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
52화.
“밤에 보니까 더 끔찍한데.”
케일은 발아래 휘몰아치는 가장 큰 소용돌이를 보며 감상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확실히 툰카 그 자식은 미친놈이야.’
툰카가 어떻게 바람의 소리를 얻게 되나? 그는 표류되어 섬에 닿은 후, 몸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을 때, 이 소용돌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화산 지대, 얼음 지대, 사막. 그 모든 것들을 맨몸으로 부딪치길 좋아하는 녀석이 바다의 소용돌이를 그냥 보고 넘어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툰카는 위험한 일을 즐겼다. 아니, 광적으로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미친놈이라는 것이다.
그 말 한마디 내뱉고 저 바닷속 소용돌이에 맨몸으로 뛰어든 놈이다. 물론 케일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케일은 잠수복 주머니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온 상태였다.
“여기야?”
검은 용의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시골 바닷가라서 그런지, 밤이 되자 마을은 어두컴컴했다.
바닷속은 더 어두웠다. 그럼에도 시끄러웠다. 소용돌이가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여기서 더 시끄러워진다고 바로 사람들이 시선을 두지는 않을 것이다. 서서히 이상함을 느끼고 관심을 두리라.
케일은 바다에서 시선을 돌려 바람의 절벽을 바라봤다.
케일은 책 내용을 머릿속에 밀어두고 검은 용에게 말했다.
“시작하자.”
“알았다, 인간.”
검은 용의 짜리몽땅한 앞발에서 검은 마나가 흘러나왔다.
우웅.
마법 폭탄이 그 마나에 반응해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케일의 품에 안긴 마법 폭탄은 책 1, 2권에 언급되는 비밀 단체의 폭탄이 아니었다.
‘한 단계 더 뛰어난 마법 폭탄이지.’
‘영웅의 탄생’ 3권 후반부. 벼랑 끝에 내몰린 위퍼 왕국 마법사 연맹은 비마법사 연맹을 죽이기 위한 도구들을 하나둘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지금 케일의 손에 들린 마법 폭탄과 유사했다.
마나 응집. 마법 폭탄의 주재료인 그것이 제작자의 마나에 반응해 분할되어 여러 개로 나뉘어 터지는 폭탄.
위력은 떨어지지만, 수차례 터지는 폭탄은 살상용으로 제격이었다.
케일은 검은 용을 칭찬했다.
“이걸 만든 넌 대단한 것 같아.”
“맞다. 나는 위대하고 오만한 용이다.”
짜리몽땅한 앞발에서 검은 마나가 더 많이 흘러나왔고 그것은 폭탄 안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우우우웅. 케일은 제 품 안에서 진동하는 마법 폭탄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달 하나 없는 그믐. 이때를 케일은 노렸다.
“조심해라, 다치지도 말아라.”
검은 용은 더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가며 케일에게 실드를 둘러주고 인사했다.
달칵.
마법 폭탄 안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케일은 손에 들린 폭탄을 놓았다. 동시에 잠수복에 달린 호흡기를 찼다. 5분 동안 숨을 쉴 수 있는 마법 장치였다.
그리고 잠시 뒤.
쾅! 쾅! 콰앙!
폭탄이 터졌고. 케일은 은빛 방패를 두른 채 수직 하강했다. 밤바람이 그의 얼굴을 세차게 스쳐 지나갔다.
수십 개의 작은 폭탄이 터지자 소용돌이는 그 힘을 잃고 제대로 돌지 못하고 있었다. 케일은 방패의 날개를 펼쳤다.
촤아아악!
방패가 바다와 부딪치며 케일은 바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바로 수경을 끼며 바다 아래로 향했다. 마치 화살처럼 케일의 몸은 아래로 빠르게 떨어져 갔다.
콰앙, 쾅! 여전히 폭탄이 터지며 소용돌이는 그 힘을 잃어갔다. 폭탄의 여파로 밀려난 물길이 케일의 방패와 은빛 날개를 건드렸다. 하지만 케일은 안전하게 해저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쾅. 케일은 방패를 휘둘러 마지막 폭발을 가벼이 물리치고 해저를 걸었다. 중앙 섬. 그 작은 섬의 앞을 차지한 거대한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는 거대한 바위 밑에 깔린 작은 팽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수백 년째 끊임없이 돌고 도는 팽이.
케일의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보였다. 사람 하나 깔리면 그냥 죽을 것 같은 바위.
케일은 바위를 보며 생각했다.
‘툰카, 이 미친놈. 이걸 부쉈다고?’
케일은 바닷속에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치 손오공처럼 바위 아래에 그 모습을 조금 드러낸 채 돌고 있는 팽이에게로 다가갔다.
그 순간, 그가 고대의 힘을 얻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힘 주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개 같은 새끼들!
오. 이번 주인은 꽤 말이 험했다.
-지들이 사람들 희생시켜서 만든 물건을 훔친 게 뭐가 죄라는 거지?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는데? 쓰레기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왜 힘을 가지냐고!
바람의 소리의 주인이자, 이 마을에 신의 물건을 훔쳤다는 전설을 남기게 된 주인공 도둑. 그녀는 신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다만 신전의 물건을 훔쳤을 뿐.
그녀는 이 거대한 바위에 두 발을 묶인 채 바다에 잠겨 익사했다. 소리 없이 가장 빠른 발을 가진 도둑은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을 다루는 초능력. 마나와는 달랐다. 그녀는 그녀 자체가 바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죽고 난 뒤에도 팽이가 되어 바람을 토해내었다.
-이런 물 따위! 내 친구의 빛이라면 태워 버릴 거라고!
바위 밑에 깔린 팽이를 꺼내기 위해 챙겨온 물건을 꺼내던 케일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빛이라고? 설마?’
-번개가 왜 무서운 줄 알아? 한 방이 있어서야, 한 방!
케일은 마지막으로 얻을 힘인 ‘파괴의 불’을 떠올렸다. 그것은 불덩이를 지나야 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지고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케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부서지지 않은 방패, 나무. 심장의 활력, 바람. 바람의 소리, 물. 파괴의 불, 불.
굉장히 찝찝해져 왔다. 케일은 이 팽이를 가져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띠- 띠, 띠-
잠수복에 달린 알람이 그에게 이제 3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케일은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얼른 꺼내자고.’
호미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와 함께 팽이를 가둔 바다 지표면, 해저를 케일은 호미로 파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날카로움이 강화된 호미는 손쉽게 지표면을 파냈다.
‘툰카처럼 무식하게 바위를 부술 필요가 뭐가 있어?’
바닥을 파면 되지. 케일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는 몇 번의 호미질 끝에 팽이의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있었다. 케일은 팽이를 향해 손을 뻗었고 마침내 손에 쥐었다.
사아아악. 돌고 있는 팽이를 쥐고 케일은 바위에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쿠우웅. 팽이로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던 바위가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내가 훔친 게 죄라면, 그것들은 왜 인간들에게 거짓말을 해놓고 죄가 없다고 하지? 세상은 썩었어. 가진 것들이 다 헤쳐 먹는 썩은 세상이라고.
원래 세상은 썩었지.
케일은 도둑의 말을 깔끔히 무시하며 손에 들린 팽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람의 소리 주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해방. 그것은 파괴였다.
콰직. 팽이가 케일의 발에서 산산조각 나 부서졌다.
끼이이이이-
초음파와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바다 안에 울려 퍼졌다. 팽이가 부서졌다. 그 안에서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 바람이 케일을 감쌌다.
-너는 재생하는 자구나. 나처럼 잡히지 마라. 알겠냐?
재생하는 자? 심장의 활력을 말하는 건가?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순간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자유로워져라.
파아아앗.
동시에 하얀 바람이 케일의 몸을 감쌌다. 그 바람은 케일을 머리에서부터 한차례 훑었다. 이러다가 발에서 멈추리라.
‘음?’
하지만 바람이 심장 근처에서 맴돌았다. 쿠웅. 쿵, 쿵. 케일은 갑자기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크윽.’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파왔다. 케일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 위를 두드렸다. 호흡기에서 살짝 벌린 입으로 공기 방울이 흘러나왔다.
‘뭐야, 이게?’
크윽, 케일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참으며 몸을 웅크러뜨렸다.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바람이 한 번 더 빛을 발하더니 순식간에 그의 두 발로 내려와 그림을 그렸다. 잠수복과 잠수용 신발 사이로 살짝 드러난 발목에 소용돌이 그림이 보였다.
그것 역시 은빛이었다.
케일은 그제야 심장이 안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설마, 심장의 활력이 바람의 소리도 강화시킨 건가?’
그는 의문이 들었지만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띠, 띠- 알람이 다시 한번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케일은 바람의 소리를 사용하였다. 그의 두 발에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케일은 살짝 발을 굴렀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케일의 몸이 바닷속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케일은 중앙 섬 앞의 소용돌이는 사라졌지만 나머지 잔존하는 소용돌이들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다른 소용돌이들도 일주일 안으로 없어지겠네.’
하지만 케일은 저 소용돌이들을 일 년은 유지시킬 작정이었다. 소용돌이들은 바람의 소리, 자신의 주인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의 목적지는 바람의 절벽이었다.
케일은 순식간에 눈앞에 조금씩 보이는 돌벽을 보며 더 가까워지기 전에 발로 바다 지표면을 찼다. 그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쏴아아아- 바닷바람이 다시 해수면 위로 떠오른 케일을 반겼다. 그는 잠수복의 모자를 벗어 던졌다.
띠이- 알람이 5분의 끝을 알렸다. 케일은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나둘. 꽤 많은 불이 켜지고 있었다.
“얼른 가야겠는데.”
한스에게 죽을 일 아니면 깨우러 오지 말라고 해두었기에 쉬이 그가 깨우러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빨리 돌아가는 것이 나았다.
케일은 바람의 절벽 쪽으로 헤엄치며 다가갔다. 절벽 밑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래서 바람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이들은 그 시체가 갈기갈기 찢겨져 엉망이라 들었다.
케일은 그중 사자의 머리를 닮은 바위로 다가갔다. 가장 커다란 그 바위 뒤를 본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작은 동굴이 하나 보였다.
‘찾았다.’
툰카는 바람의 소리를 얻고 난 후, 이곳에서 기연을 하나 만난다. 그에게는 그다지 필요치 않은 기연이었지만, 케일에게는 요긴하게 쓰일 ‘재료’였다.
이 재료와 후에 라크가 구해올 재료가 만나면 정글의 여왕은 케일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여왕은 정글을 살려야 할 테니까.’
케일은 헤엄을 치며 바위들 사이를 조심히 지나쳐 동굴로 다가갔다. 안 그래도 그믐이라 동굴 입구는 어두웠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동굴 입구에 당도하자마자 물에서 빠져나와 동굴 입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동굴 밖 하늘을 바라봤다.
‘올 때가 됐는데.’
그의 생각을 알아챈 듯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약한 인간, 안 다쳤군.
검은 용이 머릿속으로 말할 때는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케일은 뒷골이 서늘해져 왔다. 그는 천천히 동굴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처에 모르는 누군가가 있을 때., 검은 용은 케일의 머릿속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 동굴 안에 생명체가 있다. 지금은 다 죽어가는 상태지만. 다행히 네가 무서워하는 시체는 아니다.
지이이익. 지이이익. 무언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동굴 안쪽에서 들려왔다. 케일은 고민했다.
‘그냥 도로 물에 빠질까?’
아니면 용보고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할까?
지이익. 지이이익. 지익. 하지만 그 질질 끌려오는 소리는 급박해졌고, 케일의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동굴 안쪽의 생명체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케일은 한 발을 도로 물에 담갔다.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아. 케일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말하는 이에게서 짠 내가 났다. 바다의 냄새.
설마.
“저는 사,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엉망으로 할퀴어진 다리를 질질 끌며 인간의 외양을 한 존재가 케일에게 다가왔다.
할퀴어진 자리에는 초록색의 질척한 액체가 붙어서 피를 계속 토해내게 만들었다. 저건 인어의 공격이었다.
“제, 제발-”
고래다.
케일에게 긴 머리칼을 풀어 헤친 채 지금 피 묻은 손으로 기어오는 저 아름다운 인간은 고래다.
-약한 인간, 감기 걸렸나? 얼굴이 하얗다.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에게는 닿지 않았다. 케일은 과거 보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실제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다친, 다 죽어가는 고래족 인간 한 명이 케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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