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39
438화.
“이것으로 논공행상 발표는 이만 마치도록 하지.”
알베르 크로스만이 관리에게 눈짓하자, 그 순간부터 악단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왕세자는 영상통신구와 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 광장에 있는 이들이나 홀 안에 있는 이들이나 모두 이 순간을 진정으로 즐기길 바라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귀족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알베르의 시선을 피했다.
‘즐기라고? 진정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큰일 났어.’
경쾌하고 산뜻한 음악이 울려 퍼졌지만, 홀 안의 분위기는 묘하게 침체되어 있었다.
“내가 있으면 쉬이 즐기지 못할 테니, 나는 이만 빠지도록 하지.”
왕세자는 귀족들에게 편히 있으라 말하며 연회 홀 입구로 향했다. 모든 인원이 그에게 집중하며 배웅하려고 했지만, 알베르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편하게 있을 수 없었다.
퇴장하려는 알베르의 뒤로 유일하게 따라붙는 사람이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그림자처럼 움직인 이는 왕세자의 손짓에 그의 옆에 동등하게 섰다.
왕세자가 제 옆에 동등하게 서는 것을 허락할 정도라면, 아주 가까운 사이이자 왕세자가 일종의 존중을 보내는 사이임을 뜻했다.
“…그게 최한이라는 거군.”
한 귀족은 왕세자와 그 옆에 선 최한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왕세자와 오늘부터 그의 스승이라 알려질 최한은 가까이 붙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화 내용은 왕세자의 퇴장 후에도 그대로 이어진 악단의 연주에 묻혀 귀족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로운 왕국 동남부 귀족 파벌을 이끄는 아일란 후작. 그도 왕세자와 최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같은 파벌의 백작이 그에게 다가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두 분의 사이가 아주 가까워 보입니다.”
최한도 어느새 귀족에게 ‘그분’이라고 불릴 위치가 되었다.
아일란 후작의 눈동자에 알베르의 편한 미소와 담담하면서도 희미한 미소를 지은 최한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로 친해 보였다.
“후작님, 정말로, 정말 이렇게 되어도 괜찮으십니까?”
후작은 백작의 말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괜찮지 않다.
아일란 후작가는 이번 전쟁의 결과로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거부할 명분이 나한테 없다.’
동남부의 아일란 후작과 중앙의 오르세나 공작은 헤니투스 백작가를 공작가로 올리는 것에 어떻게든 반대하려고 했다.
‘…이미 스텐 후작가와 기예르 공작가가 헤니투스 백작가의 편이었어.’
왕세자 대 공후작 귀족 간의 알력 싸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3 대 2의 싸움이었다.
‘아니지. 이건 어쩌면 헤니투스 백작가 대 아일란, 오르세나 가문 간의 알력 싸움이겠지.’
그리고 졌다.
아일란 후작은 침중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오르세나 공작을 힐끗 쳐다보며 알베르 왕세자가 그에게 은밀히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일란 후작. 이깟 로운 왕국 내에서의 권력을 지키려고 더 큰 것을 놓치고 싶나?’
다음 왕이 될 자가 로운 왕국의 권력을 ‘이깟’ 것이라고 말했다.
‘불굴 연합, 모고르 제국, 카로 왕국, 브렉 왕국, 그리고 동대륙에서 전해지는 소식들. 알고 있겠지? 모르나?’
아일란 후작 또한 서대륙 곳곳에서 퍼지는 소문을 들었다.
올해 서대륙에서 벌어진 일에는 모두 숨겨진 배후가 존재하고, 그 배후가 서대륙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한다고.
그것을 막으려고 케일 헤니투스가 동분서주하는 것이라고.
‘자네는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나?’
아일란 후작은 저를 내려다보던 서늘한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 눈동자는 말했다.
생각 똑바로 하라고.
‘케일 헤니투스는 혼자가 아냐. 그는 이미 아일란 후작도, 나도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세력을 일구었다.’
현실을 봐라.
아직도 헤니투스 백작가, 아니, 케일 헤니투스가 그저 백작가의 공자로 보이나?
‘이깟 권력을 지키는 데 모든 것을 걸고 싶다면 그저 숨죽인 채 가만히 있어. 그대는 꽤 똑똑한 사람이지 않은가?’
왕세자가 똑똑하다고 말한 아일란 후작은 이제 케일 헤니투스가 그의 힘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귀족들이 나서서 케일 헤니투스를 탄압하려고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리되면 케일 헤니투스가 어디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뺏길 순 없잖아?”
그건 안 된다.
“후작님?”
“아닐세.”
그는 백작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저 최한과 알베르의 친밀한 대화를 지켜보았다.
그 둘을 지켜보는 시선은 아주 많았다.
그중 하나가 케일이었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대?”
케일은 아무리 봐도 최한과 알베르의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인간아! 최한 연기하는 표정 아니다! 최한 연기하면 못 봐줄 꼴이다!
그러니까.
케일은 대충 둘이 알아서 대화하겠지 싶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최한과 알베르는 나직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도 편히 연회를 즐겨야지?”
“그래도 제자가 먼저 간다는데 배웅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베르는 부드러이 웃었고, 최한도 무덤덤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으음, 스승?”
“네, 저하.”
“나는 우리 스승님이 연기를 못한다고 들었단 말이야.”
“그런가 보더군요.”
알베르는 웃는 얼굴로 침묵하다가 최한에게 물었다.
“날 진짜 제자로 들이게?”
“…받으십시오.”
최한이 정복에서 작은 종이 꾸러미를 꺼내 알베르에게 내밀었다.
“뭐야?”
알베르가 진심으로 의아함을 담아 최한을 쳐다봤고, 최한은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고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검술 하나는 잘 가르칩니다.”
알베르의 미소가 사라지고 그 위로 기가 찬 표정이 드리워졌다. 그는 종이 꾸러미를 대충 넘겼다.
간단한 검술 초식이 몇 개 그려져 있었다. 최한이 직접 손으로 그린 듯했다.
‘진짜로 날 가르친다고?’
정말 내 검술 스승을 할 생각인가?
스승님이라는 존재를 실제로 둬본 적이 없는 알베르였다. 그나마 스승님에 가까운 존재가 타샤였으나, 그녀는 가족이었다.
알베르의 귓가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몸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종이에서 시선을 뗀 알베르는 최한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말속에 담긴 저의를 찾으려고 얼굴 표정 하나하나 샅샅이 관찰했다.
그렇게 지켜보던 알베르는 결국 피식 웃음을 흘렸다.
“스승님, 나 검 잘 다루는 편인데?”
“저만큼은 아니죠.”
“그래서 배워둬라?”
“배우면 좋죠. 안 다치고 오래 사는 게 최곱니다.”
알베르는 결국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조금 떨어져 있던 귀족들이 더욱더 유심히 알베르를 쳐다봤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최한을 응시했다.
“아주 똑같은 것들이 뭉쳐 다니는군.”
그는 종이 꾸러미를 제 상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자, 스승님은 남아서 내 동생과 즐겁게 놀다 오도록.”
최한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전달하라고 하신 말씀. 모두 전하죠.”
“그래, 그래. 스승님, 나중에 검술 좀 가르쳐 줘.”
최한과 알베르의 눈이 마주쳤다.
알베르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걸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짜로.”
“그러죠, 제자님.”
최한이 씨익 웃어 보였고, 알베르는 ‘은근히 우리 과네’라는 말과 함께 홀로 연회장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를 밖에서 대기하던 기사들과 시종들이 따랐다.
최한은 이를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저를 쳐다보는 귀족들의 눈동자가 보였다.
‘장난감? 아니지. 보물인가?’
새로운 보물을 눈앞에 둔 이들처럼 여러 욕망이 느껴지는 눈빛에도 최한의 표정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는 메리, 타샤, 마법병단장에게 눈인사를 보내곤 한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디저트가 한가득 든 접시를 양손에 들고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한 사람이 보였다.
최한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
-인간아! 다 나 먹으면 되나? 내 거지?
그래, 그래.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2층 구석 테라스로 향했다.
“…저-”
케일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케일을 향해 손을 뻗던 귀족은 입을 다물었다.
‘사람 분위기가 왜 이래?’
그는 저를 응시하는 케일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꼭 드래곤의 서늘한 눈동자를 마주한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케일에게서 쉬이 접근하기 힘든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분명 다가올 때만 해도 할 일 없는 한량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막상 다가와서 눈을 마주하니, 실로 유명한 ‘은빛 공자’, ‘은빛 영웅’다웠다.
“왜 그러시죠?”
“…아, 아닙니다.”
꼭 목에 단도를 들이미는 것 같은 냉정한 케일의 목소리에 귀족은 황급히 뻗었던 손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다.
그에 케일은 차가운 시선을 거두며 제 갈 길을 걸어갔다.
-인간! 오늘도 조금 세 보인다!
케일은 지배하는 아우라를 몸에 두른 채로, 라온의 말을 흘려들으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나자, 귀족은 비로소 제 손끝이 잘게 떨리는 것을 깨닫고 숨을 편히 내쉬었다. 그런 그에게로 친한 귀족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였다.
“가까이서 보니, 영웅은 확실히 다르군.”
“그러게. 그런 분위기는… 꼭-”
꼭 지배자 같아.
하지만 자존심상 그런 말은 내뱉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동료 귀족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다른 곳을 가리켰다.
“괜히 뻗을 수도 없는 데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쪽을 택하자고.”
친우의 손이 가리킨 방향에 헤니투스 백작가, 아니, 헤니투스 공작가 사람들과 동북부 귀족들이 보였다.
“섣불리 영웅님 건드려 화 돋우지 말고, 다른 곳을 공략하자는 거지. 어때?”
“좋군.”
두 귀족은 연회의 중심인 동북부 귀족들에게로 향했다.
이는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그들은 메리와 타샤도 서서히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로지 영상통신구 중계를 보고 있던 광장의 사람들만이 이 상황을 알아챘다.
대부분은 그저 메리와 타샤의 퇴장을 아쉬워할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맘껏 놀고먹자고!”
“그래! 왕세자 저하께서 공짜로 음식들을 주셨잖아?”
“크하하하! 좋은 날이야! 이런 날이 오다니!”
다들 저마다 이 순간을 즐기기 바빴으니까.
그러나 그 환희의 중심인 광장을 은밀히 빠져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후드를 깊숙이 눌러쓴 두 사람은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외곽으로 향했다.
“베로우.”
한 사람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어때?”
후드 속 곰족 왕 사예르의 눈동자가 후드로 얼굴을 가린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글쎄.”
“너 지금 로운 서북부랑 카로 왕국 중에서 고민하는 거 아냐?”
하얀 별은 아무 말이 없었고 사예르는 대답이 필요 없다는 듯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오늘 광장에서 논공행상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는 말에 황급히 로운 왕국 수도로 향했다.
물론 그들에게 로운 왕국 병사들의 눈길을 피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예르는 제 생각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음, 분명 케일 헤니투스 정도면 우리가 이 영상통신구를 어떻게든 볼 거라고 생각할 거란 말이야. 그런데 로운에 있는 걸 티 낸다?”
이상했다.
“…우리가 로운으로 눈을 돌리도록 일부러 꾸민 것 같은데?”
그 순간, 사예르와 하얀 별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하얀 별의 입이 열렸다.
“죽음의 땅. 그 사막 입구에 환각사를 보내놨겠지?”
“당연히.”
“그럼 우리도 거기로 가지.”
사예르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왜?”
“봤잖아?”
하얀 별은 영상통신구 화면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최한, 다크엘프, 네크로맨서, 케일까지. 모두 연회를 떠났다. 우리를 로운으로 부르고-”
“그 틈을 타 지들은 카로 왕국에 먼저 가서 힘을 얻으려는 것이겠지?”
곧 사예르와 하얀 별의 모습은 수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연회장 홀이 있는 궁의 2층.
영상통신구가 비치지 않는 구석진 곳.
달캉.
-음? 인간아! 누가 들어오려나 보다!
라온이 황급히 입가에 묻은 초코 크림을 케일의 손수건으로 닦아냈고 케일은 테라스 커튼을 걷으며 문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
촤르륵.
커튼을 걷으며 열린 테라스 문 틈새로 최한이 들어섰다.
“케일 님.”
그는 케일의 눈을 보고 물었다.
“하얀 별이 죽음의 땅으로 올까요?”
오독, 오독.
쿠키를 먹고 있던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면 우리도 갑니까?”
드륵.
케일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그가 가져온 디저트 외에도 또 다른 것들이 놓여 있었다.
로운 왕국 서북부 지도와 서북부 귀족가 자료.
그리고 마지막. 다급한 얼굴로 다크엘프 타샤가 오늘 아침 전해준 다크엘프 시장의 편지.
그 시기.
죽음의 땅 지하에 다크엘프들이 터를 잡은 이유.
검은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불규칙적으로 연기 형태의 죽은 마나가 피어올랐다.
이틀 뒤, 죽음의 땅은 죽은 마나 연기로 뒤덮인다.
케일은 편지를 품 안에 넣으며 다크엘프 시장이 남긴 마지막 문장을 눈에 담았다.
케일은 최한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의 오른팔을 잘라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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