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6
535화.
엔더블 왕국의 중심.
하얀 성.
그곳은 말 그대로 모든 궁의 색깔이 새하얬다.
하지만 이곳을 하얀 성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지 궁을 칠한 색깔 때문이 아니었다.
거대한 싱크홀.
그 구덩이 안은 더 이상 싱크홀이 아니었다.
층층으로 나뉘어져 여러 시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나뉜 층의 어떤 구역을 가더라도 중심은 둥그런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 지하까지 그 햇빛이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다.
‘하얀 성으로 그 햇살이 바로 내리쬐지.’
유일하게, 오로지 하얀 성이 있는 싱크홀 가장 아래 1구역의 중심만큼은 원형의 구멍이 없었고, 그 자리에 하얀 성이 자리해 있었다.
‘빛이 모여든다고 해서 하얀 성이라.’
케일은 피식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하얀 성.
엔더블 왕국민들은 이곳을 꽤 성스럽게 여긴다고 하였다.
케일은 그것이 참 웃겼다.
‘…실상은 탐욕으로 판을 치는데 말이야.’
대회의실.
하얀 별.
초대 귀족 가문 넷을 대표하는 자.
그리고 귀족 대기자 96명.
총 101명이 자리한 이곳.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크엘프 노인. 모크 백작이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케일은 현재 30분째, 회의장 분위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모크 백작의 입이 열렸다.
“7구역과 9구역 관리직 인사 변경 건입니다.”
케일은 순간 대회의장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 구역을 관리하는 직위를 변경한다는 말에 96명 귀족 대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흐.’
케일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입가를 찡그렸다.
‘96명의 귀족 대기자라니. 참 희한한 제도야.’
대회의장.
그곳에는 높은 단이 하나 있었고, 그 중심에는 원형 테이블과 함께 다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물론 그중 하나의 의자는 조금 더 높은 단에 올려진 채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당연히 하얀 별을 위한 의자였다.
나머지 의자 네 개는 초대 귀족 네 가문 대표자들을 위한 자리로, 이 다섯 명이 이 회의장의 중심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96명은 바닥이라.’
96명의 귀족 대기자들.
그들은 대회의장 바닥에 방석을 깔아두고 앉은 채 원형 테이블이 있는 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일은 회의장 문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마차를 타고 오는 길에 솔레나가 했던 말을 하나씩 떠올렸다.
‘96명의 귀족 대기자들은 종족도 다양하며 출신 지역도 모두 제각기입니다. 어둠 속성이 아닌 인간이나 엘프도 존재하죠.’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솔레나는 케일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그들은 귀족이 되고 싶어 하죠. 높은 자리를 탐냅니다. 그렇기에 꽤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돌바닥에 방석을 깔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지요.’
솔레나는 마차 안임에도 주변을 둘러보는 자세를 취하더니, 케일에게 더 은밀히 말을 건넸다.
‘도련님. 그들이 귀족 자리를 탐내는 이유는 제각기입니다. 그중-’
‘됐어.’
‘네?’
‘이유는 필요 없어. 관심도 없고.’
케일은 그가 솔레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냥 귀족 자리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만 알면 돼. 그게 중요할 뿐이니까.’
다시 한번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했다.
“나르.”
그때, 케일은 제 어깨에 올려지는 손길을 느꼈다.
차가웠다.
온기라곤 없었다.
순간 케일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며 굳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일의 오른쪽에 앉은 자.
그 사람이 자신의 왼팔을 뻗어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힘드니?”
회의를 진행 중인 와중에 다정히 말을 건넨 이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
‘하… 뒤통수 때리고 싶다.’
하얀 별의 다정한 미소를 마주한 순간, 케일은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하얀 별에게 존댓말 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도 일이었다.
케일은 당장이라도 하얀 별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하얀 별의 안타까워하는 음성이 들려왔지만, 케일은 모른 척했다.
하얀 별은 그런 케일을 더욱더 안타깝게 바라봤다.
‘프레도 공작의 의식 불명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하얀 별은 오늘 아침부터 프레도 공작가에서 전해져온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쯧. 중요하게 써먹을 패가 이럴 때 못 쓴다니.’
자신의 계획에 도움이 될 요소가 하나 줄어든다니, 하얀 별은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하얀 별은 그 무심한 눈동자에 고개 숙인 12살의 소년을 가만히 담았다.
‘…상심이 큰가 보군.’
무엇을 참는지 입가를 찡그린 채 회의에 참석한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심히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비웃음을 내게 만들기도 하였다.
‘다음 대 이젤른 가문은 공작위를 지킬지 알 수가 없겠군.’
다크엘프 노인, 모크 백작은 하얀 별과 나르의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래도 꼴에 공작 대리자라고 용케 그 심약한 성정에 회의에 참석해 있기는 하네.’
그는 비웃음을 참으며 회의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조금 높은 단에 자리한 하얀 별과 회의 진행을 위해 서 있던 모크 백작.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두 명은 나르를 묘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갑옷 차림으로 대회의에 참석한 여인.
후베샤 백작.
그녀는 고개를 숙였지만 주먹을 꽉 쥔 나르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평소와 다른데?’
나르의 바로 왼편에 자리한 그녀는 하얀 별이 안쓰럽다는 듯이 나르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지만, 꽉 쥔 채로 부들부들 떨리는 나르의 주먹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 근심으로 저리 주먹을 꽉 쥔다?’
아니다.
저런 건 오히려-
‘화나면 저러지 않나?’
후베샤 백작은 순간 이젤른 공작가를 찾아갔을 때, 나르가 하얀 별에게 외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케일 헤니투스. 그자를 결단코 용서치 않을 겁니다.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처절하게 외치던 소년의 비장한 모습이 그녀는 자꾸만 생각났다.
‘설마.’
설마 싶으면서도 자꾸만 이상한 예감이 그녀를 자극했다.
‘나르 본 이젤른. 이 아이는 착하지.’
엔더블 수뇌의 자식에 어울리지 않게 착하다.
부드럽고 상냥했다.
하지만 올바르다.
또한 순진했다.
‘올바른 것은 어떤 순간에는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강인함을 보이기도 하지.’
후베샤의 눈동자에 어떤 확신이 맺혔다.
그녀는 고개 숙인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은 나르를 더욱더 깊숙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으음.”
그리고 그녀처럼 나르의 이상함을 알아챈 이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이상한데?’
그 사람은 엔더블의 유일한 후작이자 제사장인 게르세이였다.
그가 느끼는 의문은 후베샤 백작과 조금 달랐다.
‘솔레나가 컨트롤 안 하는 건가?’
게르세이도 후베샤처럼 나르의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프레도 공작이 솔레나에게 일러두었을 텐데.’
게르세이 후작이 아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프레도 공작이라면 그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기 전 늘 곁에 있는 심복 솔레나에게 일러두었을 것이다.
나르가 분노하지 않도록 만들라고.
또한 이젤른 가문과 뱀파이어들이 요동치지 않도록 하라고.
분명 프레도 공작이라면 그렇게 일러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르가 분노를 못 감춘다?’
이는 두 가지를 뜻했다.
프레도 공작이 솔레나에게 그런 명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급박하게 싸우다 의식 불명이 되었거나.
‘아니면 솔레나가 나르를 통제할 수 없거나.’
흐음.
게르세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뭐, 무엇이든 상관없는 일이지.’
무슨 이유건 뱀파이어들의 굳건한 버팀목인 프레도가 의식 불명인 동안. 나르가 분노를 해봤자 무슨 짓을 하겠나?
‘본질적으로 부드러운 성정을 지녔어. 그러니, 이 녀석이 벌일 짓은 그게 그거지.’
게르세이는 이내 나르에 대한 관심을 껐다.
물론 그도 후베샤 백작처럼 프레도 공작가를 찾아가 케일 헤니투스에 대한 나르의 분노를 유심히 들었다면 몰랐겠지만, 그는 프레도 병문안을 갈 시간 따윈 없었다.
“다음 안건입니다.”
왔다.
게르세이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이 회의장의 가장 높은 자리로 향했다.
그는 저를 기이한 열망에 사로잡힌 눈동자로 바라보는 하얀 별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모크 백작이 말을 이었다.
“이번 안건은 축제에 대한 건으로, 게르세이 후작님께서 발의한 내용입니다.”
제사장인 게르세이 후작.
그가 발의한 내용이란 소리에 회의장의 공기는 또 한 번 달라졌다.
엔더블 왕국의 3 기둥 중 하나이자 권력자로 꼽히는 게르세이.
96명 귀족 대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귀족들의 눈동자가 모두 그에게로 향했다.
심지어 하얀 별조차도.
물론 한 명은 예외였다.
케일은 고개를 숙인 채 청각을 곤두세웠다.
“크흠.”
모크 백작은 조금 불편함과 의아함을 담은 눈빛으로 게르세이를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게르세이 후작님께서 발의한 내용은 축제 마지막 날, 2구역 전역에 위치한 모든 사제들이 대규모 의식을 행하고자 하니 이를 허가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순간 회의장을 무겁게 하던 분위기가 옅어졌다.
귀족 대기자들 눈동자에 실망이 어렸다.
‘에이. 후작이 발의한다기에 큰 건인 줄 알았는데.’
‘겨우 축젯날 의식이라니. 별것 아니군.’
모크 백작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의식 내용은 ‘올 한 해를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한 감사 인사 및 앞으로 엔더블 왕국 미래에 평온과 행복이 깃들길 바란다.’입니다.”
다들 그저 축제 내용 행사 중 하나구나 싶어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러나 고개 숙인 케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이상한데?’
하얀 별은 어서 빨리 마족이 되려 서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은 게르세이 제사장이 함께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게르세이 제사장이 축제 때 행사용 의식을 펼친다?
‘뭔가 있다.’
케일은 깨달았다.
하얀 별과 게르세이.
‘이 두 놈이 뭔가 벌이려는 것 같은데?’
축제 때 펼쳐질 의식에 무언가 어둡고 비열한 것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확신과도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 모크 백작이 게르세이 후작을 바라봤다.
“후작께서 덧붙여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크흠.
작은 헛기침과 함께 게르세이 후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딱히 덧붙일 말은 없는 작은 안건인지라. 의식 비용이나 준비물 등은 저희 사제들이 준비할 것이오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의식인지라, 전 왕국민들이 이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팔랑 팔랑.
그는 부채를 흔들며 살짝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참으로 가벼운 모습이었으나, 그가 가진 자리의 무게를 아는 이들은 그 행동에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그럼 안건에 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모크 백작은 별것 아닌 안건이라 판단해, 서둘러 안건을 통과시키고자 하였다.
딱히 반대할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이를 지켜보는 게르세이 후작은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됐어.’
부채에 가려진 입꼬리가 아무도 몰래 올라갔다.
“그럼 통과로 보고-”
모크 백작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손은 다음 안건 페이지를 향해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반대합니다.”
끼이익-
의지가 뒤로 밀려났다.
‘음?’
모크 백작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안건 문서에서 시선을 돌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흠칫.
그 순간, 그의 어깨가 저도 모르게 살짝 멈칫했다.
“…나르 공자. 지금-”
“반대합니다.”
다크엘프 노인 모크는 제 말을 자르며 말을 내뱉는 나르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이놈, 축 처져있던 게 아니었어?’
모크는 소년의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도 보았다.
“…이런.”
검은 기사. 후베샤 백작은 저도 모르게 작게 탄식을 흘렸다.
그녀는 자신이 걱정하던 일이 펼쳐질 것임을 깨달았다.
“나르. 갑자기 무슨 행동이지?”
하얀 별이 부드럽게, 하지만 날카로움을 담아 나르를 바라봤다.
그 순간, 하얀 별은 나르의 행동에 눈을 크게 떴다.
콰앙!
소년의 두 손이 탁자를 내리쳤다.
“저하.”
소년은 하얀 별을 활활 타오를 듯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소년은 생각하고 있었다.
‘하얀 별을 후려친다는 마음으로! 그런 감정으로!’
소년은 감정을 담아 외쳤다.
물론 감정과 내뱉는 말은 전혀 달랐다.
“저희는 지금 축제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아버지. 프레도 공작님은 이 엔더블 왕국의 공작이십니다.”
소년은 하얀 별의 뒤통수를 후려칠 생각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로 외쳤다.
“그런 분이! 케일 헤니투스라는 사악한 놈에게 당하셨습니다!”
소년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그 케일 헤니투스를 후려칠 것처럼 분노로 휘감겨 있었다.
순간 대회의장 공기가 달라졌다.
‘음?’
‘어?’
96명 귀족 대기자들의 눈동자에 하나둘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거 잘만 하면?’
단상을 올려다보는 이들의 눈빛에 기이한 열망이 어렸다.
게르세이 후작의 안건에 시시해 하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이 이 차가운 바닥에, 겨우 방석 하나를 깔고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
프레도 공작은 케일에게 말해주었다.
‘아들아. 귀족 대기자들은 하얀 별이, 엔더블이 동서대륙 최고 강국이 될 것이라 믿고 있어.’
‘흐음. 그들이 귀족 대기자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하지?’
씨익.
프레도는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로 엔더블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다른 나라를 지배해야 돼. 그래야 영토가 늘어나 이를 관리할 귀족과 관직이 필요해져 대기자들을 귀족으로 상향시키겠지.’
‘또?’
‘두 번째로 대기자 개개인의 공적이 필요하지. 전쟁에서, 전투에서 눈에 띌 만한 성과를 이루어야 돼. 그래야 대기자들 중 ‘자신’을 귀족으로 상향시켜 주겠지.’
케일은 프레도의 말을 떠올리며 눈을 번뜩였다.
‘아들아. 귀족 대기자들은 지금 길게는 이십 년, 짧게는 오 년 동안 귀족이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
케일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참 기다리기 지겹겠는데?’
‘아마도?’
‘그들은 누군가가 제대로 된 전면전을 벌이길 기다리고 있겠어?’
‘…아들아. 네 생각대로 하려무나.’
나르 모습의 케일은 하얀 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있을 겁니까? 저는 절대로 이대로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아버지의 수척한 모습을 본 소년은 처연하고 분노에 가득 차 외쳤다.
“이 엔더블 왕국을 위해, 그리고 이 동서대륙을 지배할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건 엔더블 왕국의 자존심을 건 문제입니다!”
또한 엔더블 왕국을 사랑하는 순수한 소년의 굳건하고 단단한 기백이 느껴졌다.
“더 이상 숨죽이며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기다려서는 안 된다.
96명 대기자들의 주변 공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젤른 공작가를 대표하는 나르 본 이젤른!”
회의장 전체 분위기가 조용히, 하지만 급속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부채에 가려진 게르세이 제사장의 미소가 사라진 순간.
소년의 목소리가 대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안건을 하나 발의합니다!”
96명 귀족 대기자들.
그들은 직감으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족이 될 기회.’
숨죽인 채 기다려온, 이제는 지겨운 그 기나긴 시간을 끊어줄.
자신들의 욕망을 이뤄줄.
그 시발점이 지금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르 본 이젤른.
모두가 그를 바라보는 순간,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당장 케일 헤니투스를 처단할 것을 명해주십시오.”
…이런.
게르세이 제사장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상냥한 놈이라 분노해도 별일을 못 벌일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어!’
순수한 놈이라 더 큰 일을 벌일 수도 있단 것을 게르세이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하얀 별과 나르.
게르세이는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은 분노를 안으로 갈무리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이 엔더블 왕국의 전사들과 함께 케일 헤니투스의 숨을 끊어오겠습니다.”
엔더블 왕국 전사.
그 단어에 귀족 대기자들 중 몇몇이 주먹을 쥐었다.
‘왔다!’
아직 머나먼 때라고 생각했거늘, 한 놈이 판을 벌여준다.
이어진 소년의 말은 확실하게 귀족 대기자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나아가 대륙에 확실히 알리겠습니다! 위대한 엔더블 왕국을! 그리고 위대한 엔더블의 전사들을! 천하에 똑바로 알리겠습니다!”
이놈이 전면전을 펼치려는구나.
이놈을 밀어주면 ‘기회’가 오겠구나.
단 아래 귀족 대기자들의 뜨거운 눈동자가 케일의 등으로 향했다.
하지만 케일은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끝까지 복수를 꿈꾸는 소년으로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전사들을 이끌 기회를 저에게 주십시오.”
소년은 아직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왕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케일은 하얀 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 기세는 절대로 굽혀지지 않을 거대한 산과 같았다.
소년. 그리고 96명의 전사들.
총 97명의 뜨거운 눈빛이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물론 그 안에 담긴 열기의 진실은 모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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