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06
505화.
“안 됩니다.”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최한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그는 케일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을 생각하시든 그건 안 됩니다.”
“응?”
“제가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스릉.
최한이 검집에서 검을 슬쩍 꺼내 들었다.
“검에 심장이 찔리면 죽습니다. 피는 안 됩니다.”
최한의 살벌한 눈동자에 케일은 안 그래도 빠르게 뛰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어르신이고, 뭐고 간에 저 눈빛 하나는 진짜 무서웠다.
진심으로.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고 말을 내뱉었다.
“미쳤냐? 나는 장수하는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사람이야!”
아.
정말로 솔직한 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
그러나 최한은 이렇다 할 반응 없이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너 지금 나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케일은 차마 최한의 눈빛을 마주하기 힘들어 외면했다. 그때, 펜드릭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저는 세계수께서 하신 말씀 다 전달했습니다.”
케일은 그런 펜드릭을 보며 세계수를 떠올렸다.
‘내가 가진 심장의 활력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건가?’
그는 세계수가 자신이 가진 고대의 힘들을 어쩌면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영 기분이 그랬다.
‘…분명히 내 미래는 잘 안 보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고대의 힘을 지닌 자들의 미래는 볼 수 없다고 하더니, 거짓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케일은 이래저래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다만 문제는 지금이 차분히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끄으으-”
밑에서 주술사 한 명이 꿈틀거리며 고통을 토해내고 있었고.
콰아아앙!
쿠웅. 쿠구구구웅-!
무엇을 쳐부수는지 사방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냅다 다 부수고 있는 거 아냐?’
마치 뒤는 없다는 듯이 일행들이 힘을 닥치는 대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이건 막아야 했다.
앞으로 왕궁을 탈출하고 버드 쪽과 합류하려면 힘을 어느 정도 비축해두어야 했다.
-…저기요…
그때, 가짜 세계수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나뭇가지가 케일을 보듬느라 닿아있어 대화는 충분히 가능했다.
케일은 세계수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케일 님.”
하지만 최한이 말을 걸었고, 케일은 잠시 있어 보라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최한의 이어지는 말에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이 가짜 세계수는 엘리스네의 조종을 받습니다. 다만 지금은 조종에 저항 중인 상태로 그 자유로운 시간이 현재 20분가량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0분?”
“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미로를 파괴하고 적들을 최대한 무너뜨린 다음 케일 님을 모시고 나갈 계획이었습니다.”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이 정신을 잃은 시간까지 합치면 여유 시간은 30분. 짧기는 짧았다.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힘을 있는 대로 썼던 건가?”
“그렇습니다. 일단 탈출이 중요하다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뛰면 엘리스네의 환각이 제대로 펼쳐지기 힘들다 판단했습니다.”
최한의 말이 맞았다. 맞긴 맞는데.
“최한. 나중에 위급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마구잡이로 힘을 쓰면 어떻게 하려고? 일단 다들 무리시키지 마.”
“…알겠습니다.”
최한이 몇 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러다 케일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돌리니, 펜드릭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할 말 있나?”
“아, 아닙니다.”
펜드릭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기가 차다는 눈빛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눈앞의 케일은 고대의 힘을 써서 창백한 얼굴과 입가에 말라붙은 핏물이 빤히 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그가 하는 말에 말문이 막혀왔다.
‘…역시 자신의 몸보다 동료를 중시하시는군.’
그러니 환각도 이겨내신 것이겠지.
펜드릭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최한의 굳은 얼굴 속 심정을 이해했다. 저런 주군을 두었다면 누구라도 답답하면서도 존경할 수밖에 없으리라.
케일은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깨어났다고 일행들에게 알리고-”
-이, 이, 인간아아-!
…하. 뭔 일을 하려고 하면 뭐가 튀어나오네.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지만 저를 부르며 격렬하게 다가오고 있을 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쿵!
그리고 흠칫 몸을 떨었다.
나무와 무언가가 부딪쳤다.
분명 라온일 것이다.
“…라온. 너 괜찮냐?”
-인간아! 깨어났나?
하지만 라온에게 케일의 물음은 들리지 않은 듯했다.
-다행이다! 인간, 내가 미로 다 쳐부수고 있다! 미로 벽은 내가 아주 모래 수준으로 잘근잘근 부숴버릴 거다!
…여섯 살 용의 어휘가 늘긴 늘었는데, 조금 위험한 방향으로 는 것 같다.
-약한 인간은 가만히 있어라! 우리가 알아서 다 한다! 검은 나무야, 못 나오게 해라! 나오면 인간 기절한다!
꽈아악.
검은 나무가 더 촘촘하게 케일을 감쌌다.
케일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아 맞다! 왕세자한테 연락 왔다!
“…뭐?”
허공에 갑자기 영상통신구가 나타나 최한의 손으로 향했다.
시뻘건 영상통신구는 곧바로 연결되었다.
-너 왜 이리 늦게 연락을-! …동생. 어디 갇혔나?
다급하게 통신을 받았던 알베르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별거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쯧.
알베르는 가볍게 혀를 찼다.
별거 아니라기엔 몰골이 엉망이었다. 어디 몸에 좋은 약이라도 찾아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알베르는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서북부에 의심스러운 이들이 들어왔다는 첩보가 왔다.
케일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의 몸이 절로 영상통신구 가까이로 숙여졌다.
하얀 별이 마지막 땅의 힘을 찾으려면 세 번째 추측 장소인 로운 서북부로 와야 했다.
물론 이를 위해 하얀 별이 대놓고 로운 왕국으로 쳐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따로 수하를 은밀히 로운 서북부로 침투시킬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현재 로운 서북부 곳곳에 알베르가 보낸 이들이 돌아다니며 의심스러운 자들을 찾고 있었다.
-우리 예상대로, 하얀 별 쪽 수하 놈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군요. 그러면-”
-그래서 바쁘다. 중요 정보는 메시지로 전달하지.
“예?”
-바빠. 그럼 이만. 몸 관리 잘하고.
뚝.
영상 통신이 끊겼다.
케일은 잠시 침묵했다.
우우웅-
그때 영상통신구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메시지이리라, 다시금 케일의 시선이 영상통신구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네놈이 어떻게 벌써!”
엘리스네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을 보고 놀란 엘리스네가 주술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저절로 케일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공자님이 깨어나셨다! 막아!”
“사령관님이 일어나셨다! 더 속도를 높여 탈출에 집중한다!”
타샤와 지트가 케일의 상태를 전하며 각자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전히 엘리스네는 놀란 얼굴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 최한이 환각에서 빠져나왔을 때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부, 분명히 그분이 가장 큰 두려움을 겪게 하는 환각이라고 했는데-!”
두려움은 무슨.
케일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는 엘리스네를 보느라, 살벌하게 굳은 최한과 투명화한 라온의 번뜩이는 눈빛을 보지 못했다.
“크헉!”
갑자기 억눌린 신음이 들려왔다.
케일은 놀라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사람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쿠웅!
안경을 썼었던 주술사가 바닥에 떨어지며 나뒹굴었다. 기절한 듯 축 늘어진 몸이 보였고, 그를 찬 장본인은 검을 뽑아 들었다.
“셋 남았다.”
최한은 그 말과 함께 다가오는 엘리스네와 주술사들에게로 향했다. 덤으로 한마디 남기면서.
“편히 쉬십시오.”
물론 영상통신구는 케일에게로 던졌다. 스르륵, 검은 나뭇가지가 틈을 벌려 영상통신구를 대신 받아 케일에게 전해주었다.
“허.”
케일은 그 광경을 보며 탄식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 없어도 웬만한 놈들은 다 알아서 처리하겠는데?’
그는 앞으로는 조금 편해지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영상통신구를 바라봤다. 왕세자의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니까.
그리고 당황했다.
삐이이이이이-
날카로운 경고음이 귀에 때려 박혔고 케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
영상 통신 연결을 해온 이를 확인하자, 그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떼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곧바로 영상통신구를 연결했다.
알베르의 통신보다 더 시뻘겋게 타오르는 붉은빛은 불길했다.
-인간아, 바로 연결한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초조한 마음으로 연결되는 영상통신구 화면을 바라봤다.
이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면, 분명 긴급사태일 테니까.
-케일 님.
차갑게 굳은 클로페 세카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절망의 호수 인근 숲에 사자족 왕 도르프를 발견했습니다.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도, 예상했던 소식에 케일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
“케일 님, 절망의 호수 인근 숲에 사자족 왕 도르프를 발견했습니다.”
클로페 세카는 그 말을 건네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단장님.”
“조용.”
그는 수하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시켰다. 서늘한 눈동자가 땅의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케일 님, 예상대로다.’
얼마 전, 케일과 알베르 왕세자가 긴급 협력 건을 들고서 클로페에게 연락을 해왔다.
파에른 왕국이 아닌, 클로페에게만 전해온 협조문이었다.
클로페는 그 협력문 내용을 되새겼다.
-예상대로군.
영상통신구 너머 케일의 목소리는 냉정하면서도 가라앉아 있었다.
케일은 이번 가짜 세계수에 대한 작전을 짜면서 한 가지 염두에 둔 것이 있었다.
‘이미 한 번 엘프들이 잠입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죽은 마나 액체였다.
케일은 이 잠입을 아군이 아닌, 하얀 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엘프들이 다시금 가짜 세계수를 없애기 위해 침투해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연관될 것도 예상했을 거다.’
이미 한 번 열손가락 산 엘프 마을을 구한 적이 있어 엘프와의 연이 있는 케일이었다.
하얀 별 쪽에서는 엘프들이 케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리라 예상했을 것이고, 그 규모도 상당할 것이라 판단했을 터.
그렇기에 그들은 케일과 엘프들이 동대륙으로 향할 것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서대륙이 비는 것도 예상했을 거야.’
만약 케일이 하얀 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가짜 세계수를 지킴과 동시에 진짜 세계수를 없애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작전 내용 기억하겠지?
케일의 말에 클로페는 ‘네, 케일 님’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는 당연히 이번 일을 기꺼이 하겠다고 나섰다.
보내온 협력 요청문에 클로페가 얻을 이득도 적어두었던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전설이 가시는 길이지.’
크크.
클로페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그를 감쌌다.
케일이 따로 덧붙였던 서신.
물론 최한이 와이번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클로페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 일을 해결하고 남은 기간 동안, 북부를 조금 정리해야겠어.’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영웅과 전설은 주인이 따로 있었지만, 적어도 북부의 패자는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의 입이 열렸다.
“하강한다.”
수십 마리의 와이번. 그리고 그 와이번 위에 올라탄 기사들이 일제히 클로페가 가리킨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클로페 역시도 땅으로, 숲으로 향했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겨라. 안 되면 버텨라. 버티는 것이 최우선이다.
“네, 케일 님.”
전설의 한 페이지를 쓰는데 저도 한 손 거들어야겠지요.
클로페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 케일이 가르쳐준 인상착의의 사자족 왕 도르프가 사자족들을 거느리고 절망의 호수로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음!”
하강하던 클로페는 저를 보고 놀라는 도르프를 보았다.
고결하던 미소가 비틀어져 올라갔다.
“큭. 들켰네?”
그는 곧바로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준비!”
기사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들의 팔이, 어깨가 한껏 뒤로 제쳐졌고, 그들의 손아귀에는 단단한 철로 만든 장창이 들려있었다.
“던져라!”
클로페의 명과 함께 기다란 창이 숲을 향해 던져졌다.
“이놈들이!”
도르프는 클로페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의 두 손에서 곧바로 어두운 막이 형성되었다.
동시에 사자족이 방패를 꺼내 들거나, 창을 피해 숨어들었다.
콰아아아!
콰앙, 쾅! 쾅! 콰앙!
도르프의 검은 막과 와이번 기사들의 장창이 부딪치며 굉음을 터트렸다.
“크윽!”
장창들을 막아낸 도르프가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숲 가까이로 내려오는 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클로페 세카.”
“오. 나를 아는 건가?”
클로페는 특유의 성스러워 보이는 기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르프는 여유로운 안색으로 돌아와 그런 그를 향해 코웃음을 날렸다.
“하! 클로페 세카! 여기 뭐가 있는 줄 알고 온 것인가? 네놈이-”
“내 알 바인가?”
“…뭐?”
클로페는 절망의 호수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전설의 길에 한 손 거드는 것. 그것만 중요하지, 다른 건 내 알 바 아냐.”
“…뭐 이런, 미친놈이-”
도르프가 황당한 얼굴로 외쳤다.
“넌 북부의 수호 기사란 놈이 케일 헤니투스 명령이면 좋다고 무조건 하는 건가?”
그때, 클로페의 미소가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의 클로페가 입을 열었고, 차분하면서도 굳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멍청하군.”
“…뭐?”
“전설과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유가 뭐가 필요한가?”
클로페의 입꼬리가 다시금 올라가며 그 눈동자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도르프는 그 눈빛이 제대로 미친 눈빛이란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
바스락. 바스락.
나뭇잎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콰아아앙!
나무들이 통째로 부서지며 채찍 하나가 튀어나왔다.
촤라락-
채찍은 순식간에 장창을 피해 나무 뒤에 숨어있던 사자족 한 명을 움켜쥐고는 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콰앙!
“커헉!”
굉음과 함께 사자족이 비명을 토해내었다.
절망의 호수와 세계수.
그곳을 지키기 위한 케일의 첫 번째 안배가 클로페 세카였다.
그리고 두 번째 안배가 지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르프의 입이 열렸다.
“…고래가 뭍으로 올라왔군.”
산산조각이 난 나무 사이로 차기 바다의 지배자, 고래족 위티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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