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62
461화.
케일은 용 혼혈의 그 떨림을 무심한 눈동자로 응시했다.
‘이유가 없어.’
그에게는 용 혼혈의 감정에 공감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던가? 케일은 1차 성장으로 정신을 잃은 라온을 노리던 용 혼혈의 광기 어린 분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잊는다.
그 단어는 김록수의 삶에서 몇 번 사용되지 않은 단어였다. 하지만 용 혼혈에게는 익숙한 단어였다.
떨리던 입이 열렸다.
“나는 기억이 온전치 않다.”
용 혼혈은 최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깜깜한 동굴이었다. 물론 그가 보통 사람의 눈을 지닌 것도 아니었기에 그의 눈동자는 어둠에 익숙해져 갔다.
“내 최초의 기억은 깜깜한 동굴이었어.”
용 혼혈은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제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그때, 나는 아팠다.”
지금과 같은 격통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통증을 느꼈다.
“왜냐면 키메라가 되는 중이었거든.”
인간의 몸에 용이 섞여 들었다. 용 혼혈의 몸은 그때 새로이 재구성되고 있었다.
“인간도 용도 아닌 괴물이 되는 과정이었지.”
도대체 얼마나 아팠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 통증 속에서 용 혼혈은 저를 가장 자주 찾아오는 하얀 가면의 남자만을 기다렸다.
그 남자가 횃불을 들고 올 때만, 그가 빛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온기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때, 하얀 별은 나를 찾아와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갈 뿐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관찰하러 온 거야. 자신이 만든 생물체가 제대로 잘되고 있는지 말이야.”
용 혼혈은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하얀 가면의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아파서 저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저가 누군지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그는 아주 어렸으니까. 아이는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격렬한 통증이 나를 찾아왔다,”
마지막 단계였다.
그가 완전한 키메라가 되기까지의.
“그리고 그 통증 속에서 나는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용 혼혈은 입술을 잠시 달싹이다 이어 말했다.
“그 기억은 용 혼혈로서의 기억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기억이었지.”
용 혼혈로서 최초의 기억이 아니다.
아직은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었다.
“단 하나의 기억이었어.”
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었다.
“…난 구백여 년 전 하얀 별을 우연히 마주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가 두 번째나 세 번째 삶을 살고 있을 때로 추정된다.”
가만히 듣고 있던 케일의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용 혼혈의 말대로라면, 마지막 드래곤 슬레이어로서의 삶 다음이나 그다음의 삶이군.’
하긴 시기상, 구백여 년을 산 용 혼혈이니 천여 년 동안 환생한 하얀 별을 만나려면 그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케일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용 혼혈을 바라봤다. 여전히 떨리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용 혼혈은 말을 이었다.
“그때, 하얀 별은 내가, 아니, 인간으로서의 내가 살던 마을에 여행을 왔고. 그는 마을 애들에게 먹을 것도 많이 주며 꽤 잘 놀아주었지.”
용 혼혈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놈은 나 같은 괴물로 만들 수 있는 신체를 지닌 아이를 찾고 있었던 거다. 용의 힘을 담아도 죽지 않을 실험체를 말이야.”
용 혼혈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인간이었던 내가 살던 마을은 몹시 가난했다. 성 밖에 있는 빈민촌이었지. 그때, 그는 나에게 먹을 것을 많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재밌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었어.”
그는 기억을 읊을수록 심장이 울렁거렸다.
“그러다가.”
용 혼혈 입가의 떨림이 멈췄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내 진짜 부모가 날 하얀 별에게 팔았다.”
아직도 금화를 건네고 있는 하얀 별에게서 두 손으로 그 돈을 받은 뒤, 저를 하얀 별에게로 미는 부모의 얼굴이 그려졌다.
완전한 키메라가 되기 전 남은 마지막 단계.
그 격렬한 통증 속에서 유일하게 떠오른 기억의 조각이 저 사건이었다.
오죽하면.
오죽하면, 저 때만 기억이 났을까?
어린 시절 친구? 형제의 얼굴?
그딴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딱 저 사건만이 그가 가진 과거 첫 번째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었다.
“아주,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
그때의 그는 자신이 팔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괜스레 아버지와 어머니의 소매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하얀 별의 딱딱한 손이었다.
그렇게 하얀 별의 손을 잡고서 마을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섰다. 용 혼혈은 마을 어귀를 돌아보다가 이내 체념하고선 하얀 별에게 물었다.
‘아버지예요?’
지금부터 당신이 내 아버지인가요?
언젠가 이렇게 팔린 아이는 또다시 어딘가로 팔려 노예로 살아가거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글쎄.’
하얀 별은 그를 돈으로 샀음에도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대해주었다. 그러나 목소리만이 다정했을 뿐이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해.’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기억의 늪에서 빠져나와 완전한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는 눈앞에서 웃고 있는 하얀 별을 보며 생각했다.
‘…아버지.’
저자가 나의 아버지다.
아니,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으니, 용 혼혈은 하얀 별을 ‘새로운 아버지’로 여기기로 하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로 여길 수 없었지. 아들로 인정받을 수 없었어.’
왜냐면 자신은 완전한 용이 되지 못했으니까.
2차 성장이 한계인 반쪽짜리 용. 키메라, 즉 괴물이었으니까.
“마지막 단계가 끝나고 통증이 사라지자 나는 내가 용 혼혈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키메라가 된 거지. 그때 하얀 별은 나에게 말했다.”
케일의 눈앞에는 목소리의 떨림은 사라졌지만, 다시금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동자의 주인은 쉬어버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때, 하얀 별이 했던 말을 그대로.
“네 심장에 붉은 용의 심장을 박아 넣었다.”
그 말이 케일의 귓가에 박히는 순간, 케일은 눈을 감았다. 그 와중에도 용 혼혈은 이어 말했다.
“또 말했지. ‘네 심장은 마지막 드래곤 로드의 피가 섞여 있어. 그러니 넌 분명 위대한 용이 될 거다. 용이 되어, 나의 뒤를 이어. 너라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할 거다.’라고 말이야.”
케일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붉은 용의 심장.
그리고 마지막 드래곤 로드의 피.
이 두 가지만으로도 정답이 나와 버렸다.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저 자식이, 저놈이 라온 형제의 피를 가지고 있었구나.’
케일은 두통이 밀려왔다. 골이 아팠다.
하얀 별은 붉은 알을 깨고 나온 라온의 형제 용을 죽이고 그 심장을 재료로 하여 용 혼혈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몇 개의 용 심장을 더 먹었지.”
“…하아.”
케일은 결국 한숨을 토해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용 혼혈에게 뭐라 갑갑한 심정을 토해내기에는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이 자식이 라온의 형제를 죽인 것도 아니고.’
결국, 케일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하얀 별 이 처죽일 새끼.”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끼는 편히 죽여선 곤란했다. 아주 제대로 괴롭게 만들어주어야 했다. 케일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고, 그는 용 혼혈에게 고갯짓했다.
“더 말해봐.”
할 말 있으면 더 해보라는 식이었다.
“나는.”
용 혼혈은 말을 이었다.
“1차 성장을 한 뒤에는 하얀 별의 명령이 있을 때만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얀 별이 나를 데리고 다닌 이유는, 내가 드래곤 로드 감이 될 만한 용이나 강해질 용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 때문에 하얀 별은 용 혼혈을 데리고 다니며 강한 용을 직접 죽이거나 용 혼혈에게 죽이라 지시했다.
그때, 케일이 손을 들며 그의 말을 끊어냈다.
“그것 말고.”
“…어?”
“난 네 인생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검은 알에 대해서 아는 걸 말해봐.”
아.
용 혼혈은 그제야 케일 헤니투스가 저와 차분히 대화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하긴, 저와 동료,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신에게 이리 온건하게 대하는 이유는 어린 용 때문이었다.
그 어린 용이 여전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 혼혈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쿵. 쿵. 쿵.
어린 용을 생각하자, 다시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며 그의 심장이 떨렸다.
“내 수하 중 레디카라는 녀석이 있다. 너도 알 거야. 네가 처음 부딪친 ‘암’의 중급 이상 요원이었으니까.”
용 혼혈은 케일에게 검은 알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레디카에게 몰래 맡겨 버리라 명했던 것부터, 레디카가 동굴에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레디카의 죽음 후에 행적을 알 수 없었다는 것까지.
“하!”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케일의 입에서 탄식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기가 찬 얼굴로 용 혼혈에게 말했다.
“레디카에게 맡겼다?”
“그래.”
그는 묘하게 위축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용 혼혈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이렇게 될 수가 있나?’
그는 비로소 라온이 어떻게 동대륙에서 서대륙으로 옮겨지고 스텐 후작가에 팔릴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케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심정은 지금 요상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용 혼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레디카에게 서대륙 공기 좋고 맑은 숲의 동굴에 버리라 했다고?”
“…그래.”
“환상 마법을 동굴 입구에 펼쳐놓고?”
“…그래.”
“그리고 틈틈이 잘 버렸냐고 물어보고? 아직 그 동굴에 있냐고 물어보고?”
“…그래. 잘 버렸는지 확인해야 했다.”
허.
케일은 용 혼혈을 기가 찬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게 버린 거냐? 보호하려고 숨겨놓은 거지?’
하이구야.
케일은 더욱더 머리가 아파왔다. 용 혼혈 이놈이 이리 띨빵한 놈이었나? 용을 증오한다면서 검은 알에게는 그렇게 행동한 용 혼혈의 숨겨진 심정이 이해되었다.
‘아이고, 머리야.’
케일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입을 열었다.
“너도 머리가 좋은 놈이니. 이쯤 되면, 레디카가 너에게 거짓을 말한 건 알겠지?”
“…안다.”
용 혼혈은 입술을 깨물었다.
레디카가 죽은 지는 약 2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레디카는 아직 알이 부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검은 용은 6살이지 않았던가?
‘나 위대한 라온 미르! 6살이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자신이 레디카에게 속았단 소리였다. 그 순간, 용 혼혈의 귓가로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디카는 스텐 후작가에게 한 알을 팔았다. 검은 알이었지. 그리고 곧 용은 부화했고, 4년간 지하 동굴에서 사지를 족쇄에 결박당한 채 채찍질을 당하고 밥을 굶으며 자라났다.”
용 혼혈의 머릿속에 순간 ‘사육’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용 혼혈도 하얀 별에게 거의 사육을 당하듯이 자라야 했다.
케일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용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못 배웠어. 마나 구속구가 목에 감겨 있었거든. 마법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지.”
용 혼혈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입을 떼며 물었다.
“…네 용 말이냐?”
정말, 그 순수하고 해맑고,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은 그 용이 그런 삶을 살았다고?
그렇게 갇히고 구속당하면서 자랐다고?
용 혼혈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용은 무슨 내 용이야. 걔가 물건이냐? 걘 라온 미르야, 라온 미르.”
잠시 한숨을 쉰 케일이 툭 던지듯 말했다.
“네 심장에 박힌 그 붉은 용의 동생 라온 미르 말이야.”
용 혼혈은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하, 답답하네.”
케일은 그 위축되고 쭈글쭈글한 행태에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라온에게 말해야 하나?
그보다.
쉐리트에게 말해야 할까?
톡. 톡. 톡.
팔걸이를 두드리던 케일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췄다. 곧 고개 숙인 용 혼혈의 귓가로 케일의 목소리가 닿았다.
“붉은 용의 엄마를 만나보겠나? 라온의 어머니이지.”
“…어?”
케일은 고장 난 시계처럼 멍한 용 혼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쳐든 채 멍하니 되묻는 모습이 케일에게는 얼빵하다 못해 아주 띨띨해 보였다.
‘어이구, 내 팔자야.’
케일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너 얼마나 더 살 것 같냐?”
“…그게.”
로드 쉐리트를 언급한 후, 계속해서 우물쭈물하는 용 혼혈은 뭔가 멍청해 보였다.
“그, 잘, 잘 모르겠다.”
정말로 용 혼혈은 얼마나 더 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온몸을 뒤덮은 통증은 그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했으니까.
“…버틸 수 있다.”
용 혼혈은 케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는 간절한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은 그 간절한 표정과 작지만 절박한 목소리에 담긴 용 혼혈의 심정을 이해했다.
만나고 싶겠지.
로드 쉐리트를 만나고 싶을 거다.
지금까지 부모라고 여겨지는 존재에게 버림받아 오기만 한 놈이니까.
물론 공감은 하기 싫었다.
저놈이 한 짓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케일은 저놈을 살릴 궁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살아. 버텨.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텨라. 넌 지금 죽어선 안 돼.”
그 말과 함께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땅의 힘. 그거 얻고 나서 일단 라온이랑 라온 엄마랑 너랑 셋이서 삼자대면하자. 그동안은 입 다물고 있어. 너도 알겠지?”
용 혼혈은 왜 케일이 자기더러 입을 다물라고 한 건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린 용 때문이리라. 그는 입을 열어,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아. 너희들에게는 지금이 중요한 상황이고, 내가 피해를 주기도 싫다.”
“그래. 피해 주지 마. 난 네가 싫거든? 그러니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마라. 내 말이 냉정하게 들리나?”
용 혼혈은 케일의 말에 실소를 흘렸다.
“아니, 전혀 냉정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싫다면서, 버티라고 말하는 자가 어떻게 냉정하게 보이겠나?
만약 하얀 별이었다면, 그와 이런 차분한 대화는커녕 일부러 용 혼혈의 앞에서 라온과 라온의 엄마를 죽인 뒤 저를 잔인하게 죽이며 죗값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케일 헤니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넌… 정말 착한 사람 같은데?”
대번에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착하다고?
“헛소리하고 있네. 너 지금 제정신 맞냐? 죽을 때가 다 되었냐? 내가 착하다고? 얼어 죽을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이런 말 듣는다고 너 살릴 궁리라도 할 것 같냐?”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웃어대는 케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용 혼혈을 볼 수 있었다.
“…더 살 생각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볼 생각뿐이다.”
용 혼혈이 또 저러니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용 혼혈은 케일이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작은 웃음을 흘렸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평온해져 왔다.
동시에 괴로워져 왔다.
왜 이제야. 아니, 왜 지금.
온갖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든 것들이 뒤섞이며 그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그 순간에도 케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웃지 말고. 일단 넌 우리 따라다녀. 알겠어?”
“그래.”
용 혼혈도 그러고 싶었다.
따라다니고 싶다.
그래야 볼 수 있으니까.
케일은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밥 먹고 바로 산으로 간다. 준비해.”
***
“아이구, 그 산으로 가려고요? 아유, 안 됩니다. 전 안내 못 해요!”
노인이 케일 앞에서 두 손을 휘저으며 케일을 만류했다.
“그 산에 가면 홀려요, 홀려! 귀신한테 홀려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어요, 죽어! 저 절벽 아래에 해골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어유, 저 산으로 가면 큰일 나요!”
노인은 비리비리해 보이는 상인에게 솔직히 말했다.
“밥 씨처럼 비리비리한 사람이 가면 바로 픽 홀려서 죽는다니까요? 내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에요. 허이구, 근데 사람이 왜 이리 수프 한 그릇 못 먹은 것처럼 허여멀건하대요?”
상인 밥, 아니,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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