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1
530화.
케일은 검지를 들어 저를 가리켰다.
“나랑.”
그다음은 검은 새에게로 향했다.
“네놈이랑 벗?”
검은 새의 눈꼬리가 휘었다.
사아아-
케일은 방안을 채우는 검은 기운을 보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파지직!
순간 검은 새는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그리고 그 검은 잔재가 사라진 자리.
투툭.
소년 모습의 프레도 공작이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그러곤 케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벗이지. 아니지, 형제라고 해도 좋겠군.”
씨익.
소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린아이의 미소라기엔, 스며든 잔인함이 보였다.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그래. 형제가 더 적절한 표현 같군. 피를 나눌 사이니 형제가 좋지 않나?”
이런 미친놈!
성큼. 케일이 프레도 공작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채앵!
“음!”
동시에 케일은 당황해서 한 발짝 도로 물러났다.
그의 눈동자가 번뜩이는 은빛 물체에게로 향했다.
주륵.
빨간 피가 살갗에 닿은 검을 타고 흘러내렸다.
케일이 본 은빛은 서늘한 검날이었다.
그는 프레도 공작의 목에 닿은 검을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 검의 주인을 바라봤다.
‘…살벌하다!’
최한이 어떠한 표정도 없는 무심한 얼굴로 프레도 공작의 목에 검을 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시덥잖은 소리는 그만 하면 좋겠어.”
그리 말하는 최한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심지어 말투도 순해!’
케일이 보기엔 여전히 순한 최한이었지만, 분명 화가 상당히 났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좋은데?’
그는 자신이 아닌 짜증 나는 놈한테 날을 드리우는 최한을 보자, 마음이 든든해져 왔다.
역시 클로페도 그렇고 정신이 조금 나간 놈들을 최한이 참 잘 다룬다고 생각하는 케일이었다.
“맞다! 뱀파이어야! 우리 인간 피 맛없다! 먹지 마라!”
그때, 라온까지 프레도 공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나름대로 매섭게 프레도 공작을 노려봤다.
케일은 흐뭇한 미소를 그리며 이 검은 녀석들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훌륭한 판단이다, 케일. 넌 지금 상태에서 고대의 힘을 한 번 더 쓴다면 기절을 오랫동안 할 것이다. 그러니 하루 이틀 정도 쉬기 전까지는 이렇게 강한 놈들 옆에 빌붙어라.
짱돌이 흐뭇하다는 듯 케일을 칭찬했다.
-케일, 훌륭한 얍삽함이다.
케일은 짱돌의 말은 무시하며 최한 옆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프레도 공작을 향해 말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그전에 이 검부터 치우면 좋겠다만.”
프레도의 말에 케일은 최한을 쳐다봤고, 그제야 최한은 검을 내리고선 케일의 옆에 섰다.
프레도 공작도 걸어와 케일의 맞은편 의자에 자리했다.
“참, 피가 아까운 줄 모르는 이들이군.”
스윽.
그는 제 목덜미를 매만졌다.
얕은 상처라 벌써 피는 멈춰있었다.
‘…확실히 대단해.’
프레도는 순간 자신조차도 놓치고 만 최한의 발검 속도를 머릿속에 기억해두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화를 청한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현재 나는 엔더블 왕국 수도, 내가 기거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저택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칩거 중이다.”
케일도 대충 들어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그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에 침묵했고, 프레도는 말을 이어나갔다.
“북부 설산에 있던 귀족과 엔더블 왕국인들을 속이기 위한 방편이었지.”
프레도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북부 설산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공작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설산 진입 전에 케일과 한 번 싸웠단 식으로 위장했다.
“위장은 우리의 특기다.”
뱀파이어는 다크엘프보다 더 잘 숨어 살아야만 하는 종족이었다.
일정 기간에 한 번씩 생명체의 ‘피’를 섭취해야만 하는 특성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위장이 발달한 종족이었다.
때문에 프레도는 어렵지 않게 자신이 위중한 것처럼 꾸밀 수가 있었다.
“물론 단순히 귀족들 이목만을 속이기 위해선 아냐. 하얀 별의 의심도 피하기 위해서였지. 그 녀석은 생각보다 나를 많이 믿고 있거든.”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별은 저놈이 충성스럽다고 생각하지?’
그때였다.
“하아.”
프레도 공작의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케일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의식 불명인 척하다가 하얀 별에게 충성스러운 귀족의 역할을 이어나가려고 계획했었지.”
“…하얀 별은 충성스러운 너를 보러 엔더블 왕국으로 바삐 돌아간 것 같다만?”
그런데 네가 여기 이렇게 팔자 좋게 있어도 되나?
케일은 이를 물었고 프레도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래. 나를 보러 갔겠지. 하지만 바로 하얀 별은 나를 보지 못할 거다. 지금 우리 가문 뱀파이어 치료사들이 나를 집중 치료하는 중이라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거든.”
“하지만 치료를 며칠 내내 할 것도 아니고, 얼른 돌아가서 하얀 별에게 네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나?”
며칠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치료 중이라고 한다면, 하얀 별은 프레도 공작이 정말로 위중한지 의심할 것이다.
충성스러운 부하가 아픈 저를 위해 방문한 주군의 발걸음을 계속 거절할 리는 없으니까.
“맞네. 금방 돌아가 봐야 하지. 그런데 내가 하얀 별의 미친 짓을 알게 되었어.”
뭐?
미친 짓?
문득 케일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하던 프레도 공작을 떠올렸다.
“…상황이 달라졌단 소리지.”
그리고 그 말이 한 번 더 프레도 공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케일은 심각해진 프레도 공작의 낯빛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상황이길래 이러지?”
프레도 공작의 보랏빛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마족이 어떤 수작을 꾸미고 있단 건 알고 있겠지?”
“그래. 알고 있어.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지만.”
케일은 프레도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렇다면 말이 쉽겠군.”
톡.
프레도 공작은 정갈하게 다려진 흰 셔츠의 소매 단추를 하나 풀며 입을 열었다.
“마계에서는 이 자연계를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고 싶어 해.”
투둑.
소매 단추 두 개가 다 풀렸다.
“나아가 마족들이 이 땅을 마음껏 누비기를 원하고.”
프레도는 빤히 케일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던 케일은 입을 열었다.
“진짜 마계의 문을 열 생각인가?”
마족이 자연계로 넘어오려면 마계의 문을 열어야 했다.
‘하얀 별은 진짜 마계의 문을 이 땅에 열 생각인 건가?’
그와 마족 사이의 계약이 그것인가?
케일의 머릿속이 팽팽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뚝 끊겼다.
“아니.”
프레도가 단호하게 그 질문을 부정했다.
“‘지금’은 마계의 문을 열 생각이 없어. 후에, 언젠가는 진짜 마계의 문을 열 수도 있지만. 그것부터 할 생각은 없어.”
“…그러면 ‘지금’은 무얼 한다는 것이지?”
“케일 헤니투스.”
프레도는 그를 불렀지만 시선이 그 옆으로 향했다.
라온과 프레도의 눈이 마주쳤다.
“마계의 문이 이 땅에 열리는 순간, 바로 신계에서 알아차려 드래곤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 부분은 케일도 드래곤 로드 쉐리트에게서 들어 알고 있는 바였다.
“그 때문에 마계에서는 함부로 이 땅에 오지 못했어. 왜냐? 마족과 천족이 싸우기 시작하면 둘 다 큰 피해를 입어야 하거든. 마족들은 단지 이 땅이 탐나는 것뿐, 천족과 생사를 걸고 싸우고픈 마음은 없으니.”
모순이다.
싸우고 싶지 않다면서, 지금 마계에서는 하얀 별과 계약을 하여 이 땅에 어떤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케일은 프레도가 내뱉는 말에 표정이 달라졌다.
“자. 여기서 하나. 지금까지 내가 말했던 것들 중에 빈틈이 존재해.”
빈틈이 있다고?
케일의 머릿속에 프레도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프레도는 말을 이어나갔다.
“케일 헤니투스. 신이나 천족들이 마계가 이 땅을 침범하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마계의 문.”
“그렇지!”
프레도가 환한 미소를 그렸다.
“바로 알아채는군. 그래! 이 자연에 생겨선 안 되는 기이한 공간의 뒤틀림! 마계의 문이 생기는 순간, 그 뒤틀림을 통해서 신이나 천족은 마족이 넘어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순간 케일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러면 마계의 문을 통하지 않고 마족이 이 땅에 나온다면 못 알아채는 건가?’
그 의문을 알아챘다는 듯 프레도 공작이 이어 말했다.
“물론 마족의 힘이 이 자연계에서 펼쳐지는 순간, 신과 천족들은 알아차릴 거야.”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말은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마족이 이곳을 돌아다녀도 신이나 천족들이 모른단 소리 아냐?’
그때, 케일의 표정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인간아, 놀랐나?”
“케일 님 괜찮습니까?”
순간, 라온과 최한이 놀라서 케일의 곁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낯빛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덥썩.
케일은 제 손을 잡아 오는 프레도의 두 손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짓이지?”
최한이 검을 뽑으려 하는 순간, 케일이 먼저 말했다.
“됐어. 내버려 둬.”
케일은 그 말과 함께 제 손바닥을 펼치는 프레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라온과 최한도 보지 못하게 그 펼친 손바닥을 팔로 가렸다.
“눈 감아.”
프레도의 말에 케일은 하얗게 질렸던 낯빛이 조금 가라앉으며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놈, 아는구나.’
눈을 감으며 그리 생각한 순간. 프레도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케일의 입꼬리가 더욱더 올라갔다.
프레도는 신의 눈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케일의 낯빛이 변한 이유는 한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마족들이 이 세상에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면. 이 세상 곳곳에 눈길을 퍼트려놓은 신들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하얀 별이 천 년간, 그 눈길을 피하긴 힘들었을 터.
케일의 몸 안에만 해도 죽음의 맹세 때문에 죽음의 신 힘이 닿아있지 않던가?
‘내 경우엔 위치 추적기라고 했지.’
케일 주변의 이야기를 듣거나 볼 순 없지만, 위치는 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아.
케일은 신들이 엔더블 왕국 안에서의 수작을 알아채지 못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케일은 침묵하며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모든 것을 듣고 물어도 되었으니까.
그의 손바닥에 또 다른 글자들이 적혀나갔다.
그래. 궁금하다.
만약 저것이 가능하다면, 큰 문제였다.
세계수는 말했다.
‘신은 세상사에 관여할 수가 없어. 타고난 운명 또한 바꾸거나 조작할 수 없지.’
그렇기에 성자나 성녀. 혹은 마족 문제일 경우 드래곤을 통해 이를 막으려 했다. 더 심하면 천족을 보내고.
때문에 마족들이 이 땅 곳곳에 은밀히 스며들어 급습을 한다면, 다른 이들이 손쓸 틈 없이 이 세상이 마족의 손아귀에 놓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족이 이 세상으로 넘어오지?’
그 순간, 프레도가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손가락으로 흔적 없이 케일의 손바닥에 쓰여진 문장.
“아.”
케일은 탄식을 흘렸다.
마족이 만들어진다.
누구를?
케일은 하얀 별이 떠올랐다.
‘…하얀 별이 마족이 되려는 거다!’
그는 마족에게 종속된 게 아니다.
케일은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케일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는 저를 쳐다보는 보랏빛 눈동자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부숴야겠군.”
만들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만들려는 것을 부숴야 막을 수 있다.
“프레도 공작. 당신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왜 이제와서야 이 일을 미친 짓이라고 하지?”
씨익.
프레도는 그제야 케일의 손을 놓았다.
그는 최한과 라온이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눈치 보는 것을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서두르거든.”
“서둘러?”
“그래. 하얀 별은 서두르고 있어.”
원래라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행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프레도는 서서히 엔더블 왕국을 장악하며 하얀 별을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쳐내버릴 생각이었다.
“케일 헤니투스. 너 때문에 그자가 서두르고 있어.”
“…나 때문에?”
“그래. 넌 신의 뜻을 이어받은-”
쾅!
갑자기 라온이 테이블을 통통한 앞발로 내리쳤다.
쩌저적-
테이블이 부서졌다.
케일이 놀라서 쳐다볼 때 라온이 분노에 가득 차 외쳤다.
“아니다! 우리 인간은 신은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 오로지 백수 되는 게 꿈인, 착한 인간이다!”
“알아.”
“…알아?”
“…백수는 믿을 수 없다만, 신의 뜻을 이어받은 게 아니란 건 알지. 아니까, 케일 헤니투스에게 다 말해줬지. 안 그러면 말해주지 못하지. 다 들을 텐데.”
누가 다 듣냐고 묻지 않아도 뻔했다.
프레도가 말하는 존재는 ‘신’일 테니까.
“난 솔직히 말해 신도 마족도 다 싫네. 내 위로 누군가가 있다는 게 딱 질색인지라.”
자신의 목표가 더 중요할 뿐.
프레도의 입가에 오만한 미소가 걸렸다.
“어쨌든 엔더블 왕국으로 함께 가줘야겠어.”
“왜?”
프레도가 다시 케일의 손바닥을 잡아 빠르게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엔더블에서 하도록 하지.”
엔더블 왕국에 인간을 마족으로 만드는 장치가 존재한다.
‘진실일까?’
케일은 프레도 공작을 빤히 바라봤다.
엔더블 왕국. 그곳은 적의 본진이었다. 그곳에 가는 건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은 가야 한다.’
프레도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엔더블 왕국을 한 번은 가봐야 했다.
그곳은 무엇도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공간이었으니까.
“자네가 뭘 고민하는지 알아.”
프레도 공작의 목소리에 케일은 그를 바라봤다.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지?”
“당연한 소릴.”
“그러면 그 신뢰의 증표를 보여주도록 하지.”
프레도는 소매 단추가 풀어지고 나타난 제 손목을 매만졌다.
“내가 지금껏 하얀 별의 이목을 속이며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대대로 내려져 오는 우리 가문만의 ‘보물’ 덕분이었어.”
“…그걸 나한테 주기라도 하게?”
“그래. 줄 거야.”
케일은 한 번 던져본 말에 바로 응하는 프레도를 조금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프레도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엔더블 왕국으로 아무 의심 없이, 숨지 않고 잠입할 방법이기도 하지.”
케일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 순간.
“너. 내가 될 생각은 없나?”
“뭐?”
케일은 어린 프레도 공작을 천천히 머리부터 내려다봤다.
‘프레도 공작이 되라고?’
염색 마법으론 그 정도까진 불가능한데?
드래곤이 폴리모프하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 프레도 공작이 이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소년의 모습으로 있는 줄 아는가?”
스륵.
그는 제 팔뚝을 걷어 올렸다.
그곳엔 팔을 감싼 검은색 밴드 같은 것이 있었다.
“이 보물은 현 가주의 어린 시절 모습을 각인시켜, 그 가주가 죽을 때까지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돕지.”
스스스–
검은색 밴드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음.”
케일은 순식간에 어른 프레도 공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프레도 공작은 다리를 꼬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참으로 나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이 입을 열었다.
“어린 프레도 공작으로 간다고 해도, 내가 프레도 공작으로서 하얀 별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한 번쯤은 있을 텐데. 이를 어떻게 속이려고 그러지?”
어린 프레도 공작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얀 별을 비롯한 다른 귀족들과 얽히게 될 터.
무엇보다도 엔더블 왕국 사람들을 모두 속여야 한다.
그게 쉬울 리가 있겠나?
“그건 괜찮네.”
프레도는 여유만만이었다.
“내가 설명 제대로 안 했군.”
오히려 깜박했다는 듯 그는 자신의 밴드를 매만졌다.
스스스-
어린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말했다.
“엔더블 왕국에선 난 프레도 2세일세.”
“뭐?”
프레도 2세?
프레도 공작 아들?
“그러니까.”
프레도의 밴드에서 다시 빛이 났다.
어른으로 돌아간 프레도.
“난 아버지.”
다시 밴드에서 빛이 났다.
어린 프레도가 나타났다.
“이 모습은 아들. 몇 수족만 제외하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네.”
케일은 그저 좋다고 웃고 있는 놈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린 모습의 프레도 공작을 엔더블 왕국 사람들은 프레도 2세로 안다?”
“그래. 내 아들로 알지.”
“…그럼 나는 네 아들로 엔더블 왕국에 들어간다?”
“그래. 아버지 손 잡고 엔더블 왕국으로 가는 것이지.”
허!
케일은 기가 찼다.
한 사람이 아들과 아버지 두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속여 왔다니,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야.’
케일은 엔더블 왕국을 모른다.
그러니 엉성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았고,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면?’
그렇다면 그런 행동들쯤이야 다들 이해해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 옆에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케일이 프레도 공작과 함께 움직이며 안내를 받거나 이곳저곳 들쑤셔보기 수월할 것이다. 도움을 받기도 쉬울 것이고.
‘괜찮은데?’
케일의 시선이 프레도 공작 팔뚝의 밴드로 향했다.
밴드는 체형에 맞게 그 크기가 변형되어 어린 프레도 공작의 팔에 딱 맞았다.
“케일 헤니투스. 네 아군 중 내 모습을 본 이들이 있었지.”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 설산에서 용병대와 엘프, 일행들이 프레도 공작의 두 모습을 모두 보았다.
“그들의 입 정도는 네가 막아야겠지? 그 정도 수완은 있을 거 아닌가?”
케일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도 수완은 당연히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답 없는 모습에 프레도 공작은 만족했다는 듯 웃으며 팔에 있던 밴드를 풀었다.
순식간에 그는 어른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내 아들로 함께 가지.”
케일은 가만히 쳐다보다가 프레도가 내민 밴드를 잡았다.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버지라고 부르면 될까?”
프레도가 마주 웃으며 답했다.
“참고로 하얀 별에게는 큰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네.”
뭐? 큰삼촌?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얀 별이 프레도 2세를 참 귀여워하지.”
제기랄.
케일은 벌써부터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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