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5
534화.
프레도 공작이 머무는 대저택.
그 1층 홀에 저택과 관련된 모든 뱀파이어들이 모여 서로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이래?”
“모르지. 다 모이라고 했으니 모인 거 아냐?”
그들의 얼굴에는 알게 모르게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청소나 음식을 담당하는 이들부터 경비를 담당하는 이들. 나아가 이젤른 공작가와 관련된 모든 대소사를 관리하는 가신까지.
“…그래도 전사님들은 없는데?”
“맞네. 그분들 빼고 다 모았나 보네.”
병력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모여 있어 드넓은 홀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부족하기도 했다.
몇몇 이들은 홀과 연결된 방의 문을 열어 그 안에 머물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집사님도 안 오셨어.”
“집사님이야 나르 도련님을 모시러 가셨겠지!”
나르 도련님.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주위 뱀파이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들의 얼굴에 긴장이 맴도는 이유.
그 이유가 한 뱀파이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공작님과 관련되어서 무언가 할 말이 있으신 걸까?”
그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는 아무 말이 없는 제 친우를 보며 속삭였다.
“조금 전에, 황급히 치료사들이 들어가는 것 봤잖아. 뭔가, 뭔가 문제가-”
“야, 조용히 해!”
그는 친우의 외침에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생겼다.
그는 저처럼 불안해하는 고용인들의 눈동자를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제 나르 도련님이 돌아오고 난 후, 하얀 별을 비롯한 귀족들이 저택을 왔다 갔다.
그 뒤로는 평화로웠다.
다들 공작님이 의식불명인 상황에 나르 도련님이라도 이곳에 머물러 주어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 조금 안도했어.’
방금 친우의 타박에 입을 다물었던 뱀파이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조금 전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치료사들이 급히 프레도 공작님의 침실로 향했다.
나르 도련님은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솔레나 님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
무언가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불안함이 그를 비롯한 대저택 안 뱀파이어들의 마음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이젤른 공작가는, 아니, 프레도 공작은 너무나도 소중한 주군이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1층 홀로 내려오는 계단.
그곳으로 나르 본 이젤른이 나타났다.
그는 등 뒤에 솔레나와 집사 멜른도를 대동한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섰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세 뱀파이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홀에 자리한 뱀파이어들은 자세를 똑바로 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 본다.’
‘도련님께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다니……!’
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매단 나르 본 이젤른.
그의 얼굴이 오늘은 평소와 달리 굳어 있었다.
쿵. 쿵.
뱀파이어들의 심장이 조금씩 크게 뛰기 시작했다.
탁!
나르가 계단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많기도 많네.’
나르, 아니, 케일은 계단 아래 홀에 자리한 뱀파이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홀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방과 주방까지.
이 대저택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모여들었다.
경비 외의 병력을 제외하고.
케일은 이 순간, 한 가지 정보를 떠올렸다.
‘엔더블 왕국은 세워진 지 20여 년 정도 되었네.’
프레도 공작이 말해준 정보였다.
그는 이 말을 하며 덧붙였다.
‘그 말은 하얀 별이 이번 생에서는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겼단 소리지.’
케일은 하얀 별의 이번 삶과 함께 엔더블 왕국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왕국 건설 준비는 그보다 더 예전인, 하얀 별의 이전 생. 50여 년 전부터 행해져 왔다고 한다.
즉, 이 엔더블 왕국은 준비 기간까지 합쳐 70여 년의 역사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다들 바쁜 와중에 모두 모여 줘서 고맙다.”
그의 말에 홀에 자리한 이들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들을 보며 케일은 조금 전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프레도 공작과 나눴던 대화 중 일부를 떠올렸다.
‘아들아.’
‘케일.’
‘그래, 벗이여. 자네는 정말로 ‘케일 헤니투스’와 싸울 생각인가?’
프레도 공작이 흘러가듯이 묻는 말에 케일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아니? 내가 뭣 하러 싸워?’
안 싸운다는 케일의 말에 프레도 공작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아들아. 네 마음대로 해. 이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마!’
‘연기는 그만하지?’
‘나름 재밌어서 말이야.’
케일은 프레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툭 던지듯 물었다.
‘싸움이 싫나 봐?’
‘난 싸움이 싫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대답이었다.
케일은 순간 의아함이 들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왜?’
그리고 그 물음에 프레도는 대답 대신 도리어 물음을 던졌다.
‘자네는 이 저택으로 오는 길에 무엇을 보았나?’
케일은 그 물음에 곧바로 답하려다, 프레도의 눈빛을 보는 순간 잠시 침묵을 택했다.
어느 때보다도 프레도의 눈빛은 진지했다.
케일은 상대의 진지함에 응해, 침묵 끝에 솔직하게 답했다.
‘다 똑같더군.’
똑같았다.
‘여기나 로운이나. 똑같았어.’
헤니투스 영지에서 보는 광경이나, 엔더블 왕국 수도 1구역에서 보는 광경이나 다 똑같았다.
이를 깨닫자, 케일은 웃으며 프레도에게 말했다.
‘너, 그 광경을 보여주려고 솔레나에게 시켜 일부러 내가 그쪽을 지나가게 했구나?’
‘우리 아들은 참 똑똑해.’
프레도 역시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들에게 하나의 가르침을 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지. 그래서 이 대저택까지 오는 길을 보여줬네.’
프레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 다 똑같아. 이곳이나 밖의 세상이나.’
가까이서 보면 각기 다른 삶이나, 멀리서 보면 얼추 비슷했다.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우리 뱀파이어들은 대대로 숨어서 제대로 어디 정착도 못 하는 삶을 살았다.’
프레도는 20여 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이곳에 터를 내리며 뱀파이어들에게 말했다.’
그 순간은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너희가 돌아올 고향을 만들어 주마.’
그는 뱀파이어들에게 고향을,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뱀파이어들에게 정착할 곳을, 돌아올 곳을 만든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네.’
창밖으로 향했던 시선이 케일에게로 다시 옮겨졌다.
프레도는 케일의 눈을 응시하며 단호히 말했다.
‘더 이상의 피를 흘리긴 싫다.’
케일은 그때 비로소 의심하던 적, 프레도 공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가 왜 왕의 자리를 탐하는지.
공작씩이나 되면서 왜 굳이 12살 소년의 모습으로도 살아왔는지.
케일과 일행, 그리고 나아가 알베르에게 왜 친근하게 대하려고 했는지.
모두 알았다.
케일은 침묵했고, 프레도는 그런 케일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감이지만, 하얀 별은 엔더블 왕국을 진정으로 아끼지 않아.’
반대로 케일은 프레도가 진정으로 엔더블 왕국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레도는 북쪽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 창 너머 남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하얀 왕궁이 있었다.
1구역의 중심. 하얀 별이 기거하는 궁이었다.
‘하얀 별도, 게르세이 제사장도 그렇고. 나는 느껴져. 그들은 이곳이 소중하지 않아.’
피식.
프레도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크엘프 노인이랑 기사는 봤겠지만, 그들은 탐욕스러울지언정 이 왕국에 대한 애착이 강하네.’
초대 귀족 넷 중 권력 혹은 힘에 대한 탐욕이 존재하는 둘.
프레도는 그 둘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밉지 않네. 왜냐면 그들에게도 이곳은 고향이라는 게 느껴지거든.’
케일은 그 순간 느꼈다.
이놈을 조금 믿어도 되겠구나.
그리고 말해야 할 때구나.
케일의 입이 열렸다.
‘하얀 별은 저주에 걸렸다.’
‘아네. 생을 반복하는 저주 아닌가? 물론 그에겐 축복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냐.’
케일의 말이 이어졌고, 그에 따라 프레도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하얀 별은 소중한 것을 가질 수 없어. 그는 소중한 것이 생긴 순간, 그 소중한 것을 잃는다. 그게 그의 또 다른 저주다.’
‘하!’
프레도가 탄식을 흘렸다.
그는 한참 만에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에겐 이 엔더블은 그저 수단이었군. 모든 것들이 다 수단이었던 거야.’
케일은 그 말을 내뱉던 프레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그만 접었다.
대신 그는 저를 바라보는 뱀파이어들에게 말했다.
“현재 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이시다.”
아.
누군가의 탄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언제 깨어나실지 불분명한 상태다.”
순간 분위기가 크게 요동쳤다.
하지만 누군가가 입을 열기도 전, 케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드럽게만 들리던 소년의 목소리가 오늘은 차분하게 공간을 휘어잡았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 가문의 주인.
그 주인의 아들인 소년이 모두에게 말했다.
“너희가 돌아올 고향을 만들어주마.”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뱀파이어들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갓 태어난 20년 남짓의 뱀파이어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프레도 공작을 떠올렸다.
동서대륙의 모든 뱀파이어들이 프레도 공작을 따르고 그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명확했다.
프레도 본 이젤른.
그는 뱀파이어들에게 말한 것은 꼭 지켰다.
위장과 은신, 도망이 주특기인 뱀파이어들에게 프레도 공작은 늘 진실된 말을 했으며 위장과 은신, 도망이 필요치 않은 장소를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하얀 별보다 프레도 공작을 믿고 이곳에 왔다.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얻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일상을.
“지금부터 나 나르 본 이젤른은 가주 대리로서, 명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아들이 이 저택 안의 뱀파이어들에게 말한다.
아니다.
뱀파이어들은 느꼈다.
이 말은 이 저택 안의 이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닌, 모든 뱀파이어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그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여린 줄만 알았던 소년이 오늘은 차분하지만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깨어나시기 전까진.”
위태로운 상황.
“나를 믿고 따라라.”
요리사, 청소부, 경비병. 가릴 것 없이 이 엔더블에서 살아가는 뱀파이어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불안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케일은 저를 응시하는 뱀파이어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 이젤른 가문을 믿고 따라라.”
진심이다.
프레도 공작은 믿어도 되는 자다.
‘케일 헤니투스.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하지만 이곳도 로운과 같은 곳임을 기억해야 하네.’
‘당연한 거 아닌가? 사는 데가 거기서 거기지.’
‘그래. 당연한 생각이야.’
프레도는 말했다.
‘나는 하얀 별의 욕망에 이 평화가 무너지는 것이 싫네. 그는 동서대륙을 향해 전쟁을 벌이겠지. 하지만 이곳에 터를 내리기 전, 이미 뱀파이어를 비롯한 이 왕국의 종족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 대부분의 일반 왕국민들은 이 평화를 반기고 행복해해. 거리를 조금만 걸어보면 알 수 있지.’
프레도는 어리고 상냥한 소년 나르로 있을 수 있었기에, 이 왕국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왕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 다크엘프, 다른 종족들.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삶은 평범했다.
‘나는 이 평범한 평화를 지켜야 해. 그게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위한 내 사명이지.’
프레도의 목소리가 케일의 귓가에 맴돌았다.
케일은 나르가 아닌 스스로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너희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는 내가 이 손으로 막을 테니, 혼란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마라.”
뱀파이어들은 주먹을 쥐었다.
이거다.
이젤른 가문은 이런 곳이다.
“오늘 이 말들을 기억하며 평소처럼 지내라. 그러면 다 지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케일은 홀을 가로질러 저택 정문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렸고 케일은 그 문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저택 앞에는 왕궁으로 향하는 검은 마차가 자리해 있었다.
케일은 그 마차에 올라탔다.
“도련님.”
그는 시선을 돌렸다.
솔레나가 같이 마차에 올라타며 작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케일에게 전하는 고마움이 어려 있었다.
“고맙긴. 내가 앞으로 난장판을 벌일 건데.”
작전상 프레도 공작은 의식불명 상태로 꽤 있을 것이고, 하얀 별 쪽에는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다.
엔더블 왕국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뒤숭숭해질 터.
케일은 이때 수장까지 의식불명이라 다른 이들보다 더 불안해할 뱀파이어들이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걱정 말라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었다.
싱긋.
솔레나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도련님, 괜찮습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평소처럼 하루를 보낼 겁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차 문을 닫았다.
솔레나는 다시 일상을 향해 나아가는 뱀파이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걸음에는 가주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확 줄어들어 있었다.
타악.
마차 문이 닫혔고 그녀는 나르 모습의 케일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래서 고맙다는 겁니다.”
진심이 느껴졌으니까.
평화를 방해하는 자를 자신이 막겠다는 케일의 말에는 진심이 있었다.
“…딱히 고마울 일은 안 했다만?”
뭔 소리냐는 듯 뚱한 얼굴로 쳐다보는 케일의 모습에 솔레나는 웃으며 살짝 마부석 쪽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말했다.
“왕성으로 가자꾸나.”
“네!”
마부의 힘찬 대답과 함께 케일을 태운 마차가 왕성으로 향했다.
***
엔더블 왕국 수도 1구역의 중심.
하얀 별이 기거한다고 하여 하얀 성이라고 불리는 이곳.
그 궁의 중심이자 101명의 인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회의실.
‘슬슬 해볼까?’
케일은 사냥감을 코앞에 둔 사냥꾼처럼 은밀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물론 그 모습은 회의가 아직은 어색한 순진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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