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21
520화.
하얀 와이번이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러자 그 등에 올라타 있던 하얀 별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유하게 하늘 위를 유영하는 와이번과 하얀 별은 알베르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군.’
전장이 처음이라 그런가, 알베르는 저를 내려다보는 적들의 눈빛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긴장감이 그 묘한 기분을 억눌러버렸다.
‘지켜본다.’
지금 알베르를 지켜보는 무수한 눈동자들이 있었다.
어릴 적 알베르는 이런 눈동자들을 마주하는 것이 무섭다 느꼈던 적도 많았다.
저를 시험하는, 감시하는 눈빛 같았으니까.
어쩌면 지금도 저를 바라보는, 적군이 아닌 아군의 눈동자에 그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내릴 준비를 하는 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알베르 크로스만.
크로스만이란 성을 받았을 때부터, 주어진 숙명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안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감시나 평가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살려주세요.’
‘부디 이 위기를 넘겨주십시오, 저하.’
성벽 안 왕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인질로 잡힌 왕국민들의 절절한 소망이.
신하들의 기대감이.
이제는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렇기에 알베르는 저를 내려다보는 하얀 별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내 목숨이 필요하지 않은가?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순간, 하얀 별의 입이 열렸다.
“난 대화를 하자고 했던 것 같다만.”
대화는 무슨.
알베르는 실소를 흘렸다.
“우리 아우님이 그러더군.”
투구를 쥐지 않은 오른손이 하얀 별을 가리켰다.
“넌 헛소리가 많다고.”
하얀 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렸고, 알베르는 여유로이 말을 이었다.
“대화가 하고 싶다면 내려와서 정중하게 대화를 청하도록. 그게 아니면 입을 닥치고.”
적에게 먼저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으면, 그에 맞는 기본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알베르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게 만드냐는 듯 하얀 별을 쳐다봤다.
“하하하- 이거 참.”
하얀 별은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곤 제 하얀 가면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래. 대화가 하고 싶다면 예를 차려라, 이 말이지?”
씨익.
코 위부터 눈과 이마를 가린 가면. 그 아래 드러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싫은데?”
역시 하얀 별은 대화를 할 생각이 아니었다.
함정이었다.
그 순간, 알베르는 깨달았다.
온다.
펄럭 펄럭.
하얀 와이번의 거대한 날개가 아래로 향했다.
그 주둥이도 땅을 가리켰다.
그 몸이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알베르 그를 향해 내리꽂힐 듯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알베르 주위를 감싸고 있던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 단장의 입이 열렸다.
“저하를 보호해라!”
동시에 하얀 별이 외쳤다.
“기사단을 죽여라!”
하늘에 떠오른 와이번 중 절반이 기사단을 향해 아귀를 벌리며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또한, 성벽을, 성안을 공격해!”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하얀 별의 명에 성벽 너머의 성안을 향해 방향을 틀어 날아갔다.
우우우웅-
와이번 등 위 흑마법사들의 손에 마법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단장!”
“네!”
테일러가 마법 병단장을 불렀고, 곧바로 단장은 마법진을 펼치다 말고 몇몇 마법 단원들에게 지시했다.
“3대대는 나와 함께 적들의 공격을 막는다! 나머지는 마법진을 준비해! 멈추지 마라! 각자의 몫을 해야 돼!”
명령을 내리는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테일러 주위에 있던 알베르의 수뇌부들이 각기 흩어지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궁사들은 당장 기사단과 저하에게로 접근하는 와이번들에게 활을 쏴라!”
“곰족이 넘어오지 못하게 성 밖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 돌덩이도 날려! 뭐든 날릴 수 있는 건 다 성벽 밖으로 던져!”
테일러는 제 수하에게 명했다.
“케이지에게 연락해. 그리고 서북부 영주들에게 모두 긴급 지원을 요청해! 서북부의 모든 병력을 이곳에 집중시켜! 외곽에서부터 적군을 옥죄어야 돼!”
“네. 영주님!”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 콰앙! 쾅, 콰앙!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흑마법사들이 마나구를 아래로 던지고 있었다. 그것을 아래에 있던 아군 마법사들이 맞서 마나구를 쏘아 올리며 파괴시켰다.
그 순간, 테일러는 아차 하는 마음에 시선을 돌렸다.
‘…저하!’
하얀 별의 와이번이 알베르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테일러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의 시선이 땅을 덮어버릴 듯, 알베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쉬이 덮어버릴 듯한 거대한 와이번의 날개로 향했다. 그 날개가 땅 가까이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알베르는 제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그리고 그 그림자를 만든 하얀 날개를 바라보았다.
아니, 날개 너머 저를 쳐다보는 하얀 별의 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하얀 별의 입이 열렸다.
“어리석긴.”
동시에 다른 와이번의 앞발이 알베르 곁으로 향했다.
쾅!
“크윽! 저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기사 단장이 그 앞발을 막아섰다.
그런 그를 비웃듯 하얀 별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함정인 줄 알았으면 나오지 말 것이지. 그렇게까지 왕세자로서의 체면과 명분이 중요했나? 네 목숨보다 더?”
하얀 별은 인질로 잡힌 왕국민 때문에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결국 그 체면을 위해 성 밖으로 나온 알베르를 비웃었다.
가만히 수도에서, 성안에서 숨어있었다면 이런 일도 겪지 않았을 터인데.
그 순간이었다.
“멍청하긴.”
하얀 별은 저를 보고 멍청하다 말하는 알베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알베르는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 하얀 별을 쳐다봤다.
“어째서 명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왕세자로서의 체면과 주위 눈치, 명분 때문에 함정임을 알면서도 성 밖으로 나왔다고?
알베르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살리려는 행동을 단순히 체면이나 눈치 때문이라고 본다니.”
그러나 그 목소리는 단호하고 날카롭게 하얀 별을 겨냥했다.
“너는 하수구나.”
순간 하얀 별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뭐?”
“하수라고. 하수. 네가 그랬다던데. 지배자? 왕이 되고 싶다?”
하얀 별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그러나 알베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왕? 네까짓 게? 그런 썩어빠진 정신 상태로?”
하얀 별은 얼굴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그의 손에 불의 검이 생겨났다.
기사 단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하-”
제발 더 이상 자극하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기사 단장은 그리 말하고 싶었다.
어느새 왕세자를 감싸던 기사들이 와이번들의 공격과 그 등에 올라탄 기사와 흑마법사들의 공격으로 왕세자 곁에서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와 몇몇만이 왕세자 근처에 머물 뿐이었다.
이 이상 적을 자극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기사가 말을 채 내뱉기도 전, 알베르가 먼저 말했다.
“네놈 참 우습구나.”
씨익.
그리곤 웃었다.
꽈악.
불의 검을 든 하얀 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로 죽고 싶은가 보군.”
그 말과 함께 하얀 별이 와이번의 등을 박차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안 돼! 저놈을 막아라!”
기사 단장이 저를 공격하던 와이번의 앞발을 쳐내고 왕세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주인이 떠난 와이번은 하얀 별의 뜻에 응하듯이 자유로워진 몸으로 기사 단장과 몇몇의 기사들에게로 거대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었다.
콰앙! 쾅!
하얀 와이번과 기사들이 부딪쳤다.
“저하!”
기사 단장은 속이 들끓는 목소리로 알베르를 불렀다.
그런 그에게로 저를 향해 쏟아지는 하얀 별을 응시하는 알베르가 보였다.
“난 신경 쓰지 말게.”
기사 단장에게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기사 단장은 알베르의 두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오른손이 목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알베르는 하얀 별을 응시했다.
“정보를 뱉을 테니, 살려달라고 비는 꼴이 되게 해주마!”
불의 검이 거대해지면서 그를 세로로 갈라버릴 듯 거칠게 다가오고 있었다.
촤륵.
갑옷 안.
알베르가 늘 옷 안에 숨겨두었던 목걸이가 오른손에 걸렸다.
타샤 이모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네 엄마의 자질을 이어받았구나. 네 엄마가 왕궁 생활을 할 수 있게 했던 물건이지. 이것이라면 너를 숨길 거야.’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생명체에게도 네 힘을 들키지 않을 거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알베르는 언젠가 검은 아기 용 라온이 다가와 물었던 말을 떠올렸다.
‘쿠키 주는 착한 왕세자야! 그런데 넌 강한데, 무엇으로 강하나? 잘 안 느껴진다!’
용도 몰랐다.
‘염색 마법은 이제 알겠는데, 음! 모르겠다! 가르쳐 주면 안 되나?’
물론 미안하다고 말하며 가르쳐주지 않았다.
‘평생 이 힘을 쓸 날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알베르는 오른손을 움직였다.
달칵.
목걸이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는 문득 처음 케일에게 정체를 들켰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족도 아닐 테고, 흑마법도 아닐 테고. 네크로맨서도 아니고.’
‘그렇다면 다크엘프 혼혈의 자식이라면?’
그러면서 그에게 선물이라고 죽은 마나 액체가 담긴 병을 선물했다.
‘아주 귀한 물건입니다. 죽은 드래곤의 마나니까요.’
맞다.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알베르의 힘을 몇 단계나 상승시킬 만한 물건이었다.
그 덕에 많이 강해졌다.
게다가, 그 후에도 케일이 죽은 마나를 자꾸 어디선가 주워 오는 덕분에 계속해서 강해질 기회가 있었다.
우우우웅-
목걸이는 알베르의 오른손에서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음?”
그 광경을 보던 하얀 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목걸이가 한순간에 현실에서 사라졌으니까.
우우우웅-
그 순간, 알베르는 제 몸을 제약하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며 몸 안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곧 풀린다.
염색 마법이 풀린다.
어쩔 수 없었다.
죽은 마나를 사용해야 하니까.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의 왼손이 움직였다.
투구가 그의 얼굴을 가렸다.
눈가도 얇은 철사로 가려진 투구였다.
‘…아직, 모두 밝힐 수는 없는 법.’
알베르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그의 눈동자는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피부도 갈색보다 짙은 색으로 변했다.
머리칼도.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투구 속 알베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사들도 와이번과 치열하게 싸우느라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네놈 뭘 숨기는 것이냐!”
하얀 별의 외침과 함께 그가 만든 불의 검이 그를 덮쳐왔다.
알베르는 손을 뻗었다.
“…네놈?!”
하얀 별의 눈동자가 커졌다.
알베르의 두 손에 검은 기운이 서렸다.
그 찰나를 하얀 별은 놓치지 않았다.
죽은 마나다.
로운의 왕이란 놈이 죽은 마나를 사용한다.
하얀 별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알베르란 존재에 대한 놀람이 서린 순간이었다.
그러나 하얀 별은 검을 멈출 수 없었고, 그가 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알베르의 목소리가 하얀 별에게 닿았다.
“나는 상급 익스퍼트라고 알려졌지. 그런데 말이야. 그걸 아나?”
알베르는 케일에게 정체를 들키고서 섭취했던 죽은 용의 마나를 떠올렸다.
“마나로 물도 바람도 불도, 빛도 만들 수 있지.”
그래서 마법은 신기한 존재였다.
우우우웅-
알베르의 몸 안 마나가 요동쳤다.
일반 마나가 아닌, 죽은 마나였지만. 사슬이 풀린 힘은 자유를 만끽하듯 날뛰었다.
알베르는 그 힘을 제 손아귀로 모았다.
아주 짧은 찰나.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알베르의 손아귀에 서린 검은 기운이 사라졌다.
그러나 하얀 별은 알베르의 정체를 알아챘다.
‘…마법!’
저놈은 마법을 쓴다!
그 순간, 하얀 별은 알베르가 로운에서 첫 번째로 키운 병력이 마법 병단임을 떠올렸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흑마법과는 달랐다.
순리를 거스르는 흑마법과 달리, 순리에 따르는 자연이 저절로 힘을 내어주며 함께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죽은 마나인데 순리인 존재.
문득 하얀 별은 죽은 마나를 이용하면서도 흑마법을 쓰지 않는 존재를 떠올렸다.
다만 인간이 아니었다.
‘다크 엘프!’
자연의 순리인 다크 엘프들은 죽은 마나를 사용해 마법을 부리는 이들이 몇 있었다.
그러나 그 사용법은 흑마법과 달랐다.
알베르는 투구 속에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미소를 지었다.
왜 그가 마법 병단을 키웠겠는가.
왜 그쪽을 선택했겠는가.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힘을 강성하게 만들면 위험 부담이 컸다.
그러나 자신이 잘 아는 분야라면?
컨트롤이 가능한 법.
“죽은 마나도 마나와 같지. 마찬가지야.”
죽은 마나로도 일반 마나처럼.
불, 물, 바람.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혼란스러운 전장.
코앞에 있던 하얀 별을 제외하고 누구도 보지 못한 검은 기운이 사라진 알베르의 텅 빈 두 손안.
“나도 빛을 만들 수 있어.”
그곳에서 빛이 솟구쳐 올랐다.
검은 마나가 순식간에 화려한 빛의 검으로 변해 알베르의 손에 쥐어졌다.
그 빛은 마치 태양을 닮은 화려한 금빛이었다.
알베르가 입은 갑옷에 새겨진, 절벽 사이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 로운의 상징과 같은 검이었다.
인간 알베르로서 갈고닦은 검술.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어받은, 다크엘프의 피를 가졌기에 가능했고 갈고닦을 수 있었던 마법.
마검사.
알베르가 가진 또 하나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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