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
43화.
하지만 이미 마차 안도 난장판이었다. 달달달. 케일은 다리를 떨고 있는 네오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지간히도 혼란스럽고 걱정이 가득 찬 듯했다. 대부분의 귀족 자제들이 다 혼란스러움을 보였다.
‘하긴 베니온의 얼굴은 엉망이었지.’
케일은 마차에 올라타기 전, 슬쩍 보았던 베니온 스텐의 얼굴을 떠올렸다. 베니온은 아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누가 상상했겠는가.
버려진 장남, 테일러 스텐이 휠체어에서 벗어나 두 발로 걷게 될 줄, 그리고 스텐 후작가 사람이 왕세자 알베르의 곁에 설 줄. 누구도 상상 못 했을 것이다.
‘용케도 ‘치유의 별’을 얻어냈어.’
하지만 대략적인 사건의 전말을 아는 케일은 테일러와 케이지가 무슨 거래로 왕세자에게 고대의 힘인 ‘치유의 별’을 얻어내었는지 궁금하였다. 하지만 케일은 테일러를 쳐다보지 않았다.
네오 톨스는 아예 테일러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그때 아미르가 입을 열었다.
“테일러 공자,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신 것입니까?”
조심스레 건네는 물음은 정중했다. 테일러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천운이 닿아 나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회복되었지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크흠, 큼. 네오 톨스가 헛기침을 하며 테일러의 다리와 그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테일러 공자는 이제 다리가 다 나으셨으니, 후작가로 돌아가시겠습니다?”
버려진 장남이 될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 하반신 불구가 해결되었으니. 네오를 비롯한 다른 귀족가 자제들 입장에서는 그가 다시 후작가로 돌아가 후계자 경쟁에 뛰어드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특히 네오는 베리온의 부하이니 더 궁금할 테고.
테일러는 네오를 보며 말했다.
“돌아간다니요.”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단호함과 함께 네오를 향한 차가운 칼날이 가득했다.
“그곳이 원래 제 집입니다. 제 자리가 그곳 아니겠습니까?”
네오는 그 서늘함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더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이 광경에 케일은 시선 하나 두지 않았다. 케일은 이따금씩 마차 창문으로 슬쩍슬쩍 테일러의 눈빛이 보였다.
물론 테일러는 다른 이들 티 나게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그도 케일을 따라 마차 창밖을 보듯 보내는 시선이었다.
그 눈동자와 케일의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케일은 그가 보내는 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케일 공자! 내가 다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를 담은 테일러의 반짝이는 눈빛이 케일은 영 떨떠름했다. 케일로서는 이제 그냥 후작가를 테일러가 차지하고, 그의 성정으로 온건한 영지 정책을 펼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썩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케일과 테일러가 대화할 순간은 찾아왔다.
“크흠,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마차가 행사장인 영광의 광장 옆 공터에 서자마자 바로 네오 톨스가 마차에서 내려 그들을 벗어났다. 아주 대놓고 베니온 밑에서 일했으니 여간 불편한 듯싶었고, 베니온에게 테일러의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서도 있을 것이다.
“케일 공자, 에릭 공자와 함께 오겠습니다.”
동북부 다른 귀족들과 함께 탄 에릭, 길버트 곁에 케일이 갔다가 혹시 시비라도 걸릴까 싶어 아미르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홀로 마차를 벗어났다.
‘테일러 공자와 케일 공자는 접점도 없으니. 별일 없겠지.’
케일 공자 성격상, 누군가와 먼저 말을 할 리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며 아미르는 입장 전 에릭과 모이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 결과 케일은 테일러의 환한 미소를 받아야 했다.
“드디어 둘만 남았군요.”
상당히 케일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는데, 그것이 웃긴지 테일러는 작게 웃으며 직구를 던졌다.
“후작가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으로 다리를 고쳤습니다.”
“충성을 바치기로 한 겁니까?”
“아뇨. 거래를 했습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다리 나은 것 축하드립니다.”
그 뒤로 할 말이 없다는 듯 케일은 테일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 행동에 테일러는 그답다 생각하면서 품에서 작은 서신을 꺼내어 케일에게 내밀었다.
“거래 내용입니다.”
“…이걸 굳이 저에게.”
케일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에 테일러는 답했다.
“알아두면 좋을 겁니다. 공자.”
그러고는 하나의 직구를 더 날렸다.
“케이지는 파문당합니다.”
“단독 행동 때문입니까?”
“그렇죠. 좋아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케이지는 미친 신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파문당한 신관으로 세속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용맹한 신관이라고 평을 받았던 그 성정 그대로 그녀는 나아갈 것이다.
“잘됐네요.”
케일은 자신의 말에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테일러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죠. 우리는 승리할 겁니다, 케일 공자. 그렇지요?”
우리의 승리에 왜 나를 집어넣는가. 케일은 그것이 궁금했지만, 일단 답해주었다.
“승리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내리지요.”
테일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제 두 발을 내려다보다가 마차에서 내리기 전 케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승리한 후 셋이서 술 한잔합시다.”
“헤니투스 와인은 맛있죠.”
케일의 말에 그제야 테일러는 문을 열고 마차 밖으로 향했다. 홀로 남은 케일은 서신을 곧바로 펼쳤다.
그리고 그대로 구겨 버렸다.
“쯧.”
가볍게 혀를 차며 케일은 서신을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쑤셔 넣어 버렸다. 역시 왕세자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케일은 고개를 저으며 마차 밖으로 내려섰다.
“케일.”
케일은 에릭 일행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들 어깨너머로, 수많은 인파로 바글바글거리는 영광의 광장이 보였다.
“케일 공자, 가시죠. 이제 저희들이 입장할 차례입니다.”
‘영웅의 탄생’에서 최한은 왕국민들보다 조금 더 높은 단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에 대해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오늘 케일은 평민들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 그래 봤자 왕족이나 신료들에 비하면 바닥이었다.
케일은 광장의 입구에 세워진 종탑을 바라봤다. 저 종탑에는 시계도 하나 달려 있었다.
현재 시각 8시 25분. 귀족과 신료들이 입장하는 시간이자, 평민들의 출입이 서서히 통제되는 시간.
“가죠.”
케일은 에릭과 다른 이들을 앞세우며 걸음을 내디뎠다. 광장으로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관중들이 보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 얼굴도 제대로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빽빽하게 모여 있지 않았다. 그만큼 영광의 광장은 넓었고 왕실에서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왕과 축제의 시작을 보러온 이들이 광장 근처의 가게나 건물 위에 모여 있었다.
“케일 공자, 광장은 처음 보십니까?”
길버트의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여유로이 끄덕였다.
“네. 잠깐 마차로 지나갔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광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쪽 방향의 찻집.
서쪽 여관.
동에 꽃집 하나.
북쪽의 도예가 협회 건물 꼭대기.
총 네 곳이 케일의 시야에 담겼다.
“광장이 상당히 넓군요.”
마법 폭탄 설치 장소를 케일은 확인했다. 동시에 그는 남쪽 분수대 쪽을 바라봤다. 한 소년이 국왕을 환영할 것처럼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그 소년은 라크였다.
‘계획은 순항 중이군.’
케일은 자신을 분명 보고 있을 검은 용과 최한, 둘을 확신하며 종탑을 바라봤다. 현재 시각 8시 30분.
“입구는 통제합니다.”
각 방향의 광장 입구를 병사들이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케일은 살짝 검지와 엄지를 부딪쳤다. 탁. 아무도 모를 아주 간단한 동작.
라크가 사라졌다. 숨은 그림 찾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굳이 할 필요 없는 숨은 그림 찾기였다.
‘9시 1분이면 그 정답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미리 정답을 알면 편하니까, 그리고 케일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숨은 그림 찾기도 할 만한 일이었다.
“여기에 모두 앉아주시면 됩니다.”
각자의 이름표가 적힌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직 왕과 왕족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함께 온 왕세자도 마찬가지였다.
케일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자주 뵙네요. 케일 공자.”
“그렇군요. 테일러 공자.”
만찬장에서와 그 위치가 똑같았다. 케일은 테일러의 옆에 앉으며 단상 아래의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종탑을 바라봤다.
‘영웅의 탄생’ 속 이야기가 케일은 떠올랐다.
‘영웅의 탄생’에서 나왔던 광장에서 가장 높은 자리. 종탑의 꼭대기를 케일은 무감각하게 바라봤다.
‘영웅의 탄생’에서 최한이 유일하게 발견했던 장소의 마법 폭탄. 그 위치는 이번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계획에는 변수가 많아졌다.
그러나 적어도 책과 달리 건물이 무너지며 죽어갈 이들은 이제 없을 것이다.
저 종탑 아래에 마나 교란 장치가 심어져 있었다.
현재 시각 8시 40분. 케일은 자신의 왼편에 앉은 에릭의 목소리에 그를 돌아봤다.
“케일, 가만히. 알지?”
“형님.”
에릭은 자신을 부르는 케일의 말투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재작년까지만 하여도 화려하게 옷을 입고 뽐내기를 좋아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어두운 계열의 정장만 입었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저는 오늘 가만히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이끌리듯 에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그 행동에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이고 시계를 바라봤다.
8시 40분.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용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15분 남았다.
역시 만능 용이었다. 마법으로는 못하는 게 없었다. 검은 용을 칭찬하며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로스만 왕가의 별들이 입장하십니다.”
유일하게 열린 광장의 입구. 북쪽 왕궁 방향의 입구에서 왕세자를 필두로 2, 3왕자. 그리고 다른 왕자와 공주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화려한 금발의 인원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태양신의 가호를 받은 왕가. 로운 왕국의 자랑거리.
와아아아아-
왕국민들의 환호가 광장 안을 가득 채웠다. 그 환호에 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케일은 검은 용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왕세자 머리색과 눈동자는 갈색이었다.’
가장 평범하다고 알려진 색. 케일은 왕족들을 보며 대충 박수를 쳤다. 그리고 마침내 8시 50분.
“로운 땅의 태양이신 제드 크로스만 국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와아아아아-
국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퍼레이드 용 마차를 타고 오는 50살에 건장한 체격의 왕. 케일은 이를 지켜보다가 왕에게서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북쪽 도예가 협회 건물 옥상에 올려진 화분을 하나 볼 수 있었다. 현재 시각 8시 55분.
‘해제되었군.’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로잘린과 검은 용, 온과 홍이 이제 모습을 감춘 채 광장 속 안으로 스며들 것이다.
국왕 제드는 왕궁 방향 저 멀리에서 아주 천천히 광장으로 향했다. 전대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라는 자리에 오른 제드 크로스만. 그는 평화로운 시대를 그럭저럭 잘 보냈다. 자신의 형제들을 차례차례 모두 죽이면서.
와아아아-
여전히 국왕을 향한 환호는 엄청났다. 그렇게 국왕 제드는 입구를 지나 자신을 위한 가장 높은 단상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종탑 앞에 국왕을 위한 단상이 있었다.
국왕은 왕비와 함께 손을 흔들며 단상 맨 위에 올랐고 왕비는 자신의 자리 앞에 섰다. 국왕 제드만이 마법 확성기 앞에 섰다.
케일은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 8시 58분.
국왕은 손을 들었다.
광장을 울리던 환호성이 차츰 줄어들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광장이 조용해졌을 때, 국왕은 입을 열었다.
“짐이 태양의 가호를 받아 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되었다.”
국왕은 참으로 기뻐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시각은 9시.
“어?”
에릭의 어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무슨.”
테일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여유롭게 고개를 들어 종탑 위를 바라봤다.
“뭐야?”
“저들은 누구야?”
“무슨 일이야?”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커져갔다. 국왕 제드가 자신의 뒤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점점 종탑 위로 향했다. 케일은 종탑 위를 보며 미소를 그렸다.
국왕 제드는 외쳤다.
“너희들은 누구냐?”
기사와 마법사들이 종탑으로 향했다. 왕국민들이 불안해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탑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고 그 뒤를 이어 근처 건물 곳곳 위에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장 내려와라.”
“다들 당장 건물 위로 올라가.”
케일은 근처 기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종탑 꼭대기 위에 서 있는 검은 복장에 마스크를 쓴 남자를 쳐다보았다. 피에 미친 마법사 레디카.
‘이것도 책과 달라져서 안 나타나면 어쩌나 했네.’
그렇다면 최한이 이 마법사를 죽일 수 있도록 각 마법 폭탄 중앙 제어구로 오는 마나를 역순으로 보내 숨어 있는 이자를 찾아야 했다.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케일에게 ‘영웅의 탄생’ 속 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레디카의 손에 붉은색 마나가 드리워졌다.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마법사이지만 마나색이 보였다. 그 마나를 그는 휘둘렀다. 그리고 ‘영웅의 탄생’에서처럼 말했다.
“재밌겠다.”
마스크에서 소름 돋는, 철을 긁는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붉은 마나가 광장 곳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이었다.
9시 1분.
우우우우웅-
종탑 아래에서 진동이 시작되었고.
삐이이이-
위이이잉-
곳곳에서 마법 장치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붉은색 마나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마법 폭탄 속 중앙 제어구를 향해 날아가다가 그 힘을 잃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나 교란이었다.
그리고 광장 안.
위이이이잉-
네 곳에서 유독 크게 소리가 울렸다.
“찾았다.”
케일의 작은 목소리는 마법 폭탄을 포함한 마법 장치들의 알람 소리로 파묻혔다.
저 네 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마법 폭탄의 소지자들이 있다.
역시 마법 폭탄에는 오작동에 대한 알람이 있었다.
케일은 그 네 곳을 향해 달려가는 최한과 로잘린, 라크를 볼 수 있었다.
10분. 해제는 못 해도 마법 폭탄을 저 멀리, 수도 뒤편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산 위 하늘로 이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로잘린과 검은 용이 있었으니까.
-한 인간 찾았다.
투명화한 검은 용의 보고를 들으며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10분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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