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96
495화.
몰든 왕국 수도 렌체 안으로 들어온 케일은 손에 들린 지도를 접어 조피스에게 건넸다.
그녀에게 받은 두 지도 중 하나였다.
케일은 살짝 눈가를 찡그린 채 입을 열었다.
“지상으로 잠입하는 건 글러먹은 것 같습니다만.”
“그렇네요.”
조피스의 미간도 찌푸려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케일 님.”
나직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최한이 골목 구석에 숨어있던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확인했습니다만, 마지막 입구도 막혔습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요.”
로브로 모습을 감춘 타샤가 탄식을 흘렸다.
마찬가지로 로브로 모습을 감춘 조피스는 입술을 깨문 채 케일이 넘긴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지상을 통해 몰래 몰든 왕궁에 잠입할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어요.”
그녀의 시선이 지도 곳곳에 작게 표시된 붉은 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제가 파놓은 비밀 입구는 물론이거니와 왕족 탈출을 위해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입구까지 모두 막혔어요.”
“엘리스네가 입구를 다 막았나 보군요.”
“…쓸데없이 치밀한 새끼.”
케일은 조피스의 거친 말은 모른 척했다. 그리고 동료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심각한 얼굴이었다.
케일은 심각한 분위기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직 지하 수로가 남아있으니, 기다려보죠.”
왕궁으로 잠입하는 방법 중 지하 수로도 하나의 방법으로 남겨두었다. 타샤도 케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하 수로는 수도 대공사를 하지 않는 이상, 그 수로 자체를 바꾸기가 힘들죠. 그리고 결국 물은 강으로 흘러나와야 하니, 그 강에 수로의 끝이 존재할 것이고요.”
현재 왕궁으로 연결된 지하 수로의 끝과 중간중간 출입구를 향해 다크엘프 전사 몇 명이 탐색을 간 상태였다.
“조금 힘들더라도 지하 수로를 통해 잠입하면 될 겁니다.”
타샤는 조금 번거롭지만 그게 어디냐는 듯 쾌활하게 말했다. 하지만 조피스의 표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에요. 지하 수로는 힘들 거예요.”
“네?”
조피스는 타샤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엘리스네. 그 새끼가 왕족 탈출구까지 막아뒀으면 지하 수로쯤은 다 방비해두었을 거예요.”
그 순간, 로브로 몸을 가린 이가 한 명 더 다가왔다.
지하 수로 출입구를 찾으러 간 다크엘프들 중 한 명이었다.
“…타샤님.”
목소리가 좋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케일과 타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수도 렌체 전역의 도로에 존재하는 지하 수로 출입구가 막혀 있습니다.”
“뭐?”
타샤가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아니, 그러면 지하 수로 점검을 하러 어디로 들어간단 말이야?”
“다른 수로 출입구는 괜찮은데, 왕궁으로 향하는 수로 출입구만 막혀 있습니다.”
기가 막혀 하는 타샤에게 조피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왕궁으로 향하는 지하 수로 점검은 왕궁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니, 왕궁 밖에 수로 출입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타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엘리스네 1세가 아주 철저할 정도로 몰든 왕궁으로 향하는 통로들을 막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하 수로 끝도 평범한 상태는 아닐 것 같군요.”
왕궁에서 사용한 물이 흘러나가는 지하 수로의 끝.
그 끝은 강과 닿아있었다.
“공자님.”
또 다른 다크엘프 한 명이 탐색을 끝내고 돌아왔다. 케일을 비롯한 일행들은 그의 보고를 기다렸다. 그가 바로 수로의 끝과 닿는 강에 다녀온 자였다.
“수로 끝에는 기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역시.”
최한이 나직이 중얼거렸고, 다크엘프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신호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하 수로를 침입하려는 적을 발견하면 즉시 왕궁에 알리기 위해 소지하고 있는 신호탄일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고, 그의 입이 열렸다.
“기사들을 제압하고 잠입한다.”
***
수도 렌체의 북쪽에서 시작되어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강.
그 강의 끝에 위치한 수로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 날씨가 추워져도 냄새가 심하네.”
그 수로를 지키고 있는 네 명의 기사 중 한 명은 손으로 코를 막으며 고개를 연신 가로저어 댔다.
“그래도 제일 심한 오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데인 게 어디야?”
“그렇긴 하지.”
왕궁에서 시작되어 강에 닿는 수로는 총 세 개였고, 그중 이 수로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주로 주방이나 왕궁 정원, 기사 연무장 청소 등에서 사용하고 버려진 물들이었다.
“그렇긴 뭐가 그래? 세상 어디에 기사가 이런 곳에서 경비를 서? 안 그래-, 어?”
코를 막은 채 성질을 내던 기사는 제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찰나의 순간.
“커헉!”
그는 뒷목을 가격하는 힘에 숨을 들이마셨고, 이내 그 몸이 힘없이 늘어졌다.
털썩. 털썩.
기사 네 명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대단하네.”
타닥.
그리고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케일이 내려섰다. 다크엘프들은 케일의 말에 쑥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저희가 몸놀림이 좋은 편이라서요.”
부끄러워하면서도 제 자랑은 꽤 당당하게 한 다크엘프는 이내 코를 움켜쥐었던 기사의 품을 뒤져 신호탄을 세 개 꺼내 들었다.
마법 물품인지 폭죽과 비슷한 것으로, 꽤 위력이 세 보이는 것이었다.
“이건 저희가 들고 있겠습니다.”
작전대로 신호탄을 품에 넣은 그의 곁으로 다크엘프가 한 명 더 자리했다.
그 두 엘프를 제외한 꽤 많은 인원의 일행들은 지하 수로의 끝을 바라봤다.
촘촘하게 철창이 쳐진 거대한 통로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통로가 커서 수로에 흐르는 물이 닿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양옆에 존재했다.
타샤는 통로를 막고 있는 철창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걸 부숴-”
채앵-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타샤는 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달칵.
최한은 꺼내어 휘둘렀던 검을 차분하게 검집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철창을 툭 밀었다.
끼이이- 탕!
철창이 깔끔하게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케일은 슬그머니 최한에게 엄지를 올려 보이곤, 조피스에게 눈짓했다.
“가시죠.”
멍!
복슬이를 시작으로 하나둘 수로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여기요.”
“지도는-?”
“필요 없어요.”
조피스는 케일에게 지도를 건네고는 망설임 없이 수로 안으로 들어갔다.
“보니까 수로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죠. 따라오세요.”
복슬이와 조피스가 빠르게 나아갔다. 케일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는 잠시 시간이 흐른 뒤, 한숨을 내쉬었다.
“…더럽게 힘드네.”
-인간아, 괜찮나? 쪼그리고 걷기 힘들 것 같다!
라온의 말대로 쪼그리고 걷는 케일은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앞장선 조피스가 다독이듯이 말했다.
“지금 우리 머리 위에 몰든 왕궁이 있어서 그래요.”
“들어왔습니까?”
최한의 물음에 조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까 전에 갈림길이 등장하고 통로가 좁아졌을 때부터 왕궁터 안에 들어왔다고 보면 돼요.”
커다랗던 수로는 일정 거리를 걸어가자 여러 개의 갈림길이 등장하더니 그 통로가 아주 좁아졌다.
이는 여러 왕궁 장소와 연관된 통로들이라 그러했다.
“여긴 좁지만 그래도 바닥에 물이 없으니 좋네요.”
“맞습니다.”
타샤와 최한이 물기 하나 없이 마른 지하 수로를 쪼그리고 걸으며 말했다.
조피스는 연신 좁은 수로 통로의 천장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몰든 왕국이 세워졌을 때, 왕궁 중앙에는 거대한 화원이 존재했죠.”
뜬금없는 이야기에 최한과 타샤를 비롯한 일행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거대한 화원이 존재하는 만큼 아무리 흙이 물을 머금는다고 해도 수로가 필요했어요.”
“그 수로가 지금 우리가 걷는 이곳입니까?”
케일의 물음에 조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예요. 하지만 지금은 물이 없죠?”
“그렇네요.”
“몇십 년 전, 그 당시 국왕 폐하께서 화원을 싹 없앴거든요.”
사시사철. 다르게 아름다웠던 몰든 왕궁 중앙 화원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값비싼 대리석을 깔고 중앙에 거대한 동상을 세웠어요. 초대 국왕의 동상이죠.”
“나름 의미 있네요.”
타샤가 그 말을 건넨 순간, 앞서가던 조피스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우아한 미소를 그렸다.
“그럼요. 의미 깊죠. 그 동상이 미로의 두 개 입구 중 하나니까요.”
음.
최한이 짧게 침음을 삼켰다.
“중앙 화원 아래에는 거대한 미로가 존재했어요. 그 미로는 몰든 왕궁 전체 터 크기와 같죠.”
“그 말은 왕궁 크기만큼의 미로가 존재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조피스는 타샤의 말에 수긍했고, 복슬이가 케일에게 다가왔다.
“멍!”
혀를 내밀며 꼬리를 흔들던 복슬이를 쳐다보던 케일은 조피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 온 것 같습니다만.”
“…역시 바로 알아채시네요.”
“뭐.”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제 손에 들린 지도를 흔들어 보였다.
지도에는 케일이 지금 위치로 추정하는 곳에 큰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목표지점이라는 뜻이었다.
조피스는 아예 몸을 돌려 일행들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어두운 통로 안, 하지만 다크엘프 몇 명이 피어올린 정령의 불 덕분에 어둡지 않았다.
“지금 이곳은 과거에 제가 몰래 엘리스네를 피해 도망치려고 했던 통로 중 하나예요.”
“이곳이 어디죠?”
타샤의 물음에 케일이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중앙 화원이었고 현재는 중앙 광장이라는 이름을 지닌 곳 같군.”
“…왕궁 안에 광장이라는 호칭을 쓰나요?”
“그만큼 넓다는 의미지.”
케일은 제 말이 맞냐는듯 조피스를 바라봤다. 조피스는 우아한 미소를 그려 보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리고 그 넓은 곳 중앙에 동상이 있죠.”
왕궁 내에 존재하는 ‘ㅁ’자의 거대한 광장.
“동서남북. 각 방향에 국왕 수뇌부 회의처. 그리고 각각 행정, 병력, 법 세 곳의 회의를 하는 궁들이 존재합니다.”
광장을 둘러싼 네 방위에는 관리와 왕의 회의가 이루어지는 각 분야별 4개의 궁이 존재했다.
“대단하군요. 그런 곳 중앙에 미로로 가는 입구를 만들어 놓다니요.”
타샤의 말에 조피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회의가 없을 땐 비니까요.”
아.
타샤가 작게 탄성을 흘렸을 때, 조피스는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상급 관리 이상만이 모이는 회의장이다 보니, 아무나 함부로 이 광장에 올 수 없죠. 그리고 중요한 장소이니만큼 국왕이 이곳을 관리했죠.”
달칵. 달칵.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피스의 손이 점점 더 분주해졌고, 그럼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품 있고 차분했다.
“낮에는 왕국 주요 안건에 대한 회의를 하는 곳이라 공식적으로 삼엄한 경비가 가능하고. 회의 시간 뒤에는 텅텅 비니, 남의 시선을 피해 왕족들이 몰래 오가기 좋았죠.”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왕의 수족이니, 비밀 걱정도 없겠군요.”
최한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의 관리 하에 있는 궁들이니, 왕은 은근슬쩍 실력자들을 이곳에 경비로 배치해 두었다.
“그래서 밤만 되면 텅 빈 네 궁을 중심으로 기사들이 경비를 서고, 왕족들이 몰래몰래 오갔죠. 실질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는 궁은 야근을 하느라, 늘 불이 켜져 있지만 회의장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거든요.”
그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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