉었다.
“그런데 네 꼴이 이게 뭐냐?”
“제 꼴이 뭐 어때서요?”
뚱하게 되묻는 케일을 쳐다보던 이수혁 팀장은 기가 찬 듯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피칠갑을 하고 다니더만? 거기다가 아주 유명한 영웅이 될 것 같고?”
케일의 미간이 더 찌푸려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어떻게 팀장이 자신의 일을 아는 걸까?
그리고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답은 하나였다.
이런 일을 할 만한 존재는 하나다.
자꾸 케일의 앞에 뭔가를 던져놓고 알짱거리는 존재.
“빌어먹을 죽음의 신 같으니라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케일의 귓가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좀 많이 빌어처먹었지.”
하!
케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끼익, 의자가 밀렸고,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커튼이 쳐진 창문. 원래라면 저 커튼을 걷어내고 마주할 광경은 무너지고 황폐화된 서울의 풍경이어야 했다.
촤르르륵.
하지만 걷어낸 창밖의 풍경은 검었다.
“확실히 내 기억으로 만든 공간이라서 그런가,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 건 까맣네.”
팀장은 담담하게 말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죽음의 신이 죽을 운명도 아닌데 죽었다고, 그래서 불쌍했는지 각자 한 가지 기회를 주었어.”
탁.
케일은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나 책상 위에 놓인 종이컵을 보았다.
그 안에는 믹스커피가 담겨 있었고, 케일은 컵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차마 마시지 못 했을 때, 이수혁의 입이 다시 열렸다.
“최정수 놈은 기억을 줄 수 있는 당숙 어르신을 만나, 제 기억을 보여줬지. 하지만 난 못 만났잖냐?”
케일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접니까?”
“그래, 너다.”
“빌어먹을 죽음의 신 새끼.”
“맞아. 그거 돌아이더라?”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케일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피와 재로 뒤엉킨 머리칼과 손이 엉망이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산 겁니까, 죽은 겁니까?”
내 눈앞의 팀장은 어떤 상태입니까?
“네가 알 필요 없는 영역이다.”
“알면 저한테 손해가 된다는 말이군요.”
“자식. 꼭 알아듣고 말면 되지, 말을 덧붙인다니까.”
“특기죠.”
“지지를 않아요. 골 때리는 자식.”
“전 뼈 때리는 힘은 없습니다만.”
뚱하게 되받아치는 케일을 쳐다보던 팀장은 기가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여전하네.”
“그래서 저한테 팀장 기억을 줄 겁니까?”
케일은 팀장을 마주하며 똑바로 제 뜻을 전했다.
“필요 없습니다.”
팀장의 기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수혁이 죽을 때 어떤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 느꼈을지, 그런 건 알고 싶지 않았다. 비겁한 회피라고 해도, 저 대신 죽어준 존재의 기억이라고 해도.
필요 없다.
잊을 수 없는 인간은 늘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다.
케일은 다시 한번 제 뜻을 내뱉었다.
“전, 필요 없-”
“누가 준대?”
“…네?”
“참 나.”
이수혁은 케일 곁으로 다가와 그의 손에 들린 종이컵을 뺏어 들고는 본인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죽음의 신이 나와 최정수에게 제안한 것은 기억이 아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케일은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능력을 물려주는 겁니까?”
최정수의 하얀 미르를 제 방식대로 쓰던 최한.
아무리 뛰어난 최한이라도 그런 힘을 그저 기억을 토대로 단번에 재현해 내긴 힘들 것이다.
“맞아. 한 가지 능력을 한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
그래서 최정수는 최한을 택했다.
물론 정수는 전달 방식이 그렇게 잔인할 줄은 몰랐다. 죽음의 신이 택한 능력 전달 방식은 최한에게도, 최정수에게도 썩 좋지 못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기억을 보여준 만큼, 최정수의 능력은 최한에게 가장 적합하게 전달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케일에게, 김록수에게는 그런 방법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수혁의 능력에 대한 기록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김록수, 난 검을 쓰지.”
이수혁 팀장은 검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하나 더.
“하지만 다른 능력을 주겠죠.”
두 가지의 능력을 지녀 유명하기도 했다.
김록수도 여러 가지 능력을 지녔지만, 그가 능력을 발현했을 땐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이들이 이미 여러 명이었을 때였다.
그러나 팀장에게 두 가지 능력이 나타났을 땐, 세계적으로 다중 능력자가 열 명이 안 될 정도로 귀한 케이스였다.
더욱이 그의 두 가지 능력은 서로 상극이었던지라, 연관성이 없는 힘이 모였다며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대부분이 비슷한 힘을 지니지, 이렇게 완전히 다른 힘 두 가지가 주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수혁 팀장이 길드도, 국가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고 그 회사에 들어갔을 때 여러 말이 많았었다.
“탐나지?”
이수혁 팀장이 얄궂게 웃으며 묻자, 케일은 담담히 답했다.
“내놔요.”
태연하게 펼친 손바닥이 어서 능력을 넘기라고 팀장에게 재촉했다.
“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하.”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팀장은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귀한 능력을 받아 가면 밥값을 하든가, 아니면 돈을 주든가.”
“…진짜.”
“왜? 네가 누구한테 배웠는지 잊어먹었냐?”
안 잊어먹었다.
그걸 잊어버리겠는가?
케일은 그냥 의자에 등을 확 기대며 팀장을 응시했다.
“조건이 뭡니까?”
팀장은 손가락을 하나 펼쳐 들었다.
“이번 일 다 끝나면 어둠의 숲에 농장을 만들어. 과수원도 만들고, 밭도 만들어. 밭에는 토마토랑 수박, 오이, 호박. 종류대로 다 심어야 한다. 참고로 너네 동네에 그 채소 없으면 비슷한 거라도 심어. 그리고 네가 키워.”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농사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알지? 매일매일 살펴봐야 해. 그러니 어디 허튼 데 가지 말고 그 라온인가 하는 꼬맹이랑 같이 농사지으면서 살아. 최정수 당숙 어르신이랑 다른 동료들 데리고.”
케일은 이수혁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았기에 일그러진 표정을 펼 수가 없었다.
‘넌 데리고 가야 돼. 안 그러면 백수는 무슨, 허튼 일 벌이고 다니다 다칠 놈이야.’
언젠가 이수혁이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팀장, 나 돈 많아요. 돈 많은 백수 할 겁니다.”
“그래서 내 제안 안 받아들이려고?”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그랬대요? 거 부하가 백수 한다는데 그걸 막는 심보가 쪼잔하다는 거지.”
“잘 아네. 나 쪼잔해.”
팀장이 손을 내밀었고, 케일은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눈 순간이었다.
채애앵!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무덤덤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부서진다.
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서서히 부서졌다.
팀장 이수혁의 모습도 조금씩 가루가 되어갔다.
“갑니까?”
케일이 덤덤히 물었고.
“어. 가야지.”
이수혁은 태연하게 답했다.
그러나 느긋한 모습과 달리 그의 모습은 점점 더 빠르게 부서져 갔다.
“김록수.”
꽈악.
케일은 제 손을 세게 잡는 이수혁을 바라봤다.
“신도 틀릴 때가 있더라. 또라이라서 그런가?”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는 툭 던지듯 말했다.
“난 너 대신 죽은 거 아니다.”
케일의 어깨가 살짝 멈칫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서서히 부서지는 이수혁을 응시하고 있었다.
“난 그냥 내가 날뛰다가 죽은 거야. 알겠냐?”
너 대신 죽은 게 아니라 날뛰다가 죽었다는 말.
저 말을 하는 이수혁의 마음을, 의도를 모를 케일이 아니었다.
케일의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의도이리라.
“아뇨. 그게 아니죠.”
하지만 케일은 이수혁 의도대로 답해줄 마음이 없었다.
“내 탓도, 팀장 탓도 아닙니다.”
“…맞네. 그 말이 정답이네.”
케일은 악수를 하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파스스스.
악수를 나누던 손도 사라졌다.
케일은 비로소 편히 웃는 이수혁의 진정한 미소가 보였다.
“김록수, 살아. 사는 게 최고다.”
상체까지 사라진 이수혁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원래 네 몸 주인도 잘 산다. 행복하다더라.”
이제 이 공간도 모두 다 부서지고, 이수혁의 눈동자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온전히 들려왔다.
“그리고 나도 정수도, 우리 모두 행복하다.”
마지막 말이었다.
눈동자마저 이제는 사라졌다.
세상이 부서졌다.
어둠만이 남았다.
케일은 어둠 밖에 남지 않은 공간을 보며 눈을 감았다.
느낌이 왔다.
이제는 일어날 때라는 느낌이 들었다.
케일은 툭, 툭 제 뺨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촉감을 느꼈다.
“일어날 때가 됐는데.”
홍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에 답하듯 케일은 눈을 곧바로 떴다.
“헉!”
놀라서 떨어지는 고양이의 앞발이 보였다.
케일은 이불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 주변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케일 님.”
“공자, 정신이 들어요?”
“인간아! 너는 진짜 바보다, 인간아!”
하지만 여러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케일의 입이 열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어?
그 말을 내뱉기 위해 열리던 입이 갑자기 멈췄다.
“아.”
케일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어지러움이 가시자 느껴졌다.
제 몸 안에 새로이 자리 잡은 어떤 힘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수혁의 힘이다.
팀장의 힘이 케일의 몸 안에 존재했다.
순간, 케일은 이수혁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정수도, 우리 모두 행복하다.’
해일이 몰아쳤다.
머릿속에 꽁꽁 가라앉혀 놓았던 거대한 파도가 일순간 케일의 머릿속을 뒤집어놓았다.
‘일단 작은 텃밭으로 시작하는 거지. 토마토랑 오이, 수박부터 심을 거다. 아, 고추도 심고.’
‘힘들게 살았으니 나중엔 좀 편해져도 되는 거 아냐?’
‘웃기네. 여기서 직급이 더 올라가면 뭐 하려고? 난 높이 올라가려고 이 짓 하는 거 아니다.’
‘그럼 뭐 하러 이러냐고? 내가 아냐? 그냥 내가 하고 싶다는데.’
‘김록수, 엔간히도 백수 하겠다. 응?’
기억들이.
묻어두었던 수많은 기록들이 밀려왔다.
케일은 제 온몸이 거대한 해일에 휘감겨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파도 속에서, 팀장이, 그들이 행복하다는 말이 그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헉!”
“헛!”
“이, 이럴 수가!”
평균 9세들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인간! 우, 운다!”
그제야 케일은 자신이 우는 걸 알았다. 뺨이 축축한 게 피인가 싶었더니 제 눈물이었다.
“…왜 울지? 안 슬픈데?”
정말로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하고 마음이 편했다.
웃어야 할 때인데?
케일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으로 주위 분위기가 정적에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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