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1
510화.
“최한.”
“네.”
산 정상으로 가던 길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가는 케일.
그 뒤를 쫓던 최한은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홀로 떨어진 이가 있다고 한다.”
“…적군입니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잠시 말을 멈췄던 케일은 다시 수풀을 헤치고 나가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레인저 부대 생존자로 짐작된다.”
숨어있는 적군이거나 혹은 다쳐서 뒤처진 아군일 수도 있었다.
‘버드는 다친 아군을 저렇게 놔두고 갈 놈이 아니야. 엘프들도 그렇고.’
그렇기에 케일의 걸음은 더욱더 빨라졌다.
‘크음.’
케일은 순간 몸에 조금 무리가 가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돌 이무기와 파괴하는 불을 동시에 거하게 쓰는 바람에 보나 마나 몸 상태는 별로 좋지 못할 것이다.
물론 케일은 심장의 활력 덕분에 꽤 많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대의 힘들은 다르게 판단한 것 같았다.
-너 그간 제대로 쉰 적이 없어. 그걸 기억해.
바람의 소리, 도둑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상 힘을 쓰면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서 필요한 순간 힘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케일은 그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속도를 더 높이지 않고 유지했다.
‘도둑의 말이 맞아.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올 거다. 그때 써야 될 힘은 놔두어야 해.’
만약 로운 왕국에 침투한 하얀 별 수하들과의 전투까지 벌어지면 총 4파전이었다.
그중 한 번은 케일이 크게 힘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머리를 잘 써야 했다.
“케일 님. 계속 이 방향이면 제가 앞으로 나서서 길을 뚫겠습니다.”
“그래.”
그렇기에 케일은 최한에게 앞을 내어주었다.
채앵-!
최한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있는 지형엔 허리쯤까지 자라난 수풀들과 울창한 숲으로 가득했다.
촤아아악-
최한의 검이 수풀들을 거침없이 베어내며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그러다 케일의 눈이 번뜩였다.
쏴아아아-
시원한 바람이 케일과 최한의 정면으로 불어온 순간이었다.
“최한, 멈춰!”
최한도 무언가를 알아챈 듯 곧바로 멈춰 서서 뒤돌아 케일을 바라봤다.
둘의 표정이 굳었다.
“케일 님. 낭떠러지 같습니다.”
“그래.”
갑자기 수풀도 줄어들었고, 울창한 숲 밖으로 하늘이 보였다.
그 말은 이 숲을 지나면 절벽이라는 소리였다.
케일 손안의 팽이채가 진동했다.
‘앞에 절벽이야! 절벽!’
‘혼돈, 파괴, 낭패! 하지만 아직도 신음이 들려온다! 호흡이 여전히 약하다!’
케일은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에 있어.”
“…생존자가 말입니까?”
“그래.”
레인저 부대원이라면 적군을 피해 살아남는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고, 또한 그 방법이 일반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케일은 숲을 벗어났다.
곧바로 낭떠러지가 코앞에 나타났다.
뒤따라온 최한이 주변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별다른 흔적은 없습니다.”
근처에 적군이든 아군이든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케일이 몸을 숙였다.
“…케일 님?”
그러곤 낭떠러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최한이 놀라 그 곁으로 다가갔고, 그는 웃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찾았다.”
나직이 읊조린 케일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덩달아 최한도 그곳을 보았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 그 중간에 핏자국이 하나 보였다.
콕 집어 보지 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핏자국이었다.
그리고 그 핏자국을 지나 조금 더 아래에는 절벽에서 자라난 나무 2그루가 있었다.
케일은 바람 정령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뭇잎으로 가려진 동굴이 있어! 나무 2그루 아래야!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이고!’
나무에 교묘하게 가려진 동굴이 있다고 한다.
‘혼돈, 파괴, 발견! 저 안에 있는 것 같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저 나뭇잎들에 가려진 아래에 사람 한 명 들어갈 만한 동굴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생존자가 있군요.”
“그래.”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단한 자야.”
최한이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흔적을 지운 채, 절벽을 기어 내려가 동굴로 들어가서 숨는다?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었다.
“저곳으로 간다.”
“네.”
케일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절벽을 내려다봤다.
어떻게 저 구멍으로 가야 할까?
바람의 소리를 써야 할까?
라온을 데려와야 할까?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수 없었다. 서둘러야 했으니까.
바람의 소리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사용해, 비행 마법과 같은 효과를 내야 할 것 같다. 케일은 방향을 결정하고 입을 열었다.
“최한.”
“네. 업히십시오.”
“…응?”
고개를 돌리니 최한이 업히라는 듯 등을 내밀고 있었다.
“…왜?”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고, 최한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동굴이 먼 것도 아니고 한 스무 걸음 정도만 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 괜히 고대의 힘을 사용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최한의 말대로 동굴의 위치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괜히 고대의 힘을 남발하는 것도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케일은 슬쩍 고개를 내밀어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봤다.
동굴은 멀지 않았지만, 절벽은 상당히 가파르고 높았다. 떨어지면 그냥 세상과 안녕이었다.
“…너 그냥 맨몸으로 내려가냐?”
“그렇죠?”
왜 자꾸 질문을 하냐는 듯 순한 얼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한은 케일을 재촉했다.
“얼른 내려가죠! 금방 갑니다. 스무 걸음이면 20초도 안 걸립니다.”
“…어, 어.”
케일은 어, 어 하다가 최한의 등에 업혔다.
‘…괜찮겠지?’
아주 잠깐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어!”
케일은 순식간에 몸이 흔들렸다.
최한이 움직인 것이다. 그의 몸이 거침없이 절벽을 향해 움직였다.
성큼성큼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허이구!’
케일의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갑니다.”
최한이 그 짧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케일은 아래로 쑥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헛!’
저도 모르게 케일은 최한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백수도 못 이뤘는데, 절벽에서 떨어져 꿈을 못 이루긴 싫었다.
“…음?”
하지만 곧 케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콰직. 콰직. 콱!
이 소리는 최한의 손발이 절벽에 박히는 소리였다. 케일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절벽에 박힌 최한의 발을 바라봤다.
절벽이 무슨 그냥 진흙 같았다.
최한은 성큼성큼 절벽에 손발을 박거나 아니면 손으로 절벽을 움켜쥐며 아래로 내려갔다.
케일은 이를 보며 생각했다.
‘…안정감 있는데?’
역시 늘 그렇듯 최한의 등은 편했다.
그리고 최한의 말대로 순식간에 케일은 한 동굴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동굴은 바람 정령 말대로 성인 한 명이 서서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최한은 그 말과 함께 가볍게 딛고 있던 절벽을 박차고 동굴 속으로 착지했다.
등에 업힌 케일은 별다른 짐이 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오, 아주 대단-”
케일이 그런 최한을 칭찬하러 입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동굴은 깊지 않았다.
입구에서 곧바로 동굴의 끝이 보였다.
케일은 최한의 어깨 너머 동굴 끝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족 같습니다.”
동굴 끝에 있는 인간은 키가 작았다. 헤니투스 영지에 있는 쥐족 혼혈 드워프 뮐러보다 조금 더 작은 편이었다.
그런 종족은 쥐족밖에 없었다.
“누, 누구냐!”
쥐족은 다친 다리에 나뭇가지로 부목을 댄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보니, 옆구리도 다쳤는지 말라붙은 피와 그 상처를 감싼 천이 보였다.
더불어 안색은 창백했으며 케일과 최한을 경계하고 있었다.
‘…레인저 부대원!’
하지만 케일의 표정은 밝아졌다.
버드가 했던 말이 있었다.
‘쥐족. 그 녀석은 최후방에서 마지막의 마지막을 위해서 버티는 놈이야. 도망치는 것은 제일 잘하는 녀석이지. 그 녀석 연락마저 끊겼어.’
그것도 혼자서 백인대 몫을 한다는 그 레인저였다.
“최한.”
“네.”
최한이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조금 더 동굴 안으로 들어가야 케일도 등에서 내려 동굴 바닥에 발을 디딜 수가 있었다.
“오, 오지 마!”
하지만 그 반응에 쥐족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는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다가오면, 오, 오면- 제기랄! 여기서 내가 제일 약하잖아! 빌어처먹을! 그냥 오지 마!”
…이 자식 조금 이상해 보이는데?
케일은 쥐족의 행동에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러나 귀중한 정보를 줄 사람이고 얼른 용병왕에게 가야 했기에 입을 열었다.
“우린 버드가 보내준 사람입니다. 레인저 부대원들을 찾고 있었죠. 같은 편입니다.”
“…뭐?”
놀란 쥐족을 향해 최한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으로 던졌다.
탕! 땡그르르-
철로 된 작은 패였다.
이를 본 쥐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길드 소속원 패군.”
최한이 던진 것은 용병 길드 소속을 뜻하는 패였다.
길드원만이 알아볼 진품 표시가 있는 것이었다.
‘오, 이런 건 언제 챙겼대?’
케일은 최한이 이런 것을 언제 가졌나 싶었지만 잘 되었다 생각했다.
쥐족이 그들이 아군임을 믿을 수 있을 테니까.
“하아.”
그런데 쥐족이 주저앉아버렸다.
그러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용병왕 그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들을 보내 줄 리가 없지! 아오! 저거 봐, 저거! 저 절벽 하나 못 내려와서 업힌 인간은 툭 치면 쓰러질 안색이구만! 아이고, 내 팔자야!”
…뭐라고?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업은 놈은 순하게 생겨 가지고, 나이도 어려 보이는구만! 아이고, 내 팔자야!”
케일은 이제 내디딜 땅이 생겼기에 조용히 최한의 등에서 내려섰다.
그 와중에도 쥐족은 한탄했다.
“하이고! 어떻게 절벽은 엉금엉금 내려와서 나를 발견한 것 같기는 하다만! 아이고, 내 팔자야! 저런 비실이랑 맹한 놈을! 버드 이 인간아! 이 화상아!”
그는 한탄을 하다 말고, 최한과 케일을 보며 말했다.
“어이, 비실이, 맹한 놈. 너네 둘 다 처음 보는 놈들인데, 신입이냐? 하긴, 신입이겠네. 내가 모르는 용병 길드 사람이 없어요, 없어! 크큭! 얼굴을 다 알아야 무서운 놈을 피해 다닐 수 있거든! 내 목숨 유지 비결이지! 크크큭!”
이 사람은 수다쟁이였다.
그는 최한을 먼저 가리켰다.
“이름이 뭐야? 탈출하는 건 하더라도, 날 구하러 와줬는데 감사 인사는 해야지. 그러려면 통성명부터 해야 할 거고.”
최한의 입이 열렸다.
“최한.”
“…음?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이름인데?”
쥐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쥐족과 케일의 눈이 마주쳤다. 씨익. 삐뚜름하게 올라간 케일의 입꼬리가 열렸다.
“난 케일 헤니투스.”
“미친!”
쥐족은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제 머리통을 후려쳤다.
“내가 얼굴 그림도 봤는데! 미친, 미친, 미친!”
최한과 케일 헤니투스.
특히 케일 헤니투스는 현재 용병 길드와 여러 일들을 밀접하게 진행해오는 이로서, 일반적인 용병 길드원들은 그를 알지 못했지만. 수뇌부들은 다 그와 일행들의 인상착의와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레인저 부대도 이번 작전 전에 케일 헤니투스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전달받았다.
‘저 시뻘건 머리가 케일 헤니투스면, 옆에 저 맹한 놈이… 소드마스터…! 그, 그 살벌하다는 검사!’
쥐족은 부목을 덧댄 다리를 황급하게 움직였다.
쿵!
그는 동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외쳤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님들! 제가 아파서 눈에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영광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약한 숨을 내쉬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다.
쥐족은 제 말이 끝났음에도 동굴이 조용하자, 빼꼼 고개를 들었다.
헉.
케일과 눈이 마주쳤고, 그의 입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최한. 챙겨. 그리고 곧바로 용병왕에게로 간다.”
쥐족은 저를 들어 올리는 최한의 순하지만 차분한 모습에 몸을 웅크렸다. 다리나 옆구리의 통증은 최한의 검집을 보자 사라졌다.
하지만 쥐족은 케일과 다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이 저절로 열렸다.
씨익.
아주 사악하게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
케일의 미소를 본 순간.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막돼먹은 놈입니다!”
쥐족은 다시 한번 절절한 사과의 외침을 내뱉었다.
하지만, 케일은 조용히 말했다.
“입. 닫아.”
쥐족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최한, 가자. 나랑 이 사람이랑 둘 다 옮길 수 있나?”
“네. 금방 합니다.”
케일은 동굴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설명은 가면서 쥐족에게 들으면 되니까.
***
“허억, 헉, 헉-”
버드는 턱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난 버리고 가.”
“미쳤냐?”
그는 대번에 인상을 찡그리며 턱도 없는 말 마라는 듯 짜증을 내뱉었다.
“…하아.”
등 뒤에서 얕은 숨이 들려왔다.
뚜욱. 뚝.
버드는 제 어깨를 타고 내리는 핏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혈하는 사이 흘러내린 피였다.
그의 어깨는 피에 젖어가고 있었다.
버드의 피가 아니었다.
“야. 그렌 퍼프. 너 정신 잃지 마라. 잃으면 나한테 죽는다.”
“하아… 알았어, 인마.”
그렌 퍼프의 피가 버드의 등과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버드는 걸음을 빨리했다.
“버드 님!”
엘프들이 버드에게 얼른 움직이라 손짓했다.
그들 중 행색이 멀쩡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버드도 그렇고 다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뒤에서 적이, 괴물이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버드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케일 헤니투스.”
어서 오라고, 이 자식아!
하지만 버드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오지 마라. 제발.”
오지 마라.
여기 괴물이 있다.
아니, 괴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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