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85
484화.
“…계약이요?”
여관 주인 할머니의 손자 솔리는 한숨과 함께 케일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케일은 그런 솔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 주위를 맴도는 게 정령인 건 알잖아?”
예전에 이 여관을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 솔리 주위를 맴도는 불 정령을 보며 여관 주인 할머니가 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저것들이 보인다고 했을 때 우리 남편이 그랬지. 정령이라고.’
‘내 딸은 저것들이 보이지 않아서 안심했지. 혹시 나를 닮아서 저것들이 보일까 봐 걱정했거든.’
‘왜냐면 내가 저것들한테 꼬였거든. 잠깐잠깐 마을에 나타나는 저것들 보려고 내가 이 절망의 땅에 터를 내렸어. 그런데 빌어먹게도 저것들이 보이지 않아도 호수는 사람들을 꾀더구먼.’
정령에 반해 이 마을에 터를 내렸다던 할머니.
그녀는 케일과 일행들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주었고 솔리도 옆에서 들었다.
“…알고 있죠.”
솔리는 계속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케일은 그런 그를 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인간아! 주인 할머니 웃는다!
그러게나 말이다.
솔리의 할머니는 케일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케일은 바람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기 불 정령이 슬퍼한다. ‘혼돈, 파괴, 슬픔.’이라고 한탄한다.’
바람 정령의 정신 나간 소리는 당연히 무시했다.
“계약을 할 생각이 없는 건가?”
케일은 돌려 말하는 것보다 바로 직구를 던지는 것을 선호했다. 그리고 솔리도 마찬가지였다.
갈색 머리칼에 주근깨투성이의 순박한 인상의 청년은 입을 열었다.
“저는, 저는 괴롭히는 줄 알았어요!”
“…응?”
설움이 울컥 치미는 듯한 얼굴로 그는 케일 옆의 불뭉치를 쳐다봤다.
“일 끝나고 방에서 쉬려고 하면 갑자기 창문 밖으로 시뻘건 불이 지나다녀요! 제가 처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밤마다 그렇게 놀래켜요!”
그는 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케일 머릿속으로 바람 정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아니다! 불 정령은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 끝난 거 같아서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간 거라고 했다! 빨리 전해달라! 긴급, 긴급!’
케일은 입을 열었다.
“어…음… 불 정령은 네가 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친해지려고 다가간 거래.”
“…하아. 그래요. 그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주방으로 일하러 들어가죠? 그러면 갑자기 주방 화덕에 불이 치솟아 올라요! 그래서 얼마나 음식을 태워먹었는지 아세요?”
케일은 곧이어 들려온 바람 정령의 다급한 말을 전달해주었다.
“그건 말이지. 음, 불 정령이 계약을 하고 싶은데 그럴려면 자신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서, 그 기회가 네가 주방 불에 올 때뿐이라서 그랬대.”
‘그렇다! 불벼락과 불바다의 위력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말은 전달 안 했다.
“…거기다가요.”
솔리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
“몇몇 손님들 옷에 불도 붙이고요. 드시던 음식에도 불을 붙이고요. 그래서 여관에 불귀신이 붙었다는 소문이 돌아요!”
“음. 그 사람들 다 취객에 진상 부리고 널 힘들게 했다는데? 할머니한테도 시비 걸고?”
케일의 말에 솔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어. 너 지켜주려고 그런 거래. 그리고 진짜 화상 입힐 생각은 없었고 겁만 준 거래.”
점점 솔리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힘이 없어졌다. 그는 억지로 생각을 해내려는 사람처럼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런 식으로 당해서 여관을 나간 한 손님은 가지고 있던 가방이 홀라당 탔다고 하던데요? 여기 불귀신이 자기한테 해코지했다고요.”
“그 손님이 두고 보라고, 가만히 안 둔다고. 아는 모험가들 데리고 와서 한바탕 할 거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거 들었대.”
“…진짜요?”
“어. 그래서 가방 태워서 거지로 만들어줬대.”
“아.”
케일은 묘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솔리는 불 정령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괴롭힌 거라면서 투덜거렸지만 불 정령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금방 납득했다.
‘딱히 불 정령을 싫어하지 않는 것 같은데?’
케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태어난 지 이제 2년쯤 되는 어린 불 정령이라서 그래.”
“어, 엄청 어리네요?”
솔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렇지. 네가 많이 좋나 봐.”
‘맞다. 불 정령은 저 예비 계약자가 좋다고 한다.’
바람 정령이 금방 동의를 표했다.
대충 그 말을 흘려듣던 케일은 잠시 뒤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의 귀여운 실뭉치 모습 안에 폭발적인 파괴의 힘이 있듯이 저 청년도 그렇다고 한다. 겉으로는 순박해 보이는데 그 안에 무시무시한 불벼락의 기질이 있다고 한다.’
저 녀석한테 그런 게 있다고?
케일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솔리의 시선이 제 할머니 쪽으로 힐끗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계약에 관심 없고 저 불뭉치에 관심 없어요.”
‘거짓말이다! 불 정령 말로는 눈 오거나 비 오면 방 창문을 항상 열어두고 자신이 들어오면 문 닫는다고 한다! 그리고 불 정령이 쉴 난로도 은근슬쩍 한쪽 구석에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케일의 표정이 더 이상해졌다.
“정말 관심 없어?”
그 순간, 할머니의 입이 열렸다.
“쯧. 역시 핏줄이 어디 가는 게 아니야.”
솔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 내가 정령에 홀려서 이 마을에 터를 잡았어. 내 딸과 사위는 모험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녀석들이었고. 저놈 할애비도 모험가였지. 그 기질이 어디 가겠어?”
솔리의 시선이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이 늙은 할미 때문에 어디 못 가고, 정령도 무시하면서 여관에 묶여 있을려는 거지. 내가 그것도 모를까?”
솔리의 눈동자가 커지며, 그는 할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그런 솔리를 안쓰러이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이 여관을 관리할 힘이 하루하루 줄어들어 갔다.
딱히 돈이 되는 여관도 아니었지만, 이것마저 운영하지 못하면 이 추운 곳에서 그녀가 먹고 살길은 없었다.
그걸 손자라고 모를까.
‘아니까. 이 착한 놈이 귀 막고 눈 닫고 사는 거겠지.’
정령을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이 여관 홀에 있으면서 솔리의 눈동자가 힐끔힐끔 불 정령을 찾아 헤매던 걸 보았다.
그녀는 손자를 잘 알고 있었다.
“이 할미가 너한테 바라는 건 단 하나야.”
솔리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는 할머니가 할 말을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죽지만 마.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아.”
그래서 그는 정령을 외면했다.
정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 기분에 따라 반응하던 붉은 실뭉치의 모습은 기억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원래도 손님이 별로 없는 여관이었기에, 케일 일행들만이 여관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간아! 조금 슬픈 것 같다! 감동적인 것 같기도 하다!
라온의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어린 용뿐만이 아니었다.
‘…혼돈, 파괴, 평화. 크흐흑, 나도 아기 불 정령도 운다. 크흐흑. 아기 불 정령이 역시 자기 계약자는 세상을 파괴할 재목을 지닌 따뜻한 이라고 한다. 어둠 다 부순다!’
머릿속이 시끄러워 시선을 돌리던 케일은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최한은 무언가 생각에 빠진 얼굴로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었다.
‘저 녀석은 왜 저러지?’
세계수 마을을 떠날 때부터 최한은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했고, 케일은 그런 최한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 순간, 최한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고, 최한의 입이 열렸다.
“케일 님.”
케일은 ‘왜?’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에 답하듯 최한이 조용히 읊조렸다.
“해리스 마을을 왜 몰살했을까요? 단지, 인어에게 줄 죽은 마나를 어둠의 숲에서 구하려고 그랬을까요?”
“…어?”
최한의 서늘한 눈빛에 케일이 잠시 멈칫했을 때였다.
“…내가.”
솔리의 입이 열렸다.
“내가 정령이랑 계약하면, 분명 떠나고 싶을 것 같아요.”
“떠나면 되지.”
할머니가 퉁명스레 답했다.
“그러면 할머니는요?”
솔리의 일렁이는 눈동자가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할머니의 입이 열리려던 순간.
“내가 말이야.”
솔리는 제 앞에서 흔들리는 닭다리와 함께 웃는 케일의 모습을 보았다.
“돈이 좀 많아.”
“예?”
“이 여관을 빌리지. 그 임대료로 할머니는 충분히 편히 살아갈 수 있으실 거야. 그리고 할머니가 원하시면 내가 고용하도록 하지. 여관 매니저로.”
“…네?”
솔리도 할머니도, 정령들도 의아하게 케일을 쳐다본 순간이었다.
“내가 여관 사업을 하거든.”
-맞다! 인간아, 그게 있다!
투명화한 라온이 날개를 파닥였다.
케일은 그 와중에 말을 이었다.
“웬만한 모험가나 썩어빠진 양아치들도 못 건들 만한 뛰어난 체술 실력을 지닌 종업원을 파견할 수 있는 여관 사업이야.”
암, 그렇고말고.
그 유명한 리브 산 산적 출신이니까, 아주 쎄지.
거기다가 언어는 마법 장치로 대충 해결하면 될 거고. 아니면 론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하도록 만들면 산적 출신 종업원들의 언어능력이 아주 발달할 것이다.
“서대륙에는 아직 지점이 없지만, 동대륙에는 1호점이 있어.”
그는 멍한 얼굴의 조손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는 솔리에게 이어 말했다.
“아! 돈을 못 벌까 봐 걱정이면 괜찮아. 어쩌면 새로운 수익 창출 방향이 있거든.”
-인간아! 여기서 돈을 어떻게 버나?
케일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는 뭐든지 한다는 엘프들과 서대륙에 진출한다는 용병 길드 녀석들을 떠올렸다.
케일 덕에 이래저래 이득을 많이 봤거나 볼 예정이었다.
‘그럼 나도 이득을 봐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몰란 가문이 서대륙에도 정식으로 진출해야지?
그는 모험과 희망에 대한 사랑이 넘칠 여관 2호를 머릿속에 그리며 입을 열었다.
“자, 선불로 거하게 미리 임대료를 줄 수도 있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는 솔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솔리는 금빛 후광이 케일에게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는 붉은 실뭉치가 꾸물꾸물 움직이며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뭉치는 실타래를 풀더니 글자를 만들어내었다.
여기선 오로지 솔리와 할머니 눈에만 보였다.
솔리는 할머니를 한 번 봤다가 이내 붉은 실뭉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 밑에서 외롭게 큰 솔리였다. 그는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무수한 여행자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는 그중에서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실뭉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할머니도 저 불 정령이랑 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우우우우웅-
그 순간, 여관 천장에 통통 뛰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크하하하하! 아기 불 정령이 환호한다! 혼돈, 파괴, 사랑! 크하하하하!’
케일은 정신 나간 바람 정령을 무시하며 솔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지금부터 나랑 거래를 해볼까?”
“예?”
“세상에-”
“공짜는 없지.”
케일은 제 말을 자르며 대신 답하는 이를 바라봤다. 할머니가 씨익 웃어 보였다. 케일도 피식 웃고는 솔리를 보며 물었다.
“내 거래 조건을 들어보겠어?”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아, 하하-”
솔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손 좀 닦고 악수하면 안 될까요?”
“아.”
케일은 구운 닭다리 양념이 묻은 손을 얼른 닦아내었다.
***
-인간아! 그러면 정령사랑 아기 불 정령은 나중에 데리러 가나?
“어. 3일 뒤에.”
수월하게 거래를 마친 케일은 라온, 최한과 함께 북부를 떠나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솔리와 할머니를 엘프 사제 아디테에게 부탁했다.
‘오! 오, 오오!’
‘…세상에, 엘프라니.’
여관에 등장한 엘프를 본 순간, 솔리는 그저 감탄만 했고 할머니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 아디테가 정령 계약을 도울 거야.’
‘반갑습니다!’
아디테는 꽤 싹싹하게 두 사람을 대했다.
‘세상에, 그 꽃 단 망나니, 아니, 아니죠. 그 귀여운 불 정령과 계약을 하실 분이 계시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반드시 안전하고 끈끈한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저 망아지를 다룰, 아니죠, 아니, 간단한 정령술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열의 가득한 아디테와 더불어 열정과 도전 의식에 가득 찬 솔리. 그리고 흐뭇한 할머니.
‘케일. 고맙다. 불 정령이 계약해서 기쁘다고 한다. ‘행복. 곧 어둠 파괴. 대폭발. 불바다 조만간 실행 가능.’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난 두 정령을 끝으로 좋게 마무리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케일 님.’
‘응?’
‘저 불 정령은 엘프들도 무서워서, 아니, 아무튼 피해 다닌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저리 착해 보이는 계약자를 만났으니 저 불 정령도 차분해지겠지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호수가 불탈 일은 없겠어요.’
다만 안도하는 아디테에게 케일은 솔리의 기질과 불 정령의 확고한 다짐을 차마 전할 수 없었다.
“케일 님. 들어갈까요?”
조금 전 상황에 대한 생각에서 빠져나온 케일은 문고리를 잡은 최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끼이이익-
로운 왕궁.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세공이 돋보이는 문들을 지닌 다른 건물들과 달리 한 건물의 검소하고 낡지만 고풍스러운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두운 밤.
텅 빈 공간, 한 사람만이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달빛을 맞으며 서 있었다.
“어서 오게.”
알베르 크로스만.
그가 로운 왕궁 대도서관에서 홀로 케일을 맞이했다.
케일은 그에게 고대 문서에 기록된 마계의 문 정보와 더불어 크로스만 왕가와 로운 왕국에 대한 고대 기록을 물었다.
그리고 지금 그 부탁한 것을 들으러 왔다.
“저하.”
케일은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멈춰.”
하지만 알베르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걸음을 멈추게 했다.
경비도, 사서도, 관리도. 누구도 없이 오로지 알베르만이 존재하는 공간.
그는 케일을 가리켰다.
“너만 들어와.”
그 공간으로의 입장은 케일만이 가능했다.
최한, 라온은 들어올 수 없었다.
“비밀이 듣고 싶다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알베르는 씁쓸함과 고뇌가 가득해 보였다.
“뭐, 제가 듣고 싶은 것이 비밀이라면.”
케일은 웃으며 도서관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기꺼이 들어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