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5
444화.
“고, 공격이다!”
두보리 영지의 영주 눈동자에 붉은 불길이 비쳤다. 성벽 위로 솟구쳐 올라 넘실대는 불길은 마치 거대한 뱀과 같아, 당장에라도 영지를 덮칠 것 같았다.
그 순간, 케일과 하얀 별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피식.
하얀 가면 아래 입가가 비틀리며 웃음을 흘렸다.
‘어?’
케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방금 당황한 듯했던 것은 연기라는 듯 대번에 담담해진 하얀 별의 안색. 이를 확인한 케일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분노 어린 목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이, 이 감히-!”
영주의 걸음이 점차 서쪽 방향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에 그의 손이 닿은 순간.
벌컥! 창문이 열리며 영주의 분노에 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감히, 내 영지를 공격하다니! 저것들은 뭐야!”
불길과 그 근처의 회오리바람은 보였지만, 저 공격을 감행한 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으아악!”
“웬, 웬 불이야?!”
“저주다! 죽음의 땅에서 몰려온 재앙이야!”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있던 소도시 안 영지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와 불길에 경악하거나, 집 안으로 더욱더 숨어들며 두려움에 떨었다.
한 노인은 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도, 도망갔다 죽은 억울한 이들의 넋이야! 그들의 분노가 결국 이 썩어빠진 영지를 없애려 온 거야!”
“죽음이, 죽음이 오는 거야!”
노인의 말에 반응한 이들의 분노 어린 시선이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영주성에 있는 영주에겐 그런 분노 따위는 닿지도 않았다.
“내 땅을, 내 것을 노려?”
영주의 눈동자에 불길에 대한 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새로운 예복에 매달려 있는 영지 문양 배지에서 붉은 기운이 얕게 일렁였다.
“베로우 경!”
그의 몸이 빠르게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당장, 당장 저 불을 일으킨 놈을 내 앞으로 데려오게!”
“영주님, 하지만-”
영주는 하얀 가면 아래로 보이는 입가에 난감함이 맺힌 것을 보았다. 그에 영주의 고개가 바로 한 곳으로 향했다.
“기사들은 당장 이 연회장에 몰래 들어온 저 쥐새끼 같은 두 놈을 잡아 처넣어! 지하 감옥에 가둬 버려!”
영주는 샹들리에 위에 서 있는 케일과 최한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감히, 이 두보리 땅 주인의 연회를 방해하려 들어!”
타다닥, 타닥, 타다닥.
연회장 문이 열리며, 시종들이 회수해 두었던 검을 빠르게 기사들에게로 돌려주었다.
“분명 이 두 놈이 저 밖에 적들을 데려온 자들일 거다!”
채앵! 챙!
기사들은 곧바로 검을 뽑아 들어 케일과 최한을 포위했다. 포위당한 최한이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그는 케일이 연회장 전체 광경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최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스륵. 케일이 상의 제일 위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그동안 영주는 분노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하얀 별에게 다가갔다.
“역시! 베로우 경, 자네 말이 맞았어! 우리 영지를 노리려는 자들이 있다니!”
“그렇습니다. 영주님, 저자들이 두보리 영지를 노리고 잠입한 자들이지요.”
하얀 별의 손가락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허! 내가?’
케일이 띠꺼움과 황당함을 담아 하얀 별을 쳐다봤지만, 하얀 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케일은 긴장했다.
‘분명 뭐가 있다. 그러니까 저렇게 태연한 거야.’
케일의 머릿속이 더욱더 복잡해졌다. 그때, 영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예르 경, 자네의 그 성스러운 빛 화살로 저놈들을 태워 버려!”
“네, 영주님의 명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저 간악한 놈들을 벌해야지요.”
“그래,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곰족 왕 사예르가 히죽거리며 케일과 최한을 향해 빛 화살을 겨눴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케일의 눈빛에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사이로 아주 자신만만해진 영주가 득의양양하게 케일과 최한에게 외쳤다.
“네놈들은 살고 싶으면 당장 저 밖의 불을 꺼라!”
“싫은데?”
순간, 포위하고 있던 기사들을 포함한 홀 안 사람들이 입을 딱 다물었다. 그들의 시선이 떨어진 샹들리에 위에 서 있는 갈색 머리칼 남자에게로 향했다.
“…지금 뭐라고……?”
그는 영주의 물음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싫은데?’라고 했는데?”
“이, 이런 오만방자한 놈을-! 당장 불을-”
“싫어.”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시건방지다 못해 알베르 왕세자에게 짓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불경한 표정으로 영주를 내려다봤다.
“내가 왜?”
“…뭐? 감히, 나에게-”
휘이이이-
그 순간 케일이 손을 뻗었고, 손에서 바람이 뻗어 나와 영주를 감쌌다.
“으, 으아악!”
그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새 예복이 볼썽사납게 흐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제 자신만만했냐는 듯 영주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하얀 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려, 날 내려! 베, 베로우 경! 날 내려주게!”
그러나 하얀 별은 영주를 한 번 쳐다보다가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불은 마법이 아닐 텐데?”
성벽 밖에 치솟아 오른 불길과 회오리바람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케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렇지. 내 친구들이 쓴 힘이지.”
정확히 말하면 케일 곁의 바람 정령들이 사막에 있는 정령들에게 케일의 소식을 전했다.
‘우아! 우리가 친구야? 히히! 네 입으로 그렇게 들으니까 기분 좋다!’
‘흐흐, 혼돈, 파괴,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우정.’
‘사실 우리가 한 건 별로 없는걸! 다크엘프들이 거의 다 했어!’
그 소식을 들은 정령들이 그들의 계약자인 다크엘프들에게 뜻을 전했고, 그렇게 다크엘프들이 영지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참, 자네는 재주가 대단해. 어떻게 해도 이런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을 날린단 말이야.”
하얀 별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로우 경, 뭐 하나? 당장 나를 내려! 어서!”
영주의 외침을 들은 하얀 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케일에게 영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영주 몸에 손을 대면 카로 왕국하고 사이가 괜찮겠어? 이자가 보기보단 뒷배가 꽤 큰데. 뭐, 자네가 발렌티노 왕세자와 사이가 꽤 좋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
하얀 별은 쓰레기를 쳐다보듯 영주를 쳐다봤다. 제 것만이 소중하고 제 몸이 제일 귀하다 여기는 자.
“발렌티노 왕세자도 못 건드는 자가 저 영주의 친척이란 말이지. 카로 왕국 정계를 장악한 이이기도 하고. 과연 자네를 누가 지켜줄까? 발렌티노 왕세자도 그냥 눈감아 버릴 것 같은데?”
“어쩌라고?”
“…뭐?”
케일은 띠거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 영주가 뒷배가 크든 말든 어쩌란 소린가?
‘내 뒷배는 알베르 크로스만이거든?’
카로 왕국 귀족이 아무리 세봤자, 모고르가 지면서 강국으로 떠오른 로운 왕국의 차기 왕만 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괜찮아. 발렌티노 왕세자 저하는 내 말을 믿을걸?”
아니, 내 말대로 할걸?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휘이이-
동시에 케일의 온몸을 바람이 감쌌다. 기사들도, 마법사도 쉬이 접근하지 못했다.
“이런, 이렇게 되면 저 둘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그래도 일단 포위해, 도망갈 데는 없다!”
케일은 기사들의 다급한 음성과, 바람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란 영지 관리들이 연회 홀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하얀 별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난 영지에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뭐?”
하얀 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산을 그렸다.
“저 불이 영지를 덮쳤나? 공격을 했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케일이 생글생글 웃으며 하얀 별과 사예르를 쳐다봤다. 그에 곰족 왕이 비웃음을 날렸다.
“곧 불길이 영지를 덮치겠지. 결과적으로 네놈들의 침입이야. 우린 영주님과 영지를 지키는 자들이고. 늘 네놈들이 가졌던 포지션을 이번엔 우리가 가진 거지.”
“역시…….”
흐.
케일이 웃으며 말했다.
“영엔 도시에는 쥐들을 못 심어뒀나 봐?”
“…뭐?”
“못 들어서 다행이야.”
케일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얀 별이 환각사의 쥐를 어디까지 심어두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방금 말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영엔 도시.
그곳에 환각사의 쥐가 있었다면 이렇게 영주를 내세워 싸울 수 없을 테니까.
저 영주의 뒷배가 세다고?
그래 봤자, 뒷배다.
케일을 쳐다보던 하얀 별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네놈 무슨 짓을-”
그 순간이었다.
둥. 두웅- 둥.
북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 방향은 동쪽이었다. 하얀 별과 사예르의 시선이 동쪽 창을 향한 순간, 홀에 있던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왜 왕국 북소리가?”
뭐?
사예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빠르다!’
이건 분명 왕국에서 파견한 중요한 인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북소리일 터.
왕국에서 파견된 이가 사예르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원래라면 못해도 하루 이틀은 더 걸려야 하는데!’
마나 교란 장치까지 설치해 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왕국 측이 최대한 두보리 영지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동안 케일과 최한을 끌어들여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였다.
‘그렇단 말은!’
그의 시선이 곧바로 케일에게로 향했다.
‘저 자식이 무슨 수를 부린 거야!’
그 시선을 받은 케일은 사예르의 모습을 보며 더 짙은 미소를 그렸다.
‘영엔 도시엔 환각사의 쥐가 없었다!’
왜냐면 하얀 별을 비롯해 사예르까지 케일과 발렌티노의 만남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저쪽이 싸움판을 키우려 한다면, 케일도 키우면 된다.
‘네놈들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말이지.’
영주의 뒷배? 그게 지금 저들 예상보다 빨리 직접 달려온 왕세자보다 세겠는가?
‘네놈들이 최한과 나를 끌어들였다면, 나는 왕가를 끌어들여 주마.’
두웅- 둥, 둥!
북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동시에 케일의 귓가로 속삭임들이 들려왔다.
‘찾았다! 두보리 영지 경계선에 이상한 기둥들이 세워져 있대!’
‘다른 바람 정령들이 말해줬어! 두보리 영지 경계선에 일정한 간격으로 이상한 금색 기둥이 있고 거기서 붉은빛이 흘러나온대!’
‘그게 환각을 일으키나 봐! 두보리 영지 밖에서 사막의 불이 보이게 한 원인이야!’
‘아주 큰 기둥 수십 개다! 그런데 대부분이 땅에 박혀 있고 일부만 밖으로 나와 있어서 눈에 잘 안 띈대!’
케일을 두보리 영지로 달려오게 만든 미끼는 수십 개의 기둥이 만든 환각이었다.
그 순간, 케일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아까 전 영엔 도시에서 느꼈던 진동은 거대한 기둥을 일제히 땅에 박으면서 생긴 진동이구나.
‘근데 그 기둥들이 전부 넝쿨에 감겨 있어서 겨우 찾았대! 자세히 봐야 했대!’
수십 개의 거대한 기둥이 땅속 깊숙이 박히면, 그것도 동시에 그리되면 당연히 땅에 진동이 일지 않았을까?
‘아닌가? 그 정도로는 그런 진동이 생기지 않으려나?’
두웅- 둥!
그 순간에도 북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진 북소리가 동쪽 성벽에 닿았고,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두 손이 떨려왔다.
“…어, 어째서 왕실 기사단이?”
병사의 눈동자에 카로 왕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왕국기를 든 기사의 갑옷 견장에는 왕실 기사단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당장 문을 열어라! 왕세자 저하의 명이다!”
그 기사단의 중심에서 카로 왕국 왕세자 발렌티노가 말을 탄 채로 성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분노로 일렁였다.
“…사막의 불은 가짜였어.”
발렌티노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였다.
“저 안에 케일 공자가 잡혀 있다고?”
“그렇습니다, 저하.”
발렌티노는 기이한 복장과 문양으로 가득한 노인에게서 시선을 돌려, 성문을 바라봤다.
끼이이익- 쿵.
닫혔던 성문이 쉬이 열리며 왕실 기사단이 안으로 입성했다. 말발굽 소리가 영주성으로 향했다. 발렌티노 옆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던 노인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까악, 깍, 까악.
어느새 해가 모두 져 어두워진 밤. 까마귀들이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일제히 두보리 영주성으로 향했다.
노인은, 호족 주술사 가샨은 입을 열었다.
“쥐를 모두 잡아.”
까악. 깍, 까악.
수십을 넘어 수백에 달하는, 일대의 모든 까마귀들이 쥐 사냥을 시작했다. 가샨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폭발음 뒤에 치솟아 오른 불길이 보였다.
죽음의 땅으로 향하는 성벽. 그 밖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붉은 뱀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영주성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으아아악!”
“도, 도망가! 불길이, 저 불뱀이 영지를 덮쳤다!”
도망갈까 말까 갈피를 못 잡던 영지민들이 그 광경에 놀라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을 가로지르는 불길은 무시무시했다.
“어?”
그러나 몇몇 이들은 달려가던 것을 멈추고 하늘을 보며 의아함을 토해냈다.
“저 검은 자들은?”
“…불을, 불을 이끄는 저자는?”
불뱀의 앞에서 바람에 휘감겨 뱀을 이끄는 듯한 검은 사람이 있었다. 어두워서 쉽게 눈치채지 못했지만, 유독 눈이 좋은 사람들은 하늘 위를 지나치는 그자를 볼 수 있었다.
“…엘프! 다크엘프!”
다크엘프 하나가 바람으로 불뱀을 이끌고 있었다. 그 불뱀의 뒤에서 달려가는 다크엘프들이 연이어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불뱀이 향하는 방향이 영주성임을 깨달았다.
불뱀과 다크엘프가 하늘을 가로질렀으나, 망가진 영지 내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영주성으로 향해 무섭게 달려 나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한편 불뱀이 향하는 목적지, 영주성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 불뱀이 보였다.
또한 왕가의 북소리도 들려왔다.
“이런. 당했는데?”
하얀 별의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웃고 있는 케일의 얼굴이 하얀 별의 눈동자에 오롯이 담겼다.
“베, 베로우 경!”
영주의 간절한 외침이 들려왔고, 그 순간 하얀 별은 손을 휘저었다.
쾅, 작은 폭음과 함께 하얀 별의 손에서 뻗어 나온 바람이 케일의 바람을 일순간 집어삼켰다.
“으억!”
쿵! 영주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는 제 몸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얀 별의 입이 열렸다.
“시작해.”
그 순간, 케일은 주먹을 쥐었다.
여유 만만한 하얀 별. 분명 뭔가가 있다. 그렇기에 케일은 왕세자까지 끌어들인 판국임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케일 님.”
최한이 케일 가까이 다가오며 검을 하얀 별에게 겨눴다.
채앵.
그 순간,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뭐야?’
홀 안의 기사들이 모두 손에 들고 있던 검과 무기들을 놓았다. 무기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붙잡아야 돼.”
“…잡는다… 잡는다.”
영지 관리, 마법사, 심지어 영주까지 모두 기사들과 똑같이 넋이 나간 얼굴로 움직였다.
“케일 님.”
“…이게 뭐야?”
기사, 마법사, 관리, 영주, 시종. 모두가 케일과 최한을 향해 빠르게 다가와 붙잡으려 했다.
그때, 케일에게 환각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연기가 연둣빛 단발 여인을 감싸고 있었다.
“저자가 이 사악한 침입 계획을 세운 자이고.”
저자는 케일이었다.
“그 옆은 안쓰럽게도 저 간악한 자의 세 치 혀에 홀려 함께하게 된 자이지요.”
그 옆은 최한이었다.
“정의로운 두보리의 사람들이여. 저 사악한 자에게서 착한 이를 구해주세요.”
두보리의 기사, 마법사, 관리, 시종들이 모두 모였기에 그 수는 아주 많았다. 그들이 최한에게로 향했다.
“구, 구해야 해.”
“…구한다. 구해야… 한다.”
케일은 기사, 마법사뿐만 아니라 최한을 향해 손을 뻗는 어린 시종도 보였다. 연약한 노인이 최한을 구해야 한다며 다가가는 것도 보였다.
사람들이 모두 최한을 덮치려 들었다.
난감해하는 최한의 표정이 케일의 눈동자에 비쳤다.
“케일, 내기를 하나 할까?”
그 순간, 웃음기가 담긴 하얀 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하얀 별의 손에서 뻗어 나온 바람 벽이 홀을 채웠다.
쿵. 쿠웅-
동서남북. 모든 창문과 문을 거대한 바람 벽이 가로막았다. 케일과 최한이 갇힌 순간, 하얀 별은 저를 쳐다보는 케일에게 이어 말했다.
“착한 너는 착한 최한의 생각을 잘 알겠지. 자, 최한은 과연 저를 붙잡으려는 연약한 아이와 노인,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저 손길을 피할 수 있을까?”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자들은 죄도 없는데? 그저 나한테 속은 건데?”
“아니죠. 제 훌륭한 환각에 속은 거지요.”
환각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기절하지 않아요. 환각 상태에선 기절이 소용없거든요. 다쳐도, 팔다리가 잘려도 최한을 구하기 위해 그를 붙잡으려고 할 거에요. 자, 케일 씨, 그리고 최한 씨. 어떻게 할래요?”
케일은 최한의 당황한 눈동자가 저를 향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즐거움이 담긴 환각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을 다치게 하면서 떼어낼래요? 아니면 순순히 최한 씨가 잡혀들래요?”
하얀 별이 덧붙였다.
“내 이번 목표 중 하나는 최한이거든. 그라도 손에 넣어야 하지 않겠어? 자, 어떻게 할래? 적군의 병사마저 구하려 드는 케일 헤니투스.”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차마 시종과 관리들을 공격하지 못해 갈팡질팡 못하는 최한의 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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