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0
439화.
“인간아! 텔레포트하나?”
라온이 테이블 위에 있던 로운 왕국 최고 파티시에의 화려한 디저트들을 제 아공간에 주섬주섬 넣으며 물었다.
이미 라온의 아공간은 거의 냉장고나 다름없었다. 용 나이로 6살은 한창 성장기였다.
‘…채소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케일은 아공간을 채우는 음식들 중 채소는 없는 것 같아, 이 어린 용의 편식 문제가 고민스러워졌다.
“인간, 왜 쳐다보나? 줄까? 인간은 나눠 줄 수 있다!”
“…됐어.”
“아!”
라온이 두 앞발을 박수치듯 맞부딪쳤다.
“인간은 파전이랑 고추장이랑 된장 그게 먹고 싶은 거다! 걱정 마라! 비크로스가 꼭 만든다!”
케일의 살벌한 눈빛이 최한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최한은 그 눈빛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보냈고, 케일은 한숨 쉬듯이 고개를 숙이며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것들을 치워 나가기 시작했다.
‘…어르신이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을 수도.’
케일은 최한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때였다.
“케일 님.”
“왜? 고추장 당기냐?”
최한의 한숨 소리에 결국 케일은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걱정 어린 최한의 표정이 보였다. 망설임과 염려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를 마주한 케일의 표정이 희한하게 변해갔다.
‘도대체 저 인간은-’
달칵. 달칵.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왜 검집을 달칵거려? 자꾸 검집에서 튀어나오는 검이 보이잖아?’
걱정 가득한 얼굴로 최한은 검 손잡이를 달칵거렸고, 그때마다 검집 밖으로 서늘한 검날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케일은 괜히 쪼그라드는 어깨를 활짝 펴며 당당하게 최한을 쳐다봤다.
‘…도대체 케일 님의 생각은 알 수가 없군.’
최한은 저를 쳐다보는 태연한 눈빛에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케일 님, 죽은 마나는 하얀 별이 조공을 명령할 정도로 그에게 필요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모고르 전 황태자 아딘과 흑마법사들은 하얀 별에게 죽은 마나를 바쳤다. 즉, 죽은 마나는 하얀 별에게 꼭 필요하거나 그에게 이득이 되는 존재임을 의미했다.
최한은 이를 케일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당연히 케일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 바람섬 때 고대의 힘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하늘 속성을 지닌 자는 죽은 마나를 주기적으로 흡수했다. 이 바람섬의 죽은 마나 저장고도 그 녀석을 위한 제물이었어.’
‘왜 하늘 속성을 지닌 자가 죽은 마나를 필요로 하지?’
‘그것까진 나도 모른다. 몇 번 알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최한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또한 하얀 별 밑에는 아직 흑마법사들과 사자족 왕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케일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 시기의 죽음의 땅에서, 그들의 힘은 엄청날 것입니다.”
죽은 마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전장. 그곳에서 어둠 속성을 지닌 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넘칠 것이다.
“반대로 저와 케일 님, 어둠의 속성을 지니지 못한 자들에게는 힘겨운 싸움판이 될 겁니다.”
특히 지난번 북쪽 연금술 탑에서의 싸움처럼 사자족 왕이 또다시 검은 장막을 드리운다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아군이 매우 적었다.
“케일 님도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최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비크로스도, 론 씨도, 로잘린도, 에르하벤 님도 모두 빠진다고 들었습니다. 온, 홍까지. 물론 용병왕도요.”
오늘 아침, 논공행상 겸 연회가 시작되기 전. 최한은 일행이 죽음의 땅 사막에 가지 못하도록 케일이 명을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다크엘프 타샤로부터 시장의 편지를 받은 후였다.
“하얀 별의 오른팔을 없앤다고 하셨는데.”
하얀 별의 오른팔이면 분명 곰족 왕이나 사자족 왕 도르프를 말하는 것일 터. 둘 중 하나를 없애면 분명 앞으로 하얀 별과의 싸움이 한층 더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나 최한이 본 현 상황은 하얀 별의 오른팔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 우리는 팔다리 하나씩 없는 채로 싸우는 상황이 될 겁니다. 그럼에도 싸우실 겁니까?”
아무리 메리와 다크엘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광활한 사막에서 아군의 전력은 반 이상 급감한 상태로 싸워야 한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케일 님도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다.’
저번 북쪽 연금술 탑 전투 때, 도르프의 검은 장막 아래서 케일은 누구보다도 앞장서 싸웠다. 그만이 제대로 힘을 발휘했으니까.
‘그러나 케일 님도 결국 인간이다.’
죽은 마나 연기.
액체가 아닌 공기로 퍼질 그 죽은 마나 연기를 케일도 피해야 했다.
“아무리 봐도 저는 이번 죽음의 땅 전투는 시장이 말한 그 시기가 지나고 난 후에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군의 희생이 큰 상태에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였다.
“라온, 너 최한한테 말 안 전해줬나?”
음?
최한은 케일이 라온을 향해 태연하게 묻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라온은 아공간에 디저트를 집어넣는 것도 잊은 채, 흔들리는 동공으로 최한을 올려다봤다.
“또, 똑똑한 최한아! 내가 말 전해주는 거 까먹었다!”
“까먹었다고?”
“최한.”
라온의 말에 되묻던 최한은 저를 부르는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내가 아침에 영상통신할 때, 중간에 왕세자 저하를 보러 가지 않았던가?”
“그랬습니다만.”
케일과 따로 떨어져 입장할 예정이라 홀로 왕세자궁에 가 있었던 최한이었다.
“제가 듣지 못한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까?”
“음, 그게 말이지.”
케일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용 혼혈을 기억하나?”
용 혼혈.
브렉 왕국 죽음의 협곡에서 싸웠던 녀석이자, 현재는 동대륙 여관에서 조용히 지내는 놈이었다.
“압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대화 주제였지만, 결국 케일이 제 의문에 답을 줄 것을 알았기에 최한은 순순히 케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담담히 말했다.
“그 녀석의 목숨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순간 케일의 눈동자가 라온에게로 향했다.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말똥말똥한 채로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용 혼혈이 했던 말 중 하나를 다시금 떠올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만들어진 존재라 구백여 년간 2차 성장이 한계였다. 그리고 나는 2차 성장까지 그 사람이 준 용의 심장을 총 네 개 먹었어. 몸에 새겨진 심장까지 합치면 나는 총 다섯 용의 목숨으로 만들어진 존재지.’
용 다섯의 목숨과 심장.
이를 모두 품고 존재하는 생명체, 용 혼혈.
‘…로드의 냄새가 나. 아까 그 힘은 분명 로드야. 나는 알아. 분명 맡아봤어.’
그리고 구백여 년을 살았음에도 구천여 년 전에 사라진 드래곤 로드의 냄새를 알고 있는 놈.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라온에게는 붉은 알이, 형제가 있었지.’
케일은 용 혼혈만 생각하면 물어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그 의문들을 물어볼 날이 머지않았다.
그는 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여름이 끝나간다. 곧 가을이야.”
최한이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본디 용 혼혈에게 주어진 약 6개월의 시간. 그의 생이 끝날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도 그의 생은 곧 바스러져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난 그 녀석과 한 가지 약속을 했어.”
물론 케일은 용 혼혈과 직접적으로 약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분명 약속이었다.
케일은 용 혼혈에게 말했다.
‘일단 쉬다가 나중에 내가 다시 너를 불렀을 때. 그때 나와 암을 치러 간다.’
그는 저번에 동대륙 여관을 찾았을 때, 뒷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용 혼혈에게 이 말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용 혼혈은 기억한다고 답했다.
그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알고 있다.’
용 혼혈은 그리 답하며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걸 걸고 싸우기에 좋은 장소라 생각한다.’
‘네 이야기냐?’
‘어.’
케일과 용 혼혈. 두 사람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 하나 생기는 순간이었다. 케일은 그와의 약속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녀석이 죽기 전에 함께 암 비밀 기지를 파괴한다고 약속했지.”
동대륙에 있는 암 비밀 기지를 파괴한다.
최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하얀 별의 오른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최한의 시선이 케일에게 고정되었을 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하얀 별이 죽음의 땅으로 들어선 순간.”
서대륙에 그놈과 그의 수하들, 곰족 왕이든 사자족 왕이든, 누가 되었든 간에 꽤 힘센 놈들의 발목이 사막에 붙잡혔을 때.
“그날부로 암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다.”
하얀 별의 오른팔이 없어진다.
최한의 입이 열렸다.
“그렇다면 비크로스나 에르하벤 님, 다른 이들을 사막에 오지 못하게 한 건-”
“아마 지금 하는 네 생각이 맞을 거다.”
“…그들은 동대륙에 남아 암의 비밀 기지를 파괴할 예정이군요.”
“그래.”
최한은 비로소 케일이 그리는 계획을 알아챌 수 있었다.
케일은 론을 비롯한 일행을 사막이 아닌 동대륙으로 보냈다. 아마 지금쯤 몰란 가문의 가주 론을 중심으로, 그가 동대륙에 만들어놓은 세력들을 모두 결집시키고 있을 것이다.
암의 몰락을 위해.
“최한, 암이 없어지면 하얀 별의 동대륙 기반이 사라지는 거다.”
하얀 별, 곰족 왕, 사자족 왕. 모두 강하다.
그러나 강자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이 세상은 진작 몇몇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돌아가고 있었을 터.
하지만 세상에는 소수의 강자보다 다수의 약자가 뭉친 집단이 더 강한 경우도 존재했다.
케일은 하얀 별이 가진 집단부터 뭉갤 작정이었다.
“그리고, 싸운다고?”
“케일 님.”
“최한, 우리가 하얀 별과 싸운다고?”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냐.”
지금 죽일 수 있는 놈도 아닌데, 뭐 하러 힘 낭비를 하겠는가?
“우린 이번에 하얀 별과는 싸우지 않아.”
이미 다크엘프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묶어둘 뿐이야.”
“인간아! 아까 전에 가지고 논다고 하지 않았나?”
케일은 부드럽게 라온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대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탁.
딱딱한 금속음을 내는 물건. 그 정체를 간파한 최한의 입이 열렸다.
“…황금패?”
“그래, 특별한 황금패다.”
케일의 말대로 최한이 일전에 보았던 황금패와는 달랐다. 조금 더 번쩍이고, 중심에 새겨진 문양이 정교하면서도 왠지 모를 엄숙함이 느껴졌다.
케일은 그 황금패의 겉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 황금패의 의미는 간단하지.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왕세자의 말이다’라는 의미야.”
“…이번에 받았다는 황금패가?”
“그래, 이것이지.”
케일은 황금패를 품 안에 넣었고 라온은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실행시키기 시작했다.
테라스 안에서 연회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이 누릴 것이 아니었다.
그는 텔레포트 진에 몸을 실으며 말했다.
“발렌티노 왕세자를 만나러 간다.”
카로 왕국의 발렌티노 왕세자를 보러 가야 했다.
“그는 사막 아래에 지하 도시가 있는 줄 몰라. 다크엘프도, 메리도 모두 로운 왕국 출신인 줄 알지. 알베르 왕세자 저하의 비밀 병력쯤으로 말이야.”
카로 왕국 해전 당시 갑작스럽게 죽음의 땅을 건너서 나타난 다크엘프들. 발렌티노 왕세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그들이 로운에서부터 시작한 비밀 경로를 통해 사막을 건너서 온 로운 왕국의 병력이라 판단했다.
다크엘프들의 첫 등장 때, 케일이 발렌티노에게 그들을 소개했던 말 때문이었다.
‘로운의 병력이 이제 모두 모였군요.’
그때부터 다크엘프들은 로운의 병력이었다.
케일도, 다크엘프들도, 알베르도 그 착각을 그대로 남겨둘 작정이었다.
이는 다크엘프들이 내린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그 판단의 이유를 아는 케일은 그들의 뜻에 기꺼이 따르고자 했다.
“곧 죽음의 땅에서 한바탕하려면 폭발음이 울리고 난리일 텐데. 사용 좀 한다고 허가는 받아야 할 거 아냐?”
최한이 텔레포트 진 위에 올라서며 말했다.
“괜히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하러 가는 것은 아니고요?”
“아, 진짜.”
케일은 웃으며 그 물음에 답했다.
“내 마음을 왜 이렇게 잘 알지?”
그 말을 끝으로, 곧 환한 빛과 함께 케일, 최한, 라온이 테라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로운 왕국이 있는 동쪽이 아닌, 서대륙 서쪽 한 도시에 도착했다.
-투명화했다!
케일은 라온의 말을 들으며 눈을 떴고, 이내 눈앞의 이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하.”
“그래, 반갑네!”
발렌티노 왕세자가 사람 좋은 얼굴로 케일과 최한을 반가이 맞이했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에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론 할배한테 연락 왔다! 준비 다 되었다고 한다!
케일의 미소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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