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5
424화.
라온의 동공이 흔들렸다.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날개를 파닥였다. 홍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세상에.’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갑자기 어떤 징조도 없이 케일이 눈을 떴다.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침대 받침대에 몸을 기대더니, 느닷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말 그대로 뚜욱뚜욱,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멍했지만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얼굴에 눈물만 하나둘 떨어뜨렸다. 그 광경에 로잘린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다.
케일 헤니투스.
그가 어떤 이였던가?
로잘린은 케일이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치 못했다.
울더라도 화를 내면서 울거나, 짜증을 내면서 우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상상을 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런 모습이라니!
로잘린은 입을 가렸던 손을,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던 손을 내렸다. 뭐라 한마디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왜 울지? 안 슬픈데?”
케일이 그리 말하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그려 보였다.
로잘린의 주먹이 다시 제 입을 가렸다.
애써 올린 입꼬리가 처연해 보였다.
안 그래도 안색이 창백한 사람이 처연하게 웃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니,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 홍, 라온은 셋 다 딱 굳어서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게,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에르하벤도 놀란 표정이었으며, 메리는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먹던 쿠키를 입에 넣는 것을 중단한 채 굳어 있었다.
시종 론은 인자한 미소는 때려치우고 굳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한이 보였다.
‘음?’
뭔가, 무언가 일행과 다른 표정이었다.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고민이 많은 얼굴로, 최한은 팔짱을 낀 채 케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 인간, 악몽 꿔, 꿨나?”
라온이 더듬거리며 케일의 옆으로 얼른 다가가 침대 위에 내려앉았다.
‘어?’
로잘린은 악몽이라는 단어에 한숨을 내쉬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최한은 살짝 고개를 가로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로잘린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그녀의 입이 벙긋거리며 물었고, 최한은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어 보였지만 로잘린은 분명 뭔가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한에게 더 깊이 물을 틈이 없었다.
“먹어야 합니다.”
쿠키 바구니를 들고서 검은 로브가 슉 하고 로잘린을 스쳐 지나 침대로 향했다.
툭.
쿠키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침대에 놓였다.
“슬플 땐 먹습니다. 먹는 게 남는 겁니다. 배고프면 슬퍼집니다. 슬플 땐 배고파집니다.”
다다다 쏟아내듯 말한 메리는 쿠키를 집어 들어 케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로잘린은 메리의 저런 적극적인 행동력을 처음 보았다.
“…안 슬프다니까?”
케일이 평소의 뚱한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안 속는다! 똥멍청이 인간아!”
“안 속는데! 울면 안 되는데!”
라온과 홍이 냅다 케일에게 외쳤다.
“…허.”
케일은 기가 찼다. 그때였다.
토닥토닥.
쿠키를 쥐지 않은 손등을 두드리는 온의 표정이 보였다.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에 케일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아니, 진짜로 안 슬프다니까?’
진심이었다.
묻어뒀던 기록들을 이제는 조금씩 들춰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케일은 마음이 편안했다.
케일은 쿠키에 박힌 초코가 녹아 끈적끈적해진 손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로잘린 씨,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그리고 고개를 들어 로잘린을 바라보았다가 로잘린의 주먹이 보여 멈칫했다.
“라온 님.”
하지만 로잘린은 담담하게 라온을 불렀고, 라온이 날개를 파닥이며 외쳤다.
“신기록이다! 20일 1시간 32분 19초 동안 기절했다!”
“…응?”
“거의 3주 기절했다!”
…허?
3주?
지금껏 가장 오래 기절한 게 대략 2주 아니었던가?
그런데 3주라고?
케일은 퍼뜩 든 생각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비행선은, 수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다른 일들은? 북쪽 연금술 탑 뒤처리는?
그는 다급하게 로잘린을 바라보았다가 멈칫했다.
“참, 케일 공자도 어지간히 일이 좋나 보네요.”
“네? 저 일 싫어하는데요?”
로잘린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수도 비행선은-”
달칵.
하지만 그녀의 입이 열린 순간, 문이 열리고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비크로스였다.
“최한, 네가 말한 파전이라는 걸 해봤는데, 이게 맞나……?”
뭐?
지금 뭐라고?
파전?
…여기 파가 있어?
케일은 제 귀를 의심했고, 그와 눈이 마주친 비크로스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그는 생전 처음 해보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한 손에 쥐고서 다른 한 손으로 제 두 눈을 비비며 말했다.
“헛것이 보이나?”
케일 헤니투스 공자가 운 얼굴이라니.
눈물은 안 흘렸지만, 누가 봐도 운 얼굴이었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곤 본 기억이 없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세수라도 하고 와야겠군.”
그 말과 함께 비크로스는 접시를 들고서 도로 나가 버렸다. 케일이 이를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지만, 곧 그는 정말로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순수한 이를 볼 수 있었다.
“오! 공자님!”
성자 잭이었다.
그는 펄럭이는 신관복을 제대로 정비하지도 못한 채 케일이 있는 침대로 다가와,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이 눈물이라니, 혹 몸에 고통이 있으십니까?”
정말 순수한 얼굴로 물어오니 케일은 순간 답을 못 했다. 차라리 비크로스 같은 놈이 대하기 편한 케일이었다.
“아뇨, 몸은 아프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공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잭이 허리를 푹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수도에 제때 도착해 로잘린 씨와 에르하벤 님 덕분에 실드를 두를 수 있었고, 그 뒤 실드 밖에서 비행선들을 하나씩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움과 감격을 담아 말한 성자 잭은 기쁨에 겨운 듯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때마침 공자님과 최한 님, 라온 님이 오셨고, 갑자기 비행선들이 모두 대피하기 시작하더군요. 뒤쫓아 반격을 할까 고민했지만, 적들이 비행선 하나를 수도 위로 떨어뜨리며 폭발시켜 어쩔 수 없이 뒤쫓기보다는 수도 보호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오, 잭이 설명을 참 잘하는걸?
하긴, 뒤쫓아 가고 싶어도, 로잘린과 에르하벤이 수도에 실드를 두르고서 폭발하는 비행선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라면 섣불리 쫓지 않는 것이 나았다.
마법사 없이 뒤쫓아 가는 건 위험 요소가 많으니까.
케일은 성자 잭이 수도 상황을 설명해 주는 걸 가만히 들었다.
“하루 정도 더 수도 방어에 집중하다가 북쪽 연금술 탑에 가봤더니, 모두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아, 부서진 비행선과 골렘 잔해들은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적들에게 타격을 준 것 같습니다!”
음, 그렇군.
감격한 얼굴로 해주는 설명이 참 좋았다.
“그리고 동서남북 네 연금술 탑은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물론 연금술 관련 책자를 비롯해 빼돌릴 것은 빼돌렸지만요.”
고개를 끄덕이던 케일은 성자 잭의 그렁그렁한 눈이 보였다.
“모두 공자님과 다른 분들의 도움과 희생 덕분입니다. 공자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는 동안, 얼마나, 제가 얼마나……!”
음… 어색한데?
케일은 잭의 저런 모습이 대하기 어려웠다.
“정말,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잭 님.”
케일은 얼른 잭과의 대화를 끊어냈다. 그리고 잭 뒤에 서 있는 로잘린이 씨익 웃는 것을 보았다.
‘설명 필요 없겠는데요?’
그런 눈빛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3주가 지났으면-”
“북쪽이 걱정인 거냐?”
케일은 소파에 앉아 저를 바라보는 에르하벤과 눈이 마주쳤다. 에르하벤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클로페는 북쪽으로 갔다. 고래족과도 연락을 해두었고. 테일러와 케이지라는 아이들은 론과 앞으로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일단 고대 문서를 완성하겠다고 했다.”
케일은 에르하벤이 저번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맨 정신으로 얼른 수도로 와라.’
하지만 아쉽게도 맨 정신은커녕 가장 긴 기절 시간을 기록했다. 가라앉은 눈빛에 괜히 케일은 쿠키를 입에 물었다.
오독.
쿠키가 부서졌고 에르하벤은 이어 말했다.
“타샤도 자신을 부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대의 문서 위조 건과 고래족 땅에서 벌어질 이야기를 듣고 대충 짐작이 간다며 고향으로 돌아가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케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에르하벤의 입에서 정확히 흘러나왔다.
“꼭 네가 다 할 필요는 없지. 유능한 사람이 많다.”
그러니 혼자 기절하는 일을 만들지 말라는 에르하벤의 의도가 듬뿍 느껴졌다.
오독오독.
말없이 케일은 쿠키만을 먹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북쪽으로 가야겠군요.”
에르하벤도, 로잘린도, 론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곰족 왕과 사자족 왕을 놓치고, 어찌 보면 한 방 먹은 상황이었다.
이제 반대로 자신들이 하얀 별에게 한 방을 먹여야 했다.
그 기회가 곧 북쪽에서 펼쳐진다.
비록 케일이 기절하는 바람에 3주가 흘러, 본디 케일이 계획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잘 준비해 두었으니까.’
그것에 맞추면 될 것이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북쪽으로 가자.
그 말이 나올 참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케일 님.”
음.
케일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최한이 다가와 케일에게 말했다.
“얘기 나눌 게 있지 않습니까?”
-맞다! 인간아! 나한테도 얘기해 준다고 했다! 인간이 울어서 순간 까먹었다!
으음.
케일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인간아! 왜 또 그렇게 웃나? 아, 맞다! 최한에게 파전 들어서 비크로스랑 연구 중이다! 최한이 파이랑 비슷한 거라고 했는데, 맛이 궁금하다!
제길.
케일은 머릿속에 전해지는 라온의 해맑은 말에 제 입에 쑤셔 넣어질 한국 음식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피하지 못할 상황이 눈앞에 자리해 있었다.
모고르에 오면 케일이 늘 머무는 황태자 아딘의 침실.
케일은 그 침실을 둘러보며 일행에게 말했다.
“최한과 둘이서만 대화를 나눠야 할 일이 있습니다만.”
***
케일은 침대 근처로 의자를 가져와 앉은 최한을 가만히 쳐다봤다.
‘근처에 듣는 사람 없어!’
‘검은 용 방음 마법 대단한데! 밖에서 아무도 못 들을 거야!’
‘너처럼 바람 정령 목소리를 듣는 것 아니면 불가능. 나 할 말 있다. 파괴를 위하여.’
바람 정령들의 확인을 듣고 나서야 케일은 금빛 팽이채를 손에서 놓았다.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한과 케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침실에는 이렇게 셋만 남았다.
최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바닥을 보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케일과 눈이 마주쳤고, 케일의 입이 열렸다.
“반갑습니다. 최정수 친구 김록수입니다, 어르신.”
그리고 고개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최한의 입이 딱 벌어졌고, 라온의 눈이 커졌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최한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굳이 그런 인사는 어색하고 필요 없는데… 요.”
“알아.”
평소처럼 뚱한 표정의 케일이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후련한 눈동자를 지닌 채로 툭 내뱉었다.
“뭔가 한번 이런 인사는 해놔야 할 것 같아서.”
암, 그렇고말고.
내가 아무리 싸가지 없다고 해도, 예전부터 인사성은 밝은 사람이었거든.
“허, 허허-”
최한이 기가 찬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기점으로, 처음으로 김록수와 최한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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