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8
47화.
왕세자 알베르는 갑자기 떨떠름해지는 케일 헤니투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내뱉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이죠?”
뭐 이런 질문을 다 하냐는 표정이었다.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렸다.
“하. 그래, 그렇지. 인간이지.”
케일은 자신과 왕세자 본인을 가리키는 알베르의 손가락을 볼 수 있었다.
“너도, 나도 모두 인간이지.”
그 순간 검은 용이 말했다.
-거짓말이다. 완전한 인간은 아니다.
용아. 그만하면 안 되겠니. 케일은 표정 관리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검은 용과 케일 사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검은 용은 시도 때도 없이 케일에게 말할 수 있으나, 케일은 불가하다는 점이었다. 일방소통이었다.
마법 실력이 약한 게 죄였다.
-위대한 용생 4년 만에 처음 보는 분위기를 지닌 존재다.
용생 4년. 검은 용은 4년 동안 본 것이 본인 용과 인간, 그리고 근래에 만난 고양이족과 늑대족 인간들이었다.
왕세자는 이 범위 밖이란 소리였다. 케일은 자신을 쳐다보는 왕세자에게 말했다.
“그렇죠. 인간이 별다른 게 있습니까. 같이 살면 인간이지.”
그러니 검은 용의 말은 잊자. 케일은 그리 마음먹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입을 꾹 다문 채 케일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별다를 것 없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이런 단어는 그만 들을 수 없는 것일까. 고민하는 케일에게 왕세자는 말했다.
“만찬장에서는 긴가민가했는데 너에게서, 네 근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냄새요?”
케일은 정색했다.
“방금 전에 씻었습니다.”
왕세자는 케일의 정색에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닫았다. 케일은 왕세자 알베르의 깊이 파이는 미간의 주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런 기색을 지우며 본론을 꺼냈다.
“이미 수를 다 아는 이들끼리 쓸데없는 포장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보상은 무엇을 원하지?”
알베르는 팔짱을 낀 채 케일에게 물었다. 그가 밤이 다 되어서야 케일의 병문안을 온 것은 뒤처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란 이유도 있었지만 케일 헤니투스에 대한 자료를 봐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자료가 없었다. 있긴 했지만 그건 자료가 아니었다.
그냥 놀기 좋아하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망나니 케일 헤니투스. 그건 자료가 아니었다. 알베르 눈앞의 케일은 망나니가 아니었다.
지금도 봐라.
“저하, 그러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망나니가 이런 말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왕세자는 솔직하게 말했다.
“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하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왕가가 케일에게 보상을 내걸면서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오늘 일은 왕가에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트집이 되어선 곤란했다. 그래서 요구하는 것이었고 케일이 중립인 헤니투스여서 내걸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 왕가에 대해 물으면 칭찬을 해줬으면 하네.”
“더불어 왕세자 저하의 그 넓은 마음에 대해서도요?”
“그렇지.”
알베르와 케일은 둘 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상당히 닮아 있었다.
“어차피 고대의 힘이니, 자네는 오늘 보인 게 다 아닌가?”
“그렇죠. 사실 저것 말고는 쓸모없는 힘이죠.”
케일은 대답하는 자신을 대놓고 탐색하는 알베르의 눈빛에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케일이 책에서 읽기로 알베르 왕세자는 고대의 힘에 대해서 다른 이들보다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물론 지금의 케일보다는 잘 몰랐지만, ‘치유의 별’ 소지자인 만큼 어느 정도는 알았다.
‘그리고 보니 ‘치유의 별’을 왕세자의 어머니가 주었다지?’
케일은 문득 떠오른 기억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그런 그에게 왕세자는 보상에 대해 물었다. 그 말투는 무엇이라도 들어줄 듯 대범했고, 그의 자세는 편안했다.
“무엇을 원하지? 가문? 동북부 해안 투자 건? 아니면 동북부 권력 안정화?”
그래서 케일은 그처럼 편히 답했다.
“그건 제 것이 아니잖습니까.”
“…네 것이 아니라고?”
케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알베르의 앞에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한테 주십시오.”
케일이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알베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이 망나니의 속내를 알아챘다. 망나니로 살아왔지만, 결국 인간은, 아니, 살아가는 존재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싶고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은 법이었다. 결국 가족보다, 주위 사람들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럼 자네는 무얼 갖고 싶지? 작위? 훈장? 수도에서 본인 권력 기반을 다지고 싶은가?”
질문을 던진 알베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케일은 알베르의 예상과 달리 그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어 보였다. 모두 아니란 소리였다. 그리고 한 글자를 말했다.
“돈.”
“…뭐?”
멈칫하며 되묻는 알베르에게 편히 사는 게 가장 강한 욕구인 케일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주었다.
“돈으로 주십시오. 훈장도 싫고, 작위도 싫습니다.”
뭐든 현금이 최고였다. 전쟁이 나는데, 작위? 훈장? 현금을 받아 이를 식량이나 땅, 실물 자산으로 바꿔놓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리고 ‘바람의 소리’ 다음으로 얻을 마지막 고대의 힘은 돈을 쓰는 대로 얻는 힘이 강해졌다.
케일은 손으로 눈가를 가리는 알베르 왕세자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눈가를 가린 손을 내렸을 때 왕세자는 물었다.
“술이라도 사 먹게?”
케일은 그 말에 반문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알베르는 피식 웃었고 그것으로 케일의 조건은 받아들여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케일에게 말했다.
“내일 보고서 오면 그것 보고 원하는 보상금을 나에게 말해주게.”
“또 병문안 오실 겁니까?”
“왜 싫나?”
케일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무한한 영광입니다, 저하.”
그 대답에 알베르는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으로 케일에게 쉬어라 손짓하고는 바로 방을 나서 사라졌다. 케일은 왕세자가 사라지고 남은 닫힌 문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데 마나가 아닌데도 염색이 되는 힘이 있는 건가? 인간, 대답해 봐라. 나는 궁금하다.
케일은 검은 용의 말을 무시하며 곧바로 잠이 들었다. 이제부터 자신은 환자였다.
***
하지만 편히 쉴 수 있는 환자는 아니었다. 아침부터 케일은 한스로부터 론의 편지를 받아야 했다.
“론 씨는 예정한 대로 떠나셨습니다.”
케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펼쳤다.
레디카는 론의 눈에 띄어도 죽을 것 같다. 케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스 다음으로 방문한 이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많이 아프다고 들었다.”
에릭 휠스만. 그의 이렇게 근심 걱정 가득한 표정을 케일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그러나, 케일은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역할에는 충실해야 하는 법.
“몸에 힘이 하나도 없군요.”
“…케일.”
하루 종일 자서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속도 더부룩하고.”
하루 종일 누워서 먹었더니 배가 더부룩했다. 더 이상 들어갈 곳도 없다. 침통한 얼굴의 에릭과 굳은 표정의 길버트, 단단히 무언가를 결의한 듯한 아미르. 그 세 사람과 케일을 번갈아 보던 고양이들은 둘이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혹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
“맞아요. 뭐든 구해다 드릴게요.”
케일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단순히 병문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의 말에 에릭은 아미르, 길버트와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에릭은 품에서 서류를 꺼내 케일에게 내밀었다.
“동북부 해안 관광 투자 건에 대해 수정한 내용이다. 네 병문안 겸 들고 왔어.”
케일은 서류의 앞장을 넘겼다. 제일 먼저 보이는 단어. 해군. 아미르뿐만 아니라 길버트도 마음을 굳힌 듯했다.
케일은 아미르를 힐끗 쳐다봤다. 그녀는 싱긋 웃어 보였다. 에릭의 행동으로 보아, 아미르는 케일이 부탁한 비밀을 잘 지킨 듯했다.
“곧 헤니투스 백작가에도 소식이 닿을 거야. 제안도 함께.”
“그렇군요. 그럼 왕세자 저하를 만나실 겁니까?”
“그래.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어. 일단 그쪽에서 흥미를 보여야 우리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케일은 아미르와 길버트를 보며 흘러가듯이 말했다.
“잘될 겁니다.”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에릭을 비롯한 세 사람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런 셋에게 케일은 서류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앞으로 이런 서류는 시종을 통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병문안 오시기도 힘들 텐데. 안 오셔도 돼요.”
“아니, 계속 오마. 너도 다 알아야지.”
꼭 온다는 에릭과 길버트, 아미르의 모습에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쫓아냈다. 침대에 기대어 환자복을 입은 채로 사람을 맞이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나마 다음에 들어온 이들을, 케일은 이불을 걷어차고 편히 앉아서 맞이했다.
그는 꼭 죄인처럼 서 있는 최한에게 말했다.
“가라.”
로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어느새 마법을 풀고 붉은 머리칼과 눈동자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옷차림도 로브를 벗어 던지고 정장 차림이었다.
“미안해요, 케일 공자. 하지만 저에게는 최한과 라크가 필요해요.”
로잘린은 이제 왕궁에 정체를 드러낸 이상, 최대한 빨리 브렉 왕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이 알려졌으니 살수를 펼쳤던 자들이 증거를 감출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번 일로 상급 이상 마법사임이 들켰고 적은 그에 맞춰 대응하려 할 것이다. 그렇기에 강한 이들이 필요했다.
라크는 문가에 서서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케일은 그런 최한과 라크를 보며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미안할 일입니까? 로잘린 씨, 당신은 우리의 힘든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도와야지요.”
로잘린은 미소 짓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로잘린 씨는 라크의 누나이고, 최한의 친구 아닙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로잘린은 이번 암살로 죽을 위험에 처했었지만. 적어도 이 시간들이 자신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케일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최한을 바라봤다.
“케일 님, 제가 지켜 드려야 하는데.”
“최한.”
최한이 떠나야 케일은 운신이 편했고, 전쟁 때 숨을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최한은 케일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돈 많이 모으고, 적당히 도망 다닐 정도로 강해져서 편하게 살 것이다. 그래서 천수를 다 누릴 계획이다. 거기다가 용이 있는데, 최한이 지켜준다니. 최한 자체가 짐이었다.
“그렇군요.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한결 편안해진 최한에게서 시선을 돌려 케일은 라크에게 다가오라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까딱임에 라크는 멈칫하며 주춤주춤 다가왔다. 이 소심한 녀석은 왜 이렇게 쪼그라져 있는 것일까. 하지만 케일은 그런 반응을 일일이 생각해 줄 마음이 없었다.
“라크, 네 동생들은 돌봐줄 테니, 갔다가 3개월 뒤에 우리 영지로 와라.”
“…네?”
“네는 무슨. 나와의 거래 잊었나?”
“아.”
멍하니 바라보는 라크에게 케일은 이 녀석을 써먹을 순간을 떠올리며 지도를 하나 건넸다. 한스에게 받아둔 동북부 영지 지도였다.
“헤니투스. 그곳으로 와라. 네 동생들과 내가 있을 테니까. 반드시 돌아와야 돼.”
“…돌아갈 곳-”
케일은 어벙하게 중얼거리는 라크가 영 탐탁지 않아 그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와줘야 일이 수월했다.
“그래, 돌아올 곳. 제대로 기억해라. 3개월 안이다.”
“네- 네! 반드시 3개월 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제대로 알아들은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크까지 해결한 케일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이야기가 이미 많이 틀어졌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큰 틀대로 흘러가길 원했다.
그래야 자신이 아는 것이 늘기 때문이었다. 케일은 비크로스를 함께 딸려 보내지 못해 아쉬웠으나, 나중에 론이 휴직을 끝내고 돌아올 때 같이 보내도 되었다.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마음으로 케일은 침대에 누워 제 방 곳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행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스를 쳐다봤다.
한스는 문 앞을 기사처럼 지키고 있는 최한과 고양이들과 노는 라크, 그리고 여유로이 마법 서적을 보는 로잘린, 마지막으로 침대에 기대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케일을 보고는 슬그머니 케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국왕 전하께서 공자님께 훈장을 하나 내리고 싶어 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순간 모든 방 안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한스는 슬그머니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광장 테러 사건을 두고 도는 소문에 대한 자료였다. 서류를 받아 든 케일은 첫줄을 보자마자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
깊은 한숨이었다.
예상했지만 가관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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