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0
509화.
동대륙 북부에 자리한 산맥. 그중 한 산 아래에 당도한 이는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앞에 펼쳐진 산의 냄새를 맡았다.
수십 년의 경험과 세월이 그에게 한 가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비릿하군.”
산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
그 사이에 섞인 기이한 예감.
그의 옆에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 냄새로 범벅이 되어있는 것 같군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 최한은 고개를 돌려 제 뒤의 남자를 바라봤다.
“케일 님. 감이 좋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릿한 예감을 냄새로 맡은 시종 론도 허리를 펴고선 케일에게 보고했다.
케일은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 옆에 선 비크로스에게 살짝 물었다.
“비크로스, 너도 피 냄새 맡았냐?”
“…산이 저리 높고 넓은데 진짜로 피 냄새를 맡았겠습니까? 그냥 감이죠. 감.”
떨떠름한 얼굴의 비크로스는 대충 답하고는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케일은 참 한결같은 비크로스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조용하군.”
산 아래.
원래라면 마법사 그렌 퍼프가 데려온 용병들이 대기하며 버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대기하다가 급하게 산으로 향한 흔적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버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산 전체에 환각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환각을 푼 현재, 산 전체가 적군들로 뒤덮여 있었다.’
‘…도와줘.’
‘빨리 좀 와주라.’
케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손에 들린 금빛 팽이채가 반짝였다.
“지금부터 산으로 진입한다.”
적들은 환각을 펼쳤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분명 환각사가 여기에도 한 명 더 있다는 소리였다.
더불어, 그 환각은 지금 깨진 상태라고 했다.
참 지긋지긋한 환각이다.
또 적군도 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많다고 하였다.
용병왕의 용병들과 케일이 모은 엘프들도 수백여 명에 달할 많은 숫자인데, 용병왕은 그 숫자보다 적군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버드의 판단은 맞을 것이다.
수많은 전투 현장에 있던 용병왕이었으니까.
“…그러니 이대로 무작정 올라갈 순 없지.”
정상 부근이 눈으로 뒤덮일 정도의 높은 산.
북쪽 끝의 찬바람마저 막아버리는 산맥에서 가장 거대한 산이니, 높이는 물론이거니와 그 땅 면적 또한 넓었다.
그러니 더욱더 이대로 올라갈 수 없다.
“도련님.”
론과 비크로스 뒤로 몰란 가문의 암살자들이 숨죽인 채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몰든 왕궁으로 침투한 이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론과 함께 급히 이곳으로 왔다.
“잠입 준비 끝났습니다.”
론은 성이나 저택이 아닌 산을 향해 잠입 준비가 끝났다고 표현하였다.
얼핏 잘못된 단어의 사용 같았지만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케일의 입이 열리며 한 존재를 불렀다.
“온.”
환각과 다르지만,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아군의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존재는 있었다.
냐아아옹-!
온과 홍이 케일의 다리에 비비던 몸을 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온의 주위는 하얀 연기가 그녀를 감싸며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케일의 뜻을 알아챈 듯 벌써 안개를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케일은 라온에게 부탁해 급히 온과 홍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인간아, 들어가나?
케일은 산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산으로 잠입한다.”
산 아래는 조용했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누군가의 비명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아군일 확률이 높았다.
“우리의 목적은 첫 번째로 아군을 지원, 그들을 구하는 것이며.”
케일의 몸이 숲 안으로 들어섰다.
낮이지만 나무 그림자에 가려진 숲은 어두웠다.
위급 상황이다.
그렇기에 케일은 평소와 다르게 명했다.
“두 번째는. 적들을 처치하는 것이다.”
몰란 가에 속하는 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세 번째는 적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나, 그것이 내 살을 내어줘야 하는 일이라면. 곧바로 도망 혹은 두 번째 목표를 실행하는 방향으로 한다.”
결국 첫째도 둘째도 아군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것이었다.
론이 소리 없는 걸음으로 케일에게 다가와 물었다.
“도련님, 어디로 가야 합니까?”
꽈악.
케일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우우웅-
손안에 쥔 팽이채가 평소와 달리 끊임없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케일에게 그와 늘 함께 다니는 바람 정령 셋 중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저번에 케일과 떨어져 엘프들과 함께 저 산속에 있었다.
‘호, 혼돈, 파괴, 분노! 정령들 비명소리가 산을 뒤덮었다!’
‘산 곳곳에서 정령들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아니다, 도망치나 봐!’
정령들은 어느 때보다도 조급한 듯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여기 남은 애 목소리는 아예 안 들려! 걔도 위급 상황인 것 같은데?’
‘큰일이다! 혼돈, 파괴, 혼란!’
하지만 케일은 당황한 바람 정령들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들었다.
물론 그의 심장도 거세게 뛰었다. 급했다.
그는 바람 정령들이 다른 정령의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할 때마다 다치는 엘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케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현재 엘프들의 사령관이었다. 그 책임을 잊어선 안 되었다.
‘혼돈, 파괴! 그런데 비명소리 방향이 점점 산 중앙으로 향하는 것 같다!’
이거다!
케일의 눈빛이 번뜩였다.
‘케일! 점점 산 중앙으로 정령들 비명이 향하고 있어!’
찾았다.
원하는 정보를 찾았다.
정령들 비명이 점점 더 산의 중심으로 향한다는 소리.
그 뜻이 케일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정령들은 엘프와 함께할 터.
엘프 곁에는 용병왕도 있을 것이다.
아군이 점점 중앙으로 밀집한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정령들의 비명과 함께.
‘그건 자의가 아니라 타의란 소리.’
원해서 뭉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수많은 적군이 아군을 중앙으로 몬다는 소리였다.
그 뜻은 하나였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 몰이사냥.”
적군이 아군을 한곳으로 몬다. 사냥을 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지고든.
그리고 그 다른 목적은 결코 좋은 뜻은 아닐 터.
케일 주변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전의가 올라갈수록 공기가 뜨거워지고 열기가 높아져 가던 이전 케일의 일행들과 달리. 지금은 반대로 전의가 올라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져 갔다.
암살자들의 눈빛이 차가워져 갔다.
그중 론의 눈빛이 가장 가라앉았다.
용병왕 버드. 그리고 살아남은 퍼프 가문의 그렌 퍼프.
동대륙에 터를 둔 론은 유독 이 둘이 신경 쓰였다.
몰이사냥.
아군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상황에 대한 모든 그림이 그려졌다.
케일은 그런 아군을 눈치챘지만, 그래도 말했다.
“아군과 적군이 산 중앙으로 모이고 있다.”
“아군을 구하러 바로 갑니까?”
비크로스가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다들 당장이라도 아군을 구하러 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케일 님.”
최한은 나직이 그를 불렀다.
다급한 상황이건만,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미소는 명백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적들이 아군을 몰이사냥하려고 한다.
그러니 일깨워줄 것이다.
몰이사냥을 하려는 적군. 네놈들을 몰이사냥 해주마.
케일의 입이 열렸다.
“우리는 아군을 한곳으로 모는 적군들의 뒤를 친다.”
론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아군이 한곳으로 모이듯.
그 아군을 감싸 한곳으로 모는 적군들도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
케일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온과 홍이 보였다.
라온도 투명화한 채 근처에 있을 터.
케일은 더 이상 아군을 다치게 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아군을 한곳으로 모는 적군들의 뒤를 친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마법, 안개와 독의 뒤에 숨어서 은밀히 적군들의 뒤를 친다.”
평균 9세들이 각자의 반응을 보였다.
타다닥.
온이 바닥을 박차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 케일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홍도 그 옆에 자리했다.
냐아아아옹!
냐아아-
준비가 끝났다는 표현이었다.
-인간아! 걱정 마라! 우리가 독안개로 다 뒤덮어버린다! 론 할배랑 론 할배 부하들 다 숨겨준다!
환각. 그것 말고도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것이 존재했다.
“온, 부탁해.”
은빛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차분한 온이라면, 평균 9세들이 다치지 않게 잘 다독이며 이끌 것이다.
케일은 이런 상황에서 애들 도움을 받더라도, 어차피 안전한 후방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스스스스-
온을 감싸는 안개가 점점 더 짙어지며 그 부피가 커졌다.
온과 홍이 안개에 뒤덮여 더 이상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인간아! 나도 안개 안에 숨었다!
“준비 다 했는데!”
안개 뭉치 속에서 라온과 홍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고, 케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최한.”
“네.”
최한이 케일의 옆에 섰다.
“너는 나와 함께 중앙으로 향한다. 적군, 아군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네.”
케일의 발끝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고대의 힘 바람의 소리가 피어올랐다.
“먼저 가마.”
케일은 최한을 데리고 먼저 숲속으로 향했다.
“론. 적들의 위치는 내가 라온에게 알려줄 테니, 그에 맞춰 포위해라.”
케일은 바람 정령을 보내 라온에게 위치를 알려줄 작정이었다.
이미 여기 오는 길에 라온에게 그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으니, 눈치껏 잘할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도련님.”
뒤돌아본 케일은 숲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암살자들이 보였다.
슷스스-
나뭇잎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비크로스마저도 사라졌고, 오로지 점점 커지는 안개 뭉치와 론만이 남은 자리.
사아아아-
마침내 안개가 론마저 집어삼켰고, 론은 안개에 몸을 숨기며 케일에게 인자하게 말했다.
“그림자 사냥을 해야겠군요.”
뒷세계에 살았던 암살자들의 싸움 방식이었다.
론이 인자한 미소를 그렸다.
피식. 케일은 한번 웃고는 고개를 돌려 적들이 용병왕과 아군들을 몰아가는 장소로 먼저 향했다.
물론 론에 대한 감상은 빼놓지 않았다.
“참, 살벌하네.”
***
사사사삭-
케일과 최한이 쉬지 않고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케일 님.’
최한은 케일보다 두 걸음 정도 뒤에서 따라 올라가고 있었고, 케일이 앞장서 길을 찾아내고 있었다.
우우웅-
진동하는 금빛 팽이채를 통해 케일은 바람 정령이 알려주는 정령의 비명이 모여드는 방향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혼돈, 파괴! 산 중앙은 중앙인데, 중앙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이다! 눈이 시작되는 산 정상 부근 바로 아래다!’
‘케일, 난 라온 님께 전달하고 온다!’
바람 정령 둘은 케일보다 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음!”
빠르게 숲을 헤치고 달리던 케일은 순간 나뭇가지에 긁혀 볼에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케일 님.”
뒤에 있던 최한이 작은 신음에 놀라 입을 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군이 몰려지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가는 케일은 평소와 달리 조급해 보였다.
물론 최한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이미 1,001명이 실종된 곳이니까.’
용병 길드의 레인저 부대가 한순간에 실종된 곳이었다.
‘또… 올라오면서 본 광경이 있었으니까.’
빠르게 올라왔지만, 그 와중에 케일도 최한도 주변 광경을 살피며 움직였다.
피다.
산을 어느 정도 올랐을 때부터, 곳곳의 나무와 바위에서 피가 보였다.
누구의 피일까?
그 생각만 해도 당연히 걸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한은 케일의 건강도 생각해야 했다.
그가 다쳐선 안 된다는 것을 떠나, 버드와 고래족 전투를 들은 최한은 이번 일에 있어 케일이 무리해서 정신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어지는 전투가 몇 개인가.
케일은 뇌다.
모든 신경 반응들이 모여드는 장소인 뇌.
그러니 그가 다치거나 무리해선 안 된다.
“케일 님,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는 벌어져 있던 두 걸음을 더 빨리 내디뎌 케일의 옆으로 향했다.
“잠시.”
쓰윽. 최한의 앞을 케일의 팔이 가로막았다.
“케일 님! 어디를-?”
최한은 저를 막고선 순식간에 어딘가로 향하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사사사사-
케일은 나뭇잎과 수풀들을 지나치며 목적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혼돈, 파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인간형 생명체다! 호흡이 굉장히 약하다!’
바람 정령 둘이 근처에 생명체가 있다고 한다.
‘먼저 가서 본다! 혼돈, 파괴, 긴급 긴급!’
바람 정령 하나가 먼저 앞으로 나아갔고 케일도 속도에 박차를 냈다.
현재 아군 용병왕 무리와 적군들이 모두 한곳으로 향해가는 과정.
그들과 동떨어진 생명체가 하나 있다고 한다.
적일 수도 있었지만.
‘호흡이 약하다고 했어.’
호흡만 약하다면 은신한 적이 숨죽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으나.
‘이상한 소리도 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은신한 적일 확률은 낮았다.
오히려 다쳐서 호흡이 약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생명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케일은 단 하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레인저 부대!’
실종된 1,001명 중 한 명일지도 몰랐다.
적과 환각을 피해 숨어있던 레인저 부대원일지도 몰랐다.
환각 때문에 용병왕은 그들을 찾지 못했지만, 환각이 깨진 지금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찾아야 한다.’
레인저 부대원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한다.
정령이 들은 저 소리가 앓는 소리라면, 죽기 전에 찾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도대체 이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들어야 했다.
그리되면 제대로 적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래야 용병왕 일행들을 더 안전하게 구할 것이다.
물론 용병왕에게도 빨리 가야 했기에 케일은 더욱더 바람의 소리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돼!’
한꺼번에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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