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9
48화.
일주일 뒤, 케일은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가 내린 마차는 헤니투스 백작가의 황금 거북이가 새겨져 있었다.
-오랜만이다.
머릿속에 전해지는 검은 용의 말에 케일은 동의했다.
지금 케일이 있는 곳은 수도 영광의 광장이었다. 광장 북쪽에는 폭발로 부서진 구역을 복구하기 위한 커다란 막이 둘러져 있었다.
케일은 자신의 자리를 향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 그의 옆에 곧바로 헤니투스 가문 기사단 부단장과 기사들이 따라붙으며 그를 중심으로 호위했다.
그때 걸어가는 케일의 귓가로 아주 소름 끼치는 말들이 들려왔다.
“오, 은빛 공자!”
“방패 공자셔!”
케일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크흠, 큼.”
케일은 어깨를 쫙 펴고 헛기침을 하는 부단장의 씰룩이는 입가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그런 그에게 부단장이 슬쩍 몸을 숙이며 케일의 귓가에 속삭였다.
“공자님을 은빛 공자님이라고 부르시나 봅니다. 크흠, 본디 멋진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붙는 법이지요.”
제길. 케일은 터져 나오려는 거친 말을 삼켰다.
은빛 공자니, 방패 공자니. 그딴 오글거리고 부끄러운 말을 좀 듣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케일은 이것이 그나마 왕세자가 소문을 잠재워서 이 정도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다만 어깨를 으쓱이는 부단장에게 나직이 말했다.
“여기서 내가 술 한잔 마시고 평소대로 하면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겠지?”
“크흠, 큼!”
부단장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 케일은 그제야 시원한 기분에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지웠다. 이어진 부단장의 말 때문이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으니, 술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케일은 아직 공식적으로 아픈 중이었고, 회복이 덜된 상태였다.
가진 바의 힘보다 더 무리하게 고대의 힘을 사용하는 바람에 그는 몸이 다쳤으며, 그 덕에 기적적으로 마법 폭탄의 폭발을 막았다.
그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는 당연히 왕세자 알베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기에 수도에 있는 헤니투스 백작가 가솔들은 아픈 케일을 보호하느라 지극 정성이었다.
물론 수도만이 아니었다. 케일은 며칠 전 영지에서 올라오려던 데르트 백작을 떠올렸다. 그는 영상 통신구에 대고 케일에게 말했다.
-케일. 그 녀석들 얼굴을 보았느냐? 이 애비가 다 죽여주마. 검 하나 휘두르지 못하는 너에게 감히!
케일이 고대의 힘을 하나 얻은 것을 알면서도, 어찌 되었든 가문에서 여동생보다 검을 못 다루는 케일을 약하다고 판단한 데르트 백작이었다.
-우리 헤니투스가 가만히 있는 건 약해서가 아니다. 그걸 기억해라. 우리는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뿐이다. 이 일로 너를 건드는 이들은 어느 누구도 없을 것이다.
데르트 백작을 말리며 바이올란 백작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왕성을 나와 저택으로 돌아온 케일에게 서신을 보내거나 찾아오는 귀족들은 없었다. 에릭 일행들마저 안 왔다.
‘그 덕에 좋았지.’
그 시간을 아주 유익하게 보낸 케일이었다. 앞을 보며 걷던 케일은 입구를 지키는 기사와 병사를 마주칠 수 있었다.
“아, 케일 공자님.”
“신분 확인해야 하나?”
케일의 물음에 기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중히 입구를 내어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케일 혼자 들어가야 했다. 이전 탄신일 기념 축사 때와는 비교도 안 되도록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케일은 예외였다.
“공자님,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래, 고맙네. 수고하게.”
“…네!”
케일은 힘차게 답하며 고개를 숙이는 기사가 고생한다는 생각에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뒷모습을 기사는 한참 동안 바라봤다.
케일은 여전히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영광의 광장.
오늘 이곳에서 국왕은 죽은 이들을 기리고, 몇몇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이들은 오늘 이 광장에서 국왕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케일은 평소보다 더 깔끔한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채 자신의 자리에 도착했다.
“케일.”
“형님, 미리 오셨군요.”
케일은 자신을 부르는 에릭 휠스만에게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자리에 섰다.
귀족 자제들이 모이는 자리. 그곳에 케일은 섰다.
그런 그를 에릭 휠스만은 물론이거니와 아미르, 길버트를 비롯한 귀족 자제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봤다. 모두 케일에 대한 소식을 하나 들었기 때문이다.
케일 헤니투스는 명예의 상징인 훈장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이 훈장을 다른 이에게 양보했다.
또한 그는 아직 덜 회복되었다고 알려진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참석했다.
아미르 우바르는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떠난 이들을 위한 것인지 날씨가 참 좋네요.”
담담하게 말하는 케일의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 검은 정장과 대비를 이뤘다. 아미르는 그 평소처럼 담담한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공자의 마음 덕분인 것 같아요.”
“제 마음이요?”
이건 뭔 소리인가 싶어 의아한 얼굴로 케일이 아미르를 쳐다봤다. 아미르는 케일의 반응에 그저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케일은 그 행동이 의아했지만 제 할 말을 했다.
“오늘 떠나시죠?”
“네. 공자는 내일 출발하시죠? 영지에서 뵙겠네요.”
케일은 아미르 우바르, 그녀 가문의 영지인 우바르에게 가게 되었다.
“네. 바다가 보고 싶어서요.”
“그래요. 요양이시라고?”
“네. 아무래도.”
요양은 무슨. 말짱한 몸으로 더 강해지러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담담히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요.”
“아, 그렇죠.”
아미르와 듣고 있던 길버트, 에릭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케일과 비슷한 미소였다. 오늘이 지나면 아마 귀족들의 귀에 한 가지 소식이 전달될 것이다.
동북부 해안 군사 기지 개발 및 투자. 그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아미르와 길버트는 오늘 밤 수도를 급히 떠난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왕실도, 이들도 빨리 일을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헤니투스 백작가가 아미르와 길버트의 영지에 막대한 돈을 빌려주기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케일이 아미르와 길버트의 영지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케일, 우리 가문에서도 사람을 보낼 것이지만, 네가 가는 길이라면 한번 보고 오너라.’
‘아버지, 저보다는 전문가가 낫지 않겠습니까?’
‘눈은 여러 개일수록 좋지.’
케일은 데르트 백작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공자.”
케일은 아미르와 길버트에게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이며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국왕 제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모식 및 훈장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국왕 제드는 어느 때보다도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광장은 저번 주처럼 사람이 많았지만 그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숙연했다.
“우리는 결코 공포에 움츠러들지 않음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서 한 번 더 모이게 되었다.”
국왕은 다시 한번 광장으로 왕국민들을 불러 모았다. 적을 향한 경고이자 과시였다. 국왕 제드는 가장 높은 단상에서 아래 광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많은 이들이 용감한 행동을 해주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의 역사처럼 이 땅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 순간 케일은 국왕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아닐 것이라 바랐다. 슬그머니 케일은 시선을 돌려 국왕 너머의 하늘을 쳐다봤다. 그는 검은 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양 신의 가호? 저딴 하찮은 인간들에게서는 어떠한 신의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특이한 존재는 왕세자뿐이다.’
크로스만 왕가에 전해진다는 신의 힘은 없었다. 또 하나의 쓸데없는 진실을 알게 된 케일은 결국 모든 것을 모른 척하기로 했다. 검은 용은 케일이 둘만의 비밀로 하자는 말에 무엇이 신났는지 날개를 파닥이며 알겠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용감한 행동을 보여준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겠다!”
국왕 제드가 훈장 수여식에 대해 알렸고 한 사람씩 올라와 훈장을 받게 되었다.
와아아아아-
언제 침체됐냐는 듯 이제는 환호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검은 용의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인간은 신기하다.
와아아아아-
검은 용의 목소리와 함께 훈장을 받은 한 기사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검은 용이 무엇을 신기해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케일은 인간이기에, 신기해하는 검은 용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기쁜 것은 기쁜 법이었다.
짝짝짝.
그렇기에 그도 훈장을 받은 이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분위기는 한결 풀어져 있었다. 다들 축제처럼 훈장 수여식을 즐겼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누군가 케일에게 다가올 수 있었다.
“케일 공자.”
케일은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테러로 수도가 위험하다고 판단해 영지로 돌아간 귀족 자제들이 꽤 많았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함께하는 귀족 자제들은 전보다는 적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케일의 옆으로 다가와 그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베니온 공자?”
베니온 스텐. 그는 아직 이곳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 지역 수장 가문의 귀족 자제들은 모두 남아 있었다.
“훈장을 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쉽지 않으십니까?”
단상 위를 보던 귀족들의 시선이 베니온과 케일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지금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베니온이 왜 이 물음을 던졌는지, 무슨 의도인지 모른다.
-죽여버리고 싶다.
다만 여기서 베니온의 몸이 터지며 죽어버릴까 걱정될 뿐이었다. 케일은 검은 용이 진정하길 바라며 훈장에 대해 생각했다.
케일은 훈장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기록’되어지기 싫었다.
왕궁 도서관의 제일 위층에는 당대 왕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층에는 여러 단계의 훈장을 받은 ‘영웅’들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훈장을 받은 이들에 대해 왕실은 보상금을 다달이 주는 것을 이유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관리하였다.
‘그게 명예일 수도 있지만. 왠지 나는 족쇄가 될 것 같았거든.’
케일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기를 원했다. 기록이 되지 않으면 잊힌다. 곧 전쟁이 곳곳에서 터지는데 어느 누가 이 광장에서의 일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겠는가. 기억해도 다른 것이 먼저였다.
그걸 알기에 이번 일에 나선 케일이었고, 이것이 기록을 피하고 싶은 이유였다.
케일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그는 베니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쉬울 게 무엇 있습니까.”
케일은 아쉬울 것 없었다. 보상도 두둑이 받았고 무엇보다도.
“살아남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게 가장 케일에게, 김록수에게 중요하고 또 중요한 사실이었다. 케일의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 침묵을 깨며 베니온은 한참 만에 말했다.
“…그렇군요.”
“네. 제가 또 훈장을 받기에는 담이 조금 작고 소박한 편이거든요.”
베니온의 표정이 묘해져 갔다. 하지만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려 새로이 훈장을 받는 이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검은 용은 베니온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다가 케일과 그의 주변을 살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케일을 쳐다보는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귀족이라는 자들부터 해서 단상 아래의 사람들까지. 여기서 베니온을 죽이면 귀찮은 일이 많겠다 싶어 검은 용은 케일처럼 그저 가만히, 정말로 가만히 행사를 지켜봤다.
“이로 오늘의 이 행사는 끝이 난다. 하지만 짐은 오늘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용감한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국왕의 마지막 말과 함께 행사는 끝이 났다.
쏴아아아- 마치 빗소리와 같은 거친 바람이 광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케일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왕세자는 오늘 추모식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케일은 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가지는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만의 추모를 끝내고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 위에 올렸다. 그 순간 다급한 표정의 에릭이 그에게 말했다.
“케일! 무리했어? 심장이 아파?”
근심 걱정 가득한 그 표정에 케일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 쳐다봤고, 그 명백한 눈빛에 에릭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상당히 창피해하는 얼굴이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리며 제 왼쪽 가슴 위를 툭툭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상의 안주머니에 있는 황금패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왕세자로부터 받은 보상이었다.
‘왕세자가 생각보다 통이 커.’
황금패. 무엇이든 딱 두 번 금액과 상관없이 구매할 수 있는 기회.
빵을 두 개 사는 것이나 산을 두 개 사는 것이나 상관없이 두 번이라는 기회만으로 따지는 황금패. 아주 케일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은 황금패였다.
‘왕세자는 ‘네가 두 개를 사봤자 뭘 사겠냐?’는 생각으로 이걸 줬겠지만.’
아니면 네가 어떤 것까지 살 수 있지? 그런 시험하는 생각에서 건네준 것일 수도 있지만.
‘아주 생각을 잘못했어.’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상에는 살 수 있는 물건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그 물건을 살 방법만 안다면 말이다.
-또 뭘 꾸미냐? 약한 인간, 조심히 지내라.
케일의 표정을 보고 건넨 검은 용의 말은 가벼이 무시하는 케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주치는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시선들은 자신이 수도를 떠나면 곧 사라질 것이라 그는 믿었다.
그렇기에 다음 날 일찍 수도를 떠나기 위한 준비를 다한 케일은 검은 용에게 스테이크를 내밀며 동시에 세 개의 물건을 내밀었다. 검은 용은 스테이크 그릇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이걸 뭐 하게?”
세 개의 물건. 그것은 마법진이 해제된 마법 폭탄이었다. 이 안에는 아직 응집된 마나 힘이 존재했다. 일단 저 셋 중 하나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케일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소용돌이 부숴 버리려고.”
아무도 모르게 케일은 로운 왕국 동북부 바다를 뒤엎어버릴 작정이었다. 아직 인어도, 고래족도 살지 않을 동북부 바다이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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