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19
518화.
“옵니다.”
최한의 말에 케일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헉, 헉.”
“괜찮으십니까?”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빌어먹을! 이놈의 몸뚱이는 겉은 멀쩡한데 안은 약해 빠졌어.’
어째 갈수록 체력이 부족해졌다.
생활 패턴을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 괜찮아.”
케일은 한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곤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바라보는 최한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케일은 최한이나 비크로스처럼 수련을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메리와 로잘린이 연구는 체력이 중요하다며 운동하는 판국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나날이 많았다.
“뭐 해? 빨리 움직여.”
최한은 저를 다그치는 듯한 케일의 말에 이내 하던 생각을 접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다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적들이 저흴 발견한 듯 싶습니다!”
케일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보여야 알지!’
휘이이잉- 휘이잉-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포시 내리던 눈발은 바람이 심해진 순간부터 어느새 거친 폭풍으로 돌변해버렸다.
순식간에 변한 설산의 날씨는 재난과 같았다.
‘미치겠네.’
케일은 제대로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최한이 말한 적도 안 보일뿐더러, 지금 걸어가는 정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이대로 전진할까요?”
하지만 케일 곁의 최한, 하나, 론은 후방을 힐끗거리며 케일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작전상 흩어진 상태였다.
‘…다 보이나 보네.’
이 무서운 것들.
최한과 하나야 소드 마스터라서 눈에 오러를 집중하면 시력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론은 소드 마스터도 아니건만, 적들이 잘 보이는 듯했다.
역시 살벌한 노인네.
케일은 제 주위의 세 사람이 다시 한번 장난이 아닌 인간들임을 깨달으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에 설산 지도와 지형이 빠르게 구현되었다.
기록되어있던 정보들이 펼쳐졌다.
사방이 안 보여도 상관없었다.
제 곁의 세 사람이 주변을 살펴볼 수만 있다면, 케일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방향만 정하면 되었다.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대로 전진한다.”
그리고 발을 내디뎠다.
“엇!”
하지만 곧 그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오며 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야. 조심해!”
그런 그의 팔을 하나가 순식간에 낚아채 부축했다.
후방은 최한, 전방은 론. 케일의 옆은 하나가.
이렇게 세 사람이 케일을 둘러싼 형태였다.
케일은 제 팔을 잡은 하나의 손을 살짝 떨어뜨리며 아무렇지 않게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서두르자. 시간을 제때 맞춰야 해.”
하나는 그런 케일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 녀석은 진짜!’
겉만 멀쩡하지, 제일 비리비리한 놈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발을 허우적거리며 나아가는 꼴을 보니 하나는 괜히 속이 쓰렸다.
“뭘 그런 눈빛으로 쳐다봐?”
케일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하나는 눈빛이 사나워졌다.
“내가 뭘 쳐다봤다고?”
하나는 더 퉁명스럽게 답하는 저를 쳐다보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나아가는 케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센 바람 속에 묻힐 듯했지만, 똑똑히 들려왔다.
“적들을 속이려면 내가 여기 있어야 해. 너도 알잖아?”
안다.
현재 그들은 적들을 속여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적들이 원하는 ‘미끼’인 케일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똑똑한 놈.’
지금 눈 폭풍 속에서 동료들의 말만 듣고 정확하게 목적지 방향을 잡아채는 케일의 놀라운 판단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제일 고생하는 놈.
‘…그러니 따를 수밖에.’
하나는 묵묵히 케일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
물론 덤으로 그녀가 한발 앞서며 케일 앞에 쌓인 눈을 슬쩍슬쩍 치워주었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최한은 후방으로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는 수시로 다가오는 적의 속도를 가늠했다.
‘우리가 한 발 내디딜 때, 적은 두 발자국 내딛는다.’
빠르다.
케일의 속도에 발맞춰 걷는 그들의 뒤를 적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쫓아왔다.
최한은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이 일만 끝내고 로운 왕국으로 바로 간다.’
왕세자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케일의 말을 듣고 난 후, 최한은 알베르를 떠올렸다.
‘…그래도 제자인데.’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알베르가 위험하다는 말에 최한은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그는 제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의 시선은 자꾸만 뒤로 향했다.
그리고 적들도 그런 최한과 케일 일행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했군.”
“속도를 높이는 게 어떻겠소?”
백작인 다크엘프 노인의 물음에 검은 기사는 후방을 힐끗 쳐다봤다.
그 시선을 눈치챈 듯 노인이 뒤에서 따라오는 부채 든 후작에게 물었다.
“후작님은 어떻게 하면 좋겠다 생각합니까?”
후작은 다크엘프의 등에 업혀서 오고 있었다.
그의 체력으로 이 눈 폭풍을 헤치며 나아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후작은 펼쳐 든 부채로 얼굴을 덮치는 눈발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케일 헤니투스와 버드의 일행이 나뉜 게 확실하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검은 기사는 대답을 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제길! 이놈의 눈발 때문에!’
갑옷을 입은 그녀는 다른 이들에 비해 몸이 무거운 상태였다.
물론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수하들에게는 문제였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좋지 않아.’
검은 말들은 모두 설산 입구에 대기시킨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녀와 기사단은 현재 갑옷을 입은 채로 이 눈밭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 속도도 다크엘프들에게 맞추느라, 상당히 빨랐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제 수하들이 조금씩 다크엘프에 비해 뒤처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노인네가 그걸 노리고 있고!’
힐끗 다크엘프 노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분명 의도적으로 다크엘프들 속도를 점차 높이는 것이 분명했다.
이 노인은 일부러 지금 이 순간, 기사단을 무시한 채 앞으로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부드러이 웃어 보이는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이 늙은이가!’
노인은 이번 기회에 공을 세워 모든 것을 다크엘프 몫으로 돌리려고 이러는 것이리라.
어떻게든 엔더블 왕국 안에서 노인 본인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이를 그녀도, 그리고 함께하는 부채를 든 후작도 알고 있었다.
‘프레도 공작은 어딨는 거야?’
만약 프레도 공작이 있었다면, 현 상황에서 다크엘프가 나설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늘 그렇듯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뱀파이어는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부채를 든 후작이 입을 열었다.
“분명 케일 헤니투스는 일부러 용병왕의 일행들이 도망갈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본인을 미끼로 우릴 유인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후작님.”
다크엘프 노인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정령을 통해 알아본 결과 이 근방에 용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정령들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분명 용에게 엘프들과 용병단의 탈출을 부탁하고 케일 헤니투스는 검사들만 데리고 우리들을 유인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노인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희미하게 케일 헤니투스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분명 용병단이 도망치며 지운 흔적일 겁니다.”
그에 반박하듯 검은 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런 눈 폭풍 속에서도 흔적이 남아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눈보라에 흔적이 지워져야 정상인데, 희한하게도 버드가 도망쳤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마다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분명 적들이 일부러 우리에게 혼란을 주려고 남겨둔 흔적일 겁니다. 우리가 찾은 흔적 쪽으로 용병왕이 도망친 게 아닐 거예요. 그들은 분명 다른 곳으로 갔을-”
“백작. 그게 중요할까요?”
기사는 후작이 건넨 말에 순간 입을 다물었다.
씨익. 지켜보던 노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습니다. 후작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용병단이 어디로 도망을 가든 그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렇죠. 우리의 목표는 ‘케일 헤니투스’죠. 그렇지 않나요, 백작?”
검은 기사는 한숨과 함께 후작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우리의 목표는 케일 헤니투스죠.”
“그렇습니다.”
팔랑 팔랑.
눈 폭풍 속에서도 후작은 부채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현재 케일 헤니투스는 곁에 용도, 정령도 없이 오로지 검사들만을 데리고 우리를 유인하고 있어요.”
탁!
부채가 접혔다.
“분명 희생하려는 의도일 겁니다.”
엔더블 왕국에서 분석한 케일 헤니투스의 가장 큰 특별한 점은 ‘희생’이었다.
이번에도 그러할 터.
“우리는 케일 헤니투스가 유인하는 것임을 앎에도 쫓아가야 하고, 케일 헤니투스 또한 우리가 다 알고서도 쫓아올 것을 알기에 검사들만을 데리고 도망치는 걸 겁니다.”
답은 간단했다.
“그러니 쫓아가, 끝장을 내야지요.”
후작의 눈빛이 번뜩였다.
‘지금 이곳엔 공작도 하얀 별도 없다.’
그렇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기 좋은 상황이었다.
‘…세력을 키워야 해.’
신이 아닌 마족을 섬기는 집단.
그 우두머리인 후작은 세상에 엔더블 왕국이 알려지기 전 최대한 몸집과 영향력을 키우고 싶었다.
“속도를 내 쫓아갑니다. 최한, 하나, 론 몰란. 다 요주의 인물이나 현재 케일 헤니투스는 분명 지쳤을 터이니. 쫓아가다 보면 틈이 보일 것입니다.”
기이한 열망으로 그의 눈빛이 타올랐다.
“틈이 보이면. 그때, 물어뜯으면 될 일.”
우우우우-
눈보라 속에서 그의 부채에 깃든 힘이 진동했다.
“속도를 높입니다.”
“네!”
다크엘프 노인은 기세 좋게 답했지만, 기사는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친 수하들이 제대로 따라올까 싶어서였다.
후작은 그런 그녀를 향해 물었다.
“후방에서 따라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딱 봐도 후작과 다크엘프 노인 둘이서 다 해먹을 작정이었다.
“…그러죠.”
하지만 기사는 아무 말 없이 후방으로 물러섰다.
‘기회는 지금뿐만이 아니니까.’
그녀는 인내 하나는 잘했기에, 조용히 뒤로 빠졌다.
“모크 백작! 이들은 서북쪽으로 왜 가는 것일까요?”
후작은 다크엘프 노인. 모크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모크는 발에 더 힘을 주었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케일 일행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 위치라면 분명 서북쪽에 있는 절벽으로 향하는 걸 겁니다.”
“절벽?”
“저 정도의 실력자 네 사람이라면 어찌어찌 절벽을 무사히 내려가는 것은 쉽겠지요.”
흐음.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벽을 내려가, 우리가 더 쫓아오지 못하게 할 작정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절벽에 닿기 전에 따라잡아야 합니다.”
“좋습니다.”
후작의 호쾌한 대답에 모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속도를 높였다.
‘주위에 먹이가 없다.’
그와 계약한 정령이 주변에 다른 정령이 없다고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케일 헤니투스 곁에 마법도, 정령도 없다면. 유리한 것은 우리다.’
그 순간.
“……!”
그는 뒤를 돌아보고 저와 눈이 마주친 케일 헤니투스의 커진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이리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한가득인 것이 제대로 지친 것 같았다.
‘아니, 감기라도 걸린 것인가?’
열이 난 듯 얼굴이 창백한 것을 넘어 엉망이었다.
스윽.
최한이 케일의 뒷모습을 가렸다.
모크 백작은 그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말은 점처럼 멀었던 적들을 이제 아주 가까이 따라잡았음을 의미했다.
‘코앞이야!’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다크엘프인 그에게 ‘가깝다’를 판단하는 척도는 단 하나였다.
찌잉-
활이 팽팽히 당겨졌다.
순식간에 다크엘프들이 달리면서도 화살을 꺼내 들어 케일을 겨눴다.
이제 화살을 쏠 수 있을 만큼 목표물이 가까워졌다.
“나도 한 손 거들지요.”
모크 백작은 후작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빠르게 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후작이 공을 빼앗으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러나 이럴 땐 아무 말 없이 공동의 공으로 돌리는 편이 나았다.
우우우우웅-
거대한 힘이 뭉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흩어져 진형을 갖춰라!”
모크 백작이 소리쳤고, 눈보라 속에서 다크엘프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초승달처럼 진형을 펼치며, 케일 일행을 향해 달려 나아갔다.
우우웅- 우웅-
화살에 검은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곧 화살은 검은 기운에 먹혔고, 그 검은 기운이 화살의 자리를 대신했다.
“제길!”
기사는 지금 기사단이 할 수 있는 원거리 공격이 없었기에 입술을 깨물며 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멈칫 어깨를 떨었다.
‘…뭐지?’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신속하게 움직이는 전방에서 시선을 떼어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없는데?’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눈 폭풍 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감지해낼 수 있었다.
전장에서 뒤로 빠진 그녀였기에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녀의 시선이 점점 위로 향했다.
무언가를 가로지르는 소리.
그녀는 하늘을 바라봤고, 곧바로 놀라 외쳤다.
“…설, 설마!”
그녀의 위를 가로질러, 아군을 가로질러 케일 헤니투스에게로 날아가는 검은 물체가 보였다.
용이다.
저건 분명, 용이다.
용은 산 정상에서 케일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눈보라 너머 산 정상으로 향했다.
용병단의 흔적은 산 정상으로는 조금도 없었다.
무엇일까?
그녀는 의문이 든 순간 입을 열었다.
전장에서 의문이 든다면.
그때는.
“…후퇴해! 후퇴!”
후퇴를 해야 할 때였다.
멈춰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때, 그녀보다 모크 백작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더 속도를 높여서 포위해라!”
초승달처럼 퍼져서 케일 일행을 덮치려는 다크엘프들의 속도가 높아졌다.
그 순간이었다.
‘모크! 저 멀리서 누가 온다!’
누가 온다고?
정령의 말이 모크의 머릿속에 들린 순간, 모크는 빠르게 비행 마법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서쪽에서 오는 자들이었다.
‘용이다!’
그리고 곧이어 정령의 외침과 함께 북쪽에서 쏜살같이 내려오는 용도 볼 수 있었다.
불길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후작이 반응했다.
“멈춰! 멈춰라!”
그의 외침에 다크엘프들이 모크를 바라봤고, 모크도 입을 열었다.
“멈춰라! 정지해!”
달려가던 이들의 걸음이 멈췄다.
그 순간, 모크는 뒤돌아보는 케일 헤니투스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보다도 시력이 발달한 모크에게 케일 헤니투스의 웃는 입꼬리가 보였다.
반면에 케일은 모크를 비롯한 적들의 표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적들이 멈춘 이 순간을 기다렸다.
“멈추면 안 되지.”
그의 손이 하늘로 향했다가 땅으로,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그것이 신호였다.
쿠구구궁-
눈보라를 잡아먹는 거대한 진동이 모두의 귓가를 덮쳤다.
그들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산 정상.
그곳에서 거대한 해일이.
눈으로 만든 거대한 해일이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투둑.
어느새 다가와 케일의 앞에 내려선 로잘린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 그녀 어깨에 둘러 메여있던 천 주머니가 텅 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다 썼어요.”
로잘린은 에르하벤에게로 가 마법 폭탄을 있는 대로 다 빌려왔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마법 폭탄도 싹 다 긁어왔다.
“두 손이 가벼워 보이는군요.”
케일의 말에 로잘린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로잘린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았고, 가속 마법과 체온 유지 마법이 그를 감쌌다.
케일은 밀려오는 거대한 눈의 해일과 경악에 가득 찬 적들의 모습을 보며 등을 돌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발음과 함께 수백, 수천여 년간 산 정상 부근을 차지하고 있던 눈들이 산 아래로 빠르게 밀려 내려왔다.
“도망쳐!”
“후퇴해라!”
“…비행할 수 있는 자는 비행해!”
케일은 등 뒤로 적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가자.”
일행들이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언제 느렸냐는 듯, 적들이 한 걸음 내디딜 때 두세 걸음을 내디디며 나아갔다.
케일 역시도 마법의 도움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 그에게 로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에 용병왕에게 다녀왔어요. 다들 다리를 건넜고, 마법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텔레포트 준비 중이에요. 곧 모두 무사히 탈출할 거예요.”
-인간아! 왕세자랑 영상통신이 안 된다!
그리고 라온의 목소리도 머릿속을 채웠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로운 왕국으로 바로 갑니다.”
냉정한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옆에서 발을 맞추던 하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쿠구구구궁-
눈이 거대한 해일처럼 그들이 왔던 곳을 덮치고 있었다.
‘…숨 막혀.’
적을 덮치는 그 거대한 힘에 숨이 막혀오는 듯했다.
로잘린 곁의 마법사들도 수십 개의 마법 폭탄과 합동 마법으로 벌인 일을 실제 눈으로 보면서도 못 믿겠다는 듯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들 정신 차리도록.”
하나는 시선을 돌렸다.
평소라면 적들에게 한 방 먹였다고 좋아할 케일 헤니투스가 오늘은 그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직도 그는 다급했다.
“…시간이 없어.”
작게 중얼거리는 케일은 그 표정만큼 목소리에서도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
알베르는 성벽 너머, 지평선에서부터 밀려오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적들의 중심에서 멈춰선 채 그를 응시하는 자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저자가 하얀 별인가 보군.”
하얀 별과 알베르 크로스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장소는 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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