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4
473화.
그러나 에르하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죽은 피는 안 됩니다. 살아날뛰는 생명체가 내뿜는 피. 그것만이 죽음의 상극이지요.”
발렌티노는 갑자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들어선 안 되는 비밀을 들은 것 같았다.
심장이 아프게 찔리는 것 같았다.
“인간 생명력의 상징은 무엇입니까? 그건 거침없이 뛰는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아니겠습니까? 아! 그리고 적은 피는 안 됩니다. 상당한 양의 피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방식으로 싸우면 과다출혈로 먼저 죽는다는 소리가 나오지요.”
발렌티노의 심장 속 ‘양심’이라는 존재가 아프게 그를 찔러왔다.
“어쨌든 인간이 가장 효율적으로 죽은 마나와 대항하는 방법은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거나 온몸에 상처를 내어 싸우는 겁니다.”
사무적으로 감정 없이 말하는 에르하벤을 바라보는 발렌티노의 미간이 깊이 파였다.
“…아니… 그런…….”
그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머릿속은 여러 단어들로 뒤죽박죽이건만, 차마 말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발렌티노는 마법사의 담담한 얼굴 위로 희미하게 생기는 미소가 보였다. 기쁨이 아닌 슬픔이 담긴 미소였다.
“참으로 슬픈 방법이지요?”
슬프다.
그 단어를 듣자, 발렌티노는 케일 헤니투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로소.
그는 이제야 죽은 마나 연기 속에서 싸운다는 것의 무게를 알 수 있었다.
케일 사령관이 피칠갑을 한 채 싸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죽은 마나가 사람에게 위험한 독이고, 그 환경 속에서 적과 싸우는 건 더 끔찍한 일이란 것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성벽 난간을 붙잡고 있던 발렌티노의 손이 떼어졌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주춤. 발렌티노가 한 걸음 성벽 난간에서 물러섰다.
‘물러서는군.’
에르하벤은 이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발렌티노는 케일에 대한 경탄을 느끼면서도 에르하벤의 이야기를 듣자 밀려오는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인 공포였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을 인지한 순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했다.
에르하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있던 병사들도, 슬쩍 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귀족들도. 모두가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에르하벤을 이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러면 사막에 들어가는 이가 더 줄겠지.’
다크엘프들의 지하 도시가 들킬 확률이 더욱더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케일이 얼마나 힘든지 다들 조금이라도 알게 될 거야.’
케일에게 그저 영웅이라고,
그저 대단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가 걸어가는 길을 진짜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케일만이 아니지.’
최한, 메리, 꼬맹이 등등.
많은 이들이 죽음을 곁에 두고 하얀 별과 싸운다.
에르하벤은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면 카로 왕국도 그 박복한 놈에게 뭐라도 주겠지.’
카로 왕국은 미안해서라도 케일에게 뭔가를 줄 것이다. 명예나 권력을 싫어하는 놈이니, 아마도 많은 재물이 주어지리라.
물론 에르하벤이 이런 말을 꺼낸 것은 보상이나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간이 없어.’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하얀 별은 그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없앨 것이지만, 그가 죽고 난 후에 이 세상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미리 사람들에게 알리고 말해놓는 것이다.
케일이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그러니 미안하고 고맙다면 그만 시키라고.
그는, 그 녀석들은 이제는 쉬고 행복하게 삶을 살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 영웅이랍시고 나중에 힘든 일 떠맡기지 말라고.
그 녀석들의 착한 마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이것이 에르하벤이 발렌티노는 물론 주위 귀족과 병사들에게 들리도록 말하는 이유였다.
이런 말들은 금방 퍼지기 마련이니까.
‘나도 별수 없는 이기적인 용이군.’
에르하벤은 자신의 행동도 결국 제 아이들만 생각하여 한 행동임을 느끼며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쿠우우웅!
땅이 흔들렸다.
“으아악!”
“뭐야, 뭐야?”
놀란 귀족들이 성벽이나 난간을 붙잡았다.
“저, 저게 뭔가?”
두려움에 가득 찬 발렌티노가 사막 쪽을 가리키며 에르하벤을 바라봤다.
이미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에르하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쿠우우웅! 쿠우웅!
땅이 몇 번 더 흔들렸다. 저 멀리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사막의 중심. 그곳에서 휘몰아치는 검은 회오리가 보였다.
사람들 눈에 모두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검은 회오리.
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아오르는 회오리바람.
에르하벤은 몸을 띄웠다.
“어, 어딜 가나? 우, 우리는?”
귀족 중 누군가가 에르하벤을 보며 황급히 내뱉었고, 에르하벤은 그런 그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발렌티노에게 말했다.
“위에 올라가서 제대로 보겠습니다.”
“그, 그러게.”
그나마 의연한 발렌티노를 가샨에게 맡긴 에르하벤은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시선은 검은 회오리. 사막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짜로 만든 지하 도시가 있는 곳이었다.
***
쿠우웅! 쿠웅!
천장이 무너지며 돌덩어리들이 지하 도시로 떨어져 내렸다.
“으아악!”
“피해! 멍 때리지 말고 피하란 말이야!”
“주군!”
사자족과 하얀 별 수하들이 돌덩어리를 피하거나 부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너지는 지하 도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곧 이곳에 들어찰 죽은 마나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금도 무너져 내리는 천장을 따라, 뚫린 구멍을 따라 스멀스멀 죽은 마나 연기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군은 그들에게 조금도 시선을 두지 않고 있었다.
“도망가게?”
케일은 하얀 별을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의 주위에는 바람벽에 갇힌 사예르와 더불어 어느새 지상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내려와 함께 하고 있었다.
“너무 모양새 빠지는 거 아냐?”
케일은 그 모습을 비웃었고, 하얀 별은 담담히 응수했다.
“너야말로 뒤로 도망치고 텔레포트 진을 펼치면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케일은 천장이 무너지는 순간, 하얀 별과 멀어지며 도시의 중심부 쪽으로 향했다.
우우우우웅-
또한 이미 케일의 몸은 환한 텔레포트 진에 감싸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텔레포트 진이 빛을 발하며 일행들이 텔레포트 되고 있었다.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나 말이야. 원래라면 여기서 너 죽거나 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하얀 별이 이곳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케일은 원래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었다.
하얀 별이 땅의 힘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케일과 싸울 테니까. 그러나 지금의 하얀 별은 그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뒤로 물러서는 케일이나 도망치는 일행들을 조금도 붙잡으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계획이 틀어진 상황에서 케일은 굳이 죽은 마나 연기라는 폭탄을 안고서 하얀 별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인간아! 어서 가자! 다 이동시켰다! 좀 있으면 죽은 마나 연기가 여기까지 닿는다!
지하 도시 입구보다 지하 도시 중심이 조금 더 지대가 낮았다.
그렇기에 입구 쪽 하얀 별에게서 멀어진 케일이었다.
“크아악!”
“안으로 도망쳐!”
하얀 별의 수하들이 입구 쪽에 내려온 죽은 마나 연기를 피해 케일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인간아! 가자!
케일 일행은 라온과 그만 빼면 모두 이동한 상태.
하지만 케일은 아직 이동하지 않았다.
“왜 안 가지?”
하얀 별이 물었고,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안 그래도 지금 가려고.”
케일은 그 말과 함께 라온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파아앗!
환한 빛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케일은 텔레포트 되며 자신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본 것을 되새겼다.
‘죽은 마나 연기가 스며들었다.’
케일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이유.
그는 하얀 별에게 닿는 죽은 마나 연기를 보았다.
검은 연기는 하얀 별의 피부에 닿자마자 스며들었다. 마치 자석에 달라붙는 철가루처럼 빨려 들어간 검은 연기는 흔적도 없이 하얀 별의 피부 속으로 사라졌다.
‘…알아봐야겠어.’
이제야말로 하얀 별과 죽은 마나의 상관관계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모든 실마리가 풀리고 고대부터 이어져 온 ‘하얀 별’이란 이름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마계의 문.’
그 존재가 찝찝했다.
케일의 눈앞이 환한 빛으로 감싸였다.
파아앗-!
그의 몸은 텔레포트 되며 그가 있던 자리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텅 빈 자리를 지켜보던 하얀 별에게 흑마법사가 다가왔다.
“주군, 이동하겠습니다.”
하얀 별은 흑마법사의 말에 손을 들어보였다.
“잠시.”
하얀 별은 손을 뻗었다. 죽은 마나 연기가 그에게로 몰려들며 거대한 검은 회오리바람을 만들었다.
그 연기는 서서히 하얀 별에게로 스며들었다.
흑마법사가 이를 경이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에게는 이미 연기를 흡입해 죽어버린 사자족과 암 단원 몇 명은 보이지도 않았다.
동시에 아쉽다는 듯 입을 쩝쩝거렸다.
‘나는 죽은 마나 연기 한 톨도 가지지 못하겠군.’
하얀 별 주위에 있던 죽은 마나 연기가 하얀 별에게로만 몰려들며 공기가 깨끗해졌다.
흑마법사는 흡수할 죽은 마나 연기가 사라져 아쉬웠고 반대로 사예르는 편히 숨 쉬며 피곤한 몸을 바람벽에 대충 기댔다.
“사예르.”
“왜?”
“…마계의 문으로 가봐야겠어.”
사예르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는 죽은 마나 연기를 흡수하는 하얀 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왜?”
“케일 헤니투스. 저놈의 존재에 대해서 물어봐야 할 거 같아.”
하얀 별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사예르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마계의 문까지 가서 물어볼 일은 얼마 없었다.
“…설마, 케일 헤니투스가?… 아니지?”
사예르는 불안을 담아 말했고, 하얀 별은 그에 대해 가타부타 답하지 않은 채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어쩌면 저쪽에서 준비한 놈일 수도 있으니까 확인해야 돼.”
“에이, 설마.”
“…또 다른 세상의 힘을 받은 건 나만이 아닐 수도.”
고개를 가로젓던 사예르는 하얀 별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고대의 하얀 별.
갑자기 세상에 나타나 고대 시대 세상을 지배할 뻔했던 존재.
그에 대한 비밀을 하얀 별과 사예르, 도르프만이 알고 있었다.
사예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얀 별이 지금 하는 저 예상이 맞다면, 케일 헤니투스는 그들에게 상당히 위험하고 반드시 없애야 할 적이 되었다.
하얀 별은 흡수하던 것을 멈추고 수하들에게 말했다.
“이만 가지.”
“다 흡수 안 하고?”
하얀 별은 고개를 들었다. 아직 그의 회오리바람에 닿지 못한 죽은 마나 연기가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 때문이었다.
마나가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죽은 마나 연기를 하얀 별이 모두 흡수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고룡이 움직였다. 이깟 얼마 안 되는 죽은 마나 연기보다 케일 헤니투스를 알아보는 게 급해.”
어차피 사막에 퍼진 양은 그에겐 미미했다.
하얀 별은 이보다 중요한 것을 먼저 알아봐야 했다.
곧 하얀 별과 사예르, 흑마법사들, 살아남은 수하들이 떠났고 지하 도시에는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데구르르르.
영상통신구 몇 개가 덜그럭덜그럭 움직이는 작은 해골 몬스터들 뼈 속 안을 굴러다녔다.
그리고 이내 작은 해골 몬스터들은 그들의 주인인 네크로맨서가 가라고 일러둔 고룡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금 용 할배야! 인간이 영상통신구 챙겨서 하얀 호랑이랑 오란다!
에르하벤은 꼬맹이의 전언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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