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4
443화.
까마귀는 최한의 손에 들린 기절한 작은 쥐를 응시했다. 케일 어깨 위에 있던 까마귀는 쥐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환각사는 쥐를 다루는 것 같군요.”
가샨의 확신 어린 목소리가 들린 순간, 최한은 기절한 쥐를 내려놓고 검을 치켜들었다.
촤아악, 촤악!
골목길 안에 땅이 모두 뒤집혔다. 최한은 검을 땅에 박을 때마다 미간을 찌푸렸다. 검이 일정 길이 이상 땅속에 박혔을 때.
‘…통로가 있다!’
작은 지하 통로. 쥐와 같은 작은 동물이 지나갈 만한 빈 공간이 느껴졌다. 최한은 다급하게 땅을 뒤집었다. 그는 모든 감각을 최대한도까지 끌어 올렸다.
찌익, 찍-
그때 들려온 작은 소리.
최한은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골목길. 그 안에 몸을 숨긴 최한마저도 그저 흘려 보던 골목길 담 구석, 그늘이 내려앉은 자리.
찌익, 찍, 찍!
최한과 눈이 마주친 작은 쥐가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가 내려다보던 땅뿐만 아니라 골목길, 담 위, 두보리 영지 곳곳으로 향했다.
‘…하얀 별 손바닥 위다!’
저 작은 쥐가 또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어디에 숨어 그들을 관찰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서, 어디서부터 감시당한 거지?’
최한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두보리 영지에서부터 저 쥐에게 감시를 당했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먼저, 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관찰당했을까?
‘발렌티노 왕세자를 만났던 영엔 도시. 거기서 느껴졌던 서쪽 진동도 환각사가 벌인 짓일까?’
그간 최한은 하얀 별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희한하게 하얀 별이 그리 무섭지 않았다. 언제라도 잡을 수 있는 적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 생각을 했었지?’
하얀 별과 그의 부하들은 결코 우습게 볼 대상이 아닌데.
지금까지 하얀 별은 최한 일행과 꽤나 많이 부딪쳤지만, 늘 수면 아래에 몸을 감춘 느낌이었다.
모고르 일도 어찌 되었든 제국 사람들을 앞에 내세웠던 일이니까.
그러나 지금 카로 왕국 두보리에서 하얀 별은 조금도 스스로를 숨기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별의 힘, 세력, 능력이 수면 아래를 벗어나 최한의 주변을 촘촘히 옭아매는 것 같았다.
‘…이런.’
최한은 우습게도 비로소 위기감을 느꼈다.
‘거미줄에 걸리고 나서야 내가 거미줄에 걸린 것을 깨달을 줄이야.’
영주성이 있는 이 소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니, 두보리 영지, 카로 왕국에 왔을 때부터 하얀 별의 거미줄에 걸려 그의 손아귀 위에서 움직였다.
까악, 까악.
최한은 까마귀 울음소리 사이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일 님마저 조용하다.’
그는 가샨뿐만 아니라 케일마저 아무 말이 없자, 이 상황의 위험성이 물씬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말없는 자신의 주군에게로 향했다.
“…케일 님?”
최한은 소리 없이 웃고 있는 케일이 보였다. 웃고 있던 눈동자가 최한과 부딪쳤다.
그 순간, 최한은 자신이 왜 하얀 별을 만만하게 보았는지 깨달았다. 하얀 별의 힘에 놀라려고 할 때면, 늘 아무렇지 않게 웃는 이가 있었다.
“최한, 이제 주위에 없지?”
케일의 물음에 최한은 눈을 감았다. 검사의 예민한 감각이 최대로 펼쳐졌고, 곧 그는 눈을 떴다.
“저희를 제외한 어떠한 생명체도 없습니다.”
땅 밑에도 골목길에도, 어디에도 환각사의 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그제야 케일은 땅에 쭈그리고 앉았다. 최한이 한바탕 뒤엎은 흙바닥. 케일은 그 부드러운 흙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까악. 까악.
까마귀 몇 마리가 그런 케일과 최한 주위를 감쌌다.
하얀 별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아주 작은 공간이 생겨났을 때, 최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서대륙 공용어가 땅에 새겨졌다.
주위에 쥐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글자를 보지 못할 거다.
스르륵. 케일의 손이 자신이 적은 글자를 순식간에 지웠다. 그리고 흙에 새로운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친구?
까마귀가 의아한 눈동자로 케일을 쳐다봤지만,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문 모를 얼굴을 하고 있는 최한도 보였지만, 케일은 글자를 마저 적어 내려갔다.
당장 친구들을 불러와라.
그리고.
최한의 손이 움직였다.
지금 누구에게 지시를 내리시는 겁니까?
케일은 그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이 아주 머리를 잘 썼어.”
스으윽. 땅 위의 글자가 순식간에 흙에 덮이며 사라졌다.
“환상으로 불을 만들어놓고 놀란 우리가 달려오게 만들었지. 마나 교란으로 라온과 나를 떨어뜨려 놓고, 곳곳에 제 귀를 숨겨놓았어.”
최한과 자신의 위치도, 가샨의 존재도.
모두 다 하얀 별에게 들켰다.
“흐.”
하지만 하얀 별이 모르는 케일의 힘이 하나 있었다. 금빛 팽이채를 쥔 케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응! 얼른 다녀올게!’
‘한 녀석은 두고 갈게. 아무래도 얘는 네 옆에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혼돈, 파괴. 나는 옆에 있는다.’
한줄기 바람이 케일을 스쳐 지나 하늘로 솟구쳤다.
“최한, 아까 병사들에게 들었겠지?”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네, 들었습니다.”
병사들은 말했다. ‘오늘 영주님께서 귀한 손님을 맞아 화려한 연회가 펼쳐질 거야!’라고.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까마귀에서 가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케일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최한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 최한이 의아한 빛을 띠려는 찰나, 케일은 이내 다시 땅에 글자를 적었다.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케일은 곧바로 새로운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던 까마귀는 이내 케일의 어깨 위를 떠나 하늘로 솟구쳤다.
까악까악.
까마귀들이 일제히 케일 곁을 떠났다.
스윽. 최한은 케일이 남겼던 글자들을 모두 흙으로 덮으며 흔적을 지웠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한 방향으로 고갯짓했고, 이내 두 사람은 은밀한 걸음을 옮겼다.
그 방향은 오늘 화려한 연회가 열릴 것이라던 영주성으로 향해 있었다.
***
두보리 영지.
옆에 불가사의 지역 중 하나인 죽음의 땅을 끼고 있어 타 지역에서 찾아오지도 않는 볼품없는 영지로 평가받는 곳.
“으하하하! 이런 날도 다 있네!”
기사는 갑옷이 아닌 멋들어진 예복을 입고서 와인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챙!
다른 와인 잔과 잔이 부딪치며 청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랜만에 경비를 안 서도 되고 좋네요! 새 예복도 입어보고!”
수하 기사가 새 예복을 보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그는 연신 새로이 얻은 예복을 매만졌다. 그의 옷깃에는 두보리 영지 문양이 그려진 금장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영주님이 어디서 저런 뛰어난 사람을 데려왔는가 모르겠어.”
기사는 수하의 말에 동의하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의 눈동자가 은근슬쩍 그가 있는 홀의 가장 중심으로 향했다.
욕심만 많고 영지를 이끌 생각은 하나도 없는 무능력한 영주의 곁에 선 이들이 보였다. 며칠 전 영주가 데려온 인재로, 오늘은 그들을 맞이하는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크으, 이런 휘황찬란한 연회가 두보리에서 펼쳐진다니!”
그것도 기사와 마법사들, 영지 관리들이 모두 참가하는 연회라니!
화려한 샹들리에와 비싸 보이는 술들, 보기에도 먹기에도 뛰어난 음식들까지!
“흐흐, 허구한 날 죽음의 땅 입구만 지키다가 이런 호사를 누릴 줄이야.”
그의 말에 수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죽음의 땅으로 향하는 입구 성벽을 지키는 기사들이었다.
“모두 다 불러들여 연회라니, 영주님께서 통이 아주 크신 것 같아요!”
수하 기사의 말을 듣던 남자는 실소를 흘렸다. 영주가 통이 크다고?
“…영주님이 아니라, 새로 온 저자들의 통이 큰 것이겠지.”
영주 곁에 선 세 사람을 지켜보는 기사의 눈빛에는 탐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 연회 비용도 다 댔을 뿐 아니라, 새로이 영지를 지키는 병사들과 새로운 마법사들까지 모두 저 영주 옆에 세 사람이 데려온 이들이라고 했다.
‘…왜 두보리 영지에 저런 자들이 왔지? 영주의 무얼 보고 저 세 사람이 영주 휘하에 들어가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군. 이상해.’
끼이이-
순간 날카로운 이명에 기사는 제 귀를 감쌌다.
“으윽.”
“왜 그러십니까?”
“아냐. 아냐.”
기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예복에 달린 두보리 영지 배지가 순간 붉은 기운을 뿜었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그럼. 우리 영지에 이런 환영회가 열렸는데, 즐겨야 되지 않겠어? 크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기사의 머릿속에는 영지를 새로이 찾은 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와인 잔을 치켜들었다.
투툭.
“음?”
와인 잔 안에 작은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기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에 가려져 있던 연회 홀의 낡은 천장이 보였다.
“쯧, 천장을 새로이 보수하든가 해야지. 무슨 이런 부스러기가 떨어져?”
“새것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수하가 눈치 좋게 새 와인 잔으로 바꿔주자 다시금 분위기는 좋아졌다.
‘식겁했네.’
낡은 천장 위, 숨어 있던 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홀을 보기 위해 천장에 작은 구멍을 뚫던 이는 굳은 채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했다.
‘똑바로 안 해?’
움츠러들어 있던 케일이 살벌한 표정으로 최한을 쳐다봤다. 그에 구멍을 뚫던 최한은 손가락 끝에서 오러를 지우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어둠 사이로 작은 양초가 흔들렸다.
‘최한, 쥐 없지?’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천장에 쥐 없습니다.’
어휴.
케일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두 다리를 펴고 앉았다.
‘이… 쥐들!’
케일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어디 모든 먼지와 흙을 뒤집어쓴 듯 꼬질꼬질한 행색이었다.
‘쥐를 피해 다니는 게 이리 힘들 줄이야!’
두보리 영지 곳곳에 있는 쥐를 피하며 영주성 안으로 잠입하는 것은 케일에게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라온… 라온이 위대했어.’
라온의 투명화 마법만 있었어도 그냥 공중으로 잠입하든, 걸어서 들어오든 편히 움직였을 텐데.
케일은 오랜만에 신입 사원 김록수처럼 뒹굴었던 몇 시간을 떠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최한을 바라보는 그는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왜! 어째서!’
최한은 아주 멀끔했다.
비로소 케일은 제 신체적 능력과 저 강한 검사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톡. 톡.
최한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작게 뚫린 천장을 가리켰다. 구멍은 두 개였고, 케일은 한숨을 삼키고는 몸을 바짝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뚫린 구멍 하나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
기가 차 절로 탄식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화려한 연회.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케일은 연회로 오기 전 들렀던 성 곳곳을 떠올렸다.
‘영상통신실, 마법 연구실, 군사회의실, 텔레포트 진.’
모두 비어 있었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이 성안을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리 되었으니 발렌티노 왕세자의 연락도 받지 못하고 저리 희희낙락한 것이겠지.’
접촉 수단은 이미 모두 차단당했고 마나 교란까지 판을 치고 있으니, 아마 지금쯤 발렌티노 왕세자는 마법은 포기하고 기사단을 이끌고서 여기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자, 모두 잔을 들어라!”
케일은 작은 구멍 사이로 영주가 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두보리 영주는 힘찬 어조로 기쁨을 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두보리 영지에 기쁜 날이다! 자, 여길 보아라! 두보리 영지를 한 단계 발전시킬 인재들이다!”
영주가 세 사람을 가리켰다.
‘허이구.’
케일은 실소를 흘렸다.
‘하얀 별에, 곰족 왕에-’
익숙한 하얀 가면과 비실비실해 보이는 곰족 왕이 멋들어진 예복을 입은 채 웃고 있었다. 케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 사람이 환각사인가?’
연둣빛 단발의 여인이 곰족 왕과 하얀 별 사이에 서서 웃고 있었다.
‘없다.’
케일의 표정이 굳었다.
‘…지팡이도, 부적도, 무엇도 안 보여!’
주술사 가샨과 달리 지팡이도 보이지 않았다. 환각사로 추정되는 이의 손에는 그저 와인 잔만이 들려 있었다.
‘…지하에 매개체를 두고 왔나?’
아직 바람 정령들이 가르쳐 준 지하로 가보지 못한 케일이었다. 경비가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쥐에게 들키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입술을 깨물던 케일은 하얀 별을 가리키는 영주가 보였다.
“자, 잔을 마시기 전에, 우리 베로우 경이 대표로 한마디 해보게!”
베로우?
케일은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최정건, 네란 베로우를 떠올렸다. 고대의 하얀 별이 되고 싶어 드래곤 슬레이어 자리를 걷어찬 하얀 별이 그 성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자, 케일은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한마디 하겠습니다.”
하얀 별은 순순히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잔을 높이 들며 주위 청중을 바라봤다. 천천히 홀을 훑던 시선이 이내 한 곳에서 멈췄다. 그리고 입이 열렸다.
“영주님, 쥐새끼가 왔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영주가 놀라서 반응을 미처 하기도 전.
곰족 왕 사예르의 손에서 빛줄기 두 개가 뻗어 나왔다.
콰아아아! 콰아앙!
빛 화살은 샹들리에가 매달린 천장 어느 지점을 꿰뚫으며 폭발했다.
“으아악!”
“이게 무슨!”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빛 화살이 부딪친 천장에서 도망쳤다.
끼이익- 쿵!
샹들리에 하나가 순식간에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억, 헉.”
“사, 살았다.”
다행히 모두 샹들리에를 피해 도망쳤고, 놀란 마음을 다스렸다.
그 순간이었다.
“쥐새끼가 두 마리군요.”
웃음기 가득한 연둣빛 단발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샹들리에 위에 내려서는 두 사람이 보였다.
갈색 머리칼의 남자와 연한 베이지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하, 하하-”
하얀 별은 웃으며 샹들리에 쪽을 향해 한걸음을 내디뎠다.
“케일 헤니투스, 꼴이 말이 아니구나.”
먼지로 뒤덮인 케일의 굳은 얼굴이 하얀 별을 마주했다. 입술을 달싹이던 케일은 마침내 입을 열고 하얀 별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리 쉽게 내 위치를 알았지?”
씨익. 가면 아래 입꼬리가 즐거이 올라갔고, 케일의 물음에 대한 답은 다른 이가 해주었다.
사예르가 웃음기를 담은 채 입을 열었다.
“원래 어디를 가든 천장 위에 쥐가 참 많지. 그런데 왜 여기는 천장 위에 쥐가 하나도 없을까?”
그는 즐거워 죽겠단 얼굴을 한 채, 손가락으로 케일과 최한을 가리켰다.
“너네 둘이 천장 위에 숨어들라고 비워두었지? 큭, 크하하하!”
사예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연회 홀을 가득 채웠다. 하얀 별은 다시 케일과 최한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채앵!
그런 그에게로 최한이 검을 뽑아 겨눴다. 하얀 별은 그런 최한을 바라보다가 다시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기분이 어떤가? 비워둔 천장에 예상대로 숨어들 줄은 몰랐어.”
그 순간이었다.
“알았으니까.”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굳었던 얼굴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네 녀석들이 일부러 천장을 비워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천장에 숨어들었지. 내가 그것도 몰랐을까 봐?”
“…뭐?”
케일의 손에 금빛 팽이채가 들려 있었다.
‘왔어!’
‘사막에 사는 친구들 다 데리고 왔다!’
‘혼돈, 파괴. 이제 시작.’
케일은 굳어지는 하얀 별의 입꼬리가 보였다.
“…일부러 숨어들었다고?”
“그래.”
담담한 대답이 들린 순간.
콰아아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사람들의 귓가를 거세게 두드렸다.
“이건 무슨!”
“어디서 이런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굉음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연회장 창밖. 서쪽을 향해 눈동자들이 움직였다.
케일도 고개를 돌렸다.
“왔구나.”
바람 정령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정령 친구들 데려오는 김에 걔네랑 계약한 다크엘프들도 데려왔어! 잘했지?’
서쪽.
죽음의 땅으로 향하는 입구가 있는 성벽에 거대한 불길과 회오리가 솟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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