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6
425화.
“난 지금 인간이랑 최한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라온이 앞발로 볼을 누르며 외쳤다.
그 행동에 최한이 아차 한 표정으로 라온을 바라봤지만, 라온은 이내 앞발을 내리곤 날개를 쫘악 펼치며 씩씩하게 말했다.
“하지만 일단 듣겠다! 나중에 묻겠다!”
“그래, 그래.”
그에 케일이 그러려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쿵! 쿵! 쿵!
하지만 케일의 심장은 심하게 거세게 뛰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이렇게 된 판에 솔직하게 말하는 것 말고 별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근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꾹 다물고 있던 사실을 관계자 앞에서 내뱉는 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특히 36년이 넘은 인생 동안 살갑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제가 묻는 말에 진실만 답해주리라 믿습니다.”
순한 미소와 함께 담담하게 묻는 최한이 왜 이리 무서워 보이지?
꼭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 안 하면 알지?’ 이러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물어봐.”
그러나 케일의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아주 자신만만하고 시니컬한 말투였다.
그에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찰나.
“언제 왔습니까?”
질문이 시작되었다.
“너 만나기 하루 전날.”
자동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제가 최정수의 당숙인 건 몰랐죠?”
“당연하지!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굴었겠냐?”
“인간은 원래 싸가지 없다! 내가 아무리 약한 인간 좋아하지만, 약한 인간은 조금 싹퉁바가지가 없다!”
아니, 진짜.
라온에게 성질을 낼 수 없는 케일은 해맑은 라온의 말에 그저 얼굴만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최한에게 답했다.
“네가 최정수의 당숙인 건 정말 몰랐다.”
암, 그렇고말고.
물론 ‘영웅의 탄생’을 읽어서 최한을 알고 있었지만.
이건 최정수의 기억을 본 최한도 모르는 사실인데, 말해야 할까?
케일의 머릿속에 고민이 생겨났다. 하지만 최한은 그 고민을 붙잡고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네란 베로우. 최정건의 책도 읽을 줄 알았겠네요?”
“당연히.”
“그런데 못 읽는 척 내 앞에서 모른 척한 거고요?”
묘하게 최한의 말투가 편해져 갔지만, 케일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 모른 척했지. 내 연기력은 너와 달리 수준급이거든.”
“많이 놀랐겠네요?”
“그렇지.”
“저도 놀랐습니다.”
케일의 시선이 최한에게로 향했다. 놀랐다고 말하는 최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케일의 표정도 굳어갔다.
최한은 참 부담 없는 것들만 물어왔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최한, 최정수의 기억을 봤으니까 나에 대해 묻지 않는 건가?”
최정수의 기억을 봤다면, 최한은 최정수가 아는 만큼 김록수에 대해서 알 것이다.
그리고 최정수와 이수혁은 김록수의 삶에 대해 김록수에 버금가도록 아는 이들이었다. 과거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김록수의 인생은 멀리서 바라보면 비극 그 자체였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성인이 되어 뭘 좀 해보려니 세상이 뒤집혀 그 뒤는 매일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족과 같은 이들을 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지.’
살아남는다.
그게 결과론적으로 김록수의 삶을 뜻하는 말이었다.
누가 죽건 그는 늘 살아남았다.
참, 운이 좋은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삶이기도 했다.
‘그걸 최한도 아는 거겠지.’
김록수의 삶이 그런 삶이라는 걸 아니까, 김록수에 대해, 나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리라.
케일의 입이 열렸다.
“너도 참 사람이 변함이 없다.”
강해지든 냉정해지든 어찌 되든 기본적으로 사람이 착했다.
“참 착해.”
케일은 제 말에 구겨지는 최한의 미간이 보였고, 라온의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최한 착한 거 이제 알았나? 최한은 무시무시하지만, 착하다!”
하아.
최한은 깊은 한숨과 함께 케일과 라온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변함없는 게 누군데…….”
“뭔 말 했어?”
“아닙니다.”
최한은 제일 변함없는 이가 자신보고 변함없이 착하다고 말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정말, 정말로, 최정수 기억 속의 김록수와 최한이 겪은 케일은 똑같았다.
신분, 외양, 상황이 달랐지만 하는 행동이 거의 같았다.
‘우습지만.’
그래서 배신감이 덜 들었다.
한국을 모르는 척. 한국인을 모르는 척.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 최한이라는 이름만으로 자신을 이상하다 여기거나 차원 이동을 짐작이라도 했을 텐데 모르는 척.
모든 모른 척에 섭섭하고 화가 날 것도 같다가, 저나 일행을 대하는 행동과 말투가 기억과 똑같아서 ‘나를 거짓으로 대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배신감이 서서히 사라졌다.
오히려 최정수의 삶을 보면서, 케일이 자신과 동료들을 진심으로 진짜 동료처럼, 나아가 가족처럼 대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2년 5개월을 너머 2년 6개월이 되어가는 시간.
참 짧지만, 겪어온 일들은 적지 않았다.
최정수를 구하려고 철판때기를 들고 달려드는 김록수나, 피를 몇 번 토하고 쓰러지는 케일이나 똑같았다.
‘물론 비크로스나 론, 백작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들은 최한과 입장이 달랐다.
원래의 케일 헤니투스를 아는 인물들이었다.
분명 최한과 느끼는 감정이 다를 터.
‘…로잘린이나 왕세자도 마찬가지야. 나와 다를 거다.’
최한처럼 케일을 최근에 알게 된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도 최한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한국인이니까.’
외톨이인 줄 알았던. 과거는 모두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김록수와 케일, 이 한 사람을 알게 된 순간 반가움이 컸다.
“그런데-”
최한은 들려오는 케일의 목소리에 그를 바라봤다.
“넌 괜찮냐? 다 봤잖아.”
최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웃는 듯 찡그린 듯한 미소였다.
순한 미소라고 하기에는 지나온 그의 삶이 물씬 담겨 있었다.
최정수의 삶.
그 속에서 최한은 어둠의 숲에서 잃어버렸던 제 삶의 발자취를, 제가 사라지고 난 후의 시간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이, 고향이 모두 사라지고 파괴되었다.
지금 케일의 질문은 그 진실이 견딜 만하냐는 의미일 터.
“괜찮습니다.”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괴롭지 않다면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괜찮다.
혼자가 아니니까.
‘이제야.’
최한은 이제야 17살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둠의 숲을 벗어나 겪은 2년이 넘는 시간. 그리고 자신이 떠난 뒤 흐른 한국의 시간을 모두 겪자, 비로소 제 삶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인간아! 나는 하나도 안 봤다!”
최한은 라온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투박하게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는 케일이 보였다.
저 뚱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설명해 줄 것이다.
얍삽하지만 착한 사람이니까.
“라온, 잘 들어. 두 번 안 말한다.”
봐라, 다정히 설명해 주지 않는가?
“알았다! 한 번에 알아듣는다! 나 라온 미르는 똑똑하다.”
“그래, 그래. 너 똑똑하다.”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 설명할 생각을 하자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서 축약하기로 했다.
짧게 중심 내용만. 좋지 않은가?
“난 원래 김록수라는 인간이야. 그리고 이 세상이 아닌 지구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았지.”
“오.”
어린 용의 검푸른 눈동자가 껌벅껌벅거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을 떴더니 케일 헤니투스가 되어 있었어. 그 후에 너를 만났지.”
설명 끝이었다.
너무 짧은가? 케일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구나.”
라온은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말로 이걸로 다 수긍한 건가?’
케일은 너무 쉽게 수긍하는 라온의 맑은 눈동자를 보자, 도리어 찝찝해져 왔다.
그때, 라온이 말했다.
“그래서 하얀 별이 그런 말을 했구나!”
“응? 하얀 별?”
갑자기 하얀 별이 왜 튀어나와?
케일과 최한 둘 다 의아해할 때, 라온이 그런 것도 기억 못 하냐는 듯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통통한 배를 쭉 내밀며 말했다.
“하얀 별을 처음 연금술 종탑에서 만났을 때, 그 정신 나간 하얀 별이 인간이랑 최한보고 그랬다! ‘더욱이, 너도 저 검은 머리처럼, 그리고 나처럼 시간이 뒤틀렸구나’라고!”
아.
케일은 그제야 어느 때의 기록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하얀 별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있다! 최한아. 너는 하얀 별한테 얻어맞아서 모고르 황궁에 처박혀 있느라 그때 못 들었다! 하지만 위대한 라온 미르는 모두 듣고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기억력이 아주 좋다!”
케일은 하얀 별이 저 말을 했을 때 라온의 반응이 생각났다.
‘인간!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우리 최한도, 우리 인간도 안 뒤틀렸다! 둘 다 나처럼 위대, 아니, 좀 위대하다!’
그리고 자신은 하얀 별의 말에 대꾸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한 인간이 하얀 별한테 한 방 먹였었다! 히히!”
하.
케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라온은 피식 웃는 케일에게로 다가가 그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쨌든 인간은 인간이다! 그럼 됐다!”
히죽. 라온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한번 인간은 영원한 인간이다!”
“허이구, 내가 인간이지, 그럼 뭔데?”
“하여튼 인간은 인간이다! 백 년 뒤에도, 천 년 뒤에도, 만 년 뒤에도 인간은 인간이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라온은 즐겁게 말했고, 케일은 자꾸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긴장한 것과 달리,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
‘괜히 긴장했나?’
그때였다.
“케일 님.”
최한이 평소처럼 순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아, 방심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무거운 질문에, 케일은 죽음의 신이 내건 선택이 떠올랐다.
여기 남을지 돌아갈지.
선택의 시간은 지금도 줄어들고 있었다.
곧.
정말 곧 11월 8일이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
그때 자신은 태어났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은 록수였다. 푸를 록에 빼어날, 자랄 수.
겨울이 와도 늘 푸르게 자라나라고, 빼어나게 피어나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몇 달만 있으면 11월이다.
그렇기에 케일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난 여기가 좋다.”
빌어먹을 죽음의 신 돌아이가 하는 말 따위 무시할 작정이다.
선택하라고?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아닐지나 선택하라고 해야지.
케일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 중이었다.
“저도.”
음?
최한의 작은 목소리에 케일은 그를 유심히 쳐다봤다.
“저도 여기가 좋습니다.”
“나는 다 좋다! 하얀 별이랑 그놈 부하 빼고!”
“아, 나도 그래.”
“최한아, 내 말에 동의하냐?”
“응. 동의해.”
케일은 라온과 최한이 대화하는 것을 보며 침대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다.
“다들 들어오라고 할까요?”
최한이 물었고,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북쪽에 가야 하니까.”
“네.”
최한이 문가로 향했고, 라온은 마법을 거두려 했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잠시 한 존재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참고로 원래 네 몸 주인도 잘 산다. 행복하다더라.’
원래의 케일 헤니투스.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원래 내 몸에 저 녀석이 들어갔을까?
행복하게 살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케일은 망나니이면서 묘하게 행동하던 원래 이 몸 주인을 떠올렸다. 동시에 헤니투스 백작가도 생각했다.
‘어쩌면.’
어쩌면 원래의 케일 헤니투스가 망나니가 되었던 이유가 무엇일지 조금 짐작이 되었다.
‘물론 그 이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콰아앙!
굉음에 케일은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전 황태자 아딘의 침실 문짝이 날아갔다. 문을 연 최한은 한 발짝 피해 있었고, 문밖에 다른 일행은 멍하니 있었다.
케일은 성큼성큼 저를 향해 다가오는 살벌한 표정의 사람이 보였다.
이불 안 케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뭘 저리 쳐다봐?’
소드 마스터 하나. 그녀가 케일을 패 죽일 것 같은 흉폭한 표정을 한 채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왜? 왜 그래?”
케일이 놀라 물어보자 하나는 케일 침대 근처까지 걸어와 멈춰 서서 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왜 그러냐니까? 나 뭐 잘못했냐?”
“야.”
하나는 툭 던지듯 말했다.
“바로 북쪽 간다고?”
“어. 왜?”
그게 뭐길래 문짝이 날아가?
“…그 비루한 몸뚱이로… 말이지?”
케일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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