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82
481화.
서대륙 북부 해안가 근처.
그곳에 위치한 불가사의 지역인 절망의 호수.
“인간아! 조금 춥다!”
확실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는지 라온이 날개를 파닥이며 코를 훌쩍였다. 케일은 뚱한 얼굴로 아공간 주머니에 있던 담요를 꺼내 대충 목도리처럼 라온의 목에 둘둘 둘러맸다.
최한은 아무 말 없이 이를 쳐다봤고, 케일은 그 시선에 멈칫하고는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도 하고 싶냐?”
“아뇨.”
최한은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온은 그 광경을 보며 몰래 히히거렸다. 체온 유지 마법이 있었지만, 케일이 둘러주는 담요가 좋은 라온이었다.
“약한 인간아! 너는 체온 유지 마법 해줘야 한다!”
물론 라온은 약한 케일에게 체온 유지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제야 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뭐야?’
케일은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조금 으슬으슬하던 것이 사라지고 따뜻해지자 대충 넘겨버렸다.
그리고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있는 호수를 바라봤다.
꽁꽁 언 호수 표면 위로 몰아치는 눈 폭풍은 상당히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때였다.
“음?”
…뜨거운데?
케일은 이상하게 등 뒤가 뜨거웠다.
뒷목이 서늘한 건 겪어봤지만 뜨거운 건 처음이었다.
“인간아!”
케일은 그 순간 저를 옆으로 밀쳐내는 라온의 앞발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그 앞발 힘에 튕겨져 나가는 제 몸도 느낄 수 있었다.
털썩.
눈밭에 엎어졌다.
“…빌어먹을-”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찰나.
“불이다!”
라온의 외침에 케일은 본인이 서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곳엔 웬 불덩이가 둥둥 떠 있었다. 희미한 불덩이는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왠지 등 뒤가 뜨겁더라.’
케일은 제 등이 탔나 확인하며 상의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를 보던 최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서대륙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 불덩이였다.
당연히 의심스러웠고, 그 불덩이가 갑자기 케일의 등 뒤에서 나타났으니 더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덩이는 점점 더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우우우웅-
최한의 검 끝에서 검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최한아! 너한테 말해주겠다! 어차피 다 알아야 하니까 말해준다!’
이곳으로 오기 전, 라온이 먼저 말해준다며 최한에게 다가왔다.
‘엄마랑 인간이 내 마음대로 하랬다! 나는 최한 비밀 하나 아니까 나도 알려준다!’
그리고 듣게 된 용 혼혈과 쉐리트, 라온의 이야기.
최한은 하얀 별에 대한 극심한 증오가 치밀어올랐다.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증오하고 무너뜨리고 싶은 감정은 처음이었다.
해리스 마을부터 시작해서, 하얀 별이 한 짓들은 최한을 분노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아무튼 이렇다!’
라온은 애써 밝게 말하곤 텔레포트 하기 전에 비크로스와 온, 홍, 라크에게도 말해야 한다며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뒤에 모든 이야기를 마친 라온, 그리고 케일과 함께 최한은 이곳에 왔다.
우우웅-
반짝이는 검은 오러가 불덩이를 가리켰다.
최한은 지금 아주 예민해져 있었다. 제 가족들을 건들 존재는 무엇이든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검은 오러에 놀란 것인지 불덩이가 일렁였지만, 여전히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결국 최한은 검을 들어올렸고, 반짝이는 오러가 불덩이를 벨 듯했다.
“최한!”
그러나 그는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금빛 팽이채. 그것을 손에 쥔 케일이 입을 열었다.
“최한, 이거 정령이야, 정령!”
“…정령이요?”
최한의 되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의 귀에 바람 정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돈! 파괴! 평화!’
늘 이상한 구호를 외치던 바람 정령이 상당히 다급하게 외쳤다.
‘걔다! 아기 불 정령이다! 최한을 말려라! 부수면 안 된다! 혼돈! 파괴! 절대 불가!’
케일은 저번에 고래족 섬 일로 방문했을 때 바람 정령의 소개로 알게 된 불 정령을 떠올렸다.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지났다고 들었다.
‘급했나 보다! 너를 보고 실체화까지 했다! 평화! 평화! 최한 검 치워라! 평화!’
혼돈 파괴 평화를 외치는 바람 정령이 거의 키우다시피 한 불 정령이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최한, 검 치워. 우리 편이야.”
“…알겠습니다.”
검이 아래로 내려가자, 일렁이던 불덩이가 황급히 케일쪽으로 날아왔다. 그러곤 케일 곁을 맴돌았다.
핫팩처럼 뜨끈한 기운에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잘했다! 평화 케일!’
뭐래?
‘이 추위에 불 정령이 홀로 실체화를 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역시 파괴의 뜻을 이을 강한 불 정령이다!’
케일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곁으로 다가온 불 정령은 조금 더 몸집을 키우며 활활 타올랐다. 그 불을 보자, 케일은 이 불 정령과 연관된 정령사가 떠올랐다.
‘계약하고 싶은 인간이 있다고 했지?’
그 사람은 예전에 케일이 이 호수 근처 마을에서 머물렀던 여관 주인의 손자 솔리였다.
케일을 배웅하던 불 정령의 형상을 알아볼 정도로 꽤 뛰어난 정령사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케일은 바람 정령이 예전에 이 불 정령과 솔리의 관계에 대해서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계약하고 싶은 인간이 자꾸 날 무시. 실뭉치 취급. 나는 위대한 불이다! 계약을 도와달라. 나도 불바다 만들고 싶다! 혼돈, 절망, 어둠 파괴! 무조건 파괴!’
불 정령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또한.
‘세계수 님이 나는 호수 태울 가능성 높다 해서 어른 되면 오랬다. 나는 못 감. 머무는 집 있음. 계약자 집임. 계약자 자꾸 악몽 꿈.’
이런 말도 했었다.
케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때, 바람 정령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 정령이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전달해주겠다!’
케일은 눈앞에서 일렁이는 불 정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바람 정령이 대신 말해주었다.
‘불벼락 불바다 그리움. 불바다 강화 완료. 어둠, 혼돈에게 불바다를. 나는 파괴 가능한 위대한 불. 라온 미르 매우 존경. 파괴하는 불 매우 매우 존경, 내 우상. 사랑.’
저번과 변함이 없는 불 정령의 말에 케일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 정령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도르프의 어둠 속성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
다른 불 정령과 달리 사자족 왕 도르프의 어둠 속성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던 정령이었다.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케일의 눈에는 실체화한 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불을 제 몸에 두른 붉은 실뭉치는 생각에 빠진 케일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였다.
“아.”
케일이 번뜩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을 부딪쳤다. 가만히 지켜보던 라온과 최한이 그런 케일에게 반응했을 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불 정령, 여기 오면 안 된다며?”
분명 저번에 불 정령이 그랬다.
‘세계수 님이 나는 호수 태울 가능성 높다 해서 어른 되면 오랬다. 나는 못 감.’
그런데 지금 호숫가에 불 정령이 와 있었다.
이래도 되나?
‘크흠, 큼. 들키지 않으면 된다! 혼돈, 파괴…모른 척!’
바람 정령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불덩이가 흔들렸다.
그때였다.
“…세, 세상에!”
절망의 호수. 눈 폭풍으로 뒤덮인 그곳에서부터 누군가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으아아아! 안 돼!”
비명은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케일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꽁꽁 언 호수 표면. 눈 폭풍으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그곳에서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이가 보였다.
“오!”
라온이 그 정체를 알아보고 반갑다는 듯 날개를 파닥였다.
케일도 꽤 오랜만이라, 엎어진 뒤 눈밭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곁으로 다가온 최한도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엘프 사제야, 오랜만이다!”
라온이 저 멀리 달려오는 이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빠르게 다가오는 이는 세계수 곁에 있는 엘프 사제 아디테였다. 케일은 저번처럼 품이 넓은 사제복을 입은 채 빠르게 달려오는 그녀를 꽤 반갑게 맞이하려 했다.
“어, 어떻게-!”
그런데 아디테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케일은 멈칫했다. 그는 그녀 뒤로 따라오는 타샤와 다크엘프 몇몇을 보았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넬 겨를이 없었다.
아디테 때문이었다.
“…불, 불바다-!”
아디테가 그 말과 함께 달려오다 말고 케일에게 더 다가오지 않은 채 제 소매 품을 뒤적였다.
짤랑짤랑.
경쾌한 동전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어린 사제는 손 가득 동전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케일에게 뛰듯이 빠르게 다가오며 말했다.
“돈, 돈은 여기 있습니다! 제발! 불바다는!”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케일은 그런 아디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옆을 쳐다봤다. 옆구리가 뜨끈했다.
불덩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케일은 시선을 다시 움직여 엘프 사제 아디테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이들을 바라봤다.
타샤와 다크엘프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케일을 쳐다봤다.
특히 타샤는 뭔 사기를 쳤냐, 또 뭔 짓을 했냐는 눈빛이었다. 다른 다크엘프들은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일 뿐이었다.
케일은 이를 모두 본 후 엘프 사제에게 입을 열었다.
“…정령이야.”
“아.”
깊은 탄식이었다.
아디테는 케일 옆의 불덩이와 케일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동전을 옷 소매에 넣었다.
“…깜짝이야. 비상금을 털 필요는 없겠다.”
중얼거리는 아디테의 시선이 불덩이에게로 향했다.
케일 옆에 불이 보여 그 기운을 탐색할 생각도 못 하고 허겁지겁 달려온 그녀였다. 정령임을 알고 급격하게 차분해진 아디테는 가만히 불덩이를 응시했다.
그때, 불덩이가 일렁였고 케일은 바람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 님이 근처에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계약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케일 헤니투스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디테 님, 이해해주세요.’라고 아기 불 정령이 말하는구나.’
…뭐야? 정상적인 대화도 잘하잖아?
케일은 불 정령과 바람 정령에 대한 신뢰도가 급하락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디테의 입이 열렸다.
“공자님은 세계수 님을 뵈러 가야 돼. 나중에 다시 대화를 나누렴.”
일렁이던 불이 서서히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뜨끈하던 케일의 옆구리도 이전으로 돌아갔다.
‘불 정령이 나중에 다시 호수 밖으로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전해 달란다! 혼돈! 절망! 하얀 별 파괴!’
케일은 바람 정령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아디테에게 말했다.
“바로 세계수 님을 뵐 수 있을까?”
“이미 전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제다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아디테는 그들을 세계수에게로 안내했다.
***
“오랜만이다!”
라온의 말대로, 케일은 오랜만에 만난 세계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전히 평범해 보이는 이 나무는 그래도 이전보다는 생기가 넘쳐 보였다. 나뭇가지와 잎이 이전보다 무성했다.
스윽.
케일은 눈을 감았고 그의 손바닥이 나무의 까슬한 표면에 닿았다.
-오랜만이구나.
세계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케일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세계수와 케일이 처음 만났을 때, 세계수는 그에게 세 가지를 말한다고 하며 제 나뭇가지들을 희생시켰다.
라온의 부모를 찾아라.
심판하는 물을 찾아라.
그리고 또 다른 고대의 힘 다수 소유자가 있다.
그가 알려준 것들은 지금 돌아보면 꽤 도움이 많이 되는 정보들이었다.
“물을 것이 많습니다.”
-나야말로 물을 것이 많구나.
“오랫동안 대화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스스스-
세계수를 감싼 나무들의 잎이 흔들렸다. 그 모습이 케일의 말에 꼭 세계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아.”
케일은 진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문뜩 떠오른 것을 물었다.
로드 쉐리트에게 물어도, 최정건의 회고록을 찾아도 알 수 없던 내용.
“혹시 시간과 관련된 고대의 힘이 있습니까?”
케일과 최한의 정체를 알아채고, 나무가 죽은 때를 알아채던 하얀 별.
그 힘에 대해 물었다.
-고대의 힘은 모른다. 그러나 시간과 관련된 힘은 꽤 알지.
케일의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어쩌면 하얀 별이 가진 그 힘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그리고 너도 갖고 있지 않느냐?
“…네?”
케일은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곧 다른 한 손으로 제 웃옷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네 안주머니에 있는 시계, 그거 말이다. 지금도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죽음의 신이 준 시계.
그것은 돌아갈 것인지 여기에 남을 것인지, 케일에게 선택을 하라고 한 편지였다.
그것은 지금도 소리 없이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것을 지금 들켰다.
“인간, 왜 그러나? 심장 아프나?”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세계수가 이어 말했다.
-죽음은 죽음의 신에게 선물이지.
세계수는 케일 품속의 이 편지가 죽음의 신 것임도 바로 알아챘다.
-죽음의 신은 거래에 능한 자. 죽음의 맹세는 죽음의 신에게만 이득이 되는 잔혹한 거래.
“…죽음의 신에게만 이득이라고요?”
케일은 세계수에게 더욱더 다가갔다. 손으로 나무 표면을 더 움켜쥐고 귀를 나무 기둥으로 가져다 대었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지 않느냐? 맹세를 어기면 누군가는 아프든 저주를 받든 결국 죽으니, 죽음의 신에게 이득이지. 신이 그냥 힘을 빌려줄까?
세계수가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웃었다.
-죽음의 신은 영웅을 아끼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자이지.
케일은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이번엔 너인가 보구나.
세계수가 여전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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