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2
471화.
하얀 별과 곰족 왕 사예르. 그리고 케일.
숨어서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용병왕 버드 일리스는 두 눈을 껌벅이다가 입을 열었다.
“쟤네 지금 이상한 착각을 한 것 같은데?”
그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그 눈동자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최한에게로 향했다.
“그렇죠?”
“…그런 것 같습니다.”
버드는 담담하게 답하지만 요상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최한을 바라보았다.
“…허.”
그리고 탄식을 흘렸다.
“아니, 그러니까.”
그는 머릿속 생각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쟤들 지금 케일 헤니투스가 몇 년 동안 숨어서 지들을 막으려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다고 생각한다는 거 아냐?”
“그런 것 같다! 용병왕아!”
버드의 옆에 있던 라온이 날개를 파닥이며 맞장구를 쳤다.
“…허.”
버드는 한 번 더 탄식을 흘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저들이 착각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은 납득되었다.
‘나 같아도 갑자기 나타나서 사사건건 방해하는 놈이 있으면, 오래 준비한 게 아니냐고 의심이 들 거야.’
그리고 케일이 어디 작은 방해물 수준인가?
솔직히 말해서, 케일 헤니투스와 그의 일행들은 거진 재앙급 전력이었다. 케일이 어디서 저런 강자들을 모아왔나 싶다가도 케일 곁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먹을 거 줬는데! 데리고 와줬는데!’
‘위험하다고 오지 말라면서 먹을 거 많이 줬는데!’
‘인간은 나 구해줬다! 인간 덕에 밤하늘도 처음 봤다!’
평균 9세들부터 해서.
‘뭐, 헤니투스 백작가는 우리 부자한테는 고마운 곳이지.’
‘헤니투스 가에서 요리를 배웠지. 과거에 공자님이 망나니이긴 했지만 가끔씩 착했어.’
론과 비크로스.
‘오갈 데가 없었는데. 아니, 그냥 아무것도 없는 저였는데.’
‘세상을 보여줬습니다.’
최한, 메리까지.
버드는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어떻게 이리 불쌍한 인간들만 모아놨나 싶었다. 그리고 이 불쌍한 사연을 지닌 이들을 제 울타리 안으로 넣은 케일이 신기했다.
‘무계획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케일의 행보는 계획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몇 개 들은 고대의 힘 습득 장소도 어찌 다 우연에 우연이었다.
물론 케일은 동료들이야 어쩌다 보니 불어난 것이지만, 고대의 힘은 나름 상당히 계획적으로 얻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는 라온을 빼면 거의 없었다.
“…착해서 그런가.”
버드는 케일이 착한 놈이라 그렇게 운이 좋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곧 집어치웠다. 착하다고 하기엔, 케일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밉살맞고 사람 성질나게 하는 면이 있었다.
‘냉정하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던 버드는 가끔 보았던 냉정한 케일을 떠올렸다. 그러자 슬그머니 ‘어쩌면?’이란 생각이 들어 그는 슬쩍 최한에게 물었다.
“케일이 오래전부터 준비한 건 아니지?”
그 순간 버드는 씨익 웃어 보이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순해 보이지만 묘하게 서늘한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버드는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하하! 쓸데없는 호기심은 버려야지!”
그러고는 쓰윽 최한의 시선을 피했다.
최한은 제 시선을 피하는 버드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잘됐네.’
하지만 잘된 일이었다.
버드의 물음에 마땅히 답할 말이 없던 최한이었다.
버드에게 솔직하게 ‘케일 님은 다른 세상에서 온 제 조카의 친구 김록수라서 이렇게 2년 사이에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김록수라는 인간이 원래 세상에서도 조금 유별나고 지금이랑 똑같았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지?”
최한은 버드의 혼잣말이 들려왔고, 그에 답하려 입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하하하-!”
큰 웃음소리가 텅 빈 지하 도시에 울려 퍼졌다.
케일은 허리를 앞으로 숙인 채 웃는 하얀 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곰족 왕 사예르는 케일을 보며 화를 내다가, 하얀 별의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하하하하, 큭, 하하하-!”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미쳤나?’
순간 실성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얀 별은 웃어댔다. 케일이 평소 말로는 미친놈, 미친놈이라고 해왔지만, 지금은 정말로 미친놈 같았다.
‘눈이 시뻘겋네.’
눈이 충혈되었고 목은 분노를 삼키는지 그 핏대가 세워져 있었다.
“하하하- 하, 쓰읍.”
한참을 웃던 하얀 별은 손으로 제 입가를 쓸어내리더니 케일을 응시했다.
“이상했어.”
“뭐가 이상하지?”
케일은 하얀 별의 말에 여유롭게 답하면서도 슬쩍 손을 하나 제 등 뒤로 옮겼다. 저 멀리 그의 등을 주시하고 있던 누군가에게 케일의 수신호가 전달되었다.
그러나 케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하얀 별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하얀 별의 입이 열렸다.
“최한도 그렇고, 너도 시간이 나처럼 뒤틀렸어.”
케일은 모고르 제국 수도에서 펼쳐졌던 연금술 종탑 전투를 떠올렸다.
그때, 처음 마주했던 하얀 별은 그와 최한을 보며 시간이 뒤틀렸다고 했었다.
“그런데 네 시간이 뒤틀린 건 알겠는데 뭐가 뒤틀렸는지 알 수가 없더군.”
“내가 시간이 왜 뒤틀려? 무슨 헛소리야?”
“아니. 난 헛소리를 하지 않았어. 오히려 네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겠지.”
뭐?
대충 하얀 별의 장단에 맞추려던 케일은 너무나도 단호한 그의 태도에 잠시 멈칫했다.
예전에 하얀 별이 최한을 보고 했던 말.
‘저 검사는 시간의 축이 뒤틀려있군.’
오로지 케일에게만 들리도록 그의 머릿속에 전했던 말들.
‘이 세계에 속한 자가 아니네.’
그리고 뒤이어 케일을 보면서도 했던 말.
‘더욱이. 너도 저 검은 머리처럼, 그리고 나처럼.’
하얀 별, 최한, 케일의 공통점.
‘시간이 뒤틀렸구나.’
케일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뒤로한 채 하얀 별의 눈빛을 마주했다.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또한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시간의 축이 뒤틀린 최한. 퍼즐이 맞춰지니 답이 보이더군.”
최한이 이 세계 사람이 아님을 아는 하얀 별. 그렇기에 그는 작은 단서가 주어지자, 곧바로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네란 베로우와 최한을 연결 지을 수가 있었다.
그 단서는 바로 ‘글자’.
최한과 네란 베로우를 제외한 이 대륙의 어느 누구도 해석하지 못했던 글자.
이 단서를 마주한 순간, 그는 깨달았다.
네란 베로우와 최한은 그 글자를 쓰는 세상에서 왔구나.
“그래서 나는 최한을 잡으려고 했어.”
숨어서 듣고 있던 타샤, 버드, 메리, 비크로스, 온과 홍이 놀란 눈으로 최한이 숨어있는 위치로 시선을 보냈다.
그들은 하얀 별이 말하는 시간의 축을 비롯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말들보다 하얀 별이 최한을 노린다는 사실 때문에 놀랐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일행들이었다.
케일과 최한이 말하지 않았을뿐더러, 두보리 영주성에서 펼쳐졌던 환각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케일, 너는 안 보여. 시간이 뒤틀렸는데 무엇이 뒤틀렸는지 보이지가 않아.”
하얀 별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케일을 응시했다.
최한처럼 다른 세상에서 온 놈도 아니다.
자신처럼 환생하는 놈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어째서 저놈은 시간이 보이지 않을까?
잊고 있던 정보가 새로이 하얀 별의 머릿속을 채우며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넌 어떻게 시간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하지?”
시간이 뒤틀렸는지 아닌지. 어떻게 하얀 별은 저다지도 잘 안단 말인가.
에르하벤조차도 케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하얀 별은 정확히 케일의 정체에 대해서는 몰라도 무언가 다르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느꼈다 수준이 아냐. 확신이야.’
하얀 별은 확신하고 있었다.
문득 케일은 하얀 별이 죽은 나무를 쓰다듬으며 이 공간의 정체를 파악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설마 정말로.
‘하얀 별은 시간에 대한 능력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무슨 힘으로?
아직 케일이 보지 못한 하얀 별의 고대의 힘은 나무 속성이었다. 그런데 그게 시간과 관련되었다고?
‘나무 속성인데?’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럼 무엇이지?
케일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씨익.
케일은 하얀 별의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하얀 별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케일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껏 그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던 이들은 많았다.
알베르 크로스만도 물었고, 세계수도 물었고, 하얀 별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은 이전들의 것과는 느낌부터 달랐다.
하얀 별의 목소리가 이어서 머릿속에 들려왔다.
-빙의지? 케일 헤니투스 몸에 있는 넌 누구지?
제기랄.
들켰다.
그러나 다급한 마음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것과 달리 케일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때, 하얀 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젠 입 밖으로 내뱉었다.
“몸에서 몸으로. 옮겨 다니면서 준비했던 거야. 아주 오랫동안.”
음?
케일이 멈칫했다.
하얀 별은 그 멈칫하는 모습에 더 눈빛을 번뜩이며 짓씹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옮겨 다니면서 넌 계속 살아왔던 거야.”
하얀 별은 점점 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뒤틀린 케일.
최한처럼 차원 이동도, 하얀 별처럼 환생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빙의나 회귀일 터. 그래서 그중 더 오랫동안 하얀 별의 계획을 막아낼 준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인 빙의에 대해 찔러보았다.
그러자 케일이 반응했다.
평온한 얼굴을 하던 놈이 결국에는 제 말에 멈칫했다.
그간 케일의 가짜 표정을 많이 겪었던 하얀 별이었다. 이 정도면 케일의 가짜 표정은 몰라도 진짜 표정은 알아챌 수 있었다.
저 멈칫하며 당황한 케일의 얼굴.
‘저건 진짜다.’
하얀 별은 제 생각이 맞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케일은 하얀 별의 생각대로 당황했다.
‘아니, 좀 이상한데?’
이걸 또 어떻게 저리 생각한데?
케일은 하얀 별의 사고방식에 놀라는 중이었다.
빙의가 맞기는 맞다. 하지만 하얀 별의 생각대로 아주 오랫동안 이 사람 저 사람 빙의하며 그의 야망을 막으려고 준비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책 읽으면서 쉬다가 잠들었더니, 딴 세상에 온 케이스였을 뿐이었다.
“흐흐. 그래, 지금껏 네가 행한 일들은 고작 열여덟, 스무 살짜리가 행할 판단과 사고방식이 아니었어.”
그렇긴 그렇지?
김록수로 살아온 인생도 있으니까.
“어떻나? 내 말이 다 맞지?”
케일은 하얀 별의 물음에 솔직히 답했다.
“아니?”
“모른 척하기는. 크큭.”
저 새끼 왜 저래?
케일은 갈수록 가관인지라 이제는 기도 안 찼다.
그러나 곧 케일의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오른팔을 들어올리는 하얀 별이 보였다. 불길했다.
“저 자식이-!”
케일은 하얀 별의 오른손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천장을 향해 뻗어나갈 듯한 불길이었다.
-인간아! 하얀 별이 지하 공동 부수려나 보다! 곰족 왕이 있는데도 부술 건가 보다!
그러니까!
곰족 왕에게 죽은 마나 연기는 독이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시선이 사예르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하얀 별의 음습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내가 착각을 했어.”
“으아악!”
사예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하얀 별이 중얼거렸다.
“입 닥쳐.”
“알았어.”
바람이 정사각형 벽을 만들어 사예르를 에워싸고 있었다. 사예르는 씨익 웃으며 입을 다물었고, 케일은 하얀 별의 불의 검이 화살처럼 천장을 향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안 돼!”
케일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하얀 별은 시선을 돌려 그런 케일을 쳐다봤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하얀 별이 그리 말하며 웃은 순간.
“안 될 건 없지. 그렇지만 내가 먼저 하고 싶었거든.”
“뭐?”
콰아아앙!
굉음이 하얀 별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거대한 지하 도시. 그 도시의 원형 천장. 그 거대한 원의 한 곳에 폭발이 일어났다.
“시작이야.”
케일의 그 말이 하얀 별의 귓가에 닿았을 때.
쩌저적.
원형 천장 테두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콰아아아앙-!
뒤이어 불의 검이 지하 공동 천장 중앙에 꽂히며 거대한 굉음을 터트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폭발음이 이어졌다.
콰아아, 콰앙- 콰아앙!
천장 테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케일 헤니투스-!”
하얀 별은 폭발하는 천장을 보며 웃고 있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버려진 지하 도시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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