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07
506화.
힐끗.
위티라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숲 가까이까지 내려온 클로페가 고고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위티라는 분명히 들었다.
‘내가 전설의 길에 한 손 거드는 것. 그것만 중요하지, 다른 건 내 알 바 아냐.’
‘전설과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유가 뭐가 필요한가?’
그녀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엮여봤자 좋을 게 없는 인간이야.’
클로페 세카는 어떤 의미로 일적으로만 엮여야 할 타입이었다.
절망의 호수. 그곳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면서 달려와 사자족 왕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이라니. 여러모로 전쟁을 일으켰던 인간다웠다.
그리고 클로페도 위티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바다가 아니라도 강하군.’
서대륙 북부를 다스리는 파에른 왕국. 그들은 북부의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이 고래족 앞에서는.
파에른 왕국 땅 바로 위 바다. 그곳에 자리한 고래족이 언제라도 그 폭력적일 정도로 강한 힘을 대륙에 드러낸다면 다른 왕국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 자는 거침이 없어.’
첫 등장에 나무들을 산산조각내고, 도르프의 수하를 작살내는 모습이라니.
위티라는 만만찮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래족도 케일 님의 말은 따르지.’
새삼 케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느껴졌다.
클로페의 입가에 지어진 고고한 미소와 달리 그의 눈빛은 점점 더 번들번들해져만 갔다.
줄을 잘 잡았다.
하얀 별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놈은 이제 서대륙에서 아주 악독한 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케일은 아름답고 희생적인 영웅이었다.
그 영웅의 줄을 잡았다는 게, 클로페는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클로페는 고래족 방향으로 돌려놓았던 영상통신구를 향해 속삭였다.
“케일 님, 잘하고 있겠습니다.”
-…하. 넌 정말이지, 말을. 어쨌든 알았다.
뚜욱.
영상통신구가 꺼졌다.
그 순간, 클로페는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콰아아아앙!
채찍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거칠게 주변을 잡아삼키고 있었다.
쿠웅!
곧 사자족 한 명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몸이 땅에 다 파묻힐 정도로 깊숙하게 박혔다.
“크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숲을 울렸다.
“하. 미쳤군.”
사자족 왕 도르프는 땅에 내동댕이쳐지고 박힌 부족원 두 명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광폭화를 하지 않아도 사자족은 대부분 그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 이들이 채찍에 힘없이 당했건만, 그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다.
도르프는 다른 사자족들에 비해 체격이 좋지 못한 편이었다.
우우우웅-
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어두운 막이 넘실거리며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바다에서 살아야 할 것들이 뭍으로 나온 것도 신기한데. 그 숫자도 겨우 셋? 하! 정말 나를 우습게 봤어.”
위티라.
그녀의 뒤에는 고래족 아치와 파세톤이 자리해 있었다.
아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짝다리를 짚은 채 턱을 치켜들었다.
“우스운 새끼니까, 우습게 보는 거지. 왜? 우리가 너네 쪽수에 쫄 것 같냐? 어이구. 위티라 님, 저, 저 뒤에 보세요. 이야.”
아치가 도르프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선 사자족들이 하나둘 나타나며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크윽.”
움푹 파인 땅에서 손이 나타났다. 곧이어 위티라의 채찍에 당해 땅에 박혔던 사자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그리고 처음에 나동그라졌던 사자족도 심호흡과 함께 일어섰다.
타박상을 입은 것 같았지만, 싸우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광경을 쳐다도 보지 않는 도르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자족.
그들은 결코 고래족의 채찍 따위에 당할 만큼 약한 신체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사자족에게 있어 약한 신체는 도태의 이유였고, 즉시 퇴출감이었으니까.
스스스-
숲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공기는 적을 마주한 이들의 열기로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도르프는 무덤덤한 얼굴로 아치를 향해 입을 열려했다. 하지만 아치가 빨랐다.
짝짝짝.
그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야. 진짜 많네. 쪽수로 밀어붙일 건가 보네. 이야, 이야! 위티라 님!”
아치의 입가에 케일이 봐도 재수 없다고 생각할 비웃음이 걸렸다.
그는 두 주먹을 짧게 맞부딪쳤고 위티라는 저를 부른 아치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저것들 다 두드려 패도 되죠?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쌓여서. 흐흐.”
위티라는 실실 웃는 아치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도르프가 기가 차다는 얼굴로 아치를 보고 있었다.
“하. 고래족에 양아치 새끼가 하나 있다더-”
콰아앙!
그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위티라의 채찍이 도르프 앞에 내리쳐졌다.
나무들이 부서졌고, 흙먼지가 주위를 자욱하게 감쌌다. 그 때문에, 사자족 한 명이 도르프에게로 다가가 은밀히 물었다.
“덮칠까요?”
흙먼지를 뚫고 고래족에게 덤벼들자는 말이었다.
“가만히.”
하지만 도르프는 수하를 저지시켰다. 그리고 실소를 흘렸다.
“하!”
위티라의 채찍이 지나간 자리.
부서지고 휩쓸어진 거대한 일직선이 위티라 바로 앞에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 도르프가 세 걸음만 내디뎌도 위티라가 채찍으로 만든 저 선에 닿을 것이다.
도르프의 시선이 선으로 향했다가 위티라에게로 향한 순간이었다.
“선을 넘지 마라.”
위티라가 차분하게 말하였고, 그녀의 주위로 하얀 김이 어리고 있었다. 수증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하하하.”
도르프는 웃다가 이내 미소를 지우며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숲 너머,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눈보라가 보였다.
거칠게 몰아치는 저 눈을 머금은 회오리 폭풍이 5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절망의 호수이리라.
그리고 저곳에 도르프의 목표물이 있다.
그렇기에 가야 했다.
도르프는 여유로운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선을 넘는다면?”
“쓸데없는 가정이군.”
위티라가 웃으며 답했다.
“넌 선을 넘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그런 것이니까.”
“…뭐?”
도르프의 표정이 굳었다.
별것도 아닌 아치가 시건방을 떠는 것과 이건 달랐다.
위티라는 고래족 왕도 아닐뿐더러, 겨우 후계자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사자족 왕인 도르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시건방진 것들-”
“시끄럽군요.”
스릉.
파세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냥 덤비세요.”
“하하하하-”
도르프는 크게 웃으며 고래족 세 명을 가리켰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서늘했다.
“가라.”
그 순간, 선두에 선 사자족들의 몸집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크아악!”
“크르르-크르–”
광폭화였다.
쿵. 쿵. 그들이 내딛는 걸음마다 땅이 울렸고, 그들은 이내 머리칼이 갈기처럼 쭈뼛쭈뼛 선 채 웬만한 사람 허벅지만 한 팔뚝을 휘둘렀다.
콰앙—쿵!
나무가 허무하게 부러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광폭화한 선두의 사자족들은 그 나무가 있던 자리를 넘어서며 앞으로 돌진했다.
“분산.”
위티라는 명령했고, 파세톤이 오른쪽으로 아치가 왼쪽으로 이동했다.
“각자 방향에서 맡아라.”
그 말과 함께 위티라는 채찍을 잡아당겼다.
채찍이 그녀의 팔에 감겨들었고, 위티라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가 선을 넘어서며 사자족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시선은 도르프에게로 향해 있었다.
“사자 왕은 내가 잡도록 하지.”
동시에 공중에서 클로페 세카의 위엄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자들을 잡아라!”
거대한 화살과 장창이 와이번 기사들의 손을 떠나 숲을 채운 적들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북부에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그리고 그 전투의 시작을 동대륙에 위치한 케일은 느끼고 있었다.
“후우.”
케일은 끊긴 영상통신구를 보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머릿속의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케일의 눈빛이 번뜩였다.
“…역시 진짜를 노릴 줄 알았어.”
입꼬리가 비틀리듯 위로 올라갔다.
-인간아! 사기 치려고 하면 다들 사기인 줄 알고 도망칠 미소다!
라온이 평소보다 더 사악하게 웃는 케일을 보며 케일의 상태가 말짱한 것 같아 신이 나 말했다. 하지만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를 흘려들었다.
웃고 있었지만 그의 속내는 마냥 편치 않았으니까.
“…이거 큰일인데?”
하얀 별과의 싸움이 잘못하다간 4파전으로 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실제로 벌어진 두 가지.
하나는 현재 몰든 왕궁 지하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짜 세계수를 노리는 도르프와의 전투였다.
그리고 로운 왕국 서북부에 발견된 첩자, 그리고 용병왕 버드의 레인저 부대 수색. 이 두 가지까지 일이 커지면 전투가 총 네 곳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았다.
‘장난 아니겠는데?’
케일은 긴장 안 하려고 해도 긴장이 되었다.
‘소홀해질 수 있어.’
한곳에서 거하게 싸우는 게 차라리 나았다.
네 곳에서 각기 벌어지는 전투는 케일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순간이 발생할 수 있었고, 무언가 문제가 발견되면 수습이 불가할 수도 있었다.
동료들을 믿지만, 범위를 벗어난 싸움은 당연히 이런 불안함과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인간아! 인간아!
그때였다.
-인간아! 내 목소리 안 들리나?
“어?”
삐이이이이-
라온의 목소리에 반응하기도 전, 케일은 제 손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고, 그 순간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용병왕 연락이다!
그래, 나도 보여.
용병왕에게서 온 긴급 연락이었다.
-연결한다!
우우웅-
곧바로 영상통신구가 연결되었고 케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시꺼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억, 헉. 케일, 내 목소리 들리나?
버드 일리스였다.
“어. 들려.”
케일은 다급하게 답했다. 왠지 모르게 버드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다행이네. 지금 옷 안에 넣고 가는 중이라, 목소리밖에 전달 못 해.
화면이 시꺼먼 이유는 옷 안에 영상통신구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시꺼먼 이유를 알았음에도 얼굴이 더욱더 굳어져 갔다.
버드의 목소리 사이로 비명소리와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야?”
달리는 것인지, 버드가 헐떡이며 말했다.
-산 전체에 환각이 걸려 있었다.
뭐?
-그리고 환각을 푼 현재, 산 전체가 적군들로 뒤덮여있었다. 그리고- 흐읍!
버드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커헉!
쿵.
버드가 거친 말을 내뱉는 것과 함께 그의 몸이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영상통신구를 거머쥔 채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야.”
-…도와줘.
가라앉았던 케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빨리 좀 와주라.
케일의 입이 열렸다.
“바로 간다.”
-그래, 기다리고-
뚜욱.
영상통신구가 갑자기 끊어졌다. 분명 영상 통신을 이어갈 수 없는 어떤 상황이 발생했으리라.
아니면 영상 통신을 연결하고 있던 버드 곁 마법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거나.
버드 곁의 마법사는 분명 그렌 퍼프일 것인데.
…급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과 빠른 행동이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라온.”
-그래!
케일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의 기록을 들춰보았다.
거대한 몰든 왕궁 지도가 그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미로의 길을 그 위에 덮었다.
그러자 한 지점이 보였다.
케일은 손을 들어 올렸다.
“라온. 지금부터.”
케일의 머릿속에 고대의 힘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케일은 그 와중에도 말을 이어나갔다.
-케일, 할 거냐?
“지금부터, 저길 부순다.”
미로의 한 지점.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몰든 왕궁에 위치한 가장 넓은 공터.
그곳은 기사 연무장이었고, 지금 기사들은 모조리 케일을 잡으러 왔으니 그곳은 비어 있을 터.
“그리고 최한에게 전해라.”
그의 시선이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버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산 전체에 환각이 걸려 있었다.’
환각.
“엘리스네 1세를 산 채로 잡아 오라고. 물론 말만 할 수 있는 상태면 된다.”
굼뜨게 있을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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