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77
476화.
동대륙 3대 금지 중 한 곳인 빛의 성.
그 하얀 사막에 자리한 하얀 성.
로드 쉐리트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남겨두었던 그 성은 이제 라온의 검은 마나를 품고 어둠의 숲에 자리하고 있었다.
막 텔레포트로 도착한 케일이 그들을 반기는 로드 쉐리트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
퍽!
“크윽!”
그의 어깨를 거세게 치고 쏜살같이 날아가는 검은 용이 보였다.
-인간아! 미안하다!
짧은 사과를 남기고서 날개를 한껏 파닥이며 날아간 검은 용은.
“라온.”
쉐리트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부드럽게 이름을 부른 순간, 급정지하듯이 멈춰 섰다. 1m. 딱 그만큼 떨어진 곳에서 멈춘 라온은 쉐리트를 쳐다보지 못한 채 괜히 홀의 천장을 쳐다보았다.
“…돌아왔다!”
여전히 천장에 시선을 둔 채 냅다 외치곤 슬그머니 뒤로 날갯짓해 케일의 등에 달라붙었다.
냐아아옹!
“갔다 왔는데!”
도리어 온과 홍이 총총 가벼운 걸음으로 쉐리트의 곁으로 편히 다가갔다. 온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고, 케일의 어깨 너머 이쪽을 쳐다보는 라온에게 씨익 웃으며 앞발로 이리 오라 손짓했다.
“크흠, 큼! 부르니까 간다!”
온의 손짓에 라온은 슬금슬금 다가가 온과 홍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차지했다.
로드 쉐리트는 그 광경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한 감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케일은 그 화목한 광경에서 시선을 돌려 용 혼혈을 쳐다보았다.
“하.”
절로 한숨이 나왔다.
라온을 힐끗거리던 용 혼혈이 로드 쉐리트를 뚫어질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넋이라도 나간 표정이었다.
그 순간, 용 혼혈과 케일의 눈이 마주쳤다.
쓰윽, 용 혼혈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검은 성 안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 시작했다.
“환장하겠네.”
“케일님, 왜 그러십니까?”
케일은 최한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할 말이 많은데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로드 쉐리트에게 다가갔다.
“쉐리트님. 라크는 어딨습니까?”
푸른 늑대족 소년 라크. 그는 현재 로드 쉐리트에게 방패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배우는 중이었다.
“아.”
로드 쉐리트가 희미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지어진 미소는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 미소 사이로 흘러나왔다.
“훈련 중이야.”
“훈련이요? 방패술?”
“음…….”
로드 쉐리트는 살짝 고민하더니 알맞은 단어를 찾았다는 듯 밝게 말했다.
“지옥 훈련 중이야.”
뭐, 이런.
순간 케일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뻔했다. 쉐리트는 살짝 찡그린 케일의 표정을 보고는 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진짜 지옥은 아니야! 그냥 아주 강력한 훈련이어서 그렇게 표현해 봤어.”
아주 강력한 훈련이 ‘아주 고되고 빡센 훈련’이라고 들려왔다.
“라크도, 아이들도 신나서 하던걸? 즐거워하던데? 하루하루 강해지는 것 같다고. 저번에 노을을 보면서 아이들이 허허허 웃더라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케일은 쉐리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이 왠지 모르게 ‘라크를 비롯한 늑대족 아이들이 지친 훈련 끝에 지는 노을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라고 들려왔다.
‘라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는데?’
물론 쉐리트가 정말로 라크와 아이들에게 무리한 훈련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과 홍을 대하는 것만 봐도 어린아이를 상당히 아끼는 드래곤이었으니까.
“다 같이 돌아온 건 참으로 기쁘지만,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어?”
로드 쉐리트는 케일과 일행들을 살피며 물었다. 그러다 그녀는 케일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쉐리트는 케일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서는 이가 보였다. 로브의 후드를 푹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이였다.
“…어?”
얼굴을 가린 로브의 남자를 지켜보던 쉐리트는 순간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얕은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쉐리트님. 잠시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그리곤 그는 라온에게 손짓했다.
“라온, 너는-.”
너도 오라고 말하려던 케일은 멈칫했다.
저 녀석도 함께 들어도 될까? 아직 어린데?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져, 결국 라온을 부르던 것을 멈추려 했다.
“같이 말하겠다.”
그때였다. 용 혼혈이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서며 케일에게 말했다.
“같이 말하고 싶다.”
그는 ‘그러다 라온이 상처받으면 어쩌려고?’라고 말하는 듯한 케일의 눈빛에 입술을 꾹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다 책임지겠다.”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있을지나 모르겠는데.”
냉정한 그의 말에 용 혼혈이 움찔했지만, 케일은 라온에게 마저 손짓했다. 당사자가 말하고 싶다는데, 케일이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아! 무슨 대화를 하나?”
그저 라온이 덜 상처받을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뿐이었다.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하얀 별이나 마계 문제보다 더 어려웠다.
일행들은 그런 케일을 바라봤고, 케일은 일행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온과 홍은 최한이랑 같이 라크 찾으러 갔다 와. 최한, 라크를 데려와. 메스나 다른 애들도. 얼굴 한번 봐야지. 그리고 비크로스, 너는 저녁 준비 좀. 아! 해리스 마을에도 들러서 영주성에 내가 도착했단 소식을 전해.”
“케일님, 넷이서만 따로 대화하는 겁니까?”
케일은 최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곤, 용 둘과 용 혼혈을 하나 데리고 성의 응접실로 향했다.
***
“인간아! 왜 이렇게 넷이서만 대화를 하나?”
응접실에 네 존재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케일은 제 옆에 앉은 라온의 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라온. 용 혼혈 염색 마법 풀어줘. 용 혼혈, 너도 후드 벗어.”
로드 쉐리트의 눈이 커졌다.
용 혼혈이라고?
쉬이 볼 수 없는 존재에 그녀는 아까 전 그녀가 느꼈던 기이한 감각이 용 혼혈이라서 느낀 것인가 싶었다.
“알았다, 인간아! 용 혼혈아! 염색 풀어준다!”
라온의 검은 마나가 용 혼혈에게 닿았다. 쓰윽, 후드를 벗는 용 혼혈의 머릿결이 붉은색에서 본래의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로드 쉐리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용 혼혈이 아니다.’
용과 다른 생명체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다 죽어가는 파리한 안색의 사내는 로드 쉐리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쉐리트는 저 남자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이상했다.
‘왜 나를 저렇게 바라보지?’
그리고 이 이상한 느낌은 무엇이지?
로드 쉐리트는 이제 신체도 없는 허상이건만, 제 손등에 꼭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이 남자를 데려온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그 시선을 받고는 용 혼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부터 가만히 들을 테니까, 일단 네가 먼저 말해봐라. 네 입으로 다 말해.”
케일은 잘게 떨리는 용 혼혈의 손끝이 보였다.
빌어먹을.
“못하겠으면 내가 하고.”
“…아니다.”
용 혼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지금도 온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그를 깊게 찔러왔건만, 이 순간 들이마시는 숨이 그는 더 아픈 독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동자에 라온과 로드 쉐리트가 담겼다.
하나는 검었고 하나는 하얬다. 극과 극으로 달랐다. 그런데 둘은 서로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서로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분명 로드라고 했다.’
케일이 눈앞의 여자를 로드라고 하였다.
분명 드래곤 로드일 터.
용 혼혈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온몸이 떨려와 그 떨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신은 저 드래곤 로드의 죽은 아이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다.
두려움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기대감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용 혼혈은 자신의 감정에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움이라니.
자신에게는 제 심장을 구성하는 용의 기억과 감정은 없었다. 그러니 그리움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했다.
자신은 여전히 그를 판 부모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리움이 맞기도 했다.
가족.
평생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기대감이 되었다.
용 혼혈은 그런 자신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로드 쉐리트와 라온이 자신을 죽이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그는 마음을 비웠다. 감정이라는 것은 죽을 날만이 남은 그에게 사치였으니까.
“저는.”
그는 로드의 눈을 피하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이리.
왜 이다지도 목소리가 떨리는 걸까.
감정을 비웠는데도 왜 이럴까?
용 혼혈은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인간이었습니다.”
케일은 그 순간 눈을 감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지금부터는 그가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자리를 비킬까 생각도 했었지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이 자리에 있기로 했다.
“…부모님은 저를 하얀 별에게 팔았고…….”
케일이 한 번 들었던 이야기가 용 혼혈의 입에서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존댓말을 하는 건 처음 보네.’
케일은 용 혼혈이 누군가에게 존댓말을 하며 예의 차리는 걸 처음 보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라온의 등을 쉼 없이 쓰다듬었다.
그 와중에도 용 혼혈의 떨리는 목소리가 펼쳐놓은 이야기가 그의 귓가에 닿았다.
하얀 별에게 팔린 뒤, 그와 함께 이동하다가 어떤 동굴에 갇힌 이야기.
그리고 키메라가 되었던 이야기.
…무엇으로 키메라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완전히 키메라가 된 날, 하얀 별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케일은 라온의 등을 더욱더 조심스럽게, 쉬지 않고 쓰다듬었다.
“네 심장에 붉은 용의 심장을 박아 넣었다.”
순간 찰나였지만, 눈을 감은 케일에게 누군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 혼혈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네 심장은 마지막 드래곤 로드의 피가 섞여 있어. 그러니 넌 분명 위대한 용이 될 거다. 용이 되어, 나의 뒤를 이어. 너라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케일은 눈을 떴다.
쿠우우웅!
응접실이 진동했다.
그는 제 품으로 파고드는 라온을 황급히 보듬어 안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응접실뿐만 아니라, 검은 성 자체가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케일은 용 혼혈의 멱살을 움켜쥔 로드 쉐리트를 볼 수 있었다.
분명 허상이다. 그렇지만 기억과 자아가 존재하는 로드 쉐리트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용 혼혈의 멱살을 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붉은 알.
그 글자가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도저히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네, 네가-, 아니, 내 아이의 심장이- 내 아이가,”
그녀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용 혼혈을 응시했다. 그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인간아, 인간.”
“그래, 그래.”
케일은 제 품 안의 라온 등을 끊임없이 쓰다듬었다.
라온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 몸이 잘게 떨렸다. 예전에 스텐 후작가의 베니온 스텐에게 복수를 할 때와는 달랐다.
케일은 여섯 살 아이를 품에 꽉 안았다.
“듣기 싫으면 나갈까?”
감겨있던 라온의 눈이 떠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반드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줄 테니까.”
라온은 잔잔하게 속삭이는 케일의 목소리가 귓가를 지나 심장에 닿았다. 평소처럼 약간 차가운 목소리 톤이었지만, 사뭇 다정했다.
라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들을 거다. 대신 인간이 옆에 있어 줘야 한다.”
라온은 고개를 돌렸다. 로드 쉐리트가 용 혼혈의 멱살을 잡은 채 라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온은 그 시선을 받으며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 엄마도 같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로드 쉐리트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녀는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과 분노를 삼켰다. 대신 떨리는 손에 힘을 풀었다. 용 혼혈을 잡고 있던 멱살이 풀렸다.
“쿨럭, 쿨럭!”
멱살을 잡혀 있던 용 혼혈이 기침을 하며 몸을 가누었다.
진동하던 검은 성이, 로드 쉐리트의 마음을 따라 흔들리던 성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도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제 옷깃을 움켜쥔 그녀의 두 손은 여전히 떨렸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가 용 혼혈에게로 향했다.
“계속, 계속. 다 말해봐.”
그 말에 용 혼혈은 자세를 다시 바로잡으며 입을 열었다.
“쿨럭! 크읍, 쿨럭!”
그러나 계속해서 나오는 기침에 그는 말을 멈춰야 했다.
로드 쉐리트가 잡은 멱살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기침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덜덜 떠는 손으로 전해지는 힘은 너무나도 연약해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로드가 받은 충격이 느껴졌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 상태의 용 혼혈은 격렬한 통증을 평소 다스려왔지만 로드 쉐리트에게 멱살이 잡히는 순간 그 통제를 놓쳐버렸다.
저를 보며 눈물이 차오르면서 분노로 가득해진 눈동자. 하지만 끝내 눈물은 흘리지 않는 눈동자.
이를 보는 순간, 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제 자식에 대한 소식을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들었고, 제 아이가 죽고 난 뒤에도 그 심장이 파헤쳐져 키메라의 재료로 쓰였다는 이야기.
용 혼혈은 제 멱살을 잡은 쉐리트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냥, 울고 싶어졌다.
자신이 나쁜 놈인데,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도 눈물을 삼켰다.
울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는 겨우 기침을 삼켜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순간 이성을 잃을 만큼 감정이 뒤흔들렸던 로드 쉐리트는 조금 진정되자, 그런 용 혼혈을 복잡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아이 심장을 제 것으로 만든 이였지만.
‘…저 아이도 원해서 저리된 것이 아니니.’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굴에 갇혀 키메라가 되어야 했던 용 혼혈의 어린 시절.
쉐리트는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들이 치솟아오르고 가라앉으며 요동쳤다.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웠다.
그 순간에도 용 혼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키메라가 된 후, 용 심장을 몇 개 먹으며 성장했습니다. 1차 성장을 하였고, 그다음에는…….”
2차 성장은 했지만 3차 성장은 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가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들.
그러다 케일과 엮이며 벌어진 일들.
“…검은 알은 레디카에게 서대륙 동굴 어딘가에 버리라고 했고…….”
검은 알을 서대륙에 버리라고 말한 뒤 보온 마법이나 꾸준한 방문을 지시했던 이야기도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하!”
로드 쉐리트가 기가 차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용 혼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더 복잡해져 갔다.
케일은 그런 그녀의 심정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녀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조금은 이해되었다.
용 혼혈이 제 입으로는 버렸다고 했지만, 사실 숨겨주고 보호하려 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케일 헤니투스에게 들었는데, 알고 보니 레디카가 그 검은 알을 스텐 후작가에 팔아 버렸고…….”
케일은 라온을 바라봤다.
무엇이 담겼는지 알 수 없는 검푸른 눈동자가 용 혼혈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니온 스텐에 의해 검은 동굴에 갇혀 구속된 채 사육되었던 라온.
이 검은 용은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지금 듣고 있었다.
케일은 라온의 심정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라온을 더욱더 꽉 껴안았다. 해줄 게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저는 인간이 되었고 용의 힘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곧, 곧-”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용 혼혈은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때, 로드 쉐리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죽을 상태이고?”
용 혼혈의 눈동자가 쉐리트에게로 향했다.
쉐리트와 용 혼혈. 둘의 시선이 마주했다. 용 혼혈은 달싹이던 입을 열었다.
“네. 곧 죽습니다.”
그 순간, 용 혼혈은 결코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일그러지는 로드 쉐리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꼿꼿하게 앉은 그녀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나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나무가 소리 없이, 눈물 없이 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지켜보던 용 혼혈의 입이 열렸다.
한없이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응접실의 적막을 깼다.
“죄, 죄송합니다.”
용 혼혈은 고개를, 몸을 한없이 아래로 숙였다.
케일은 결국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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