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
46화.
왕세자와 함께하는 마차에 오르는 길. 왕세자는 끝까지 어떤 퍼포먼스를 원했다. 당연히 케일이 타는 마차는 왕실에서 긴급하게 가져온 왕세자 마차였다.
“케일 공자, 먼저 타게. 오늘만큼은 나는 그대를 존경하네.”
언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마차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보이자, 바로 왕세자는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찌, 이 왕국민의 마음 속 별이신 저하보다 먼저. 제가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 머리 괜찮나?
케일은 검은 용의 말쯤은 가벼이 무시했다. 그런 케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왕세자는 말했다. 툭 툭. 어깨를 두드리는 힘이 꽤 셌다.
“아닐세. 내 존경의 표현이네.”
“그럼, 이 모자란 이가 먼저 타보겠습니다.”
다른 왕족들이 돌아갔음에도 테러 현장에 남아서 기사들에게 뒤처리를 지시하고, 케일을 먼저 챙기는 왕세자 알베르. 그리고 오늘 이곳에 있던 이들 머릿속에 가장 크게 남은 케일 헤니투스.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그림처럼 멋지면서, 동시에 대해처럼 넓은 마음이 느껴졌다.
케일은 왕세자의 마차에 올라타며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마차 근처에는 귀족 자제들이, 그리고 그 뒤에는 왕국민들이 있었다. 케일은 에릭, 길버트, 아미르, 테일러에게 살짝 눈짓으로 인사하고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네오 톨스에게 선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네오가 흠칫하였고 네오 근처에 있던 베니온 스텐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대귀족들이 케일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 망나니가 저런 힘을? 아니, 저런 행동을?’
이런 의미가 담긴 눈빛이 더러 보였으나, 케일은 이를 무시하며 네오를 빤히 바라봤고, 네오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조잡한 악역 하나는 치울 수 있겠네.’
케일은 그리 생각하며 마차에 올라탔고 곧바로 선한 미소를 입가에서 지웠다. 그리고 뒤따라 왕세자 알베르가 올라타며 자신의 시종에게 명했다.
“뒤에 여성분은 최고의 대우로 모셔오도록.”
당연히 로잘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마차 문이 천천히 닫혔고 그 틈으로 케일은 로잘린과 눈이 마주쳤다. 로잘린의 미소가 믿음직했다.
달칵. 마차 문이 닫혔고 케일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역시 왕실 마차는 급이 다르네. 이런 의자 가죽은 어떻게 구하는 거지?’
좌석의 안락함을 느끼며 표정 없이 앉아 있던 케일은 마찬가지로 자애로운 미소 따위는 집어치운 무표정한 얼굴의 왕세자를 볼 수 있었다.
“치료가 필요한가?”
왕세자의 물음에 케일은 무심한 투로 답했다.
“몸은 건강하지만, 최고의 의료진과 신관을 통한 대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한 삼사 일 드러누워 있었으면 하는데.”
“하.”
왕세자는 탄성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선 귀족가 자제가 아프다. 그리고 그걸 왕궁에서 최고급 대우로 간호하고. 아주 좋아.”
동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왕세자는 연기 따위는 집어치웠다. 그래서 바로 본론부터 던졌다.
“케일 공자, 당신과 그들이 관련이 있나?”
그들. 오늘 광장에 나타난 이들을 말했을 것이다. 케일은 왕세자 알베르와 시선을 마주했다. 검은 용은 지금쯤 마차 위에서 투명화한 채 자신을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검은 용이 그랬다.
-저 왕세자는 왜 다른 인간이 죽어도 안 나섰지? 힘이 있는데.
왕세자는 힘을 감추고 있다. 자신의 시종 중 하나가 죽고, 젊은 기사의 팔다리가 날아가도 나서지 않았다. 그저 약한 척하며 몸을 숨겼다.
‘타인을 이용해도 착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케일은 그렇기에 편히 답했다. 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하, 제가 그리 귀찮은 짓을 왜 합니까?”
“그렇겠지.”
왕세자는 곧바로 수긍했다. 망나니로 자신을 숨기던 이가 그런 짓을 할 리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선 것도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 적어도 왕세자 알베르 눈에는 보였다.
“왕실에서는 쓸데없는 조사를 자네에게 하려고 할지도 모르네.”
“저하께서 막아주실 거지요?”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막아준다는 소리였다. 왕세자 알베르는 커튼을 걷어버렸다. 마차 밖에는 수많은 왕국민들이 보였다. 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화는 내가 병문안을 하러 갔을 때 마저 하도록 하지.”
왕세자가 귀족 자제 병문안을 오는 것.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대화. 대화할 거리는 아주 많았다. 케일은 로잘린과 고대의 힘, 그리고 보상 등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하.”
“그래.”
“이 나라의 별이신 저하와의 대화라면, 언제든 이 케일은 시간이 됩니다.”
자애로운 미소의 끝이 살짝 구겨졌다.
“저는 이번 일로 제가 한 일이 과대 포장 되기 싫습니다.”
“적당히 포장하지. 비난만 왕실로 오지 않으면 되니까.”
왕세자는 이어서 툭 던지듯 말했다. 그 어투는 기름칠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진심이었다.
“어쨌든 고맙네. 덕분에 다친 이들이 줄었어.”
좋은 인간인지, 나쁜 인간인지 알기 어려운 왕세자 알베르였다. 아니, 인간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케일은 그딴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제 할 말을 했다.
“네. 보상을 기대합니다.”
“하.”
왕세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하지만 보상을 기대하지 말란 소리는 하지 않았다. 두둑히 챙겨준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케일은 왕궁에 다시 한번 입성하였고 이전과는 급이 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다. 타국의 왕족들이 왔을 때 머무는, 그 화려하고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별궁의 가장 좋은 방이 케일에게 주어졌다.
‘하긴 최한 일행도 여기 머물렀지.’
케일은 저택의 침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푹신함과 안락함을 자랑하는 최고급 침대에 드러누워 포도를 한 알씩 먹었다.
그런 그에게 별궁에 머무는 또 다른 이가 찾아왔다.
“케일 공자.”
로잘린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는 홀로 오지 않았다.
“케일 님.”
최한이 함께 왔다. 그의 뒤에는 고양이들과 라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 뒤의, 맨 마지막 사람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고, 공자니이이임!”
부집사 한스였다. 그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스와 최한, 라크는 케일의 시중 겸 호위로 왕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케일은 달려올 것 같은 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지.”
그 말에 한스는 정지했고, 케일은 침대에서 일어서며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마치 이 궁의 주인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케일은 제일 먼저 한스와 대화를 나눴다. 한스는 언제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냐는 듯, 케일의 상태를 확인한 후에는 평소처럼 보고했다.
“가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왕실보다 빠른 것이 좋을 것 같아 마법사를 통해 통신구로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돈이 조금 많이 들었습니다.”
“잘했어.”
“그리고.”
한스는 힐끗 로잘린을 바라봤다.
‘역시.’
케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스는 유능한 집사 후보였다. 케일보다 귀족가 자제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파악한 이였다. 그런 이가 다른 정보가 없겠나.
“계속 말해.”
케일의 허락에 한스는 보고했다.
“로잘린 님에 대해 일단 함구하라고 저택 고용인들에게 말해두었습니다.”
“잘하셨어요.”
“잘했어.”
로잘린과 케일이 한스를 칭찬했다. 말을 맞추기 전이니, 아예 함구하는 편이 로잘린과 케일이 움직이기 편했다.
“저, 공자님.”
“그래.”
“제가 보고를 드렸지만, 나중에 통신구로 가문에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가주님께서 올라오실 것 같습니다.”
아버지인 데르트 백작이라면 충분히 그러할 것이다. 케일은 바센의 후계자 지위에 영향을 안 미치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는 그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눈치가 있는 편이었다.
로잘린과 최한, 라크. 그들과 대화할 케일을 위해 자리를 비켜야 했다.
“그럼 저는 이 별궁의 관리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그래.”
한스가 방을 나갔고 그제야 검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용은 케일의 침대로 가 그 위에 놓인 과일들을 뜯어먹었다. 그러면서 보고했다.
“이 안에는 영상구도 녹음 관련 장치도 없다.”
참,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시킨 건 잘한단 말이야. 케일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이 머무는 방을 둘러보았다.
타국의 왕족들이 머무는 공간. 그곳에 어떤 기록 장치를 심어둔다? 이건 협력이고 뭐고 한판 붙자는 소리였다. 그래서 대개 그들이 머무는 장소보다는 따로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녹화와 녹음을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펼쳐진다.
즉 이 안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된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로잘린은 소리 차단 마법을 펼쳤다.
“안전한 게 좋잖아요?”
“로잘린 씨의 그런 점이 훌륭하십니다.”
케일은 그녀의 말에 호응해 주며 최한을 바라봤다. 최한은 아까 전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케일은 그런 최한을 보며 직감했다.
레디카를 죽이지 못했다.
“말해봐.”
최한은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신 장소에 그 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죽이고자 하였는데, 그자의 부하들이 덤벼들었습니다.”
“죽을 각오였겠지.”
“…네.”
비밀 단체는 희한하게 레디카를 많이 아꼈다.
“그래서 놓쳤나?”
“…네.”
최한은 고개를 숙인 채 이어 말했다.
“왼쪽 어깨부터 팔 하나만 잘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음?
“혹시 돌아와서 팔을 가져가 다시 붙이는 그런 일을 할까 봐 태워 버렸습니다. 아, 왼쪽 눈도 다쳤을 겁니다.”
…이 정도면 마법사로서는 치명상 아닌가? 두 손으로 마법 캐스팅을 해야 마나 균형이 용이한 점에서 상당히 타격이 클 텐데.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최한을 바라봤다.
최한은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뭐 죄송할 것까지야. 고생했다.”
케일은 최한 옆에 앉아 있는 라크와 온, 홍을 바라봤다. 온, 홍은 평소와 달리 검은 용 근처에 가지도 않고 라크의 품에서 굳어 있었다. 라크는 뭔가 간절한 눈빛으로 케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폭주한 건가?’
케일은 최한을 보고 물었다.
“그자의 수하들은?”
“죽이는 게 낫겠다 생각해,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붉은 고양이 홍은 그 말에 제 누나 온의 몸통에 얼굴을 비볐다. 최한은 그들을 깔끔하게, 세상에 흔적도 없게 검은 오러로 녹여 죽여 버렸다. 오러로 사람을 녹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홍은 처음 알았다.
“뒷말 안 나오려면 깔끔한 게 낫지. 건물을 부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혹시 폭주해 그 건물이나 일대를 최한이 부쉈을까 싶어 케일은 걱정되었다. 최한에게 해리스 마을과 푸른 늑대족 사건은 트라우마였다. 이 트라우마를 일으킨 단체의 사람을 눈앞에서 목도했을 때 혹여눈이 뒤집혀 달려들까 케일은 그게 염려스러웠다.
‘폭주하면 그 뒤처리를 내가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자신의 저택에 머무는 최한이기에, 케일은 그 뒤처리가 상당히 하기 싫었다.
“네. 당연하죠. 케일 님 말씀대로 최대한 건물이나 주변 지형에 피해 가지 않게 했습니다.”
고양이들은 최한이 수하들을 죽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너희들 때문에 다 죽거나 죽을 뻔했다. 오늘도!’
건물은 그대로였지만, 산 채로 녹여 죽이는 최한의 모습은 상당히 무서웠다. 폭주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무서웠다. 온과 홍은 결국 검은 용에게로 다가가 그 옆에서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 여기서 가장 착하고 귀엽고 강한 이가 검은 용이었으니까.
케일은 침대로 가는 고양이들을 보다가 최한에게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최한은 그 말에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최한뿐만 아니라 모두를 보며 말했다.
“오늘 모두 대단한 일을 했어. 너희들 덕에 모두가 살았다. 로잘린 씨도 고생하셨습니다.”
최한의 꽉 쥐고 있던 주먹에 살짝 힘이 풀렸다. 로잘린은 라크와 최한, 그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고양이들을 보다가 케일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묘한 유대감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때, 검은 용이 툭 내뱉었다.
“너도 고생했다.”
그 말에 케일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고생했지. 그러니까 보상을 받아야지.”
그리고 그 보상의 첫 논의를 할 시간이 곧 찾아왔다.
“나가보게.”
“네, 저하.”
치료를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때우다가 돌아가는 신관을 내보내며 왕세자 알베르는 케일과 마주했다. 케일은 이리 왕세자가 찾아와 감격한 표정을 얼굴에 그렸다. 그 순간, 달칵, 문이 닫혔고. 알베르는 말했다.
“그런 표정은 소름 돋네.”
“감사합니다.”
케일은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알베르는 차라리 그게 편하다는 듯 환자 행세로 침대에 누운 케일 옆의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자네는 현재 요양 중인 것으로 했네. 광장에서는 귀족으로서 혼란을 다스리고자 힘겨운 와중에도 다시 일어선 것으로 했어.”
알베르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자네가 고대의 힘을 소지했다고 그 자리에서 밝혔으니 그에 맞춰서 그리 강하지 않은 방어용 고대의 힘이라고 해두었네. 자네가 원한 게 그거지?”
“음.”
케일은 고심하는 척하며 답했다.
“약하지만, 왕국을 위해 나선 어린 귀족 자제. 좋네요.”
“그렇지.”
이왕 케일이 힘을 썼다면 ‘강하지 않다’고 소문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약한 건 사실이었다.
“내일쯤이면 자네에 대한 소문이나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관리인이 자네 집사를 통해 전해줄 걸세. 보도록.”
확실히 케일을 대하는 것이 왕세자 알베르는 최한 때와는 달랐다. 다정한 표정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상당히 떨떠름해 보였다. 마주하기 싫은 인간이지만 일을 위해 마주한다. 딱 그 자세였다.
케일이 원하는 바였다.
케일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왕세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왕세자는 미간을 찡그린 채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굉장히 망설이는 태도이면서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왕세자에게서 보기 드문 행동이었기에 케일은 가만히 기다렸다.
그 순간 침대 밑에서 자고 있다가 깨어난 검은 용이 케일의 머릿속으로 말했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쟤 인간은 아니다.
그리고 왕세자는 질문을 던졌다.
“…너 인간이지?”
이건 또 뭘까. 직구는 예기치 않게 훅 들어왔다. 케일은 갑자기 아프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