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89
488화.
“…폐위된 왕녀에게 버드가 인질로 잡혀있다?”
-정확합니다. 도련님.
론의 인자한 미소가 케일의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알베르는 계단 중간쯤이라 지하 석실이 라온과 론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임을 확인하고는, 생각에 잠긴 듯한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현 몰든 왕인 엘리스네 1세는 30대의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을 바탕으로 몰든 왕국이 현재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알려졌고.”
-그렇습니다, 저하.
론이 예의 바른 인사와 함께 긍정을 표했다.
알베르는 지하 통로 벽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요즘 동대륙에서는 로운을 제2의 몰든처럼 생각하는 권력자가 많다더군.”
젊은 사람이 권력을 쥐고 전면으로 나서서 왕국을 발전시키고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는 점에서 로운 왕국이 몰든과 비슷하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게 있었지.”
-후계자 문제지요.
알베르가 샐쭉 미소를 그리며 론에게 넌지시 툭 내뱉었다.
“동대륙 정세에 해박하군.”
-별것 아닙니다.
론은 모른 척 뒤로 빠졌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알베르가 말을 이었다. 그는 케일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몰든 왕국은 원래 두 명의 왕위 계승 후보자가 아주 살벌한 왕위 다툼을 했다고 해.”
-늘 엘리스네 1세가 우위여서 애매한 왕위 다툼이긴 했지요.
“맞네.”
두뇌, 무력, 외척 가문 배경, 추종 세력, 자본. 모든 면에서 엘리스네가 우위였다.
“엘리스네 1세가 처음과 끝. 모두 강력한 우위를 보이며 왕위를 이어받았지. 하지만 그녀의 동생 조피스 왕녀가 중간에 딱 한 번 엘리스네 1세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치고 올랐던 순간이 있었어.”
“…조피스.”
케일은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래. 조피스 왕녀. 다른 왕족들과 달리 그녀는 악착같이 엘리스네 1세를 이기려고 했지. 하지만 그녀는 왕위 싸움에서 패한 후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하더군. 유배 보내진 신세라 조용히 살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알베르처럼 이른 시기에 왕권 계승권이 확립되지 않는 한, 끝까지 싸운 왕족들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죽음 혹은 유배. 그중 유배일 경우, 아주 쥐 죽은 듯이 없는 사람처럼 감시당하며 평생 살아야 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어째서 조피스가 엘리스네 1세와 싸우려고 들었는지 잘 모르겠더군.”
엘리스네 1세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었으니까.
“더욱이 두 사람은 친자매지간이야. 이복자매 같은 것도 아냐.”
“친자매요?”
“그래. 그 때문에 조피스는 외척 가문의 힘도 받을 수가 없었어. 외가는 엘리스네를 밀었거든.”
알베르의 고개가 살짝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저번에 몰든 왕국과 환각사 이야기를 케일에게서 듣고 난 후, 몰든 왕국에 대해 나름대로 조금씩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또 두 사람은 조피스가 왕위 쟁탈전에 참전하기 전까지 상당히 우애가 좋았다고 해. 사실 조피스와 엘리스네의 외가에서는 아직도 조피스가 왜 언니에게 반기를 들었는지 이해 못 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요?”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알베르는 그런 케일을 보며 답했다.
“내가 자네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느낀 걸 자네도 느낀 것 같군.”
알베르가 케일과 라온, 론을 보며 말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요.”
케일은 버드를 떠올렸다.
“용병왕은, 버드는 허튼 자가 아닙니다. 분명 저에게 몰든 왕국에 대해서 파헤쳐서 온다고 하였고, 그런 그가 조피스에게 접근했다면 그녀에게 뭔가 비밀이 있단 말일 겁니다.”
“그래. 비밀 아니면 비밀을 풀 열쇠겠지.”
비밀 혹은 열쇠.
케일의 시선이 영상통신구 화면으로 향했다.
“어쩌다 버드가 붙잡힌 것이지?”
-후방에서 지켜보던 그렌 퍼프의 말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론의 입을 통해서 사건 정황이 전달되었다.
버드의 친우이자 최상급 마법사인 그렌 퍼프. 그는 조피스의 저택으로 방문하겠다는 버드를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걸 들어먹을 성질이 아닌지라, 그렌 퍼프는 후방에서 그를 돕는 것으로 하여 버드가 저택에 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버드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따라 그렌은 자신도 저택으로 잠입해야 하나, 아니면 용병 길드에 연락해 아군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렌 퍼프의 영상통신구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버드의 영상통신구였나?”
-네. 통신이 온 영상통신구는 버드의 것으로, 곧바로 그렌 퍼프는 영상통신을 연결했다고 합니다.
알베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 용병왕이 인질로 잡힌 것을 확인했겠군?”
-맞습니다.
론은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그렌 퍼프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와 케일과 알베르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곤 곧 그는 영상저장구 하나를 작동시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받았던 영상통신 내용을 저장해둔 것으로, 이 영상을 보시면 상황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치지직-
곧 영상 저장구가 빛을 발하며 저장된 영상이 펼쳐졌다.
“인간아, 버드다!”
그러게. 버드는 버드이기는 한데.
케일은 펼쳐진 화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읍, 읍!
소박하고 정갈한 방이 보였다.
치열하게 왕위 다툼을 벌였던 왕족의 저택이라고 하여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저택인 줄 알았더니, 아주 작은 집이었다.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유배 중이고 패배한 왕족의 집이니 좋은 저택을 줄 리가 없는 건가.”
말이 좋아 소박한 방이지, 화면에 보이는 방은 많이 낡았고 동시에 조금 없어 보였다.
방에는 낡았지만 깨끗한 침대와 책장이 몇 개 있었고, 그 책장에는 손때를 많이 탄 듯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읍, 읍!
그리고 그 낡았지만 깨끗한 침대 위.
-읍, 읍!
버드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당연히 양손과 양발이 줄에 묶인 채였고, 그 입에도 재갈이 물려 있었다.
그는 영상 통신구를 보면서 이리저리 몸을 버둥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재갈이 물려 있어 아무 소리도 전달되지 못했다.
-이런.
그때 영상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에는 침대와 책장. 그 외에도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두 개 있었다.
낡은 나무로 된 의자와 테이블.
그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차 맛이 좋군요.
나무로 된 잔에 담긴 차를 마시는 여인의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정갈해 보였다.
-인간아! 공작부인 떠오른다!
라온의 말대로 케일은 조피스를 본 순간, 공작부인 바이올란이 떠올랐다.
그녀보다는 훨씬 어린 조피스였지만, 조금의 틈도 없이 틀어 올린 머리칼과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몸짓.
그리고 표정과 분위기에서부터 풍겨져오는 고아함이 그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유배 중인지라, 낡은 회색빛의 옷을 위아래로 입은 그녀였건만 마치 왕궁 집무실에서 잠깐의 티타임을 즐기는 듯한 우아하면서도 고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차 맛이 좋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도 기품이 흘러넘쳤다.
패배한 자의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알베르보다 더 왕의 위엄이 보였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알베르를 쳐다봤다.
“뭐야? 뭔 불경한 눈빛이야?”
케일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만만치 않겠는데요.”
“…그렇지.”
알베르도 그 말에 동의했다.
조피스는 딱 보아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케일은 확신했다.
달칵.
우아한 손동작으로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입을 열었다.
싱긋. 기품 넘치는 미소와 함께.
-역시 사람 한 명 잡고 마시는 차 맛은 참으로 좋답니다.
아.
케일은 확신했다.
진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인간아! 버드가 아무래도 드래곤 레어에 홀로 들어간 멍청한 놈 같다!
라온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케일은 어떻게 소드 마스터에 고대의 힘까지 소유한 버드를 패배한 왕위 계승 후보자인 조피스가 잡아다 저렇게 묶어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지금도 조피스는 땀방울 하나 없이 기품이 넘치지 않는가.
그때 영상 속에서 영상통신을 주고받는 그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조력자가 있는 건가!
그 순간, 버드가 끙끙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시에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워 먹을 거 하나 없는 패배한 왕족에게 어느 누가 조력을 하겠나요? 용병왕의 똑똑한 친우라더니, 대가리가 안 돌아가나?
케일은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런 말투, 어떻게 배우고 싶은데.”
그러게요.
조피스는 기품 넘치는 어조로 상당히 특별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도 배우고 싶다!
라온에게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배우기만 해봐라. 간식은 없다.
그 순간에도 그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아는 거요?
-그럼 모르겠어요? 두 사람은 내가 여기 시골구석에 처박혀서 농사나 짓기 전부터 유명한 콤비였잖아요? 내가 돌대가리로 보이나 봐?
싱긋.
기품 넘치는 미소가 조피스의 입가에 그림처럼 자리했다.
-아니, 그게.
이어서 그렌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쪽이 누구인지가 아니겠지요?
조피스는 지금 패배하고 유배를 왔다고 해도 왕족으로서 오랫동안 살아왔었건만, 그렌에게 존댓말을 계속 사용했다.
케일은 영상 속 조피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영상 속 조피스의 눈동자가 꼿꼿이 정면으로 향했고, 그는 그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몰든 왕궁의 비밀이 알고 싶어서 왔다고 하더군요.
아오. 저 멍청이! 저걸 말하고도 잡혀?
그렌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여전히 조피스를 바라봤다.
기품 있게 미소 짓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한 번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서늘하게 그렌을 관찰하고 있었다.
케일은 옆에서 알베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저런 자가 딱 한 번의 기회를 제외하곤 내내 엘리스네에게 밀렸다고?”
아니, 그것보다.
케일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알베르도 중얼거렸다.
“패배해서 평생 갇혀 살아야 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닌데?”
“그러니까요.”
케일은 긍정을 표했다.
조피스의 눈빛은 패배해서 절망에 빠졌거나, 아니면 희망을 모두 잃은 자. 혹은 체념한 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기회를 노리는 자의 눈빛이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갑자기 용병왕이 몰든 왕궁의 비밀이 알고 싶을 이유가 없을 터. 아니, 몰든에 비밀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라야 정상이지요. 분명히 뒤에 누가 있을 겁니다.
저장된 영상임에도 케일은 그녀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한 모금 마신 차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조피스의 눈동자가 정면을 향했다.
-그 뒤에 선 자는 몰든 왕궁의 비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꼿꼿하게 선 이가 케일에게 말했다.
-그래서 용병왕의 뒤에 선 당신에게 말합니다.
그녀는 그렌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었다.
용병왕의 뒤에 선 자.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비밀을 알고 싶으면, 당장 여기로 와요.
그녀는 그 사람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했다.
-빨리 와야 할 겁니다. 늦으면-
손이 우아하게 한쪽을 가리켰다.
-용병왕의 대가리가 터질지도 몰라요.
-읍, 읍!
용병왕이 저를 가리키는 조피스의 손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케일은 그런 용병왕을 볼 틈이 없었다.
싱긋.
그녀는 기품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공짜는 없습니다.
기회를 노리고 갈고닦아온 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거래를 하죠.
그리고 영상이 모두 끝났다.
“재밌는데?”
동시에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다시 화면에 비치는 론을 보며 물었다.
“조피스의 저택이 어디지?”
지금 그녀가 유배 중인 곳이 어디인가.
그녀의 방 창밖으로 보인 광경은 험준한 산이었다.
그 순간, 론의 입이 열렸다.
-몰든 왕국에서 가장 험한 곳입니다.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몰든 왕국. 평탄한 평지와 널찍한 도로로 인해 상업과 운송이 발달한 동대륙 중앙에 위치한 왕국.
그곳에서 험한 지형은 단 하나였다.
“거긴 몰든 산맥인데?”
몰든 산맥.
그곳엔 론의 가문인 몰란 가문의 저택이 존재했다.
얼마 전까지 ‘암’의 비밀 기지였다가 이번에 탈환한 그곳이 있는 산맥이었다.
-맞습니다. 몰든 산맥 아래 근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조피스가 유배 중이지요.
조피스의 방 밖으로 보이는 산은 몰든 산맥 줄기 중 하나였다.
케일은 지하 통로 계단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로 론이 말했다.
-도련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세계수가 있는 엘프 마을. 그곳에서 다시 아디테와 세계수를 만나기까지 여유 시간은 3일.
그 시간 중 일부로 정령사 솔리를 만나고 알베르도 만나러 왔다. 그럼에도 아직 그 3일 중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30분 안으로 갈게.”
-네. 오랜만에 레몬차를 준비하겠습니다.
흠칫. 케일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론은 인자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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