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83
482화.
이번엔 나라니?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간아! 왜 그러나?”
곁에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죽음의 신은 영웅을 아끼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금 세계수가 이번엔 너라며 케일을 가리켰다.
그렇기에 케일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죽음의 신이 나를 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헉!
아디테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라온이 놀라더니, 곧바로 다다다 말을 쏟아내었다.
“인간아! 신이 너 건든다고 하나? 인간 건들면 내가 가만 안 둔다! 다 부순다!”
그리고 세계수가 머무는 이 장소.
타샤를 비롯한 다크엘프들은 세계수의 허락을 받지 못해 못 들어왔지만. 케일, 라온과 함께 이곳에 발을 디딘 최한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 이제 무서울 것이 없는 인간입니다.”
케일은 최한의 담담하지만 상당히 살벌한 말투에 흠칫했으나 이내 세계수의 목소리가 들려와 일행에 대한 신경을 껐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세계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케일. 그렇기에 그는 순하기는커녕 살벌한 최한의 눈빛과 라온의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를 보지 못했다.
이를 홀로 지켜 본 아디테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두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눈을 감은 케일에게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세계수는 케일에게 귀엽다는 듯이 말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죽음의 신은 거래에 능한 자라고. 그가 이번에 거래를 하려는 대상이 ‘너’라는 소리다.
아.
케일은 안도의 탄성을 흘렸다.
‘난 또,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다길래 날 희생시키려는 줄 알았네.’
그는 괜히 놀랐다고 생각하였고, 한결 표정이 편안해졌다.
-물론 거래가 잘못되면 네가 죽을 수도 있겠지만.
뭐?
지금 이 세계수가 사람 놀리나?
케일의 얼굴이 삐딱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계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 품속 안에 있는 죽음의 신 힘은 분명 그와 거래를 할 수 있는 매개체일 터.
“…거래가 아닙니다.”
케일의 품속에 있는 죽음의 신 편지는 분명 그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여기서 살지 돌아갈지 택할 ‘기회’. 죽음의 신은 그것이 ‘호의’인 것처럼 말했지 ‘거래’는 아니었다.
거래는 주고받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죽음의 신은 케일에게 선택만 하라고 했지 무언가를 케일에게서 가져간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케일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세계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케일 헤니투스. 죽음의 신을 믿되 믿지 마라. 죽음의 신은 과거에도, 크윽!
쿠웅!
케일은 순간 나무가 크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뭐야?’
너무 놀라 눈을 뜰 뻔했다.
-눈 뜨지 말거라!
하지만 세계수의 외침을 듣고 도로 눈을 꾹 감았다.
“세계수 님! 가지가-!”
아디테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케일은 ‘쿵!’ 하는 둔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디테의 말로 파악하건대, 저번처럼 나뭇가지가 또 떨어진 듯싶었다.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벌을 주는구나.
세계수는 씁쓸함을 그대로 드러낸 채 중얼거렸다.
세계수는 세계의 흐름을 볼 줄 알았다. 그러나 그중에는 말해선 안 되는 것이 있으며, 고대에 ‘어둠’이 찾아왔을 때는 흐름의 일부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무튼 과거는 이야기해 줄 수 없지만. 케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연도 없어.
케일은 세계수의 말을 깊이 새겨두었다.
김록수의 생일.
그날을 향해 점점 더 줄어드는 시간. 죽음의 신이 줄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회가 아니다.
‘거래일 수도 있어.’
케일은 ‘거래’라는 말을 머릿속에 기록해두었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새겨졌다.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단 말이지?’
죽음의 신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니 거래를 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해볼 만하겠어.’
죽음의 신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는 케일이었다.
-아, 그리고 참고로 한마디 더 하면. 음.
세계수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밝은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가지가 부서질 일이 아니군. 하긴 아는 자들이 꽤 있는 내용일 터이니.
밝았던 어조가 이내 진지해졌다.
-신은 세상사에 관여할 수가 없어. 타고난 운명 또한 바꾸거나 조작할 수 없지. 하지만 그런 조작을 하는 수단이 존재해.
“…그 수단이 무엇입니까?”
-그건 신마다 달라. 그리고 알아도 나는 말할 수가 없어. 잘못하다간 나뭇가지가 다 부러질 것 같거든.
“그렇군요.”
-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말해줄 수 있다.
케일은 세계수의 말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신들은 세상을 살펴볼 눈을 이 세상에 심어두네.
-그게 무엇일까?
케일은 순간 성자 잭과 파문된 신관 케이지가 떠올랐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신을 모시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신의 ‘눈’인가?
-죽음의 신 ‘눈’ 또한 네 몸속에 있다. 아, 위치추적기 비슷한 걸세.
“제 몸에 신이 수작을 부렸단 말입니까?”
케일은 저도 모르게 놀라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최한과 라온이 더 놀라며 살벌해져 갔지만 케일은 알 수 없었다.
-…이 이상은 나도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영리한 자네라면 알 거야. 참고로 그 시계는 아닐세.
죽음의 신 편지가 아니라고?
그러면 나한테 신의 ‘눈’이 어디에 있단 소리지?
위치추적기라고 했으니, 죽음의 신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단 소리인데?
케일의 머릿속이 지난 2년이 조금 넘는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영화처럼 빠르게 과거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
케일은 찾았다.
죽음의 신의 ‘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었다.
그는 두 번, 몸 안에 죽음의 신 기운이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죽음의 신과 그 신전이 유명해진 이유이자 많은 이들이 신전을 방문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맹세.”
죽음의 맹세.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신 교단을 찾아가 죽음의 맹세를 하며 서로의 믿음과 이해관계를 정립하였다.
케일 또한 미친 신관 케이지, 테일러와 함께 죽음의 맹세를 처음 하였고. 그다음으로 최한과 함께 죽음의 신 교단으로 가 맹세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내 위치가 죽음의 신에게 모조리 닿았던 건가?’
케일은 소름이 돋았다.
“맹세입니까?”
-…답할 수 없다.
조심스러운 물음에 대한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죽음의 맹세가 ‘눈’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답했을 것이니까. 맞으니 답할 수 없는 것이리라.
세계수의 목소리, 분위기로 충분히 짐작되었다.
케일은 로운 왕국으로 돌아가면 신관 케이지를 꼭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11월이 되기 전에 그녀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수상해.’
생각해보면 참 수상했다.
죽음의 신은 왜 최정건, 최한을 이 세계에 데려왔을까?
그 의도가 대략은 짐작되었으나 확실히 모두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큰 도움 되었습니다.”
케일은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자마자 세계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세계수와 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하얀 별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의 신에게 뒤통수를 맞을 뻔했다.
‘요새 왜 이렇게 자꾸 뭐가 튀어나오지?’
마계도 그렇고 죽음의 신도 그렇고. 참 문제가 많았다.
-아닐세. 참고로 로운 왕국에 알베르 크로스만의 존재는 순리야.
“…네?”
갑자기 왕세자 이야기는 왜 나온단 말인가?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네.
“…그렇군요. 어쨌든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일. 내가 도움만 줄 것 같나?
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순간, 세계수가 속삭였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세계수에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케일은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하였다.
“무엇입니까?”
-열손가락 산을 기억하나?
열손가락 산.
그곳은 로운 서부에 위치한 열 개의 산봉우리로, 케일이 ‘파괴하는 불’을 얻었던 곳이자 엘프 힐러 펜드릭이 기거하는 엘프 마을이 있던 곳이었다.
“네.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도?
케일은 과거에 대한 기록들을 떠올렸다. 순식간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카로 왕국에서 처음으로 용 혼혈과 맞닥뜨려 전쟁을 펼친 후. 고룡 에르하벤이 레어가 부서졌다며 그를 찾아왔었다.
케일은 그가 찾아오기 전, 영상통신구를 통해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열손가락 산 알지? 엘프 마을 있던 곳.’
‘…알긴 알죠.’
‘거기 세계수 가지를 네가 지켰잖냐?’
‘그렇죠?’
‘그거 며칠 전에 털렸다.’
케일과 그의 일행들이 엘프와 함께 마창사, 테이머를 막으려 싸웠고, 그 승리로 세계수 가지는 ‘암’으로부터 지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엘프 마을에서 세계수 가지가 사라지면, 환영 마법으로 숨겨져 있던 엘프 마을이 드러남과 동시에 나무들로 이루어진 그 마을이 무너진다.
‘내가 그 일 때문에 엘프 마을에 갔다 오니 내 레어가 무너져 있더군. 허허, 이제 죽을 날 일 년 남았다고 이런 짓을 한 건지.’
‘…둘 다 암입니까?’
‘엘프 마을은 확실히 암이지만, 내 레어는 흔적이 명확하지 않아.’
케일은 여기까지 떠올리며 더 이상의 기록을 불러오지 않았다.
열손가락 산 엘프 마을에서 벌어진 일.
그것은 암에게 세계수 가지를 빼앗긴 일이었다.
“…그 일로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 있습니까?”
-‘암’이 왜 세계수 가지를 노렸는지 알아내었다.
이어진 세계수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놈들은 새로운 세계수를 만들려고 한다.
세계수.
이 세계의 세계수는 보통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세계수처럼 거창하고 꼭 지켜져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특정 장소에 오랫동안 살고 죽고를 반복하며 존재해왔고 자연계의 정령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엘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는 오래 살아온 만큼 세계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그 덕에 그는 미래와 과거를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사실 이만큼만 되어도 대단한 존재지.’
세계수는 충분히 대단한 존재였고, 그 힘이 굉장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프와 정령에게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새로운 세계수를 만든다고?’
세계수는 이어 말했다.
-내 가지를 훔쳐다 세계수를 만들려는 실험을 한 것 같더군. 무엇을 노리고 그런 짓을 한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들어 세상의 흐름을 살펴볼 때마다 나를 방해하는 힘이 느껴졌다네.
고대에 그의 시야를 가렸던 어둠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힘이었어. 하지만 나처럼 자아를 지닌 것이 아니라 조종당하는 것 같았지.
결국 케일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새로운 세계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까?”
-내가 아나?
“네?”
케일은 도리어 기가 차서 되묻는 세계수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세계수는 지금 기가 차다 못해 성질이 뻗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어쨌든 나는 나와 비슷한 그 힘이 어디서부터 나타나 나를 방해하는지 알아챌 수 있었네.
“…어딥니까?”
케일은 그 순간, 제 곁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촤라락.
무언가 펼쳐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거라.
케일은 세계수에게서 손을 떼며 눈을 떴다.
그의 앞에 지도를 펼친 아디테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한 곳을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하!
케일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디테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
그곳은 동대륙 몰든 왕국이었다.
“세계수 님 말씀으로는 이곳에 가짜 세계수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것도 정확히 몰든 왕국의 수도. 그 중심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엔 환각사이자 몰든 왕국의 왕인 엘리스네 1세가 있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환각사가 세계수를 키우나 보군.”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환각사.
케일은 그 단어에 지도를 뚫어질 듯 노려보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최한은 환각사때문에 절망스럽던 순간을 강제로 마주 보게 되었고 그녀에게 조종당할 뻔하였다.
케일은 점점 살벌해지는 최한에게서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아디테가 세계수의 뜻을 전했다.
“새로운 세계수의 파괴를 부탁드립니다. 이를 위해 세계수 님과 저희 엘프 마을에서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돕겠습니다.”
“…모든 것?”
케일이 별 생각 없이 되물었고, 아디테는 슬그머니 주머니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일단 돈은 이게 마을에서 싹싹 긁어모은 전 재산입니다.”
돈주머니였다.
돈을 비롯하여 무언가를 소유하고 가지는 것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엘프들이 처음으로 마을을 뒤져 돈 될만 한 것을 모두 찾아 모아 만든 결과물이었다.
“케일님을 그나마 잘 아는 제가 준비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필요한 물건이나 전투인원. 모두 저희 마을을 비롯하여 동서대륙의 엘프들이 도울 겁니다.”
세계수와 관련된 일에 모든 엘프들이 나설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아디테는 뿌듯함을 담아 말했고, 케일은 일단 돈주머니를 받아 챙겼다.
주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상당히 무거운 돈주머니를 설레는 마음으로 살포시 안아 들며 물었다.
“그런데 모든 엘프들이 나설 수 있다면, 굳이 내가 나서야 할 이유가 있나? 모든 대륙 엘프들이 나서면 웬만하면 일은 다 해결할 것 같은데?”
케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을 때, 그는 심각해지는 아디테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말이죠.”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번 실패했습니다.”
응? 실패했다고?
“아디테야! 언제 실패했나? 위대한 나는 몰랐다!”
그러게나 말이다.
케일은 라온의 말대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그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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