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67
466화.
케일은 영상통신구를 연결하기 전, 버드에게 눈짓했다.
버드는 곧바로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저와 함께 노을을 보며 긴히 대화를 좀 나누시렵니까?”
“음? 무슨 대화요?”
곧 다가올 밤의 끝자락에 머문 노을을 감상하던 사냥꾼 봅은 갑자기 새파란 것이 제 앞을 가로막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버드는 사람 좋게 웃으며 노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은근슬쩍 노인을 질질 끌어 옮기기 시작했다.
“에이, 이리 와보세요.”
케일은 버드가 저에게 눈을 찡긋거리고는 사냥꾼을 일행과 떨어뜨려 시야를 돌리게 하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라온으로부터 영상통신구를 건네받았다.
“…하. 내가 홀렸다니.”
비크로스가 자존심이 상한 표정으로 넋이 나간 채 혼자 구석에서 중얼거렸지만, 케일은 이를 무시한 채 연결되는 영상통신구 화면을 응시했다.
-공자님, 가셨던 일은 잘 마무리되셨습니까?
“얼굴이 왜 그래?”
타샤의 얼굴을 본 순간, 케일의 미간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아, 좀 먼지투성이죠?
“좀이 아니라, 먼지인 줄 알았어.”
-에이, 농담도 참.
“진짠데?”
-…그 정도예요?
타샤는 케일의 진지한 표정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먼지로 범벅이 된 제 손바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곰족 그 새끼는 내가 족쳐야-
“크흠.”
케일은 라온과 온, 홍이 들을까 봐 얼른 헛기침을 해댔고, 타샤는 그제야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맞다, 인간아! 곰족 왕 걔도 족쳐야 한다!
케일은 저에게만 들려오는 라온의 목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타샤는 그 미간을 보며 얼른 입을 열었다.
-공자님 말씀대로, 공자님이 떠나신 후 사막으로 들어서던 곰족 왕과 하얀 별이 수하를 일부 데리고 텔레포트를 했습니다.
아마 사자족 왕 도르프의 연락을 받고 황급히 두 번째 비밀 기지로 향했던 순간이리라.
-그리고 진짜 금방, 몇 분 만에 바로 오더군요.
“그래?”
안녕 하고 손을 흔든 케일의 뒤를 쫓아 하얀 별은 다시 사막으로 돌아갔다.
-네! 그리고 그 뒤는, 음.
“그 뒤는 왜? 무슨 일이 있나?”
타샤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쳐서 날뛰고 있습니다. 뭘 하셨길래-, 아주 분노한 것 같던데요?
타샤는 하얀 별이 미쳐 날뛰는 광경을 떠올렸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기척을 숨긴 채 하얀 별을 지켜보았다. 사막뿐인 공간에 숨을 곳이 어디 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사막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이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곳이었다.
누구보다도 이곳을 잘 아는 다크 엘프들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은 충분히 가능했다.
-잘린 왼팔은 제대로 지혈을 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하여튼, 허옇게 질린 얼굴로 사막 곳곳을 뒤집어엎는데. 그냥, 그냥.
진짜 그 모습은.
-그냥, 미친놈 같아 보이던데요?
너무 살벌했다.
그래서 타샤는 곳곳에 퍼져 숨어 있던 다크 엘프들과 제 곁의 메리를 데리고 급히 숨었다.
-저 상태일 때는 저희가 마주하면 안 되겠다 싶어 메리와 다크 엘프들을 데리고 지하 도시로 다시 숨어들었습니다.
현재 지하 도시는 노약자를 비롯하여 인간과 전투 불가 다크 엘프들은 피신하고 없었다.
또한 지하 도시로 향하는 출입구는 다크 엘프 전사들과 메리만이 아는 한 곳을 빼고는 모두 파괴해 적들이 찾을 수 없게 해놓았다.
더불어 단 하나의 출입구도 적이 강압적으로 열려고 하면 파괴되도록 장치해 두었다.
-대신 바람 정령들을 내보내 최대한 하얀 별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사막 곳곳을 뒤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흑마법사와 함께 최대한 땅의 힘이 많이 밀집된 곳을 찾고 있는 듯합니다.
한참 보고를 하던 타샤는 케일의 얼굴을 본 순간, 움찔했다.
-…공자님?
웃고 있다.
케일은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아주 밉살맞게 웃고 있었다.
“흐흐, 미쳐 날뛴다 이 말이지? 흐, 화가 아주 많이 났나 봐?”
타샤는 그동안 이토록 상쾌하고 산뜻한 눈빛의 케일은 보지 못했다. 비열한 입꼬리와 달리 눈빛은 아주 봄바람을 맞이해 신난 강아지 같았다.
“아주 좋아.”
타샤의 생각대로 케일은 아주 상쾌하고 산뜻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 기분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에르하벤 님은?”
-아직 두보리 영지에 계십니다. 카로 왕국군도 함께 주둔 중이고요.
“그래, 알았어. 일단 지하에서 최대한 버텨. 잠시 왕궁에 갔다가 날이 넘어가기 전에 갈게.”
-네. 숨어 있는 거야 힘들지 않죠. 그런데 왕궁이라뇨?
타샤뿐만이 아니었다. 왕궁이란 소리에 일행들도 의아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봤다.
-인간아! 바로 사막으로 가는 거 아니었나?
케일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타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며 영상통신구를 끊었다.
“무조건 오늘 안으로는 갈 테니까, 나중에 보도록 하지. 아, 밥은 챙겨 먹고 일해.”
케일은 끊어진 영상통신구를 라온에게 넘기곤 걸음을 옮겼다. 그는 어깨동무한 버드의 팔을 슬그머니 밀어내는 사냥꾼 봅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은 참 오붓해 보였다.
케일은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니, 어르신. 제 말이 맞다니까요! 제가 엄청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입니다! 여기서야, 심부름꾼 취급을 받지만요.”
“크흠, 어쨌든 저 상인분의 비서라면서요?”
“아, 비서는 비서인데요. 제가 원래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부하가 아주 많아요!”
“허, 거참. 젊은 사람이 농담도 머리 색깔만큼 시퍼렇게 잘하는구먼요.”
“아, 아저씨. 내 머리카락 색이 멋지죠?”
“…뭐 봐줄 정도는 되지요.”
“와, 너무 냉정하다!”
뭐 하는 거야?
케일은 버드의 목소리를 들을수록 미간에 골이 깊어져 갔지만, 이내 표정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어? 왔어?”
버드가 등 뒤의 케일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그렸다. 그때, 사냥꾼 봅은 잘되었다는 듯 얼른 버드 곁을 벗어나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진짜로 뱀을 잡으셨군요.”
봅은 케일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일행인 소드마스터도 정상에 먼저 와 있었지만, 왠지 흩어지는 뱀 비늘의 중심에 있던 상인 밥 씨가 뱀을 쓰러뜨렸을 것 같았다.
“항상 뱀을 피해 다니면서 언젠가 저 뱀이 사라지길 기도했는데, 그 한을 풀어줘서 고맙습니다. 밥 씨, 정말 고마워요.”
안개가 사라진 네이크 산은 험준하지만, 그 아름다운 절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봅은 노을이 지나가고 어두워지는 사위에 그 풍경에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 언제든 안개가 산을 덮지 않을 것이기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 이 산에도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습니다. 무시무시한 전설도 없을 테고.”
“봅 씨.”
흐뭇한 얼굴로 감상을 내뱉던 노인은 상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헉!”
그리고 숨넘어갈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설마?”
그가 한껏 크게 뜬 눈으로 상인을, 케일을 바라봤고, 케일은 부드러이 웃으며 봅의 손에 제 손안의 것을 넘겨주었다.
“제가 계산은 철저합니다. 약속은 지켜야죠.”
“이, 이- 이런-!”
봅의 손이 덜덜 떨렸다.
“백… 이백… 오백… 처, 천……! 천!”
백만 겔론짜리 수표 총 10장이 봅의 손에 들렸다.
거기다 수표를 발행한 곳은 로운 왕국에서 현재 가장 떠오르고 있고 유명한 플린 상단이었다.
“의뢰금입니다.”
케일은 약속했던 의뢰금 천만 겔론을 지불했다.
봅은 떨리는 눈동자로 상인 밥을 바라봤다. 밤이 찾아오고 있건만 그의 뒤에서 후광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진짜로 이리 많이 주실 줄은……! 괜찮습니다. 전 돈 안 받아도 됩니다.”
“그냥 받으세요. 저 부잡니다.”
“네?”
“부자라고요. 아주 매우 부자.”
“…아.”
잘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듯 넋을 놓고 있던 봅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입을 열었다.
“일단, 밤 되면 산을 내려가기가 더 힘드니, 얼른 밑으로 내려가시지요! 차와 저녁을 대접하겠습니다! 그때, 이 의, 의뢰금 이야기를 정리하시지요!”
“아닙니다. 지금 떠나야 합니다.”
“네?”
봅은 갑자기 공중에서 환한 빛이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어느새 상인 밥을 포함해 봅을 찾아왔던 일행들이 그 빛으로 모여들어 자리해 있었다. 당황한 봅이 발을 동동 구를 때, 케일은 봅 손바닥 안의 수표를 집어 들어 쿨하게 그의 사냥 웃옷 주머니에 구겨 넣어버리고는 미소와 함께 텔레포트 진에 올라섰다.
“그럼 이만 가보지요.”
“아니, 저-!”
파아아앗!
봅이 케일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이 닿기도 전 환한 빛과 함께 일행들은 사라졌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웃옷 속 수표를 꺼내 들었다.
“…심, 심 봤다.”
***
케일은 가을꽃들이 하나둘 피어나 아름다운 정원의 한가운데. 멋들어지게 조각된 분수대를 바라보며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인간아, 반짝이는 게 이쁘다!
라온의 말대로 반짝이는 마법 분수대는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밤이 찾아왔지만, 곳곳의 마법 전등이 정원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야, 진짜로 다 줄 줄은 몰랐다. 천만 겔론이라니. 너무 통이 큰 거 아니야?”
그 순간 바닥에 대충 주저앉아 있던 버드가 케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물음에 케일은 제 무릎 위에 얼굴을 올린 온과 홍을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답했다.
“자신이 홀려서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여 줬으니 내가 말했던 의뢰금은 줘야지. 그리고 말이야.”
“왜?”
“봅 씨 주변이랑 네이크 산 주변에 용병을 파견할 수 있나?”
“의뢰?”
“그래. 의뢰다. 사냥꾼이 주변에 허튼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봐야 하고, 또 혹시 하얀 별이 저길 찾아가서 사냥꾼이나 저 마을에 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까.”
“꼼꼼하긴. 알겠어. 안 그래도 여기 서대륙에도 용병 길드를 제대로 해볼 생각이니까, 겸사겸사 애들 데려와서 해보지 뭐.”
케일은 대충 답하는 버드의 모습이 영 믿음직스럽지 못해 입을 열었다.
“똑바로 해야-,”
“야! 이, 이-!”
그러나 케일의 말은 끊어지고 한 사람의 거친 목소리가 분수대 근처를 뒤덮었다.
“이, 이-!”
씩씩거리면서 달려온 이는 분수대에 다가올수록 기가 차다는 듯한 손으로는 케일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이, 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자야! 왜 ‘이, 이-!’거리냐? 며칠 만에 보는 거지만 반갑다! 오늘은 쿠키 없나?
알베르 크로스만.
그는 어리지만 위대한 용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전, 회의실에서 최측근들을 모아두고 신중한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로 로잘린이 찾아와 급한 일이라며 그를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케일 공자가 왔어요.’
‘…네?’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어벙하게 되물었다. 그럼에도 로잘린은 그런 모습을 못 본 척해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저하 궁 뒤뜰 정원에 있어요. 케일 공자의 방문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두었습니다.’
‘환장, 아니, 제가 가보죠.’
알베르는 그대로 회의는 집어치우고 정원으로 향했다.
“오, 로잘린 씨, 빨리 모셔 왔네요?”
케일은 알베르를 뒤따라 정원으로 들어서는 로잘린에게 사람 좋게 인사를 건넸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알베르의 얼굴이 있는 대로 일그러졌다.
상냥하고 화사한 왕세자는 없었다.
그 순간, 케일과 왕세자의 시선이 부딪쳤다. 왕세자는 저를 향해 태평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케일은 손까지 들어 살랑살랑 흔들며 입을 열었다.
“형, 안녕하십니까?”
아, 머리야.
알베르는 두통이 밀려왔다.
“…케일 헤니투스.”
그는 성큼성큼 케일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알베르는 평소와 달리 헝클어진 머리칼과 잔뜩 구겨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케일은 알베르의 흉악한 얼굴과 거침없는 걸음새에 점점 태평하던 미소가 일그러졌다.
‘왜 저래?’
케일의 표정이 그리되었을 때, 바로 앞에 도착한 알베르 크로스만은 케일의 눈앞에 손에 들린 종이를 펼쳐 들었다.
“어?”
케일이 그 종이 위 글자를 본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뭐야?”
그는 문서의 첫 줄을 읽었다.
“…하얀 별이 카로 왕국과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영웅 케일 헤니투스가 카로 왕국을 구하고 하얀 별을 데리고서 죽음의 땅으로 사라졌습니다. 나 발렌티노 왕세자는 동맹국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발렌티노 왕세자가 급히 적어 보낸 문서. 그 문서에는 카로 왕의 직인도 찍혀 있었다.
문서의 마지막, 발렌티노 왕세자의 비장하고 절절한 문장이 한 줄 적혀 있었다.
…발렌티노 왕세자가 언제 이런 걸 보냈대?
그것보다 내용이 케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카로 왕국과 하얀 별의 전쟁이라니, 서대륙 왕국들의 도움을 요청한다니, 이건 거의 서대륙 전체가 일어서자는 말이잖아?
갑자기 스케일이 커진 것 아냐?
케일은 문서에서 시선을 떼어 슬그머니 알베르를 쳐다봤다. 알베르는 짜증이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하얀 별 뒤통수를 살짝 치러 간다던 놈은 어디 가고, 왜 방관할 예정이라던 카로 왕국이 하얀 별과의 전면전을 선포하지? 그리고 사라졌다는 영웅 놈은 왜 내 눈앞에 있지? 응? 동생, 말을 해봐. 응?”
알베르의 눈빛이 살벌했다.
“아니, 모닥불 피우러 간다고 했던 놈이 왜 대륙 전체에 불을 피우고 오냐고. 지금 서대륙 사방에서 로운으로 연락이 와. 불굴 연합 배후였고 모고르 제국 흑마법 배후였던 자가 카로 왕국을 노리는 거냐고. 힘을 모아서 모두 일어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케일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하였고 그의 입이 열렸다.
“음, 갑자기 왜 이리 규모가 커졌대요?”
“환장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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