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7
446화.
-저, 저 사람 가지고 개수작 부리는 새끼는 지가 한번 개수작에 당해봐야 돼! 아오! 이번에는 좀 끝까지 뒤통수치는 줄 알고 보고 있었더니!
케일은 하얀 별의 말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이미 시장통 한복판이었다.
-저 새끼가 우리 케일이 만만해 보이냐? 엉? 착하고 불쌍한 저 최한이라는 애한테 환각은 왜 걸어? 어? 어? 이 하얀 별 놈아, 내 말에 답을 해보라고!
저기요, 하늘을 잡아먹는 물 씨. 하얀 별이 당신 말에 어떻게 답합니까?
-가라, 케일! 이 세상을 저 썩어빠진 진흙탕보다 못난 새끼한테서 구하는 거다! 아오! XXX해서 XX해 버릴 새끼!
-진정하게.
-짱돌! 너라면 진정하냐? 환각이래, 환각! 그 끔찍한 게 또 세상에 나왔다고! 이런 XX 같은 XXX한 상황이 다 있나!
어이구야.
장난 아니네.
케일은 점점 격렬해지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걸쭉한 말솜씨에 머릿속이 멍해져 왔다.
‘이때까지 심한 말 해도 적당히 하더니, 이번엔 왜 이리 심해?’
이전과 다른 특이한 점이라면 환각사의 존재였다. 하늘을 잡아먹는 물은 과거에 환각사와 싸운 적이 있는 걸까?
케일의 점점 심해지는 비속어의 남발에 띵해지는 머릿속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친 하얀 별이 불의 검으로 케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방법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가? 머릿속이 복잡하지?”
어.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끄럽긴 하지.
“이번엔 너도 쉽지 않을 거다.”
아니, 너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게 아니라-
-쉽지 않긴 개뿔이! 저딴 불덩어리쯤이야. 재해? 케일 이놈이 기절 세 번 해주면 재해란 재해는 다 불러 모을 수 있다고! 어? 케일이 세 달 정도 정신 잃고 있으면, 응? 계절 하나 지나게 해주면 진짜 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아니, 내가 왜 기절을 세 번 해줘야 돼? 기절을 왜 세 달 동안 해? 그사이에 하얀 별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케일은 머리가 아파왔다.
“내 목 잡은 손 놓지?”
환각사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케일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콰아앙!
불길과 은빛 방패가 부딪쳤다. 스슥. 케일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환각사의 목은 이미 케일의 손을 벗어났다. 케일은 방패를 펼친 두 손바닥이 찌릿 저려왔다.
쩌저적, 하얀 별의 불의 검에서 뿜어 나온 불길은 은빛 방패에 손쉽게 실금을 만들었다.
“이전과 다르지?”
하얀 별은 여유로웠다. 그런 그의 곁으로 환각사와 사예르가 다가갔다. 케일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케일 혼자 하얀 별과 그 수하들을 마주한 때가 있었던가?
“재해를 담은 검에 불까지 담았어. 단순히 네 방패 하나로는 이 불의 검을 이기지 못해. 네놈도 여러 가지 힘을 써야겠지?”
맞다.
하얀 별의 말대로 케일도 여러 힘을 사용해야 했다.
“저 밖에 불기둥을 없애고 나랑 사예르까지 상대하려면, 최소한 고대의 힘 세 개 정도는 써야겠고. 그러면 넌 금방 쓰러지겠네?”
하.
케일은 탄식과도 같은 웃음을 터뜨렸고, 하얀 별은 이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도울 동료가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이것도 맞다.
라온도, 최한도, 다른 동료들도 케일을 도와줄 수 없는 현재. 케일은 고대의 힘을 평소보다 더 많이 써야 할 테지만, 쓰러질 그를 지켜줄 동료가 하나도 없었다.
“네놈이 고대의 힘 자연 5속성을 모두 가졌는데도 쉽게 쓰러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어. 균형이 잡혀 있는 몸인데. 그런데 고민하니까 답이 보이더라고.”
하얀 별은 이번 카로 왕국으로 오기 전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마지막 땅의 힘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천 년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넌 타고난 그릇이 약한 거야. 아무리 속성 간의 균형을 갖추고 그릇이 커봤자, 결국 그릇 자체가 약해 쉽게 부서지는 거지.”
골격 자체는 꽤 좋지만, 점점 안색이 창백해지고 야위어 가는 케일 헤니투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하얀 별은 두 가지 결심을 했다.
한 가지는 최한을 사로잡는 것이며.
“이번 나의 목표 두 가지 중 마지막 하나는, 네 그릇을 부수는 거다.”
혼자가 된 케일 헤니투스를 부수는 일이었다.
“동료들이 너에게 의지하는 것 같지만, 보니까 너야말로 동료가 없으면 죽겠더라고. 전장 한복판에서.”
하얀 별이 웃자, 케일은 이번만큼은 인정했다.
“…이번엔 내가 너를 만만하게 생각한 것 같다.”
하얀 별이 한 수 더 앞을 내다봤다고.
-지금 저 썩어먹을 놈이 마지막 땅의 힘이 목표가 아니라 최한이랑 케일이 목표였다고 지껄이는 거지?
-그런 듯하네.
짱돌이 케일에게 말했다.
-도망가라.
하얀 별도 말했다.
“도망가 봐. 이 창 밖으로 나가면 적어도 다크엘프들은 만날 것 아닌가?”
동서남북에서 치솟아 오른 불기둥들. 그 사이로 당황한 다크엘프들이 보였다. 저들을 만나면, 케일은 훨씬 더 일이 수월해진다.
그러나 도망갈 수가 없었다.
쿵! 쿵, 쿵!
연회장 바닥을 울리는 진동에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붉은 연기로 감싸인 돔이 보였다.
저 붉은 돔 안에 최한이 있었다.
쿵, 쿵! 최한의 발버둥이 느껴졌다. 몸부림이 진동이 되어 홀 안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역시 도망 못 가는구나?”
하얀 별은 웃으며 검 끝으로 최한이 있는 붉은 연기로 만들어진 돔을 가리켰다.
“나는 요즘 부쩍 네가 나보다 앞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 그런데 최한이 ‘그 문자’를 알더라고?”
그때였다.
쿠웅!
어느 때보다도 큰 진동이 붉은 돔에서 터져 나온 순간. 케일은 환각사가 새로이 수인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스-
붉은 연기가 쇠사슬처럼 서로 얽혀들었다. 수십 개의 쇠사슬이 일제히 돔 안으로 파고들었다.
“묶어.”
그 명령의 대상은 분명 최한일 터. 환각사는 제 뒷목을 매만지며 케일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 씨, 허튼짓하면 최한 씨가 아야 할 거예요.”
비웃음이 섞인 조롱에도 케일은 쇠사슬로 덮이는 돔을 바라보며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하얀 별은 그런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거기 계속 묶여 있도록.”
수하 놈 하나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케일의 한계였다. 천 년을 기다려 온 하얀 별은 케일이 더욱더 한계까지 싸우도록, 그릇을 깰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죽이기에는 이 녀석이 그를 대신해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었으니까.
휘이이잉-
바람 벽이 하얀 별의 발아래, 디딤대처럼 생겨났다. 테라스 난간을 박차며 하얀 별은 영주성 밖으로 향했다.
“제기랄!”
케일의 욕설쯤은 비웃어준 하얀 별은 영주성 밖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를 보며 당황한 다크엘프들이 보였고, 치솟아 오른 불기둥에 놀라 영지민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지옥이구나.”
말 그대로 재앙의 현장이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세간살이도 못 챙기고 도망가는 사람들.
“케일 헤니투스의 한 수가 저거군.”
발렌티노 왕세자와 그를 감싸고 하얀 별을 노려보는 기사단이 보였다. 그들은 영주성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불기둥과 영지민들을 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라면 저 왕세자가 꽤 좋은 수였겠지만, 지금은 최악의 수 같군.”
발렌티노 왕세자와 기사단은 이제 하얀 별의 덫에 걸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질이었다.
하얀 별은 테라스 안 케일 헤니투스를 쳐다봤다. 저를 노려보는 충혈된 눈동자가 보였다.
‘그래, 그렇게 노려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나에게 덤벼.’
영지민을, 카로 왕국 왕세자와 기사단을, 다크엘프를 구하고 싶다면 덤벼라.
네가 가진 고대의 힘으로 그릇을 부서질 때까지.
하얀 별의 검이 하늘로 향했다. 그는 제 주위를 감싼 불을 느꼈다. 용암처럼 흐르고 있는 불의 기둥들.
두보리 영지 동서남북에서 솟아 오른 불의 힘을 느끼며 하얀 별은 입을 열었다.
“나에게 와라.”
그 순간, 도망치던 영지민은 주저앉아 버렸다.
“부, 불이!”
“…아… 재… 재앙이야.”
네 기둥 아래, 땅이 갈라졌다. 갈라진 땅을 따라 네 개의 강이 만들어졌다. 강에는 용암인지 불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렀다.
아니,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붉은 것이 땅을 파고 먹으며 무섭게 제가 갈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하얀 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와! 얼른 나오라고! 지금 물건이 문제가 아냐!”
“그래도, 아, 아- 우리 집이!”
콰앙!
붉은 액체가 지나가는 길에 자리한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망가던 이들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주저앉기 일쑤였다.
“저, 저자가 하얀 별이라니…….”
발렌티노 왕세자는 말문이 막혀왔다. 아니, 숨이 막혀왔다. 뜨거운 불이 가까워져서가 아니었다.
하얀 별이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펼치는 이 광경은 마치 신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저하.”
“…다크엘프군.”
낯익은 다크엘프가 그에게 다가왔다. 타샤 역시 몇 번 본 적이 있어 안면이 익숙한 발렌티노 앞에 섰다.
“케일 공자의 말을 전하러 왔나?”
“아뇨.”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에 발렌티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케일 공자라고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때, 타샤는 발렌티노의 옆을 바라봤다.
“케일 공자님의 말을 들으러 왔습니다.”
“…들으러 왔다고?”
발렌티노의 시선도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주술사 가샨이 영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악. 까악.
발렌티노는 문득 정신없는 와중에 계속해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을 떠올렸다.
‘아냐.’
단순히 들려온 것이 아니었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많이 들려왔다. 발렌티노는 고개를 들었다. 까만 밤하늘, 타오르는 불기둥이 아직 미치지 못한 어둠 속에서.
가샨의 입이 열렸다.
쥐를 한 마리 문 채 영주성의 테라스 안을 지켜보던 까마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 눈동자는 케일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려.”
곰족 왕 사예르는 빛으로 몸을 휘감은 채 케일에게 다가갔다.
“뭘 기다려? 지금 우리 주군보고 하는 말이야? 크크큭, 기다린다고 기다려 주겠어?”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테라스 밖, 하얀 별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케일에게 비웃음을 흘려보냈다.
“기다려…….”
“뭔 자꾸 혼잣말이야? 응? 왜 말 거는 척하면서 바쁘게 머리 굴리려고? 그래 봤자야.”
그때였다.
“뭘 보여주었지?”
케일의 시선이 환각사에게로 향했다.
쿵, 쿠웅, 쿵!
여전히 돔 안에서 최한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발버둥이 점점 스러졌다.
“글쎄?”
환각사는 붉은 쇠사슬로 덮인 돔으로 다가가 이를 쓰다듬었다.
“그냥, 가장 절망적이고 괴로울 때를 상기시켜 준 정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
환각사는 붉은 사슬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쾅, 쾅! 붉은 돔 안에서 발버둥이 느껴졌다.
“안쓰럽네. 이 안에서 얼마나 괴로운 환각을 보고 있을까? 소드 마스터면 뭐 해? 결국 괴로움 앞에서 무너지는 게 인간인데.”
그녀는 케일의 일그러진 얼굴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난 케일 씨한테 악감정이 있거든.”
“무슨 악감정이지?”
“정글 1구역 불 그거, 내가 주술사인 척하면서 끄려고 했거든? 그리고 정글을 내 손 위에 올려놓을 예정이었는데. 그게 내 첫 번째 서대륙 정복 계획이었거든.”
케일의 표정이 일그러질수록 환각사의 미소는 짙어졌다. 그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바람 정령들이 낮에 했던 말들.
‘곰족 왕이 환각사를 엘리스네라고 불렀어!’
‘맞아!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지 않아?’
맞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아니, 본 이름이다.
외양은 다르지만, 분명히 본 이름이다.
“정복이라. 그래서 몰든 왕국의 왕이 이곳에 있는 건가?”
“오, 내 정체를 아네?”
동대륙 강국 중 하나. 30대에 몰든 왕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젊은 왕 엘리스네 1세가 귀엽다는 듯 케일을 바라봤다.
“뭐, 그래도 오늘 죽을 분이시니까. 내 정체를 알아도 봐줄게.”
투둑.
그 순간, 케일은 단추를 또 하나 풀었다. 용병 길드 인명부가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의 입이 열렸다.
“…기다리시라고.”
“응? 뭐라고 했어?”
케일을 더 비웃으려던 환각사는 사슬에서 손을 떼어 케일을 향해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너도 환각으로 가지고 놀까? 어서 고대의 힘을 맘껏 쓰라니까? 응? 너, 얼굴이 왜 그래?”
그때, 환각사는 일그러진 사예르의 얼굴을 보았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갑자기 영주성 전체를 뒤덮는 경고음이 퍼져 나갔다. 환각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경고음은 딱 한 경우에 울린다.
‘…마나 교란 장치!’
마나 교란 장치에 문제가 생겼을 때,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리칼이 다시 붉게 변하며 염색 마법이 풀렸다.
대신 라온의 다른 마법이 케일을 감쌌다.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금 용 할배 데리고 왔다!
화가 잔뜩 난 라온이 외쳤다.
라온은 가샨을 데리고 온 뒤, 어둠의 숲에 갔다가 동대륙으로 갔다.
-할배가 위대하면서 이 정도 못 처리하냐고 잔소리한다! 인간아, 나 위대하다고 나중에 할배한테 말해달라!
그러나 그 속에는 신남이 가득했다.
-기다려라! 곧 두보리 영지 안으로 위대한 라온 미르가 간다! 으히히!
위이이이잉- 위이잉-
케일은 경고음을 들으며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섰다. 정면에 환각사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에 케일의 입꼬리가 위로 향했다.
“표정이 왜 그렇지? 이 경고음은 마나 교란 장치 경고음인 것 같은-”
하지만 케일은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 없었다.
“하하하하하하-!”
커다란 웃음소리가 연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경고음과 뒤섞인 웃음소리는 마냥 밝다고 하기에는 기이한 절규가 섞인 듯했다.
케일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최한?”
붉은 사슬로 덮인 돔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보다는 외침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
갑자기 어둠이 저를 덮친 순간, 최한은 그 어둠의 끝에서 과거의 어느 날을 맞이했다.
바스락. 바스락.
걸음을 내디뎠던 그는 고개를 숙였다.
굳은살은 있지만 어린 손이 보였다. 그리고 교복도 보였다.
숨을 내뱉자, 하얀 입김이 나왔다.
“환각인가?”
최한은 어둠의 숲에 처음 떨어진 날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는 교복 상의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가방도 무엇도 없이 오로지 교복만 입고 여기로 왔다.
그러나 교복에는 주머니가 있었다.
얇은 지갑이 느껴지자, 그는 얼른 지갑을 꺼내 들었다. 원래라면 어리바리하게 굴다가 첫날 바로 잊어버리고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지갑을 연 순간, 최한은 깨달았다.
“환각이네.”
지갑에 꽂아둔 가족사진을 바라봤다.
이건 환각이 맞다.
최한은 확신했다.
왜냐고?
가족사진 위에 가족들 얼굴이 희미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환각은 망각을 이기지 못했다.
어둠의 숲에 처음 떨어진 날은 기억하면서 가족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최한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빌어먹을.”
소년의 눈동자는 늙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