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8
457화.
하지만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론과 비크로스를 반기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을 향해 정문에서부터 적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좋네.”
비크로스는 짧은 소감을 내뱉으며 대검을 횡으로 그었다.
“커헉!”
달려들던 암의 검사 한 명이 대검과의 힘 싸움에 져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마법사, 기사, 보병, 궁사,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두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몰려들었다.
“몰란가 놈들의 숨통을 다 끊어냈어야 했어!”
“쥐새끼들이 당당하게 들어오기는!”
과거 뒷세계 가문들을 배신하고 ‘암’ 쪽으로 돌아섰던 이들 몇몇이 비크로스를 향해 거친 말을 내뱉었다.
“웃기네.”
비크로스는 그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라면 검을 휘두를 마음이 충분했다.
“…너-”
“그냥 따라오세요.”
론이 그 모습을 보고 뭐라 말하려고 했으나, 비크로스는 이를 가벼이 모른 척 넘어가고는 거대한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쾅!
마법으로 만든 화구는 대검이 일으킨 풍압과 닿아 터져 나갔다.
비크로스는 그 폭발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앞으로 검을 찌르며 한 발 내디뎠다.
“크아악!”
비크로스의 검이 또 다른 이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비크로스는 무심한 얼굴로 검을 빼내며 오른발로 옆을 걷어찼다.
“크윽!”
나뒹구는 병사에 시선을 둘 겨를이 없었다.
‘내가 앞선다.’
비크로스는 오로지 그 생각만 하며 검을 휘둘렀다. 론은 그 모습을 보며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확실히 늘었어.’
최한이 저택에 온 이후로, 아들 비크로스의 검술 실력이 눈에 띄게 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아내를 닮아갔다. 검도, 하는 행동도.
‘생긴 건 나를 빼다 박았는데 말이지.’
그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전장에서 이리 실없는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적이 별로 없었건만, 오늘은 그런 날 중 하나일 듯싶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실없이 웃었던 전장에는 항상 아내가 그의 곁에 있었다.
두 사람 다 남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만나 결혼을 했다. 사실 만나고 나서 결혼까지 가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시간만큼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
어릴 적 집안 어르신들에게 단검술과 은신술을 배웠을 때를 제외하고, 한 사람분을 하게 된 후로 론이 제 옆자리를 내어준 사람은 그녀가 처음일 터였다.
사실 옆자리를 내어줬다기보단, 옆자리에 붙잡아뒀다는 말이 맞았다.
‘내가 앞에 선다니까?’
‘그만 좀 튀어나가.’
‘아, 진짜. 갑갑하게 구네.’
참,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론은 그녀와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맨 앞에서 대검으로 면상을 후려칠 때. 그때의 기분을 당신이 알아?’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 나는 그런 것보다 뒤에서 목덜미에 칼 꽂는 게 더 취향에 맞는데.’
‘으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도대체 살수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던 그녀가 대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아직도 론의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닮았어.’
나와 그녀의 아들이 그녀의 그 모습을 꼭 닮아 있었다.
물론 그녀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그간 비크로스는 최한이나 가샨을 비롯한 강한 전사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싸움을 보며 체득한 것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 뿌리는 아내의 것이었다.
마침내, 아들의 뒤를 따라 걷게 된 론은 정문이 있던 성벽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그의 시야에 점차 골짜기 안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적들은 더 강하게 달려들었다.
“살수 새끼가 도망쳤던 주제에!”
등 뒤로 들리는 목소리에 론의 손이 움직였다.
“컥!”
푸욱. 론은 단검이 목에 박힌 채 계단 아래로 추락하는 적을 냉정히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찰나, 큰 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앙!
“크아악!”
연달아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토해내며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이가 보였다.
채앵. 그자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두 동강 난 채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그 검을 바라보던 론은 앞에 있는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얼마 남지 않은 계단 끝. 그 성벽 위에선 비크로스가 올라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올라오시죠?”
무뚝뚝하게 말하는 비크로스의 몸 곳곳에는 자잘한 상처가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피를 뒤집어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타닥.
론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타닥, 타닥.
곧 그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금세 얼마 남지 않은 계단을 다 올라설 수 있었다.
“…하.”
탄식과도 같은 웃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험준한 산맥. 그 사이에 자리한 깊은 골짜기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리운 광경이 모두 보였다.
“아버지.”
론은 안주머니에서 둘둘 만 천을 꺼내 드는 비크로스를 보았다. 그는 비크로스가 건네주는 천을 받아 들어 풀었다. 천에는 몰란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네가 그렸냐?”
“네.”
“그림 솜씨 좀 늘려야겠어.”
음식도 잘 만들고, 바느질도 꽤 하는 녀석이 그림 솜씨는 형편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문양을 꽤 잘 그렸다.
몰란 가문.
뒷세계에 존재하는 만큼, 그들은 가문의 문양을 드러내 놓고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골짜기 안에서만큼은 문양을 걸어놓았다.
여긴 그들의 영역이고 집이니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나 지나가던 이들은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이제는 좀 달라지겠지.’
앞으로는 이 문양의 의미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론은 암의 깃발이 걸린 곳으로 다가가 단검으로 그 깃발을 찢어냈다.
툭. 암의 깃발이 떨어졌고, 론은 그 자리에 아들이 그린 몰란 문양이 새겨져 있는 천을 묶었다.
삐이이이- 삐이이-
그 순간, 비크로스가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며 사라졌다. 그러자 2차 경계선 성벽에 선 용병왕 버드 일리스가 외쳤다.
“진격!”
마법사, 검사, 사냥꾼. 온갖 직업이 섞여 있는 용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3차 경계선을 향해 진격했다. 멸문한 가문에서 살아남아 이번 전투에 참가한 살수들이 절벽 건물 아래로 내려오며 전장에 스며들었다.
론은 밀려오는 아군들을 바라보며 뒤돌아섰다. 중앙 건물이 보였다. 저 안에 이 비밀 기지의 주요 인물들이 있을 터. 최상 직위를 지닌 이들은 없더라도 저곳을 모두 장악해야 한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앞장서라.”
그는 아들에게 앞을 내어줬다.
“뒤는 내가 맡으마.”
자신은 뒤에서 적들이 쫓아오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네. 빨리 가죠.”
비크로스가 앞서며 중앙 저택으로 향했다.
론은 그 뒤를 따랐다.
최상급 강자가 없는 이 비밀 기지에서 두 사람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몇 없었다.
***
마침내 비밀 기지 중앙 건물 최상층. 과거 몰란 가문의 가주실이었던 곳에서 론은 제 주군을 보며 말했다.
“도련님, 여기 또 다른 비밀 기지로 향하는 텔레포트가 있습니다.”
케일은 텔레포트 진 위에 올라섰다.
그 곁에 최한, 비크로스, 용병왕, 용 혼혈, 평균 9세들이 자리해 있었다.
“전 여기서 뒤처리를 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케일은 다시 인자하게 웃는 론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론, 네 집이 너무 좋은 거 아냐? 우리 백작가보다 큰데?”
론이 편하게 씨익 웃어 보였고, 케일은 텔레포트 진에 몸을 실었다.
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두 번째 암 비밀 기지를 떠올렸다.
-인간아! 그런데 하얀 별은 왜 거기에 비밀 기지를 두었나?
동대륙에 존재하는 세 곳의 금지.
케일이 팽이채를 얻었던 바람섬.
로드 쉐리트의 성이 있던 빛의 성.
그리고 마지막.
동대륙 북부. 빙하 지대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검은 구멍.
과거 사람들은 그 구멍에 떨어지면 죽음의 세상으로 빠진다고, 마계로 닿는다고 생각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웬만한 도시 크기의 그 구멍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 인근에는 어떠한 도시나 마을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거대한 싱크홀이 자리해 있는 그곳에서 굳이 살아갈 사람은 없었다.
왜냐면 그 싱크홀은 빙하 지대의 추위로부터 동대륙 사람들을 보호하는 산맥과 빙하 사이에 존재했으니까.
그 산맥 너머에 있는 구덩이 근처에 마을을 세울 이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곳에 이름을 붙였다.
마지막 금지.
마계의 문.
암의 두 번째 비밀 기지는 그 마계의 문과 산맥 사이에 존재했다.
파아앗-
환한 빛이 케일을 감쌌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눈을 뜬 케일은 암의 비밀 기지 앞에 도달해 있었다.
용 혼혈의 말로는 이곳은 세 개의 경계선 구분이 미비하다고 했다.
케일은 환한 빛이 사라진 뒤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로 두 번째 비밀 기지를 보았다.
“하, 하하-”
그는 웃음이 나왔다.
기뻐서,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기가 차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인간아! 여기 낯익다!
빙하 지대 근처라, 체온 마법을 걸었음에도 아주 추웠다.
분명 처음 와보는 곳임에도 케일은 두 번째 비밀 기지의 풍경이 참으로 익숙했다.
“케일 님, 여기는-”
최한은 말문이 막힌 얼굴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여긴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과 비슷합니다. 아니, 거의 똑같습니다.”
지하. 절벽에 둘러싸여 존재하던 그 푸른 마을.
중앙에 최정건의 회고록이 존재하던 석재 건물.
그 모든 것들이 똑같이 눈앞에 재현되어 있었다. 케일은 암의 숨겨진 비밀 기지이자, 최강자들이 밀집해 있다는 곳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완전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만든 마을 전설과 같잖아?’
강자를 모아 속세와 떨어진 마을을 만들었던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슬레이어 대신 하얀 별이 되고 싶어 하던 놈이 이런 곳을 만들었다는 게 기가 차면서도 우스웠다.
왜냐고?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을 그리워하지만 그곳에 갈 수 없어 대신 만든 마을이 이 비밀 기지라는 게 너무나도 잘 느껴졌으니까.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괴롭게 하며,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놈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감정을 지니고, 이런 마을을 만들었다는 게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어이구, 재밌구먼.”
케일은 마을 입구의 문이 열리며 걸어 나오는 이를 봤다.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기어오셨대?”
서글서글하게 말을 건네는 남자는 사자족 왕이었다. 이곳에 남아 있던 그는 케일과 최한을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봤다.
“우리 주군한테 암 기지가 공격받는다는 연락을 받긴 했는데. 사막에 계셔야 할 분들이 여기 와 계시네? 응?”
그는 기가 찬 듯 고개를 가로저어 댔다. 그러나 점점 입가에 지은 미소가 사라졌다.
왜냐면 그것은 그들이 케일에게 속았다는 소리였으니까.
그의 뒤로 하나둘씩 적들이 나타났다.
“케일 님, 강합니다.”
최한의 말대로 그들 한 명, 한 명은 최소 웬만한 용병대 단장을 맡을 만한 실력자들이었다.
사자족 왕은 그 때문인지 여유가 넘쳤다.
“주군께서 오기 전에 네놈들을 잡아야겠구나.”
우우웅-
그의 몸 주위로 어두운 기운이 스멀스멀 뭉치기 시작했다.
“네 녀석들을 저 마계의 문 구덩이에 던져줄게. 크흐흐흐!”
능글맞게 말하는 사자족 왕은 서서히 열리는 케일의 입을 보았다.
“야, 네 차례야.”
음?
사자족 왕 도르프는 케일 뒤에서 후드를 푹 눌러쓴 이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며 이상하게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뭔가 큰 위험이 다가올 때의 느낌이었다.
스윽.
후드가 벗겨졌다.
그리고 후드 속 인물의 얼굴이 보였다.
“…네놈이 살아 있었어?!”
사자족 왕의 얼굴 위로 경악이 서렸고, 후드를 벗어 던진 용 혼혈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붉게 염색했지만, 여전히 마르고 신경질적인 얼굴이었다.
그는 매일매일 느끼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져 온다.
온몸을 가로지르는 격통이 점점 더 심해졌다.
숨을 내쉴 때마다 조심해야 했다. 숨을 한 번 잘못 쉬면, 바로 죽을 것 같은 통증이 그의 몸을 뒤덮었으니까.
하지만 곧 끝이라면.
최초로 주어졌던 선택으로 반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듯이, 그는 자신의 끝도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그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몸 안의 빛 속성을 끌어 올렸다.
이제는 인간의 몸인 데다 그가 담고 있는 빛은 아주 약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난 준비됐다.”
그가 등 뒤의 케일에게 말했고, 케일은 입을 열었다.
“시작해.”
뒤이어 두 존재가 답했다.
“그래.”
-알았다, 인간아!
용 혼혈과 라온이 몸 안의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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