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6
515화.
“…뱀파이어야……!”
케일은 등 뒤로 확신에 찬 버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뱀파이어의 냄새를 맡아본 버드였기에 그의 판단은 거의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목소리에 케일은 시선을 잠시 뒤로 돌렸다.
그는 버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눈동자는 부채를 든 후작에 대해 말했을 때처럼, 에르하벤보다 더 강하다고 말할 때처럼 경악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케일의 시선이 다시 뱀파이어에게로 향했다.
“네놈은 뱀파이어들의 우두머리인가?”
소년은 케일의 모습을 사뭇 따스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두머리지.”
소년은 담백하게 답하곤 최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최한이겠군. 그리 두리번거릴 필요 없네. 이 주위에 다른 적은 없으니까.”
은밀히 주변을 살피던 최한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에르하벤 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 고룡 에르하벤의 레어를 찾았을 때, 은연중에 풍겨져 오는 드래곤의 기운에 최한은 덤덤하게 있으면서도 이 기운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쉬이 이길 수 없는, 아니,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런 기운이었다.
그것을 지금 이 순간 또다시 최한은 저 뱀파이어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리지 않아…….”
소드 마스터 하나는 최한의 그런 굳은 표정에 덩달아 백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검술로 싸워서 이기기 힘든 게 최한이었다.
그런 최한이 긴장한 모습에 절로 그녀도 긴장감이 피어 올라왔다.
‘뱀파이어라면 내가 맡아야 할 확률이 높아.’
다크엘프를 상대해야 했듯이, 같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때, 케일이 뱀파이어 소년을 보며 물었다.
“왜 이곳에 다른 적은 없지?”
그러고 보면 아까 전에 뱀파이어 한 명이 나서지 않고 숲 어두운 데서 머물고 있었다.
‘저놈은 꼬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콰아아앙!
다시 한번 더 마법 폭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한두 개만 더 터지면 라온이 심어둔 폭탄은 다 사용할 터.
‘폭발로 안개도 사라진다.’
안개도 상당 부분 폭발로 인해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적들은 케일 일행의 흔적을 금방 찾아 추격해올 터.
케일은 그 전에 먼저 설산으로 들어가 준비해야 했다.
그러려면 서둘러야 했다.
‘제길!’
그런 상황에서 저런 놈을 마주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케일은 속내를 감추며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그렸고, 그에 응하듯 소년은 담담하게 답했다.
“내가 왜 굳이 다른 녀석들과 함께 움직이겠나?”
“…그 말을 믿기엔 지금 저 산 아래에서도 사방에서 우리를 옥죄어오고 있다만.”
케일은 답하면서도 최한에게 살짝 눈짓했다.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란 신호였다.
선두의 이들이 그 시선을 받고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뱀파이어 소년은 그런 움직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씨익 웃더니 손을 들어 손짓했다.
“내 눈치 볼 것 없이 얼른 오게. 곧 저 밑에서 적들이 추격해 올 거야.”
최한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적이 웃으며 오라고 한다. 그것도 아주 강한 자가.
그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고, 케일은 어느 때보다도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수작이지?”
설산에 뱀파이어들이 매복해 있나?
아니면 저 바위가 폭발하나?
무슨 함정을 두고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지?
케일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약 그 혼자라면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겠지만.
“허억. 허억.”
지금도 그의 등 뒤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마법사와 부상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간간이 잭이 여유로울 때마다 펼치는 치유를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각이 많아진 케일은 뱀파이어 소년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으음. 이런, 오해를 했군.”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더니 두 손을 펼쳐 올렸다.
“나는 여기서 자네와 싸울 생각이 없어.”
“왜?”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우리 부대원들 피를 빨아먹은 놈들 우두머리 새끼가……!”
쥐족 판이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그 말에 매우 공감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적이 된 놈이 싸울 생각이 없다니?
케일의 눈동자가 번뜩이며 뱀파이어 소년에게로 향했다.
저벅. 저벅.
그는 한 발씩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소년을 가리켰다.
“넌 작위가 무엇이지?”
이 녀석도 분명 저들끼리 불리는 작위가 있을 것이다.
백작?
아니다. 그 이상일 것이다.
“후작? 아니면-”
소년에게선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졌다.
“공작?”
“맞네. 공작이지.”
그는 꽤 우아한 동작으로 저를 소개했다.
“반갑네. 두 대륙의 뱀파이어들을 이끄는 프레도 본 이젤른 공작이네. 프레도 공작이라고 불러주면 될 것 같아.”
케일은 그 모습을 보며 툭 던지듯 내뱉었다.
“그럼 왕은 누구지?”
프레도 공작의 입꼬리가 그림처럼 올라갔다.
그 모습에 케일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너희들만의 왕국을 세웠나?”
왕국.
그 단어에 론과 잭, 버드가 놀라서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케일은 담담했다.
서로 간의 호칭이 작위라는 점을 놓고 보았을 때, 그리고 어느 정도 세력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통합되어 있는 것을 느꼈을 때.
케일은 어쩌면 이들이 하나의 왕국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버드가 가장 긴장했다.
동대륙에 어둠 속성들이 모인 왕국이 있다?
그것은 권력자들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으나, 버드에게는 그닥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이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마족을 끌어들이는 일이라면 매우 문제였다.
그는 케일보다 더 긴장한 얼굴로 프레도 공작의 입을 바라봤다.
그러나 소년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쎄.”
그리고는 어물쩍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케일은 그 모습에 왕국이 있을 것이라 반쯤 확신했다.
그렇기에 한 발짝 더 내디디며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왕은 하얀 별인가?”
아니면.
“아니면, 마족인가? 마족을 모시는 자들이 있던데?”
그 순간, 프레도 공작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주 미세했지만, 기록 능력을 사용한 케일의 눈동자를 피할 순 없었다.
“하하.”
하지만 이내 그 찡그림은 사라지고 소년은 웃었다.
프레도는 곧 평온해진 얼굴로 담백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가 아무리 맛있는 피를 지니고 있더라도. 이 나를 그런 식으로 보면 곤란해.”
뭐?
케일은 순간 자신이 뭘 들었나 싶었다.
냐옹?
그는 고개를 숙였다. 온의 황당해하는 표정이 보였다.
-인간아! 저 뱀파이어가 뭐라고 했나? 인간 피 맛있나?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케일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묘하게 꺼림칙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비크로스와 하나의 떨떠름한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덩달아 케일의 표정도 떨떠름해질 뻔했으나.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요.”
케일은 소름 돋게 인자한 론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소년 공작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난 긍지와 품위를 아는 뱀파이어야. 그런 만큼 누구를 내 위에 모시지 않지.”
케일은 그 말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마족이나 하얀 별을 섬기지 않는다는 건가?”
소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네에게는 진실만을 말하도록 하지.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섬기지 않아.”
뱀파이어.
케일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종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기록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를 모시는 것은 나약한 것들이나 하는 짓이지. 맛있는 피를 지닌 자네가 그런 오해를 하면 곤란하네.”
물론 프레도 공작은 대의를 위해 거짓으로 꾸민 행동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실만을 말하기로 하였으니,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긍지였다.
그리고 그는 케일 헤니투스에게 할 말이 있었다.
‘…실제로 보니 정말 굉장하군.’
그는 케일에 대해 얼핏 말로만 들었을 때 ‘혹시?’ 하는 기대감을 품었었다.
뱀파이어.
다크엘프와 함께 어둠 속성을 지녔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로 인정되는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어둠 속성과 달리 살아있는 생명력. 피와 닿아도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소년은 바위에서 내려섰다.
“케일 헤니투스.”
타닥.
가볍게 내려선 그는 천천히 케일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그에 일행들은 긴장하며 경계를 보이려 했지만.
쿵. 쿵. 쿵.
저 멀리서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직감했다.
‘말발굽 소리다!’
말들이 미친 듯이 달려와 생기는 진동이리라.
적들은 우왕좌왕하던 것을 멈추고 이곳을 향해 오고 있을 것이다.
케일은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안개가 거의 사라진 산의 풍경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뱀파이어 공작과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스윽.
프레도 공작은 걸음을 멈추고선 제 앞에 겨눠진 검을 바라봤다.
하나가 겨눈 백검이 흔들림 없이 그를 향해 있었다.
프레도는 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재밌는 장난감이구나.”
“뭐?”
하나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검을 쥔 손목을 비틀었고, 태양의 단죄가 빠르게 프레도 공작에게로 쇄도했다.
사악-!
“…어디로!”
하지만 그녀의 검이 순식간에 베어낸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쾅!
그녀는 뒤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흐음. 역시 조금 다르군.”
그곳엔 최한이 어느새 케일 바로 앞에 서서 프레도 공작의 손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저게 무슨-!”
그러나 하나는 그 광경을 보며 안도하기는커녕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프레도 공작의 손을 막아선 최한마저도 그 눈동자가 흔들렸다.
소년은 사라졌다.
최한의 검과 맞부딪친 이는 건장한 체격의 성인이었다.
삼십대로, 비크로스 나이대쯤으로 보이는 이였다.
다만 그는 뱀파이어 소년을 꼭 닮은 보랏빛 눈동자와 회백색의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색깔만 같을 뿐, 그 분위기는 상당히 나태하면서도 여유로웠다.
프레도 공작은 순식간에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다.
이쪽이 아마도 그의 본모습일 터.
스르륵-
최한은 제 검을 가볍게 밀어내는 프레도 공작의 손힘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프레도 공작은 가볍게 손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곧 우리 아군들이 올 터이니, 빨리 말하고 사라지도록 하지. 자네도 도망가야 할 테니까.”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달라.’
소년의 모습은 껍데기였고, 저 모습이 본체인지 은연중에 흐르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문득 든 생각이었다.
‘하얀 별 밑에 있을 자가 아닌데?’
그러고 보면 부채를 든 후작도 그렇고. 하얀 별 부하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케일의 눈동자가 성인 버전 프레도를 탐색하는 순간이었다.
“계약을 하나 제안한다.”
프레도는 케일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담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제안? 우린 적이다만?”
“글쎄. 그건 아직 알 수 없는 법이지.”
의뭉스러운 태도에 케일은 일단 제안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제안이지?”
프레도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순간 케일은 그 미소에서 불길함이 밀려왔고, 그에 응하듯 프레도 공작은 자신의 제안을 느릿느릿하게 읊조렸다.
“네 피를 우리에게 넘겨라. 아니, 바쳐라.”
뭐?
케일은 순간 눈이 커졌다.
내가 지금 뭔 소릴 들은 거야?
그가 놀라는 와중에도 프레도 공작의 말은 이어졌다.
공작은 진지했다.
“그러면 우리는 너와 협력하도록 하지.”
“그게 무슨 소리지?”
그때.
쿵. 쿵. 쿵!
진동이 더욱더 가까워져 왔다.
코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던 버드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
“냄새가 몰려와! 가까워졌어!”
적들이 가까워져 온다.
이제 정말로 움직여야 했다.
적을 유인하고 적에게서 도망치려면.
프레도 공작은 케일 등 너머를 보더니, 황당한 얼굴의 케일에게 부드러이 말했다.
“조만간 우리 성으로 초대하도록 하지.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오도록.”
여전히 케일은 그런 프레도를 황당하게 쳐다봤다.
피?
내 피를 바치라고?
그러면 협력한다고?
이게 뭔 헛소리야?
“아. 참고로.”
프레도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미소를 그렸다.
유쾌한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였다.
“네 피가 뱀파이어에게 아주 좋아. 맛, 영양, 치유 효과. 아주 만병통치약이지.”
씨익.
프레도는 환하게 웃었다.
왠지 모르게 어른 모습의 프레도는 환하게 웃어도 어딘가 퇴폐스러워 보였고, 케일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약간 조금 더 미친 클로페 세카를 보는 느낌이었다.
-인간아! 저건 정상적인 눈동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디 훼까닥 한 놈 같은데?
-그리고 인간아! 네 피 냄새 비리다! 별로다! 피 쏟으면 안 된다!
라온이 뭐라 말하든 말든, 공작을 쳐다보는 케일의 표정은 뭐 이런 미친놈이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하나와 비크로스는 더 기가 찬 표정이었고, 최한과 론에게서는 살벌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뭐죠?”
저벅 저벅.
바위 뒤편.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설산에서 내려왔는지 어깨에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스윽.
후드를 벗자, 붉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로잘린은 한쪽 어깨에 큰 천 주머니를 멘 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기다려도 안 와서 내려와 봤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는군요. 저 새롭게 미친놈은 누구죠?”
그녀는 프레도를 쳐다보다가 케일을 다시 보며 물었다.
“케일 공자. 저건 뭐죠?”
“…어… 제 피가 맛있다는 미친놈이죠?”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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