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29
528화.
침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왕세자 알베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무얼 들은 거지?’
그는 조금 전 케이지가 한 말을 떠올렸다.
‘어떻습니까? 하얀 별이 말한 것을 진짜로 만드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하얀 별이 말한 것을 진짜로 만들자고?
죽음의 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알베르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랐다.
‘예상 밖인데?’
알베르는 현 상황에 대해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하얀 별이 한 말이 진짜가 될 수도 있단 소리 아닌가?
죽음의 신.
알베르는 그 신에 대해 떠올렸다.
‘…신도가 그렇게 많은 교단은 아니지.’
죽음의 신을 모시는 교단은 로운 왕국 전역에 고루 퍼져 있었다. 이는 로운 왕국에 자리한 대부분의 교단과 비슷했다.
‘로운 왕국은 따로 국교로 정한 종교가 없으니까.’
물론 몇몇 사람들은 크로스만 왕가가 태양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알려졌음에도 태양신 교단을 국교로 택하지 않은 로운 왕국을 희한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미쳤다고 태양신 교단을 국교로 하겠어?’
하지만 알베르도 그렇고 크로스만 가문 입장에서 태양신은 그들을 감시하는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죽음의 신 교단은 죽음의 맹세 빼고는 그다지 특별하게 알려진 것이 없지.’
그런데 하얀 별 문제에 죽음의 신이 이리도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알베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알아봐야겠어.’
죽음의 신에 대해, 그 교단에 대해 자료를 모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는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힐끗 케일을 쳐다봤다.
‘…이놈이 진짜 신의 뜻을 이어받을까?’
궁금했다.
그 순간이었다.
“이, 이-”
케일의 입이 열렸다.
정말 놀란 듯 굳어있던 몸과 얼굴에 서서히 감정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 빌어처먹을 죽음의 신 같으니라고!”
오.
알베르는 감탄했다.
신마저 서슴없이 모독하는 저 자세라니!
분명 케이지를 통해 저 말이 전해질 것인데!
알베르는 오랜만에 아우에게 감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신 나간 짓거리만 해대고 있네.”
죽음의 신, 이거 미친놈 아냐?
케일은 성질이 났다.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가슴께를 두드렸다.
아니, 애먼 최씨 가문 두 사람을 여기다 데려오고, 한 명은 데려오려고 거래까지 해대고. 또 멀쩡히 소설 보면서 휴가를 보내려던 자신도 이곳으로 이동시키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보내준다느니, 선택을 하라느니 하면서 케일 본인은 원하지도 않는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한 존재였다.
“…이제는 내 꿈까지 방해해?”
신의 뜻을 이어받은 자라니, 백수는커녕 평생 사방에서 시달리는 것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할 것이다.
조용히 읊조리는 케일의 눈빛에 진심으로 살벌하고 흉흉한 빛이 감돌았다.
그때, 어울리지 않은 소리가 침실 안에 감돌았다.
짝-짝짝, 짝-
박수 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한 여인에게로 향했다.
케이지가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케일을 향해 찬사를 서슴없이 내뱉었다.
“공자님! 방금 죽음의 신을 욕하는 그 말투가 아주 좋았습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대는 그녀는 주춤주춤 품이 넓은 소매에서 술잔을 꺼내기 시작했다.
“공자님은 거절하시는 거지요? 역시 현명하십니다! 신의 뜻은 얼어 죽을. 내 마음대로 살면 될 것을. 내 인생인데 남의 뜻대로 살 순 없지요.”
소매에서 술병도 나왔다.
순간 알베르가 탄성을 흘렸다.
술병과 술잔을 소매 안에 어떻게 숨겨 다니는 거지?
놀라웠다.
“우린 같은 뜻을 나눈 동지이니, 한잔하죠! 으하하하!”
케이지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한 방 먹였네요! 하하하하!”
누구에게 한 방 먹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케일은 죽음의 신에게 한 방 먹였다고 좋아하는 케이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리 반응할 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케일의 물음에 그녀는 근처 테이블에 술상을 세팅하며 답했다.
“공자님이시라면 그러지 않았을까요? 내가 틀렸습니까?”
“아뇨. 사람 한번 잘 봤습니다.”
케일은 조금의 틈도 없이 답하고는 테이블 근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다 그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케일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음?’
그 모습에 케일을 따라 시선을 옮겼던 알베르와 케이지도 흠칫 놀라고야 말았다.
알베르의 눈동자에 최한이 담겼다.
‘…저놈은 왜 저래?’
알베르는 간혹 최한의 날카로운 면모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살벌하게 구는 것을 처음 보았다.
최한이 웃지 않은 채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하며 눈빛을 번뜩이는 모습은 조금 전 케일이 화가 나 인상을 구기는 것에 비해 몇 배는 더 살벌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이 더 무섭군.’
알베르가 그리 생각하며 최한을 유심히 바라볼 때, 최한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세계수를 만나러 갔던 때가 떠올랐다.
라온과 케일은 이전에 세계수를 만났다고 했지만, 최한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케일은 세계수 기둥에 손을 댄 채 세계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한은 케일이 세계수를 향해 하는 말을 들었다.
‘죽음의 신이 나를 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죽음의 신이 케일을 노린다는 세계수의 말.
최한은 나중에 그에 대해 케일에게 물었다.
‘죽음의 신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어… 그게 말이지.’
최한은 케일이 낭패라는 듯 제대로 답을 못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케일 님.’
‘…으음. 나한테서 뭘 가져가려고 하는 것 같아.’
최한이 한 번 더 재촉하자, 그때서야 케일이 꺼낸 대답.
그 대답을 한 순간, 세계수를 모시는 엘프 사제 아디테가 말했다.
‘죽음인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최한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신이 인간에게서 원할 만한 것은 죽음 혹은 그와 견줄 만한 것밖에 없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냐. 그런 거.’
그러나 케일은 아디테의 물음에 단호히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최한은 보았다.
케일이 고민이 있을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을.
죽음의 신이 원하는 것은 케일이 동료들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할 만큼의 중요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최한은 바로 깨달았다.
최한은 감았던 눈을 떴다.
‘…죽음의 신이 케일 님께 자신의 뜻을 이어받으라고 한다고?’
무엇을 가져가려고?
“어림도 없는 소릴.”
고저 없는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런 최한의 곁에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위대한 나는 신도 가만 안 둔다.”
투명화하고 있던 라온이었다.
라온의 몸이 안 보일 정도로 감싼 검은 기운 사이로 흉흉하게 빛나는 검푸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으음.’
케일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쫄았다.
시꺼먼 것들 둘이서 쌍으로 저렇게 해대니 조금 무서웠다.
케일은 살짝 쫄았지만, 이내 모른 척하고는 케이지에게 물었다.
“죽음의 신이 저한테 왜 그러는 겁니까?”
아.
케이지와 알베르는 그제야 라온과 최한에게서 시선을 떼며 정신을 차렸다.
“흐음.”
케이지는 케일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술병 뚜껑을 따내고선 잔을 채웠다.
쪼르르르-
술잔이 가득 차자 케이지는 이를 바로 들이마셨다.
“크으-”
그제야 그녀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서렸다.
하지만 그 눈빛은 진지했다.
그녀는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왜 죽음의 신이 공자님께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말이 없거든요.”
톡톡.
그녀는 빈 잔을 테이블에 살짝 두드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음. 하지만.”
케일은 그녀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케이지는 성격대로 막힘없이 말했다.
“아까 전에 제가 인질로 잡히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죠.”
“혹시 그 회색빛 옷의 사람들 정체는 아십니까?”
“마족을 섬기는 자들 아닙니까?”
케일의 말에 케이지는 힐끗 알베르를 쳐다봤다. 알베르도 모두 알고 있는 듯한 기색에 케이지는 편하게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그들은 마족을 섬기는 자들이죠. 힘을 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케이지에게는 본능적인 깨달음이었다.
꽈악.
그녀는 술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아니라고?”
저도 모르게 알베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족을 섬기는 자들이 나타났는데 그게 왜 큰 문제가 아닌 것일까?
“저하.”
케이지가 알베르를 바라봤다.
”이 세상의 신은 모두 착하고 옳습니까?”
“…뭐?”
“신을 모시면 다 착하고 옳습니까?”
알베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아무 말이 없는 알베르를 바라보다 다시 술잔을 채웠다.
“신들을 모시는 자들이 있다면 그 반대쪽 진영인 마족들을 섬기는 자들도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케이지는 자신의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보며 그녀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은 양면이 존재하는 법이니, 백이 있다면 흑이 있는 것. 그것은 당연한 순리입니다.”
케일은 묘한 기분으로 케이지를 바라봤다.
확실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케이지에게는 그녀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존재했다.
그러니 거침없이 선택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이리라.
물론 케일은 그녀의 가치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무엇도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간섭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그들의 존재는 문제가 아닙니다.”
탁. 술병이 탁자 위에 놓였다.
“문제는.”
케이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마계의 물건이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것.”
케일은 전장에 울려 퍼지던 북소리와 하얀 별의 흰 가면을 떠올렸다.
북과 가면.
마계의 물건이리라.
케이지는 또다시 술을 들이켰다.
타악!
술잔이 세게 탁자 위에 내려진 순간, 그녀는 읊조렸다.
“그리고 그 물건이 나쁜 쪽으로 쓰인다는 것. 사람들을 해하는 데 쓰인다는 것.”
그것이 케이지에게는 문제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교단에서 파문되었으나 아직 그녀는 이쪽 힘을 쓰고 있었으니까.
힘이 주어지는 만큼 책임을 진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그 물건들을 파괴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더 해하기 전에.”
케이지는 케일을 보며 말했다.
“죽음의 신 말은 따를 필요 없습니다. 나도 안 따르니까요. 다만 이 물건들은 파괴하고 싶습니다.”
케이지는 인질로 잡혀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보았다.
“공자님. 하얀 별과 싸울 거지요?”
쪼르르르-
케이지는 케일 앞에 새 술잔을 하나 놓으며 그 안에 술을 채워 넣었다.
“나도 데려가세요. 쓸 만할 겁니다.”
그녀는 케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크으. 이 술은 좀 쓰군요.”
케일이 잔을 들어 술을 한 번에 들이켰으니까.
텅 빈 술잔에서 케일의 허락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지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케일은 이를 별말 없이 바라봤다.
‘…성자 잭도, 케이지도 다 필요하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마족과 관련된 것이 등장할 확률이 높았고, 그럴수록 잭과 케이지가 필요했다.
특히 죽음의 신과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케이지가 곁에 있으면 여러모로 득이 많을 것이다.
케일은 그녀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어유, 꽉꽉 채워주시네요.”
케이지가 웃으며 그 술잔을 들었다.
그때였다.
달캉. 달캉.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침실 안 모든 존재들의 시선이 창으로 향했다.
“…새?”
아름다운 검은 새가 부리로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새로,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기이한 존재였다.
적일까?
모두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들었다.
침실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를 알아챈 듯 새는 날개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행동하였다.
“열까요?”
케일이 조심스럽게 알베르를 보고 물었고, 알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찾아온 것 같으니, 일단 들어서면 바로 포위하도록 하지.”
“제가 열겠습니다.”
최한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채 창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달칵. 끼이익-!
창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푸드득-
새는 우아하게 창문 안으로 들어섰다. 최한은 검을 뽑아듦과 동시에 창문을 닫았다. 라온도 슬금슬금 마나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상황이 조금 바뀌어서 말이야. 내가 직접 왔네.”
응?
케일이 아는 목소리였다. 그의 기록 속에 있는 목소리다.
“…프레도 공작?”
케일은 저를 향해 날아드는 아름다운 검은 새를 볼 수 있었다.
새는 테이블에 우아하게 내려서더니 다시 부리를 열었다.
“그래. 날세.”
새가 우아하게 날개를 한 번 펼쳤다 접으며 케일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케일이 예상 밖 존재의 등장에 잠시 놀랐을 때, 검은 새는 우아하게 물었다.
“케일 헤니투스. 어떤가? 그동안 생각은 조금 했는가? 어서 자네 피를 마시고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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