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2
511화.
도망간다.
버드는 도망에 익숙했지만, 도망이 싫은 사람이었다.
“…헉. 허억. 헉.”
버드는 옆에서 엘프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속이 타들어 갔다.
산에 익숙한 엘프가 지쳤다는 것이 보통 믿기지 않는 사실이겠지만, 옆의 엘프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
‘…정령의 힘을 너무 많이 사용했으니까.’
버드가 이끄는 무리. 그리고 반대편에서 엘프 소로스가 이끄는 무리.
옆의 엘프는 이 두 무리의 연락책으로 정령을 사용해왔다.
“허억, 헉. 버드 님.”
“…네.”
“이제는 더 이상 정령들도 숨어서 도망 다닐 곳이 없어요.”
엘프의 얼굴에 비참함이 서렸다.
이 산은 지금 엘프들과 계약한 정령들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거나 아니면 계약자 곁으로 돌아와 그 옷자락에 숨거나, 아니면 산 곳곳으로 흩어져 숨죽인 채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휘이이익-
버드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멈칫하며 왼쪽의 용병에게 외쳤다.
“고개 숙여!”
용병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일 뿐만 아니라, 몸을 황급히 굽혔다.
콰직!
화살 하나가 용병을 지나쳐 그 옆의 나무에 박혔다.
‘제길!’
그 광경을 보며 버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이 재빨리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향했다.
사사삭.
나무들 사이로 숨어드는 그림자가 보였다.
도망 다니는 버드 일행을 향해 이렇게 화살과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버드는 이 공격들을 피할 뿐, 따로 반격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대장! 계속 이렇게 당할 겁니까!”
뒤따라오던 용병이 성질을 참지 못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어쩌려고?”
용병은 저를 돌아보는 버드의 눈빛에 움찔했다.
버드는 잠시 굳어버린 수하의 엉망인 몰골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 몸 상태로 지금 저 화살을 날린 놈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렇지만!”
“계획대로 가는 게 맞다는 걸 너도 알잖아?”
버드의 냉정한 눈빛에 반박을 하려던 용병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계획.
버드에게는 계획이 존재했다.
용병은 그 계획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위협과 아군의 등에 업힌 부상자들을 보자 울분이 치솟아 올라 참을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버드도 그 심정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는 침묵으로 분노를 삼키는 용병을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시 출발한다.”
다시 일행들이 부상과 피로를 견뎌내며 걸음을 내디뎠다.
“허억, 헉… 허억.”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아군은 수풀과 나무들을 헤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옆에 있던 엘프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네요. 이렇게 적들이 한곳으로 몰아주니, 그대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장난스럽게 건넨 말에는 분노와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버드는 등에 업힌 그렌의 자조 섞인 웃음이 들려왔다.
“크큭. 세상에, 우리가 몰이사냥을 당하다니.”
“…웃지 마, 새끼야. 겨우 지혈했던 거 다시 터져.”
“터지든가 말든가. 빌어먹을.”
울분에 가득 찬 그렌의 말에 버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몰이사냥을 당한다.
버드는 현재 적들이 그들을 포함하여 반대쪽에 있던 소로스 일행까지 한곳으로 몰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우린 사냥감이다.’
버드의 눈빛이 번뜩였다.
‘저들은 우리를 사냥 중이고.’
이상하게도 적들은 그들을 죽이지 않고 어딘가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허억, 후우-”
버드는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산 전체로 봤을 때 중앙 부근이다.’
그곳에 함정이 있을까?
그래서 그곳으로 모는 것일까?
‘…함정은 아닐 거야.’
버드는 확신은 못했지만 거의 그럴 것이라 판단했다.
‘저렇게 괴물같이 강한 놈들이 굳이 함정으로 우리를 몰아 죽일 필요가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저 괴물 같은 놈들은 버드는 물론이거니와 엘프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힘이 존재했다.
그러니 죽이기 위해 한 곳으로 모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버드는 그 점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동쪽 서쪽 아군들이 흩어진 상태에서는 뭣도 제대로 시도해볼 수 없었으니까.
“뭉쳐야 해요. 함께해야 합니다.”
“다 죽진 않을까요?”
멈칫.
엘프의 말에 달리던 이들이 저마다 움찔하며 어색한 몸놀림을 보였다.
모두가 그 생각을 했다.
몰이가 끝나면 아군이 다 모이듯, 지금 이들을 모는 적들도 한데 모일 것이다.
더 강대한 적에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들 한편으로는 다 뭉치면 괜찮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반대로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불안감을 가지고서 달리고 있었다.
버드도 아군들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죽을 확률이 더 높아.’
버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은밀하게 몇 엘프와 용병들을 산 아래로 내려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나 치밀하게 버드 일행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있는지, 다른 곳으로 적은 인원이라도 도망 보낼 수가 없었다.
쿵. 쿵. 쿵.
버드는 심장이 뛰었다.
그는 적들의 진정한 힘을 냄새로 파악한 뒤부턴 일부러 오러의 힘을 많이 쓰지 않았다.
아끼고 아껴두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 싸우다가 위험을 높이는 것보단 아군이 다 합쳐서 뭉치는 게 낫습니다.”
뭉쳐서 방어막을 두르고 버티면, 지금보다는 오래 버틸 것이다.
버드는 적의 힘을 파악한 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최대한 힘을 못 쓰게 했으니까.
그 힘은 한데 뭉쳤을 때 사용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어떻게든,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몇 명이라도 살릴 거니까.’
그렇게 버티다 보면.
그러다 보면 반드시 그놈이 올 거다.
버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케일에게 연락했으니, 그 녀석이 아군들을 데리고 올 겁니다.”
버드는 아군 주위를 감싸는 희망과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도망가고 버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구하러 올지도 모를 아군에 대한 희망이었다.
버드는 그걸 알기에 아군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에 케일을 언급했다.
‘그렇지만.’
…케일. 그놈이 오면 안 되는데.
버드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내가 이 주둥이를 단속하지 못해서 도와달라고 한 이상, 그놈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빨리 오려고 할 거다.’
버드는 적들의 힘을 깨달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지 말라고 연락해야 했어.’
그걸 연락할 마법사가 없다.
그렌을 포함해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았고, 그들 모두가 지금은 마법을 사용할 여력이 없었다.
‘…하얀 별 그놈을 얕봤어. 아니, 우리가 뭘 몰랐다.’
하얀 별이 대장 격인 것은 맞았지만, 그놈에겐 수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력자’도 있었고, ‘협력자’도 있었다.
‘천 년이 적은 시간이 아니었어.’
버드는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티 나지 않게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작전의 우두머리 격인 버드의 단호한 대답과 케일에 대한 언급으로 그를 따르는 이들의 눈빛에 다시 불꽃이 피어올랐다.
다들 지친 몸을 이끌고서, 다친 동료들을 업고서 발끝에 힘을 주었다.
***
그렇게 얼마나 더 달렸는지 모른다.
“버드 님.”
엘프가 바라보는 시선에 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 몇이 앞으로 나서며 수풀을 갈랐다.
공터가 나타났다.
나무와 수풀은 싹 정리한 것인지 아주 드넓은 공터가 버드의 눈앞에 자리해 있었다.
물론 공터를 감싼 나무와 수풀은 여전히 울창해, 조금만 더 가면 설산 지대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상합니다. 공터라니요.”
엘프가 불안함을 담아 버드를 바라봤다.
버드 역시도 공터를 보자 찝찝함이 밀려왔다.
험한 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위적인 공간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버드 대장님!”
그들이 있는 반대편.
수풀을 가로지르며 공터 바로 코앞에서 멈춘 엘프가 한 명 보였다.
버드 곁의 엘프가 목소리를 높였다.
“소로스 님!”
버드와 함께 엘프들을 이끌던 소로스였다.
저쪽도 몰골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들 살아서 만났기에 엘프들 얼굴에 감격이 서렸다.
그때였다.
다그닥. 다그닥.
버드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아.”
버드 곁 엘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킁.
그 순간, 버드는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강력한 강자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등 뒤에서 뭉치는 거대한 힘의 파동을 느꼈다.
“제길!”
동시에 엘프 소로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고, 맞은편의 버드는 소로스의 뒤를 겨누는 검은 활 수십 개를 볼 수 있었다.
흡!
버드는 다시 한번 냄새를 맡았다.
맡아본 적 있는 힘의 냄새였다. 그 힘을 가진 자의 냄새는 서대륙에서 처음 맡았다.
그래서 버드는 그 냄새를 품은 자들의 종족을 떠올리자, 믿을 수가 없었다.
‘…다크엘프……!’
소로스 쪽을 공격한 적들 중 일부가 다크엘프들이었다.
‘동대륙 다크엘프인가!’
그러나 버드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숲에 어울리지 않는 말발굽 소리와 더 커지는 힘의 파동.
버드는 소리쳤다.
“다 뭉쳐!”
날아온다.
또 그 힘이 날아온다!
“계획대로 간다!”
버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일시에 양쪽으로 찢어졌던 아군들이 공터로 뭉쳐 들었다.
소로스와 버드의 눈이 마주쳤다.
정령 연락이 끊기기 전, 그들은 계획했던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힘을 최대한 비축했다.
버드가 용병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보호막을 둘러라!”
진형을 갖춰 일사불란하게 공터에 모여든 아군.
그들은 재빨리 공터 아래에 폭탄이나 함정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동시에 외곽에 선 용병들이 일제히 방패를 꺼내 들었다.
소로스가 외쳤다.
“활을 꺼내라!”
방패 사이사이로 활이 바깥의 적들에게로 향하며 방패의 틈새를 메꿨다.
큰 방패 여러 개가 마치 하나의 성벽처럼 아군을 감쌌다.
엘프와 용병.
처음 만난 이들이라고 하기에는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잘 맞았다.
“그렌을 부탁합니다.”
“네.”
그리고 방패 성벽 중심엔 마법사들이 자리했다.
그들만이 바깥과 연락이 닿거나 텔레포트를 실행할 존재였으니까.
“…야.”
“조용히 하고 몸 관리나 해.”
버드는 그렌의 부름을 무시하고 방패 밖으로 나섰다. 그 옆에 소로스가 함께했다.
둘은 각자 서로가 왔던 방향을 향해 검을 겨눴다.
저벅저벅.
소로스 쪽에서 두 명이 가까이 다가오다 한 명은 멈추고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검은 로브를 쓴 이는 얼굴을 감춘 후드를 벗었다.
소로스는 그자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다크엘프가 어찌하여-”
다가오는 상대는 다크엘프였다.
저들이 계약한 정령들 때문에 엘프와 계약한 정령들이 힘을 못 썼다.
그리고 소로스와 등을 맞대고 선 버드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후우.”
다그닥. 다그닥.
버드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등장한 이를 보며 검을 움켜쥐었다.
‘…검은 기사.’
거대한 검은 말을 탄 검은 갑옷의 여인이 공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 뒤로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투구를 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사들이 존재했다. 그들도 말을 타고 있었다.
또한 그녀가 탄 말은 그 모습이 이상했다. 일반적인 말이 아니었다. 그 눈동자가 시뻘겠다.
‘그것뿐만이 아냐.’
싸울 때 저 기사는 물론이거니와 저 말도 이상한 힘을 선보였다.
팔랑 팔랑.
그 기사 옆에는 유유자적 부채를 팔랑이며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그 남자 위로 알 수 없는 힘들이 뭉쳐 들고 있었다.
‘짐작은 가지만.’
대충 저 힘의 정체가 짐작이 되었지만,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저것이 한번 날아오면, 그 일대가 다 파괴되었다. 그 살상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저 힘이 곧 날아올 것이다.
‘막는다.’
버드는 몸속의 오러를 서서히 일으켰다.
우우웅-
검이 진동했다.
막는다.
그리고.
‘…버틴다!’
버드는 각오한 바를 되새기며 매섭게 적을 노려보았다.
다그닥 다그닥.
검은 기사의 말이 멈췄다.
쿵. 쿵. 쿵.
버드는 심장이 급격하게 뛰었다.
오러를 머금은 검의 떨림이 극으로 치달아갔다.
그때였다.
검은 기사의 입이 열렸다.
“먼저 온 자들이 있었네.”
“…뭐?”
투둑. 툭.
버드의 시선이 빠르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공터를 감싼 나무 중 하나가 흔들렸다.
‘…설마?’
버드의 눈동자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나무에서 한 명이 내려섰다.
쿠웅!
버드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그 사람을 불렀다.
“최한!”
최한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에 업힌 쥐족도 보였다.
버드가 아는 이였다.
레인저 부대원이었다.
‘…살아있었어!’
레인저 부대원 중에 살아있는 자가 있었다고!
버드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쿵. 쿵. 쿵.
심장이 다른 의미로 거세게 뛰었다.
최한이 왔다면. 그렇다면.
“안녕?”
최한이 뛰어내렸던 나무 뒤에서 한 명이 느긋하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태평한 목소리와 달리, 버드는 저와 다른 아군들을 샅샅이 살펴보며 점점 더 차갑게 가라앉는 케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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