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90
489화.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라온 님.”
텔레포트 빛이 사라지고 목적지에 도착한 케일은 부드러이 미소 짓고 있는 론을 볼 수 있었다.
“론 할배, 오랜만이다! 반갑다! 사과파이 고맙다!”
론은 유려한 동작으로 라온에게 사과파이를 내밀었다.
“…고맙다.”
그리고 케일에게는 뜨끈뜨끈한 김이 치솟아 오르는 레몬차를 건넸다. 케일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찻잔을 받아들며 창가로 향했다.
“넌 없다.”
최한은 론의 말에 별다른 반응도 하지 않았다. 기대도 안 한 표정이었다.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을 내려다봤다.
“꽤 정리가 되었군.”
집무실 창밖으로, ‘암’의 잔재는 모두 사라지고. 펄럭이는 몰란 가문 깃발 아래 활발하게 재건이 이루어지는 몰란 저택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공자님.”
케일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움직였고 버드의 친우이자 최상급 마법사인 그렌 퍼프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고생이 참 많아.”
“…아닙니다. 그냥 버드 같은 놈과 알고 지내는 게 아닌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그렌의 눈동자엔 제 고생을 알아준 케일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있었다.
“조피스의 저택은 어디지?”
케일의 물음에 론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상당히 한적한 산골 마을로, 오가는 상단조차 없는 곳입니다.”
몰든 왕국은 상행과 운송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런 곳에서 방문하는 상단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는, 그 마을이 상당한 오지이자 낙후된 곳이란 의미였다.
“도련님, 제가 안내할 것이니 길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자한 론의 미소에 케일은 괜히 뒷목이 서늘해져 와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대신 그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버드가 왜 굳이 조피스에게로 간 것이지?”
몰든 왕국에 대한 정보는 걱정 말라고,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했던 버드였다.
‘얼빵해 보여서 그렇지, 명색이 용병왕인데.’
버드가 정보를 얻을 방법은 무수히 많았다.
동대륙 전체에 살아 숨 쉬는 용병들이 바로 그의 정보처였으니까.
그런 그가 굳이 산골 마을로 가 폐위되어 무엇도 없는 조피스를 찾아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말이죠.”
그렌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 때문에 지켜보던 케일과 최한을 비롯한 일행들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그렌의 입이 다시 열렸다.
“…비밀이라고.”
“음? 뭐?”
그렌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그는 케일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버드 이 미친 새끼.”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말을 이었다.
“특급 정보를 손에 넣었다고, 이걸 공자님께 본인이 알아내서 전달할 테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이 정보만 알려주면 비서 신세는 벗어날 거라고요.”
그렌은 버드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크하하하! 이번에야말로 이 용병왕 님의 능력을 보여주지! 맨날 심부름꾼만 시키고, 내가, 내가 제일 못난 취급 받고! 크흡!’
버드가 술을 처먹으면서 부렸던 오두방정을 그렌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으로도 모든 것이 전달되었다.
최한의 입이 열렸다.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았군요.”
“하, 하하하-”
론이 기가 찬 얼굴로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그리고 몰란 가문처럼 유명한 뒷세계 가문인 퍼프 가문 출신의 그렌은 론의 살벌한 눈동자에 버드의 안녕을 빌었다.
“…하.”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결국 일단 버드와 조피스를 만나야 얘기가 되겠군. 론, 안내를 부탁해.”
“네. 도련님.”
이미 검은색으로 뒤덮인 옷차림의 론이 케일 곁으로 다가오며 앞장섰다.
케일은 이를 보며 슬그머니 뜨끈한 레몬차를 한 모금만 마시고 옆에 놓아두었다.
“인간아! 레몬차 맛있나?”
케일은 라온의 순수한 물음에 저에게로 향하는 론의 시선을 받았다. 그는 자발적으로 열심히 레몬차를 마저 다 마시고 나서야 조피스 왕녀의 저택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
“도련님, 저기입니다.”
케일은 론이 가리킨 곳에 작고 낡은 집을 가만히 바라봤다.
“도망가기 쉽겠는데요.”
최한이 집을 둘러싼 허술하다 못해 낮은 담장을 보며 케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케일의 시선이 그렌에게로 향했다.
그렌은 작은 집 주변을 가리켰다.
험준한 몰든 산맥 아래에 바로 자리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작은 집.
그 작은 집 주변은 나무 하나 없었고 언덕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저 마을에는 총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죠.”
마을에는 오가는 사람들도 보였고, 개를 많이 키우는지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은 대대로 여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 절반은 조피스 왕녀를 감시하는 자들이죠.”
나무 하나 없는 완만한 언덕 위의 작은 집.
그곳은 마을에서 올려다보며 감시하기 딱 좋았다.
최한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아무리 마을에서 이 집을 감시하기 쉽다고 해도, 어째서 이 집 근처에서 감시를 하지 않는 거죠?”
근처에서 감시하는 게 가장 확실하고 쉽지 않은가?
그렌은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이 마을에 살아가는 마지막 부류는 조피스 왕녀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시던 이들이었습니다.”
감시하는 자들은 조피스만 감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어릴 때부터 키운 유모, 시종, 시녀, 호위 기사, 관리, 학자. 모든 이들이 함께 있고 하나같이 무력 수단을 빼앗긴 상태로 있지요.”
호위 기사의 경우에는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저 마을에서 평생 살아야 했다. 다른 몇 명의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사는 감시자들은 정해진 시간이면 조피스 왕녀 집 근처로 와서 그녀의 동태를 확인하고 갑니다. 또한 최상급 마법사가 아니면 피하거나 풀기 힘든 알람 마법이 담장 밖 주위에 수십 개 분산 설치되어 있지요.”
우우우-
개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조피스 왕녀는 도망가려면 도망갈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저 아래에서 감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허술한 만큼 마을 쪽이 아닌 산맥 쪽으로 향하면 도망갈 길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 저 마을에 사는, 그녀를 마지막까지 따른 이들이 모조리 몰살당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저들의 가족들도, 친척들도. 모두 다요.”
최한은 그렌의 설명을 다 듣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도망가기 힘들겠어.’
최한이라도 조피스의 처지라면 도망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최한 그는 더욱더 그랬다.
그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왜 엘리스네 1세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지?”
“모르겠습니다.”
그렌은 케일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였다.
“대외적으로는 동생을 불쌍하게 여긴 언니의 선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엘리스네 1세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엘리스네 1세는 하얀 별의 수하인 것을 떠나 사람을 조종하고 다루며 절망을 보여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던 사람이었다.
동생을 정말로 불쌍히 여길 수도 있었으나, 그럴 확률은 낮았다.
“음,”
케일은 생각에 빠진 듯 가만히 작은 집을 응시했다.
“도련님, 일단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론이 인자한 목소리와 함께 그에게 살며시 조언을 건넸다. 그렌 역시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마법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힘듭니다. 물론 라온 님이 계시지만요.”
현재 일행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투명화 마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이리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개들의 울음소리만 근처에서 들릴 뿐, 사람의 시선은 물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사람은 이 근처에 없었으니까.
“그래. 일단 가야겠지.”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이익-
그 순간이었다.
-인간아!
투명화하고 있던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을 때. 케일은 작은 집의 낡은 나무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상저장구로만 봤던 얼굴이 나타났다.
한 치의 틈도 없이 틀어 올린 머리칼에 기품이 느껴지는 분위기의 여인.
“오셨군요.”
그 우아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최한은 저도 모르게 검집에 손을 올렸다.
그들은 현재 라온과 그렌의 투명화 마법으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조피스 왕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터인데, 문을 열고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실력자다.
최한은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챈 그녀가 상당한 실력자임을 깨달았다.
‘이상해.’
그런데 이상했다.
최한은 그 사람의 무력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가진 기운을 주로 느껴 판단한다.
조피스의 경우, 그녀가 무슨 힘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설펐다.
기운을 완전히 감춰서 그 강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가진 힘 자체가 어중간하게 느껴졌다.
그때, 케일이 앞으로 걸어 나섰다. 여전히 투명화해 그가 보이지 않을 조피스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주술사이시군요.”
아.
최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조피스는 주술사다.
그녀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주술사라고 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어쭙잖은 실력입니다.”
맞다.
최한이 느낀 그녀의 실력은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어쭙잖다 못해 별로였다.
-저 말이 맞다! 인간아, 저 왕족한테서 가샨의 힘이랑 비슷한 게 느껴지지만 호랑이 할배가 훨씬 더 세다! 저 왕족은 호랑이족 꼬맹이 주술사보다 더 약하다!
케일에게 조피스의 정체를 알려준 라온도 그녀가 약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를 알아챘는지 모르겠다!
글쎄, 난 알겠는데.
케일은 담장으로 다가갔다. 당연히 라온이 미리 알려준 알람 마법 장치를 피해 걸어갔다.
“주술 실력은 떨어지시겠지만.”
그는 낡고 허술한 담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피스의 앞에 서며 걸음을 멈췄다.
조피스는 그가 보이지 않음에도 정면을 올곧이 응시하고 있었다. 케일은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봤다.
“주술사에겐 친구가 있지요.”
조피스의 입가에 우아한 미소가 어렸다.
멍, 멍!
집 뒤편.
강아지 한 마리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알람 마법은 사람에게만 반응했다.
산짐승이나 벌레 모두에게 반응했다간 인력 낭비나 장비 소모가 엄청났을 테니까.
우우우우-
개들의 울음소리가 숲 곳곳에서 들려왔다.
조피스의 입이 열렸다.
“맞아요. 제 친구들은 귀도 밝고 냄새도 아주 잘 맡죠. 그리고 늘 나에게 신뢰를 보내주지요.”
가샨에게는 까마귀가 있듯이.
멍, 멍!
조피스는 제 다리에 머리를 부비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친구들은 이 몰든 산맥 주위를 무리지어 다니지요. 제 힘이 모자라 몰든 산맥 일부까지밖에 연결이 닿을 수가 없어서요.”
조피스에게는 개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지금도 강아지가 그녀에게 지금 이곳을 찾은 냄새들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용병왕을 부리고. 몰든 산맥의 새로운, 아니지, 돌아온 주인인 몰란 가주를 수하로 다루는 분이여.”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피스가 문에서 비켜섰고, 케일은 걸음을 옮겼다.
“투명화 좀 풀어줘.”
-알았다, 인간!
마법이 풀렸다.
뒤이어 최한과 론이 들어오며 나무문이 닫혔다.
“…낯선 분이군요.”
케일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조피스가 우아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읍, 읍!”
그리고 그 뒤에는 여전히 재갈이 물린 버드가 낡은 소파에 앉은 채 반갑다는 듯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하아.”
케일은 한숨과 함께 버드를 외면하며 조피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몰든 왕궁을 폭발시켜버릴 사람입니다.”
“읍!”
버드가 숨을 들이마시며 굳어버렸고, 조피스 왕녀가 여전히 기품 있는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용병왕 대가리를 날려버리는 일보다 재미있겠군요.”
“읍!”
버드가 다시 한번 경기하듯이 숨을 들이마셨다.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케일과 조피스를 바라보는 버드의 동공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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