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5
514화.
그러나 그 희망이 곧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바뀌는 것도 금방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조차 최대한으로 죽인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아군에게 그 말발굽 소리는 천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천둥 사이로 나직이 퍼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온다.”
버드의 단 한마디였다.
아군을 둘러싼 공기가 급속도로 긴장감을 품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검은 말을 탄 검은 기사단이 다가온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니다.
마치 해일이 밀려오듯이 그 소리는 컸다.
그 순간이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좋지만 쓸데없는 불안감은 느끼지 말도록.”
케일 헤니투스의 단호한 목소리가 아군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들은 정면을 응시했다.
서걱. 서걱.
최한과 하나가 맨 앞에서 나뭇가지와 수풀을 최대한 소리 없이 빠르게 베어내며 길을 텄다.
하지만 그 앞은 여전히 안개투성이라 시야가 제대로 분간되지 않았다.
투둑.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긴장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여기! 태양신의 힘이 느껴진-”
적의 외침이었다.
왼쪽이다.
모두의 시선이 왼쪽으로 향했다.
안개로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가까이에 적이 있으리라.
스윽.
엘프 소로스가 얼른 활에 화살을 겨누며 소리가 들린 쪽을 주시했다.
‘음?’
그러나 이상했다.
더 이상 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느껴진-’에서 적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때, 케일이 걸음을 멈췄다.
“온. 안개를 치워 줘.”
냐아아옹.
사아아아아-
아군은 정면으로 일정 반경 범위의 안개가 물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최상급 마법사 그렌 퍼프는 부상 부위를 움켜쥔 채,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하하.”
그러나 그 웃음은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군데군데 쓰러진 적들이 보였다.
‘암’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분명 저들 사이에는 퍼프 가문을 배신하고 암의 밑으로 들어간 자들도 섞여 있을 터.
그렌은 동료 용병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이걸-”
“누구긴. 몰란 가문이지.”
분명 방금 소리 내던 적이 조용해진 것도 몰란 가문 덕분이리라.
그렌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네? 아무도 없는데요?”
“그러니까, 몰란 가문인 거다.”
적은 쓰러져 있었으나, 그 적들을 쓰러뜨린 자에 대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유령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케일은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론.”
아무도 없는 공간, 안개 속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것 아닙니다. 완벽한 위장 상태에서 사냥감을 못 잡는 사냥꾼은 없습니다.”
동시에 안개 속에서 비크로스가 대검을 쥔 채 나타났다.
그는 소리 없이 나타나 최한의 앞에 섰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설산 지대 입구까지. 길은 확보했습니다.”
케일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는 쥐족 판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라온을 통해 론에게 단순히 적의 후방 아무 곳이나 공격하라고 하지 않았다.
‘길을 확보해.’
그는 론에게 도망칠 길을 확보할 것을 부탁했다.
다그닥. 다그닥.
지금도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스스로를 숨길 의향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만만했으며 또 한 번의 몰이사냥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케일은 그걸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비크로스의 말을 듣고 불안을 느낀 이가 있었다.
“사령관님.”
엘프 소로스였다.
“설산 지대라니요? 저희는 아래로 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사실 소로스는 조금 이상했었다.
케일의 안내를 따라 다크엘프들이 있던 쪽을 뚫으며 전진하였다.
그러나 그 방향이 미묘하게 산 밑이 아닌 고지대로 향하여 긴가민가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설산 지대까지 가는 길을 확보했다는 비크로스의 말에 소로스는 자연히 케일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뒤에서 적들이 쫓아온다고 하여도, 지금 아군 상태상 설산은 힘들었다.
“사령관님. 차라리 산 밑이 낫지 않겠습니까? 혹시 설산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면-!”
“산 밑은 불가합니다.”
대답을 한 이는 최한이었다.
“아까 탈출을 시작한 순간, 적 대대 인원의 상당 부분이 산 밑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이어 버드도 말을 받았다.
“…산 아래로 향하는 냄새들이 많았습니다. 적들은 우리가 산 아래로 도망칠 줄 안 것이겠지요. 보통 도망치려면 아래로 향하지, 누가 설산으로 들어가겠습니까.”
버드는 담담하게 이어 말했다.
“그러니 설산으로 가야지요.”
“하지만 저희 뒤를 추격하는 적들도 많지 않습니까?”
소로스는 뒤를 돌아 다친 이들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
“산 밑으로 간 적들도 있지만, 지금 저희를 추격하는 적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설산을 통해 탈출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그때, 케일이 뒤를 돌아보며 아군을 향해 말했다.
“지원군이 올 거다.”
또 누가 온단 말인가?
소로스의 눈동자가 커졌을 때, 그는 케일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 속엔 분노가 자리했다.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그냥 당하기만 할 생각은 없어.”
소로스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러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
케일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아까 전, 바람 정령들이 다른 정령들이 산 중앙으로 몰린다는 것을 말하며 했던 말이 있었다.
그것을 그는 내뱉었다.
“이 산 정상 부근과 이어진 서쪽 산. 그쪽엔 아무도 없다. 그곳으로 간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방향도 완전히 설산 정상으로 똑바로 향하는 것이 아닌 서북쪽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지금 설산 지대로 들어가 설산을 넘을 때.”
아군이 케일의 눈동자 속에 서린 분노가 뜨겁기보다는 차갑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눈사태를 일으킨다. 아니, 설산을 무너뜨린다.”
버드와 소로스, 그렌. 아군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케일이 말한 함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눈이 휩쓸 수 있는 것은 다 휩쓸겠지.”
고저 없이 담담한 그 말을 끝으로 케일은 다시 서북쪽으로 향했다.
이 산의 지형상,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 큰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면 설산 지대였다.
아군들은 침을 삼키며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어느새 소리 없이 스며드는 몰란 가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
“그렇게 해주면 될 것 같소.”
-알겠어요.
영상통신이 뚝 끊겼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급격하게 피로감이 밀려왔다.
그는 아까 전 다급하게 울려대던 영상통신구를 떠올렸다.
‘부탁합니다. 형님. 전 형님 머리를 믿습니다.’
케일 헤니투스는 그 말과 함께 영상통신을 끊었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로에 가득 차 있던 푸른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로잘린 씨.”
“네. 저하.”
“들으셨죠?”
적발 적안의 마법사가 로브 후드를 쓰며 그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알베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 들었어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는 떠나려는 로잘린을 바라보다 잠시 망설이던 입을 뗐다.
“괜찮겠습니까?”
로잘린은 미소를 그리며 그 물음에 답했다.
“나중에 뵙죠, 저하.”
나중에 다시 본다.
알베르는 그 훌륭한 대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도 같은 답을 하였다.
“나중에 봅시다.”
곧 로잘린은 떠났고, 알베르는 혼자 남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측근들마저 내보내고 로잘린과 함께 있던 공간이었다.
로잘린 이전에는 에르하벤 님이 이곳에 있었다.
그 두 명이 떠나자, 남은 건 알베르뿐이었다.
그는 케일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부탁합니다. 형님. 전 형님 머리를 믿습니다.’
알베르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내 머리를 믿는다고?’
그의 입이 열렸다.
낮은 목소리가 빈 테이블 위를 채웠다.
“오냐. 내 머리를 한번 써보마.”
그는 바로 일어나 집무실 문을 열었다.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측근들이 보였다.
로운의 수뇌부이기도 한 이들이었다.
알베르는 그들을 안으로 불러들이며 말했다.
“로운 서북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현재 로운 서북부에 몰래 잠입한 자들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미래의 왕이 말하는 ‘모든 정보’.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임은 수뇌부들이 떠올린 순간.
“지금부터 로운 서북부를 전시로 판단한다.”
전시.
그 단어에 수뇌부들이 숨을 들이켰지만, 알베르는 진심이었다.
케일 헤니투스의 말대로 지금 4파전이 벌어질 것이라면, 그중에 하나는 최소한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 형으로서 체면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땅을, 로운의 땅을 노린다?
결코 알베르는 그딴 수작에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병력을 모아라.”
서대륙에서도 케일의 동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
“저 바위를 넘어,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설산 지대이고, 동시에 다음 산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비크로스의 차분한 말에 최한은 그의 뒤를 따르다 힐끗 뒤쪽을 쳐다봤다.
케일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케일 님.”
“…이상해.”
“네?”
케일은 최한의 말에 답하기보다, 손을 들어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후방에 있던 론이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론. 이상하지 않아?”
“이상합니다.”
론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도련님. 다크엘프의 후속 공격이 없습니다. 정령들이라면 안개 너머 우리의 흔적을 발견했을 텐데 말이죠.”
아. 맞다. 그들이라면 우리를 발견할 확률이 높았다.
버드는 혹시 적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나 싶어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그때, 론의 말이 이어졌다.
“이상하네요. 폭탄이 왜 안 터지죠?”
응?
버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부러 우리 쪽 흔적을 남겨두었고, 그거 쫓다가 발견하고 난리 날 줄 알았는데 말이죠.”
론과 몰란 가문 사람들은 일부러 흔적을 미리미리 뿌려둬서 아군의 방향에 대한 혼란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은신술과 추적에 특화된 이들이다 보니, 그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당연히 도망치는 그들을 찾는 적군이라면 그 흔적을 어찌 되었든 살펴볼 터.
“야, 케일! 론 씨가 하는 말이 뭔 소리야?”
하나도 놀라서 뒤돌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저 멀리 굉음이 들려왔다.
달리던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부상으로 숨이 벅찼던 마법사들은 저 멀리 안개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화염이 보였다.
검푸른 불길이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곧이어 몇 차례의 굉음과 함께 적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지축을 뒤흔들 듯 맹렬하게 전진하던 말발굽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 부순다!”
누군가의 발랄한 목소리는 그 굉음에 묻혔다.
하지만 케일 일행 중 몇몇은 들었고, 그 목소리 주인이 라온임을 깨달았다.
-인간아! 예전에 할배가 준 거 다 썼다!
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계획대로 마법 폭탄으로 적의 발목을 묶었군요.”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흔적을 남겨둔 곳에 마법 폭탄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적들의 추격이 느슨해질 것이다.
당초 케일의 계획은 이 폭발로 인해 적의 추격이 늦어진 틈을 이용해 설산에 재빨리 진입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지원군을 만나 탈출과 함께 적들에게 한 방 먹일 작정이었다.
론은 폭탄 발견이 늦거나 혹은 적들이 그 흔적을 무시할까 걱정했는데, 조금 늦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어 안도했다.
“이상해.”
하지만 론은 다시 케일이 내뱉은 말에 그의 굳어진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도련님.”
케일은 론의 인자한 미소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제 머릿속에 든 의문을 내뱉었다.
“…뱀파이어들이 왜 안 보이지?”
그는 애시당초 이 탈출 루트를 택한 이유가 뱀파이어와 다크엘프를 상대로 태양신의 힘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봐, 이쪽이 탈출 가능성이 높다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안 보인다.
“…케일 님.”
그 순간, 그는 최한의 굳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에 케일은 얼굴이 구겨졌다.
그들이 목표한 설산 지대로 향하는 곳에 자리한 큰 바위.
그 바위 위에 선 이가 보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자네가 케일 헤니투스인가?”
케일은 바위 위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웃는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웃는 소년의 송곳니가 유독 뾰족했다.
케일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놈 뱀파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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