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0
469화.
“곧 하얀 별이 통로를 타고 지하 덫으로 내려올 것 같습니다.”
메리의 차분한 보고를 들은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행 대부분이 흩어졌고 라온, 용 혼혈, 케일, 메리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공자님.”
메리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이 웃고 있습니다.”
***
메리의 말대로 하얀 별은 웃고 있었다. 짙은 미소를 짓던 입가는 점점 더 벌어지더니, 이내 조금씩 큰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 하하! 내가 이걸 몰랐다니!”
그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사락사락.
그는 연신 손으로 모래를 움켜쥐었다. 검은 모래는 손안에 움켜쥔 순간 바로 손가락 틈새를 타고 아래로 떨어졌지만, 하얀 별은 그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몸을 숙인 채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
콧속으로 스며드는, 죽은 마나 기운에 하얀 별은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밤이라 땅도 하늘도 까맸지만, 사막 곳곳에서 점점 더 죽은 기운이 느껴졌다.
“제길!”
하얀 별의 행동을 본 곰족 왕 사예르가 황급히 옷소매로 코를 가렸다. 하얀 별과 사예르의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할 거야?’
사예르의 눈빛이 건네는 명백한 물음에 하얀 별은 하늘과 땅만큼 시꺼먼 통로 안을 가리켰다.
“일단 흑마법사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들어가도록 하지.”
흑마법사들은 저만 빼고 간다는 말에 서운해하기는커녕 그 안색이 환해졌다. 하얀 별만큼 정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죽은 마나 연기가 이곳에서 미미하게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죽은 마나는 흑마법사들에게 힘의 상징이었다. 어차피 하얀 별을 따라 지하로 간다고 해도 땅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곳에 남아 죽은 마나를 얻는 것이 나았다.
하얀 별은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이 사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파악해.”
“네, 주군.”
흑마법사에게서 고개를 돌린 하얀 별은 사막을 쭉 둘러보았다.
‘신기하고 이상하군.’
천여 년을 살아온 하얀 별이었다. 당연히 서대륙 불가사의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죽음의 땅을 이전 삶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잠시 와본 적도 있고.’
몇 번째 삶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마법사일 때 비행 마법으로 이 사막을 쭉 가로질러 해안가까지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낮과 밤마다 달라지는 모래색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했던 곳에서 죽은 마나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뜻하지 않은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음?”
그때, 하얀 별은 제 종아리를 건드리는 발에 시선을 돌렸다.
툭, 툭. 사예르의 발이었다. 그는 입과 코를 막은 채 한껏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얼른 통로에 들어가자는 제스처였다.
사예르는 하얀 별과 달리, 죽은 마나는 독이었다. 사자족이나 다른 수하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얼른 통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지금은 미세한 이 연기가 점점 더 많이 피어올라, 저도 모르게 숨으로 들이마시기 전에 피하고 싶어 했다.
사예르가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하얀 별은 수하들을 보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차례대로 통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통로 밑으로 들어가서.”
잠시 말을 멈췄던 그는 이어 말했다.
“아무것도 건들지 말아라. 혹 무엇이라도 건들거나 이동한다면, 그 즉시 나에게 죽는다.”
다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하얀 별이 고대의 힘인 ‘물의 장막’을 얻었을 때, 그저 명령 없이 한 발 내디뎠다고 수하를 찢어 죽이는 하얀 별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무조건 하얀 별의 말을 따를 작정이었다.
하얀 별 역시도 일부러 그때 그 광경을 봤던 이들로 데려온 것이었다.
‘공포는 좋은 도구지.’
공포에 젖은 이들은 하얀 별의 명령을 아주 잘 들었으니까.
‘그래서 더욱더 이번 마지막 힘이 필요하다.’
하늘 속성보다 더 찾기 힘든 힘이 ‘땅의 힘’이었다.
케일 베로우. 잊고 있던 제 과거의 이름을 떠올린 하얀 별은 저에게 ‘베로우’란 성을 이어주었던 인간을 떠올렸다. 그자는 하얀 별에게 드래곤 슬레이어 힘과 자리, 역할을 넘겨준 사람이었다.
‘고대의 하얀 별? 그자가 궁금해?’
그 사람은 하얀 별이 고대의 하얀 별에 대해 물을 때마다 하나씩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의 의도는 고대의 하얀 별이 못되고 나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으나, 하얀 별은 고대의 하얀 별이 가진 강함에 취했다.
‘기록을 보면 고대의 하얀 별이 지닌 힘은, 하늘을 제외한 5대 속성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가 후계자에게 해줬던 이야기는 계속해서 되풀이되며 후대의 드래곤 슬레이어와 그다음 후계자에게로 이어졌다.
‘방어, 공격, 보호. 뭐 여러 가지가 있었지. 아, 공포도 하나 있었다고 하더군.’
‘공포요?’
‘그래. 2대 드래곤 슬레이어께서 남기신 일기를 보면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께서 그 공포를 조심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셨다고 해.’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네란 베로우. 그를 따라 일기나 회고록을 쓴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꽤 있었다.
하얀 별은 비록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네란 베로우의 회고록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 외의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일기장이나 회고록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의 정보들은 그가 고대의 하얀 별을 넘어 더 뛰어난 하얀 별이 되어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죽은 이들이 알면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하얀 별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러한 정보들로, 하얀 별은 고대의 하얀 별이 지녔던 물의 힘 대신 고대의 힘인 심판하는 물을 가지려다 선수를 놓쳐 케일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자연 5대 속성 중 네 가지를 가짐으로써, 그는 마지막 남은 땅의 힘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공포.’
남은 것은 공포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얀 별에게 필요한 힘이었다.
‘…그 힘을 얻는 순간, 나는 세상을 바꾼다.’
하얀 별은 진짜 계획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단추가 간절했다. 그렇기에 팔이 잘린 게 불과 하루 전임에도 이곳에 왔던 것이다.
“차례대로 진입해라. 나는 마지막에 진입할 테니, 흑마법사들은 이 입구의 문을 닫도록.”
하얀 별은 대충 가까이에 있던 사자족에게 처음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그 행동은 부하에게 얼른 죽은 마나 연기를 피하라고, 혹시 모를 후방에 나타날 적의 습격을 주의하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도리어 먼저 내려가게 시킨 뒤 혹시 모를 함정이나 숨은 적의 출몰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왜냐면 케일 일행이 먼저 이곳으로 들어갔으리라 예상되었으니까.
수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지목당한 사자족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통로 안으로 먼저 진입했다.
미끄럼틀을 타듯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간 그를 따라 하나둘 통로 안으로 진입했다.
사예르마저 내려가고 하얀 별만이 남았을 때.
죽은 마나 연기가 이제는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짙게 피어올랐다.
쓰읍.
하얀 별은 그 죽은 마나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때, 한 흑마법사가 살짝 아부 섞인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왔다. 하얀 별은 곰족 왕이 내려가자, 저에게 다가오는 흑마법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연금술 종탑 탑주가 죽고 난 후, 흑마법사들은 따로 우두머리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하얀 별의 눈에 들어 우두머리가 되고자 했다.
“주군, 꼭 주군께서 원하시는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는 비록 그 과정에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이곳에 남아 죽은 마나 연기의 비밀을 파헤치겠습니다. 저희의 조사가 부디 주군의 피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하얀 별은 눈에 훤히 보이는 아부성 짙은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죽은 마나를 앞으로 계속 구해야 하는데, 사람 죽이는 것도 귀찮고 비용도 많이 들 터. 이런 곳이 있다면 이용하는 게 맞겠지.”
“네, 주군! 저희가 샅샅이 조사하겠습니다. 물론 입구도 잘 지키면서요.”
하얀 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로로 향했다. 그러다가 멈칫하며 흑마법사들을 쳐다봤다. 그는 방금 대화를 나눈 흑마법사에게 은밀히 물었다.
“도르프에게도 샅샅이 조사하라고 해.”
사자족 왕 도르프는 현재 두 번째 비밀 기지에 남아 하얀 별이 내린 지시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흑마법사는 살벌한 하얀 별의 눈동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하얀 별은 이를 보며 이어 말했다.
“케일 헤니투스가 마계의 문 근처로 갔는지, 그리고 그 안을 확인했는지. 반드시 제대로 알아 오라고 말이야.”
하얀 별은 도로프의 말을 떠올렸다.
‘일부러 케일 헤니투스와 그 일행 놈들에게 마계의 문에 던져 버린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그 낌새를 파악해 보았는데. 내 감으로 보건대 그놈들은 마계의 문 근처에도 안 간 것 같다.’
‘그래도 조사해.’
‘당연하지. 암튼 내가 눈치가 귀신같은 거 알지? 걱정 마.’
도르프는 일부러 케일과 싸울 때 마계의 문을 들먹이며 그에 대한 파악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였기에 꼼꼼한 확인이 필요했고, 그 주제를 언급하는 하얀 별의 눈빛은 점점 더 서늘해져 갔다. 이에 흑마법사는 얼른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네. 지금 당장, 반드시 그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그래.”
하얀 별은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미끄럼틀을 타듯 그의 몸이 곧 지하통로 속으로 사라졌다.
흑마법사들은 더 이상 하얀 별이 보이지 않자, 얼른 통로 입구를 철문으로 도로 꽉 막았다. 죽은 마나 연기가 통로를 타고 지하로 흘러들어 가면 곰족 왕이나 다른 이들에게 곤란했으니까.
“나는 사자족 왕 도르프에게 연락할 테니, 너희는 주변을 살피면서 이 연기를 조사해!”
“네! 대장!”
흑마법사의 명령에 따라 다른 흑마법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지시를 내린 이도 얼른 하얀 별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영상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주위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래서 그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통로가 있던 입구 문 근처 모래 언덕에 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아아아-
모래가 바람에 휩쓸리며 언덕의 아래가 조금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래 속, 숨겨져 있던 작은 영상통신기록구가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에 깜짝 놀란 이들이 있었다.
‘앗, 숨겨!’
‘이거 케일한테 가져다줘야 돼! 제대로 안 하면 그 혼돈 파괴 외치는 미친놈이 난리 칠 거란 말이야!’
사아아아-
바람 정령 둘의 손짓에 다시금 바람이 일어났다. 그 바람은 모래를 움직였고, 그 덕에 영상통신 겸 영상기록구는 영상 촬영을 하는 작은 틈만을 남겨두고 모래에 가려졌다.
***
손에 쥔 영상통신구를 지켜보던 케일이 입을 열었다.
그는 메리의 보고를 들은 직후, 바람 정령이 숨겨놓은 영상통신구를 통해 하얀 별이 하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중 찝찝한 부분이 있었다.
“마계의 문에 뭐가 있나?”
그의 시선을 받은 용 혼혈이 멍하니 라온을 쳐다보다가 살짝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마계의 문은 동대륙 3대 금지 중 한 군데로 꼽히는 곳이었다.
분명 하얀 별은 케일이 마계의 문을 보았는지 혹은 들렀는지에 대해 상당히 깊은 관심을 표했다. 그렇단 말은 마계의 문이 중요한 곳임을 뜻하였다.
그런데 용 혼혈이 마계의 문을 모른다?
근처에 비밀 기지가 있었고, 용 혼혈은 그 기지에서 지냈었는데?
케일의 시선을 받은 용 혼혈은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정말로 모른다. 하얀 별은 도르프와 사예르를 포함한 몇몇만 그곳으로 데려갔고, 다른 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수많은 장치들을 설치해 두었다. 그리고 혹 근처라도 가면 누구든 간에 바로 죽여 버렸다.”
“…그런 곳이 있었으면 우리가 두 번째 비밀 기지 가기 전에 말 좀 해주지?”
“미안하다. 생각 못 했다.”
정말 미안한 얼굴로 말하는 용 혼혈은 진실로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저리 나오니, 할 말이 없어진 케일은 손가락으로 제 허벅지를 두드렸다.
“마계의 문이라…….”
케일은 마계의 문이 그냥 거대한 싱크홀이 무시무시해 보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찝찝함이 밀려왔다.
마계.
그리고 마족.
케일은 마계와 관련된 정보를 떠올렸다. 그러자 문득 ‘영웅의 탄생’에서 마족에 대해 남겨놓은 정보가 생각났다.
인어의 독을 해독하는 법에 대한 정보를 설명해 주는 것과 동시에 죽은 마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영웅의 탄생’.
예전에 고래족과 함께 하이스 섬에서 인어족과 싸울 때쯤 떠올렸던 정보였다.
왜 갑자기 이 기록이 선연하게 케일의 머릿속에 그려진 걸까?
케일은 조금 전 보았던 영상에서 흑마법사가 하얀 별에게 아부처럼 내뱉던 말을 떠올리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케일 님.
연결되어 있던 또 다른 영상통신구에서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놈이 도착했습니다.
하얀 별이 지하 공동에 도착했다는 최한의 보고.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얀 별을 맞이하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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